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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투쟁

10. 소년 지원병

gincil 2014. 2. 7. 02:03

해군과 공군은 인기가 있어 지원하는 데 상당한 돈이 든다고 들 했다.

나는 비교적 지원 입대가 수월한 육군하사관 쪽을 선택하였다. 대서소에서 부탁을 하여 지원자 양식에다 써 넣어야 할 사항을 기재하고 나니 대서소의 사람이 접수증을 받아다 주면서 신체검사의 날짜와 필기시험 날짜들을 알려 주었다.

대서소를 나오니 나의 머리 속에는 유니폼을 입은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정말로 군인이 될 수 있을까.

군인이 된 나 자신의 모습을 그리면서 며칠 남은 날짜들을 기다렸다. 군대의 지원서류를 접수시킨 뒤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은 신체검사였다. 흉위가 키의 절반이 못되었던 나는 지원병으로서는 너무 신체가 여윈 편이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생기는 걱정과 기대가 교차되는 가운데 며칠이 지나간 뒤였다. 필기시험을 치른다는 날 병사구사령부의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었던 집합 장소인 동광국민학교 운동장으로 찾아가니 100여명의 지원자들이 여기 저기서 우울한 표정으로 모여 들었다.

접수증이 수험표로 바뀌어졌다. 다른 소년들도 사정이 있어 군대에 지원을 했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막상 이런 장소에 나와 보니 마음은 우울하기만한 하였다. 필기시험이란 것은 형식뿐인 상식 문제였다.

다음날 또 신체검사를 받아야 했다. 시청 옆에 있던 제5 육군병원에서 실시되었다. 나는 판정관의 앞을 지나면서 불합격이 될까봐 몹시도 마음을 졸였다.

허약해 보이는 내 외모가 이런 곳에 와서도 문제가 되었다. 신경이 쓰이는 것은 흉위였다. 키의 2분의 1이 되지 않으면 불합격이 된다는 주위의 지원병들로부터 들은 말이 부담이 되었다.

키를 잴 때는 움츠려 보았고, 흉위를 잴 때는 배 속에 숨을 빼고 흉위를 조금이라도 키워보고자 애를 썼다. 그런데도 신체검사 기록표의 기록이 아슬아슬 하게 키의 절반이 되지 못했다. 나는 안타까웠다.

모든 신체검사의 절차가 끝났다. 지원자들은 현역 군인인 인솔자로부터 해산해도 좋다는 말을 듣고는 병원 밖으로 뿔뿔이 헤어졌다.

나는 견디기 힘든 고독감을 느꼈다. 가만히 있다가는 기피자가 많은 세상에 군대 지원도 못하는 병신 꼴이 될 것 같았다. 호주머니를 뒤져보니 당시 돈으로 150원이 있었다. 아리랑 담배 한 갑을 살 수 있는 돈은 되는 것이다.

나는 주위를 살펴 담배 한 갑을 샀다. 그리고는 열심히 병사구사령부 소속인 지원병 담당 군인이 걸어가고 있는 쪽으로 뛰어갔다. 가쁜 숨을 내쉬면서 일등중사였던 군인을 불러 세웠다. 마침 지나가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애처로운 표정으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 나의 지원병 번호를 외웠다. 그리고는 담배 한 갑을 그의 주머니 속으로 집어 넣으며 말했다.

「부탁합니다.」

쑥스럽게 웃으며 처음으로 어쩔 수 없는 일에 청탁을 했다. 군인은 병사구 쪽으로 걸어갔고 나는 뒤를 돌아 군인과 반대 방향으로 걸으면서 길게 한숨을 내뿜었다.

이제 내 인생의 새로운 모험을 두고 무척이나 가슴 두근거리는 날을 보냈다. 아리랑 담배 한 갑에 큰 기대를 걸면서도 혹시나 하는 불안감은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나의 모든 신경은 지원병 합격자 발표가 나는 날에 멈추어 있었다.

나는 합격자 발표가 있는 날 사령부의 담벽 위에 붙여진 종이 위에서 나의 지원번호를 무척이나 조급하게 찾았다. 나의 수험번호가 다른 사람들 번호 속에 끼어 있었다.

비로소 나의 마음은 오래간만에 안정된 기분이었으나 또 새로운 걱정거리와 기대가 나를 이상하게 만들었다.

육군지원병 모병 담당자가 그곳에 모인 소년들을 보고 몇 월 몇일, 부산역 광장에 몇 시까지 모이라고 일러 주고는 해산을 시켰다.

나는 당장 나에게 닥친 사정을 아무에게도 말할 곳이 없었다. 나의 이야기를 듣고 군의 지원을 만류해 줄 사람도 없었고 그렇다고 나의 앞날을 걱정해 줄 사람도 내게는 있을 까닭이 없었다. 그래서 비밀처럼 혼자 마음 속에 감춘 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시간만 기다렸다.

내가 군에 입대하는 날 누나 집을 찾아가서 군대에 입대하는 사실을 알려도 몸조심하라는 인사조차 않는다. 형을 찾아가서 인사를 했으나 형도 말대꾸조차 해주지 않았다.

나는 어저께부터 속이 비어 있으면서도 또 점심을 거른 채 오후의 소집 시간에는 부산역으로 걸어서 나갔다. 다른 지원병들의 주위에는 전송자가 더러 있었다.

아무도 위로의 말을 해 주는 사람이 없는 내 주위가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고 생각했다.

군인 모병담당의 호루라기 소리에 마음이 긴장됐다. 나를 부르는 호명 소리에 크게 대답하며 줄에 끼어 서니 난생 처음 기차요금을 국방부가 물어 준 열차에 승차하게 됐다.

떠나려는 군용 완행열차의 기적이 울리자 기차 안에 탄 지원병들은 모두 밖을 내다보며 손을 흔든다. 나는 멍청히 나의 지정석에서 창밖의 하늘을 쳐다보며 어서 오늘이 지나가 버리기만을 원했다.

기차는 조그마한 역까지 빠뜨리지 않고 멈추고 떠나니 완행열차는 피로하고 허기진 몸에 지루한 마음까지 갖게 했다.

지원병이 탄 객차에서는 그때부터 노래소리가 흘러나왔다.

오후 4시에 출발한 기차가 자정이 넘어서야 대전 역에 도착을 한다. 우리가 타고 가던 객차가 다른 기차로 옮겨 붙는 작업이 있더니 금방 기차의 안과 밖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말씨가 이젠 달라졌다.

호남선 안의 손님들은 전라도와 충청도 사투리로 나 같은 사람을 이방지대에 온 느낌을 가지게 했다.

기차의 움직이는 속도가 서울 쪽으로 올라가던 기관차가 끌 때보다 더 느린 느낌이었다.

좌석 주위에서는 조는 사람도 있었고 술기운 때문에 코를 고는 지원병도 있었다.

선잠 속에서 호루라기 소리를 들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주위는 아직 어둠뿐인, 먼동이 트지 않은 새벽녘이다.

부산에서 지원병을 태워왔던 두 대의 객차를 연무역에 떼어 놓은 호남선 완행열차가 시원하다는 듯 기적을 길게 울리며 금방 떠나가는 것이 보였다.

우리는 멈추어 버린 객차를 바라보며 이젠 더 갈 곳도 없는 목적지에 온 것이 느껴졌다.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그 시간부터 지원병들인 우리 일행을 통제하기 시작하였고 열을 세워 호명을 하더니 물건짝처럼 부대의 트럭에 실어 군부대의 영내로 향해 달린다.

군복을 걸친 군인들이 위압적인 말을 썼다. 우리 일행은 마음 속의 잡념을 빼앗기고 말았다. 돈을 지불할 필요가 없는 군부대의 식사를 때에 맞추어 하게 된 것이다.

일정에 따라 신검대에 들어온 다음날 아침부터 우리 일행은 신체검사가 실시되었다. 징집되어 온 사람들은 불합격을 원하는 사람이 있어 사바사바 소리가 사방에 나돌았다.

지원병 중에서도 나이가 가장 아래에 끼었던 나는 이런 주위의 형편 속에서도 행여나 나에게 불합격이 떨어질까봐 가슴을 조여가며 신검대의 한 곳 한 곳을 통과했다. 신경이 많이 쓰여졌다. 손엔 땀이 흥건히 고였다.

이틀이나 걸린 아슬아슬한 나의 마음은 합격이라는 판정을 받고서야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여느 사람들과 같이 다음날에는 군인으로서 처음 절차인 인식표 군번을 받았고 정식 군인으로 등록이 확인되고 그런 다음날에는 일주일간 머물렀던 신검대를 떠나 훈련소로 넘어 갔다.

훈련소에서는 당장 편성을 끝내더니 우리가 입고 갔던 사복을 깡그리 벗게 하고 양말부터 모자까지 군수품으로 지급을 해주었다. 또 개인의 장비가 지급되었다.

군복을 갈아 입은 우리들 앞에는 훈련병으로서의 입소식을 갖게 했고 다음날이 되니 훈련소의 일정에 짜여진 대로 신병들이 겪는 처음 과정인 훈련이 실시되었다.

계급장을 붙인 기간 사병들의 엄포는 다수인 훈련병을 통솔하는데 말 한 마디가 충분한 위엄을 가지고 있었다. 긴장이 몸에 배인 탓 때문인지 날만 새면 훈련과 군인 수칙의 암기 그리고 지급된 장비의 청소관리 등으로 하루가 꽉 짜여 있었지만 마음 속에서는 같은 일만 반복하니 지루하고 고된 느낌 속에 시간이 흘러갔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웬일인지 그 날은 훈련을 마치고 나니 주위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훈련병을 막사 안에서 밖으로 나다니지 못하게 전달이 오는가 하면 기간 사병들이 무장을 하고 각자 막사에서 서성거렸다.

전쟁이라도 일어난 것인가. 머리 속에는 알 수 없는 궁금증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날 나는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되었다. 5·16 혁명이 일어났다는 것과 성공했다는 사실이었다.

작년의 4·19혁명 일 년만에 또 5·16 군사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하루의 짜여진 일과에 피로해 있으면서도 점점 알 수 없는 이런 사연 속에 세상이 어떻게 되어가는가 하는 궁금증이 나의 마음을 메워갔다.

이런 생각을 잠시나마 자신으로부터 떼어놓을 양으로 혁명 같은 것은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부인하며 억지로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를 갖기로 했다.

다시 우리의 앞에는 아침이 왔고, 하루의 훈련이 시작되었다. 구슬프게 들리는 취침나팔 소리를 기다렸다가 하루의 밤을 새고 나니 또 다음날부터는 훈련을 마치고 쉬려는 우리들 앞에 암기사항 한 가지가 하루의 일과에서 늘어났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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