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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투쟁

19. 화려한 혼담

gincil 2014. 2. 7. 02:00

나는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누구한텐가 의지해 보고 싶은 단순한 마음을 느꼈다.

술이 취하면 주위가 허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때마다 머리 속에는 별의 별 생각이 다 떠올라 왔다.

이판에 장가나 들어볼까 하고 나약해진 자신에게 물어보면 웃음이 생긴다.

삼십이 넘은 나이는 이런 생각이 생소하게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 그 날 이후로 생기게 된다. 주위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장가 들라는 중신이 들어왔다.

사람들이 권한 상대는 지금까지 상상도 못해 본 그런 여자들뿐이었다.

나도 남자니까 장가를 들어 신부를 맞이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같이 느껴졌으나 이런 일을 치러야 할 나의 형편은 말조차 끄집어 내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그런 속에서도 어느날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 되건 안 되건 선이나 한 번 보라고 나의 형편에 구미가 당길 만한 여자를 소개해 왔다.

남자만 똑똑하다면 재산과 가족 관계는 따지지 않는다는 조건이 붙은 여자였다. 또 장가만 들게 되면 주택문제와 방문제도 보장이 생길 만한 그런 가정의 딸인 것이다.

어찌 되었던 중매를 서겠다고 발벗고 나서는 사람이 여자의 사촌 오빠된다니까 허황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다. 나의 뱃심에서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말이 떠올랐고 하도 권하기에 만나보기로 승낙을 했다.

여자는 일류대학을 나온 부자의 딸이라는 소문이었다.

나는 약속날짜의 시간에 맞추어 부산에서는 당시 제일 큰 호텔이었던 반도호텔 커피숍에서 만나겠다고 한 것이다. 드라이크리닝한 양복을 찾아 입고 이발소를 다녀와서 약속 장소로 나가 보았다. 나의 모습이 평소보다 몰라볼 정도로 단정해 보였다.

여자 쪽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나왔다. 나 한 사람과 상대 쪽 여러 명과의 좌석은 금방 나의 기분을 서먹서먹하게 만들었다. 중매 서겠다던 사람이 그때서야 나와 상대를 소개한 것이다.

상대 쪽 여자는 아무 말이 없었지만 여자의 주위에 앉은 일행들이 나한테 이것 저것 질문을 해왔다. 조그마한 말 한 마디도 붙잡고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나의 기분은 금방 자신이 면접시험을 치르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조건이 조건인 만큼 충분히 이해는 하면서도 마음 속에서는 열기와 의욕을 가시게 했고 특히 언뜻 보기에도 연예인 같은 옷차림을 갖춘 여자가 나와 같은 빈털터리와 고생을 하며 같이 살아 줄 사람 같지 않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시간은 꽤나 흘러갔다. 그런데도 상대방측의 일행들은 말꼬리를 놓으려 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고 보면 내 꼴이 꼭 사람들의 노리개 감이 된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의 심중에서 그만 고분고분하던 태도를 바꾸어서 역습을 시도했다.

상대 쪽의 질문에 대답을 하면서 얼른 말꼬리를 잡았다.

「제가 한 번 물어도 좋겠습니까?」

여자 쪽의 사람들은 말문을 닫았다. 나의 태도는 당당했다. 상대 쪽에서도 승낙을 했다.

「제 말이 너무 결례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런 일은 알고 대화가 되어야 하니까요.」

나의 시선은 여자를 쳐다보며 새로운 말을 끄집어 내었다.

「밥할 줄 아십니까?」

「몰라요.」

여자의 의기소침해 진 소리에 여자 쪽 가족은 당황해한다.

나는 두 번째의 질문을 던졌다.

「바느질 같은 것은 짧게 말해서 버선 같은 것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상대는 조금 전까지는 당당하던 태도와는 달리 울상이 된 얼굴이었다.

「모릅니다.」

여자 쪽 가족들은 반격인지 변명인지 대답을 대신 해왔다.

대학에서 가정과를 나왔는데 왜 못하겠느냐는 것이다. 나는 똑똑한 발음으로 분명하게 다음 질문을 했다.

「정말 부잣집 딸이란 말은 진짜입니까?」

함빡 미소를 띄우면서, 이젠 내가 상대들을 놀린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자 쪽에서는 그런 나를 멍한 눈으로 쳐다보기만 했다.

나는 카운터 쪽으로 가서 일행이 먹은 음료수 값을 계산해 주었다. 그리고는 휑하니 호텔을 빠져 나왔다. 그때서야 여자 쪽에서는 무척 당황하고 있었다. 소개를 한 사촌 오빠라는 사람이 나를 따라오면서 이형 이형 하고 불렀다.

나는 인근의 현대극장 옆에 있던 골목길의 작은 음식 가게로 들어가서 그 가게의 주인여자인 듯한 중년의 아주머니에게 마실 것을 시켰다. 금방 소주 한 병과 부침 한 접시가 탁자 위에 나온다.

나의 뒤를 따라온 여자의 사촌 오빠가 나의 좌석 앞에 앉는다. 나는 두 개의 잔에 소주를 따랐다. 단숨에 내 앞의 술잔을 입 속에 부어 버렸다. 금방 속이 화끈 해지면서 거북하던 마음들이 잊어졌다.

여자의 사촌이 나의 잔에 술을 따르며 질문을 하였다. 어떻더냐는 것이다. 나는 서슴지 않고 나의 감정을 그대로 말해 버렸다.

「나한테는 어울리지 않아요. 구태여 대답을 한다면 그릇된 계산일진 모르겠으나 30점이었소.」

매우 쑥스러워진 두 사람은 소주병을 계속 비웠다.

나는 그 날 저녁 알콜 속에 젖은 몽롱한 정신 속에서 낮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며 내가 좀 너무한 행동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가진 것이라곤 불알 두 쪽뿐인 주제에 남자라고 배알은 있어가지고 찾아온 행운을 바가지째로 깨어버린 것이라고 웃었다.

가련한 자여. 그대는 자신을 아는가?

우선 아쉬운 마음에 후회도 했다. 그러나 끝난 일이었다.

그런 다음 며칠이 지나니 또 다른 곳에서 나의 구미에 당기는 일이 생긴다. 이번에 알게 된 여자는 부잣집 딸은 아니었지만 미인이었다.

미인대회에 출전해도 될 만한 얼굴과 몸매는 나의 마음을 흔들었다. 솔직히 겁도 났다. 그런데도 나는 여자와 만났고 여자는 나를 따랐다.

그 집 가족들도 은근히 나를 사윗감으로 붙잡으려 했다. 약혼식만이라도 해 두자는 여자 아버지의 제의를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른다.

결국 이 여자한테서도 나는 자신을 포기하고 말았다. 약혼 제의를 받고 나는 약속을 어기고 말았다. 이유는 미인을 아내로 맞이하고 속 썩을 일을 생각하니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나는 나의 행동에 웃음이 나왔다. 자신이 초라하고 비참했기 때문에 좋은 자리가 겁이 났는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이런 일이 있고부터 나의 행동이 점점 무절제 해졌다. 세상일 때문인지 허전하고 쓸쓸한 것을 이길 수가 없었다.

날이 갈수록 내 마음조차도 내가 알 수가 없었다. 누가 나를 좀 구해주기만을 간절하게 바랬다.

나는 세상에 태어나 가장 큰 고독을 느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술병이 나의 기분을 위로했다.

그러던 어느날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직장에 나간다는 한 여자를 소개 받았다.

상대는 부자도, 미인도 아니었다. 한두 번 만나보니 부담이 생기지 않았다. 여자도 나를 경계하지 않았고 오히려 직장의 전화번호까지 일러 주었다.

나는 이런 순간 여자 앞에서 내 자신이 뻔뻔해지고 있는 것을 본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그런 내가 아니었다.

제 정신이 들 때는 양심에 두려움이 생겼다. 그러면서도 변하고 있는 자신을 두고 어쩔 수가 없었다.

대낮에도 술을 마셨고 술이 취하지 않으면 더 허전하고 외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지나던 어느날이다. 오후의 퇴근시간쯤 지난번에 그 여자가 일러준 전화번호의 다이얼을 돌려 보았다. 전화가 금방 나왔다. 전화를 받는 사람이 그 여자였다. 곧 만나기로 약속이 되었다.

나는 전화를 하면서도 술 생각이 나서 인근의 생맥주 집에서 만나자고 했다. 여자는 500㏄잔을 나는 1,000㏄잔을 앞에 놓고 이야기를 했다.

술과 여자가 나의 앞에 있자 금방 내가 무엇이 되는 기분이었다. 단숨에 큰 술잔을 들이켰다. 여자가 자기 앞에 있는 잔의 술을 나의 잔에 채웠다.

또 잔이 비자 여자는 술값을 내었다. 약간 미안했지만, 그 순간을 넘기니 기분이 좋아지는 듯 했다. 그런 나에게 여자는 말을 건네왔다.

자기 집까지 좀 바래다 주겠느냐고 한다. 나는 생각했다. 주머니에다 손을 넣었다. 차비가 얼마나 나올 것인지 신경이 쓰였다.

광복동에서 동래까지 거리를 생각하면 자꾸만 마음에 부담이 생겼다. 그러나 나는 대답을 해주어야 했다.

「차비를 나보고 부담하라고 하지 않으면 용기가 있습니다.」

여자는 웃었다. 우리는 잔이 빈 테이블에서 일어나 나란히 밖으로 나왔다.

빈 차를 잡기 위해 길가에 같이 서게 되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끗힐끗 보며 지나간다.

여자가 빈 차를 먼저 보고 세웠다. 나는 여자와 뒷 좌석에 나란히 앉았다. 택시는 신나게 동래 쪽으로 달렸다.

약간의 주기가 오른 나는 눈꺼풀이 감긴 채 졸았다. 차가 멈추는 충격에 눈을 떴다. 목적지에 다 온 것이다.

나는 다음의 나의 행동을 모르고 있었다. 빈 택시는 두 사람을 내려놓고 떠나버렸다. 이제 여자의 동리까지 다 왔으니까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때 망설이고 있는 나에게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여자를 바래다 주는 것은 집 앞까지 바래다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내 생전 이런 경험을 가진 적이 없어 여자의 말이 맞으려니 생각하며 신사도를 지킨다고 말 한 마디 못하고 여자의 꽁무니에 붙어 골목길을 따라 들어갔다.

여자의 집은 좀 외딴 곳에 있었다. 사람이 집 근방에 접근하는 것을 안 그 집 개가 요란히 짖어댄다. 환한 전등 빛이 집 앞을 밝게 비추었다.

여자의 이름을 부르며 그 집 식구들이 나왔다. 이런 순간에 나의 행동은 어색하게 변해버린다. 숨겨 둔 비밀이 탄로 났을 때의 경우처럼 당황해졌다.

그 집 가족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처음 보는 나를 유달리 주시하며 잠깐 집 안에 들어왔다가 가라고 붙잡는다.

분위기가 이리되면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입장이 되었다. 낚시에 걸린 물고기 신세랄까, 마음 속에는 두려운 것이 생기는 데도 방 안까지 들어갔다.

여자가 자기 집 식구들을 소개했다. 나는 여자의 아버지라는 사람 앞에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그 집 가족들 앞에서 내 변명을 좀 했다.

방 안에는 저녁식사가 끝나는 중이었는지 상이 그대로 차려져 있었다. 여자의 집 식구들이 나에게 저녁식사를 어찌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냥 먹었다고 말을 했다.

그때 여자의 아버지가 술을 가져오게 한다. 닭을 볶은 안주와 소주가 상 위에 올라왔다. 그 집 식구들이 전등불 밑에서 초면인 나의 얼굴을 주시했다.

검게 탄 얼굴, 붉어진 코, 앞니가 빠진 치아, 방안에 있던 사람들은 나의 모든 것을 슬금슬금 훔쳐본다.

여자의 아버지는 나에게 자꾸 술을 권했다. 나도 어지간하게 마시는 편이었지만 그 영감님도 주량이 상당한 편이었다. 점점 술이 취해왔다.

주기가 오른 영감님은 이말 저말 물었다. 이 주사 나이가 몇이요 하며 먼저 생년월일을 묻는다. 손을 펴서 손가락으로 육갑을 짚어본다. 여자의 어머니가 붉은 빛을 내는 나의 딸기코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한 마디 거든다.

「술을 좋아하는 기요?」

나는 자꾸만 눈꺼풀이 감기려는 것을 참으면서 대답을 억지로 했다.

분위기는 이야기 때문에 당장 가겠다고 일어날 형편도 못되었다.

여자의 아버지가 자꾸 문제를 만들며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때마다 나의 형편을 뻔히 알면서도 사실을 수월하게 대답해 주었다.

손으로 육갑을 짚어 보고 난 영감님이 자기 딸을 어떻게 보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나는 술기운에 좀 더 솔직하게 말꼬리를 뺀다는 것이 결혼할 준비가 안 되었다고 대답했다. 그럼 무얼하느냐 고 질문을 한다.

직장은 없고 돌아다니며 브로커 노릇이나 하고 산다고 했다. 영감님은 나의 숙소가 어디냐고 물었다. 영도의 어느 곳이라고 누나 집을 가르쳐 주었다. 사람들은 그제서야 나를 놓아 주었다.

나는 그 집을 나왔다. 밤은 늦어 있었다. 그 집을 나오는 나의 머리 속에 이제 이 여자와도 만나지 못하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허전해지려는 마음 속에 떠올랐다.

큰 길까지 걸어와서 영도 쪽의 버스를 타니 긴장이 풀리면서 정신은 흐리멍덩해져 갔다. 나는 차 안에서 실수하지 않을까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용을 썼다.

아침이 되어서야 어제 저녁에 용하게도 누나 집까지 오게 된 사실에 스스로 감탄만 했다.

다음날 내가 없는 사이에 여자의 친척이 된다는 어느 고등학교 교사와 여자의 남동생인 고등학생이 나의 말을 확인하기 위하여 누나의 집을 찾아 왔더란다.

또 그 다음날은 여자의 어머니가 누나 집으로 찾아와서 나와 자기 딸과 혼인시키자는 말을 한 모양이었다.

장가들 나이가 넘었던 나를 생각할 때 형편같은 것은 잊어버리고 일류 회사의 여사원이란 말에 덕이나 생길까봐 장본인인 나한테는 상의도 없이 누나가 여자의 어머니와 함께 용하다고 이름 난 사주쟁이 집으로 물으러 갔다.

두 여자가 결정한 결혼 날은 사주쟁이가 좋다는 날짜로 정하다 보니 15일도 안 남아 있었다. 나는 내 심중을 모르고 나와 상의도 없이 정한 여자들의 행동에 배짱을 부리고 싶었지만 너무 급박한 날짜 앞에 걱정이 생겼다.

나의 수중에는 가진 재산이라고는 5만원 정도 현금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니 누나가 일을 벌여놓고 또 날 장가 보내야겠다는 편지를 써서 시골의 가난한 누나들에게까지 띄운 모양이었다.

부모없이 자랐지만 똑똑하다고 시골까지 소문이 난 동생 장가 든다는 전갈에 누나들이 나의 형편을 생각하며 내려왔다.

아무 준비가 안 된 나의 앞에 봉채를 보내야 할 날짜가 3일 앞으로 닥쳐온다. 남매 중에 제일 어렵게 살던 혼자 된 큰 누나가 값싼 일제시계를, 중간 누나가 황금 석돈짜리 목걸이를, 손위의 누나가 백금반지 석돈으로 예물은 타협이 이루어졌다.

일가 집에 맡겨 두었던 돈 12만원을 뺏아가면서 이번만은 꼭 갚아 주겠다고 한 달 전에 나를 그렇게 성가시게 했던 형님도 8만 원을 내어 놓았다.

8만 원으로 봉채를 뜨려고 하니 애가 탔다. 옷감 한 벌 값이 5만원이나 더 되는 것이 많이 있었으니 싸구려 옷감으로 격식을 갖추기에도 부족했다.

나는 시장을 돌아다니며 옷감에다 돈을 맞춘 것이 아니고 돈에다 옷감을 맞추다 보니 흠이 있는 불량품을 사서 넣어야 했다.

뱃심 좋은 나도 봉채 짐을 뜨면서는 서글픈 자신을 숨길 수 없는 마음이었다.

다음날 나는 마지막으로 신부가 될 여자와 화장품 값이 그렇게 비싼지 이해가 안 되었다. 화장품 한 세트의 값이 6만 원이 넘었다. 그 날 나는 그냥 신부될 여자를 혼자 돌려 보냈다.

다음날은 뒷날로 닥쳐온 봉채 날을 생각하면서 국제시장 거리를 혼자 어슬렁거리며 사방을 살피며 다녔다. 나의 발길이 국제시장의 중간 지점까지 가게 되었다.

길가에는 장사꾼들로 사람의 발길을 막았다. 나는 그곳에서 어떤 구루마 위에 진열된 화장품들을 보게 되었다. 당장 나는 그 물건들의 주인더러 가격을 물어 보았다.

구루마의 주인은 남자가 여자의 화장품 가격이 얼마냐고 하나하나 물으니 이상하게 쳐다보면서도 대답을 하였다. 어제 상점에서 물었을 때보다 너무 값이 쌌다.

나는 그 사람한테 물었다. 여자들이 화장할 때 꼭 쓰는 것만 이야기 해보라고 했다. 구루마의 주인은 어쩌면 손님을 만났다 싶어 금방 그 태도가 조금 전과 달라진다.

나는 이름도 모르는 화장품 여덟 개를 낱개로 샀다. 진짜건 가짜건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7,500원이라는 그 가격이 당장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해서 봉채 짐은 꾸려지게 되었다. 이제는 날 받아 좋은 날 예식장에만 가면 되는가 싶었다.

우선 신부될 여자를 만나 상의를 하였다. 예식장은 손님이 많이 올 것 같으니 큰 걸 구하라고 하며 신부될 여자한테 아예 일임을 했다.

여자는 나의 허풍을 듣고 대단한 줄 아는지 혼자 나다니며 시내의 예식장을 수소문해서 좌석 수가 제일 많고 홀이 크다고 소문이 나있었던 남포동의 제일예식장 3층을 예약했다고 나한테 알려왔다.

결혼 4일전에야 청첩장을 찍었다. 400여장의 청첩장을 인쇄소에서 찾아와서 신부측과 반반인 200여장씩 나누어 가졌다.

막상 일을 당하고 보니 이 청첩장을 누구에게 가져다 주어야 할 것인지 막연히 생각할 때보다도 당황해진다.

누구도 이런 나의 딱한 입장을 대신해 줄 사람이 없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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