삶의 진실을 찾아서

영혼 _ 본문

☆ 진실의 근원

영혼 _

gincil 2013. 4. 10. 14:08

이 세상 속에는 생명이 저절로 나타나도록 뜻이 지어져 있으니

태초에 가득한 기운들이 끝없이 스치는 가운데 

서로 진화하여 기운의 차이가 나타나는데


그중 가장 맑고 으뜸되는 진기가 

생명의 씨앗인 영기가 되어 생명의 근원이 되며

거친 것은 물질의  원인이 됩니다.


이 영기는 유기체도 아니고 무기체도 아니며 그러한 구별 이전의 단계로

인간의 인식마저 벗어난 극미의 상태이니

보이지 않되 존재하여 모든 생명과 의식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기는 다른 기운을 만나 태초의 생명체로 나타나는데

살아있되 세포는 없는 바이러스보다

더욱 시원적인 생명형태를 띠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 것도 없는 태초에서 

물질과 생명이 저절로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겨난 생명체는 또 서로 뜻이 닿아 진화하게 되며

그 속에 의식도 같이 머물며 진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식물과 동물, 인간이 태어나며

인간의 의식은 더욱 진화하여 완전한 진기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최초로 생겨난 영기가 인간의 의식으로 성장하기 까지

끝없이 자기를 되풀이하며 성장하면서 업을 묻히게 되는데

그것은 마치 여리고 부실한 새싹이 점점 자라 

크고 강한 나무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크고 강한 나무를 얻었으면

이것을 목재로 쓰려면 다시 소금물에 담그고 그늘에 말려

뒤틀림이 없게 만들어야 합니다.


따라서 인간의 정신을 받았으면 

쇠를 달궈 불순물을 모두 빼어내듯

좋은 원인으로 닦고 또 닦아 모든 불순물을 빼내어 버려야 

완전히 정화된 순수한 진기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일은 이치 속에 있습니다.

세상의 이치를 깨치게 되면 인과 속에 이루어지고 있는 세상의 일을 보게 됩니다.

세상의 일은 만법귀일이라 모든 일이 하나의 이치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세상의 실상과 인과법을 밝히는 이유는

하나 하나의 현상 속에 있는 인과법을 봄으로써

세상 일을 이루고 있는 진리의 공식을 깨우치라는 것입니다.

수학의 공식을 깨치면 많은 문제를 풀 수 있듯이

세상의 인과도 그 이치를 깨치게 되면 현상 속에 있는 문제의 이치를 보게 됩니다.


인간이 한과 집착이 많으면 죽어서 그 영혼이 여러개로 나뉘어져서 동물이나 미물로 다시 태어난다고요.


사람이 죽어 인간이 한과 집착이 많으면 죽어서도 그 집착에 끄달려 계속 생전의 자기가 되어 이승을 떠돌게 됩니다.

그러면 몸이 없는 영혼은 환경의 변화에 매우 민감해져 온갖 환상의 꿈을 꾸게 됩니다.

이것이 지옥의 형벌입니다.

이러한 지옥의 형벌을 겪으면서 그 영혼은 쇠약해져 인간의 진기를 간직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의식체는 인간의 진기를 갖지 못하고 혼미한 상태의 기운으로 흩어져 

동물이나 미물에 맞는 의식체가 되어 다시 그런 동물이나 미물로 나게 되는 것입니다.


깨우침을 통해 세상을 보는 시각이 좋아지면 

눈앞의 일을 보듯 이러한 일들을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참된 실상의 진실을 배우고 있는 일 속의 인과의 이치를 하나 하나 깨우치다 보면 

근본과 바탕과 환경이 서로 작용하여 현상을 만들어내는 인과의 이치를 깨닫게 됩니다. 

공식을 알면 모든 수학문제를 풀 수 있듯이 

인과의 이치를 깨닫게 되면 세상문제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참된 정법을 만나 실상과 바른 이치를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 하나 깨달아 세상보는 눈이 맑아지고 

진실의 소중함을 깨달아 마음 속에 거짓과 환상이 사라지면 

사실을 보는 눈이 생겨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게 되고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 자신과 세상을 축복하는 좋은 공덕을 지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거짓과 가상의 지식들이 사라지고 마음이 맑아지면 

인간의 이해력은 급속히 높아지게 됩니다. 


일반인의 실상에 대한 이해력이 50% 정도라면 

깨달은 이의 이해력은 거의 완전성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일반인은 눈앞에 있는 인과만 보지만 

깨달은 자는 살아있을 때의 인과가 죽음 이후에도 이어지며 

다시 순환하여 돌아옴까지 눈앞의 일을 보듯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돌을 던지면 던진다는 사실만 생각하지만 

성인이 돌은 던지면 그것이 땅으로 떨어져서 무엇에 맞는 것까지 

보지 않고도 분명히 이해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맑아져 인과법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면 

생전의 일이 모태가 되어 영원히 자기를 돌게되고 

사후에도 그에 맞는 환경을 만나게 되고 

후생에도 그 모태가 이어져 새로운 운명의 근원이 됨을 

눈앞의 일을 보듯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해력은 인간의 진실된 마음의 힘과 

인과법에 의한 지혜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니 

열심히 노력해 인간정신의 완성에 도전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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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사람들은 영혼이 과연 존재하는가 의문을 갖는다. 

성자들이 분명히 밝힌 일인데 오늘날 사람들은 알량한 과학적 지식을 배웠다고 이를 부정한다. 


사람들은 전해들은 과학적 지식에 의해 영혼의 존재를 아예 무시하고 

뇌과학이라 하여 뇌가 의식의 근본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뇌만 잘 연구하면 인간의 의식과 영혼의 비밀도 밝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뇌는 단순한 전달매체이다. 

모든 기억은 생명의 주체인 의식체인 영혼 속에 기억된다. 


그래서 심령현상에 있어서 혼이 떠돌아다니다 다른 사람에게 붙어도 

과거의 삶을 기억하는 것은 그 혼의 의식 속에 과거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뇌가 기억을 하는 것이라면 

심령현상을 통해 각종 영혼들의 기억이 나타나는 현상은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과학교육의 영향으로 인간이 죽으면 동물과 같이 아무 것도 남지 않으며 

영혼이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배운 과학 법칙상 모든 것은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그 결과를 남긴다는 것을 안다. 

이처럼 모든 것이 결과가 있는데 살아있을 때 세상의 주인이 되고 

온 우주를 좌지우지하는 무한한 능력을 지녔던 인간의 마음이 

아무 결과도 없이 육체와 함께 '펑' 사라진다는 것은 매우 비과학적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육체보다 더 큰 역할을 하는 것이 마음이다. 

육체가 그 재를 남기듯이 살아있을 때 세상을 변화시키는 수많은 정신적 활동을 한 

인간의 마음도 반드시 그 결과를 남긴다. 


현대과학은 자신이 검증할 수 있는 것만 말해야 한다. 

따라서 자신들의 인식 범위에서 벗어나 검증할 수 없는 것은 알 수 없다고 해야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영혼이 바로 그러한 영역에 속한다. 

과학자들의 평범한 감각능력으로는 기와 영의 세계를 인식하지 못한다. 

따라서 기와 영의 영역은 인간의 감각능력에 의존하는 과학자들의 검증대상에서 벗어난다. 


현대물리학은 우주의 근원적인 물질로 각종 쿼크를 제시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시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물질의 일종일 뿐 

그것보다 이 우주에서 더 중요한 작용을 하는 생명과 의식의 원인은 되지 못한다. 


이 우주에는 물질보다 더욱 미세하고 중요한 작용을 하는 생명과 의식의 원인이 존재한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한 현대물리학은 

영원히 우주의 원인을 찾는데 실패하고 말 것이며 발도 들여놓지 못한다. 


현대 과학의 원리에 의하면 물질은 물질을 낳고 생명은 생명을 낳는다. 

그런데 태초에는 물질만 존재했다는 현대과학의 주장과 달리 

현실 속에는 이미 생명과 물질이 존재한다. 


이를 현대과학에서는 전기충격으로 물질로부터 유기체가 생겨나고 

이로부터 생명체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오늘날 과학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은 결코 물질로 작은 바이러스 하나 만들 수 없고 

더구나 의식과 영혼의 원인은 측정할 수가 없다. 


따라서 이 세상에는 물질과 별도로 의식의 원인이 존재한다. 

이 우주 속에 지금 생명과 의식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본래 이 우주 속에 생명과 의식의 원인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태초에 이 우주가 깨어지면서 수많은 기운이 생겨난다. 

이기운들이 수억겁의 세월을 스치고 부딪히면서 

기운의 진화가 일어나고 그중 가장 순수하게 정화된 진기가 나타나게 된다. 

이 진기가 바로 생명과 의식으로 나타나는 원인이다. 


이와 같이 이 우주 속에 존재하는 물질과 기운과 진기와 뜻과 의식과 생명의 관계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영원히 생명과 진리의 세계에 대해서는 한발자욱도 내딛을 수 없다. 


영혼은 진기 속에 의식이 묻어 있는 형태로 존재한다. 

이 영혼이라는 형태는 우주의 물질적 근원인 쿼크보다 더욱 미세한 것으로 

인간의 감각으로서는 인식할 수 없다. 

그러나 없는 것은 아니니 그야말로 유와 무의 경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이 죽으면 몸에서 영혼이 분리되어 뜻의 세계인 의식계로 들어간다. 


삶을 통해 그 뜻을 잘 지은 영혼은 맑고 잘 여물어 높은 차원에 이르고 

그 뜻이 흐리고 원한이 많은 미숙한 영혼은 낮은 차원에 헤매게 된다.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근본을 망치지 않은 일반적인 영혼은 다시 인간으로 윤회하게 된다. 


이때 인간의 영혼은 반야의 차원을 지나 다시 인간으로 나게 되는데 

이 과정을 지나면서 과거에 존재했던 모든 기억은 지워지고 

기질과 성격 청탁 등 근본성품만 남아 새로운 영혼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즉 과거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반야심경에서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상태라고 묘사했다. 


이 반야의 차원에서는 모든 유적 존재는 사라진다. 

그러나 없는 것은 아니기에 과거에 지어진 뜻을 따라 

다시 새로운 생명의 씨앗 즉 영혼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이 우주 속에는 유와 무의 경계선 상에 존재하는 극미의 뜻의 세계가 

물질계와 별도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 뜻의 세계는 완전한 이치에 의해 생명의 세계를 지탱하고 있다. 

이러한 완전한 뜻의 세계가 인간의 삶의 근저에 존재함을 알기에 

성자들은 조금도 불의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을 진리에 바쳤던 것이다. 

이 생에서 죽으면 천상에서 편히 머물게 되고 

저승에서 뜻이 다하면 그 근본을 가지고 다시 이 세상에 나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근본이 무엇인가를 알고 싶어한다. 

과학적 사고에 입각한 사람들은 자신의 근본이 부모이며 

육체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분신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의 근본은 자신이며 부모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자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밭에 콩을 심으면 싹이 트고 콩이 맺힌다. 

이때 콩에게 너의 근본이 무어냐고 물으면 

콩은 자신의 근본이 땅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는 사람은 땅이 아니고 과거에 심었던 콩씨임을 안다. 

이와 마찬가지이다. 


사람도 그 근본은 자신이 뿌리내린 부모가 아니라 

부모라는 밭에 떨어진 과거의 그의 영혼인 것이다. 

인간은 부모라는 육체의 밭에 자신의 영혼의 씨를 심어 

새로운 생명으로 나타나 자기의 영혼의 근본을 키우는 것이다. 


인간의 근본인 영혼은 기운의 일종인 진기에 의식이 붙어있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진기는 이 우주에 존재하는 기운 중 가장 순수한 기운이다. 

자연의 기운 중에 스치고 부딪혀 끝없는 기운들이 분화하는데 

그중에 순수하게 진화된 기운들은 진기가 되면서 생명의 근본이 된다. 


인간의 영혼을 구성하는 진기는 이러한 생명의 기운인 진기에서 더욱 순수하게 정화된 기운이다. 

이러한 인간의 영혼을 구성하는 진기도 그 순도에 있어서는 끝없는 차이가 있으니 

중생의 진기가 60% 정도라면 깨달은 자의 진기의 순도는 거의 100%에 가까운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의 영혼은 진기에 의식이 붙어있다가 환경에 부딪히면 마음이 일어난다. 

영혼과 비슷한 말로 마음이 어디있느냐 하는 화두가 있다. 

인간의 의식이 환경을 만나 피어나는 것이 마음이다. 


그래서 네 마음이 어디있느냐 물으면 

주먹을 내밀면서 여기있다고 하는 이유도 

질문을 하는 스승의 빰을 때리는 이유도 

마음을 보여줄 수가 없으니 

그 순간 그 사람의 마음의 표현이 나타나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마음을 통해 받아들이는 것이 진기에 쌓여 근본을 변하게 한다. 

따라서 삶을 통해 자신이 깨닫고 경험하는 것이 진기에 쌓이는 것이다. 


이 우주 속에 지어진 모든 것은 다른 변화가 없는 한 

영원히 변하지 않고 자신을 되풀이 한다. 

이렇게 한번 지어진 근본이 되풀이되는 것을 모태법이라 한다. 

이것이 모든 진화의 원인이 된다. 


따라서 세상과 타협하여 한번 어둠을 짓게 되면 

끝없이 돌아가는 생명의 순환 속에서 잘 지어온 자신의 생명의 근본에 어둠을 심게 되고 

그로 인해 완성으로 나아가는 그의 영혼이 망가지고 

또 오랜 시간을 윤회를 돌아야 불행한 일이 예정되기에 

성자들은 한번도 악과 타협하지 않고 시련을 감수하는 것이다. 


이 우주 속에 한번 생겨난 자기의 영혼은 열매를 맺을 때까지 계속 돌게 된다. 

따라서 자기가 아무리 스스로 죽으려 해도 그 영혼이 죽지 않는 한 

죽을 수 없는 것이며 자기가 지은 삶의 결실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부처가 끝없는 전생의 공덕을 통해 진리의 세계에 눈을 뜨고 

공덕을 지어 깨달음에 이를 때까지 수만년의 세월 동안 새몸을 바꿔가며 영혼을 농사짓는다. 


이것이 생명이 나아가는 길이다. 

이러한 생명의 질서를 아는 이는 죽음을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자기의 영혼은 계속 존재하며 죽음이란 헌몸을 벗고 새몸을 얻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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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존재나 인간이 죽어서 가는 사후세계를 보여달라고 한다. 

그러나 어찌 하겠는가? 

눈뜬 장님인 중생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을....... 


그러나 깨달음을 얻은 성자들은 영혼의 세계와 삼계의 모습을 눈앞의 일을 보듯 훤히 보고 

이를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도 바쳤다. 

그러한 차이는 세상을 보는 시각 차이 때문이다. 


세상은 완전하다. 

시력이 0.1인 사람과 1.0인 사람이 세상을 보는 차이가 있듯이 

사람도 그 맑기와 깨달음의 정도에 따라 세상을 달리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보지 못한다고 해서 없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인간의 사후세계는 인과법상 단절될 수 없는 생명의 연속선상에 있다. 

보이지 않지만 인간이 인식하는 물질적인 현상계와 별도로 의식계가 존재한다. 


현대물리학은 우주의 근원적인 물질로 각종 쿼크를 제시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시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물질의 일종일 뿐 

그것보다 더 중요한 작용을 하는 생명과 의식의 원인은 되지 못한다. 


이 우주에는 물질보다 더욱 미세하고 중요한 작용을 하는 것이 생명과 의식으로 

현대 과학의 논리에 따르면 생명과 의식의 원인이 되는 물질을 제시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과학의 논리에 의하면 물질은 영원히 물질만 낳게 되는데 

그들은 이 우주의 원인을 물질이라 하기에 

물질 속에서는 영원히 생명과 의식의 원인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우주에는 이미 생명과 의식이 나타나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이 우주의 근원에는 물질뿐만 아니라 

생명과 의식의 근원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한 현대물리학은 우주의 원인을 찾는데 

영원히 실패하고 말 것이며 발도 들여놓지 못한다.


물질보다 더 미세한 것이 기운이다. 

이 기운은 태초에 끝없는 소용돌이 속에서 무한대의 청탁의 분화가 이루어지는데 

거친 기운은 물질의 근본이 되며 순수하게 정화된 기운은 생명력의 근원인 진기가 된다. 


이 진기들은 의식과 생명으로 진화되고 

그로부터 나타난 생명체들이 뜻을 지어 우주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생명있는 것들은 현상계의 활동을 통해 영혼을 짓게 되고 

영혼과 그 속에 지어진 뜻은 물질계와 별도로 의식계라는 차원을 통해 계속 돌게 되는 것이다. 


영혼은 진기 속에 의식이 묻어 있는 형태로 존재한다. 

이 영혼이라는 형태는 우주의 물질적 근원인 쿼크보다 더욱 미세한 것으로 

인간의 감각으로서는 인식할 수 없다. 

그러나 없는 것은 아니니 그야말로 유와 무의 경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이 죽으면 몸에서 영혼이 분리되어 뜻의 세계인 의식계로 들어간다. 

그래서 가벼워진 영혼은 끈끈한 윤회의 교류대에서 벗어나 높은 차원에 이르게 되고 

강한 집착과 한에 의해 끈적해진 영혼들은 윤회의 흐름에도 들지 못하고 

생명력의 제일 밑바닥에서 헤매며 꿈을 꾸듯 지옥의 환상에 빠져 들게 된다.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근본을 망치지 않은 일반적인 영혼은 다시 인간으로 윤회하게 된다. 


그리고 더욱 업이 사라져 가볍고 자유로워진 영혼은 

혼탁한 윤회의 세계를 벗어나 평안한 차원에 머물게 된다. 

이것을 영생의 세계라 한다. 


이보다 더 큰 공덕행으로 자신을 태워 업을 지워버린 영혼은 

더 높은 차원인 천상에 오르게 된다. 

이 세계는 의지만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천국이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높은 차원의 영혼들은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면 전륜성왕이나 깨달은 성자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생명의 이치 속에 존재하는 사후세계를 보는 것은 

모든 것이 자기를 되풀이하는 존재의 기본원리를 보기 때문이며 

영혼이 맑고 가벼워지면 높이 오르고 

한과 집착이 많으면 무거워져 밑에서 가라앉을 수밖에 없는 청탁의 이치를 보기에 

인과법에 따라 각자가 받는 영혼의 결과가 다름을 보는 것이다. 


그러면 단순히 이치에 의해서만 짐작을 하는 것이냐? 그렇지는 않다. 

업을 지워버린 맑은 의식은 극미의 상태에서 여러 차원과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여러 차원에 실재하는 영들과 의식을 통하기도 한다. 


그래서 농사꾼이 잎줄기만 보고도 풍흉을 짐작하듯이 

일반인이 인식하지 못하는 세상의 진실과 이치에 대해서도 

눈앞의 일을 보듯 훤히 알게 되고 설명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영혼은 생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반야의 차원을 지나 다시 인간으로 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과거에 존재했던 모든 기억은 지워지고 

기질과 성격 청탁 등 근본성품만 남아 새로운 영혼의 원인이 된다. 

즉 과거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반야심경에서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상태라고 묘사했다. 

이 반야의 차원에서는 과거의 모든 유적 존재는 사라진다. 

그러나 없는 것은 아니기에 과거에 지어진 뜻을 따라 다시 새로운 것이 생겨나서 

새로운 생명의 씨앗 즉 영혼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이 우주 속에는 유와 무의 경계선 상에 존재하는 극미의 뜻의 세계가 

물질계와 별도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뜻의 세계가 완전한 이치에 의해 생명의 세계를 지탱하고 있다. 

이러한 완전한 뜻의 세계가 인간의 삶의 근저에 존재함을 알기에 

성자들은 조금도 불의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을 진리에 바쳤던 것이다. 


이 우주 속에 지어진 모든 것은 다른 변화가 없는 한 

영원히 변하지 않고 자신을 되풀이 한다. 

이렇게 한번 지어진 근본이 되풀이되는 것을 모태법이라 한다. 

그리하여 좋거나 나쁜 인연을 만나 자신 속에 담게 되면 

그것이 다시 모태가 되어 자신을 돌게 된다. 

이것이 모든 진화의 원인인 것이다. 


따라서 세상과 타협하여 한번 어둠을 짓게 되면 

끝없이 돌아가는 생명의 순환 속에서 잘 지어온 자신의 생명의 근본에 어둠을 심게 되고 

그로 인해 완성으로 나아가는 그의 영혼이 망가지고 

또 오랜 시간을 윤회를 돌아야 불행한 일이 예정되기에 

성자들은 한번도 악과 타협하지 않고 시련을 감수하는 것이다. 


이러한 완전한 영적 질서가 우리의 생명계의 배후에 존재하고 있기에 

성자들은 자신의 삶을 바쳐 진실한 인간의 길을 갔으며 

우리에게 진리의 길을 가라고 했던 것이다. 


깨달은 자는 이러한 생명의 순환 속에 있는 삼계를 눈앞의 일처럼 훤히 보기에 

생과 사를 동일한 삶의 변화로 보기 때문에 삶과 죽음에 집착을 가지지 아니한다. 

죽음은 노쇠한 몸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몸을 받는 기회가 되는 것이며 

자신을 새롭게 키울 더 좋은 기회를 맞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생명의 원리에 의해 자신이 지은대로 사후의 결과가 정해져있기에 

아무리 자신의 운명을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다. 

영혼이 죽지 않는 한 한 생명의 죽음은 없으며 

생명의 질서에 따라 영원히 업에 따라 돌게 되어 있는 것이다. 

자살을 해도 영혼이 죽지 않는 한 자신의 삶에 대한 사후의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으니 

이를 이해한다면 무지에서 벗어나 생명의 길을 지키며 선업을 쌓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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