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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

gincil 2016. 6. 8. 20:45

인간이 훌륭하고 좋은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자신이 짓는 것을 영원히 자신이 이어가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들은 물질과학과 기독교의 영향으로

인간의 삶이 영혼을 통해 계속 이어진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배운 과학법칙상 모든 것은 원인이 있으며

반드시 그 결과를 남긴다는 것을 안다.

 

따라서 살아있을 때 세상의 주인이 되고 온 우주를 좌지우지하는 무한한 능력을 지녔던

인간의 마음이 죽음과 함께 아무 결과도 없이 펑하고 사라진다는 것은

매우 비과학적이며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모든 것은 순환하며 계속 자기를 이어간다. 이것은 우주의 공통된 순환원리이다.

 

대기의 흐름과 바다의 조류도 끝없는 순환을 통하여 살아 움직이고

물도 바다와 하천과 하늘과 세상을 돌며 끝없이 순환한다.

모든 생명체도 대대로 내려가며 순환을 통하여 생명체를 이어가고

인간의 영혼도 과거에 살았던 모든 흔적을 담아 계속 순환하며

자신을 성장시켜 나감으로써 자기 존재를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래에 좋은 자기를 얻고자 한다면 먼저 현생의 자신을 좋게 만들어야 한다.

 

양지바른 곳에서 좋은 거름을 받아 잘 자란 콩은 다음번에 더 많은 콩을 맺고

황량한 곳에서 비실거리며 자란 콩은 반드시 쭉정이가 많아지듯이

앞날에 세상의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자는

지금 이 삶에서 다른 사람을 이끄는 덕성과 리더쉽을 길러야 하며

완성에 이르고자 하는 자는 정법을 가까이하여 혜안을 얻고 선근을 길러야 하는 것이다.

 

지금 세상은 영혼을 부정하는 무지한 과학과 윤회를 부정하는 신앙의 논리에 의해

이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순환법과 자기책임의 원리를 외면함으로써

사람들이 바르고 성실한 삶으로 인격을 기르고 세상을 축복하며 살아야 하는

삶의 이유와 도덕적 근거를 망각함으로써

비양심적이고 부정직한 말세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유로 오늘날 부동산 투기로 일확천금을 벌어 사치스럽게 사는 자들은

그 마음이 허황되고 성실히 사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다음 생에 태어나도 일할 줄 모르고 욕심만 부리는 게으른 거지가 되는 것이니

이생의 즐거움이 오히려 자신의 근본을 망치는 큰 화가 되는 것이며

 

부모를 잘못 만나거나 큰 시련을 만나서도

끝없는 인내와 지혜로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자들은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내는 강한 힘과 맑은 근기를 얻는 기회가 되는 것이니

현생의 어려움이 자신을 키우는 큰 복임을 알고 이를 즐겨 이겨내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은 다른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어릴 적에는 거의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실상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인간은 태어날 때는 모두 같으나

교육과 환경이 능력이 좌우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수박과 호박도 새싹이 날 때는 거의 비슷하지만

점차 자라 잎이 나고 꽃이 열리면 전혀 다른 속성을 보이듯이

사람도 어릴 때 코흘리고 칭얼대는 것이 다 비슷해 보여도

점차 자람에 따라 자신이 지닌 고유한 특성과 지혜가 나타나

전혀 다른 운명을 걷게 되는 것이다.

 

삼대를 이어가는 부자가 없고

가난하고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가 영웅이 되고 성자가 되는 것은

그 타고난 근본 속에 본래부터 다른 것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밭에 심어도 돌배나무에는 돌배만 달리듯이

현실의 삶이 게으르고 욕망에 얽매여 산 이는

후생에 정신이 흐리고 의지가 약해 결코 큰 인물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근본과 운명도 바로 이와 같다.

인간의 운명이란 참외씨를 심으면 참외가 나고 오이씨를 심으면 오이가 나는 것과 같이

과거에 자신이 지은 근본에 의해 현생에서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원인이 있고 과거의 일을 되풀이한다.

콩은 콩의 인과를 돌고 팥은 팥의 인과를 돈다.

쪽파가 대파가 되는 일이 없으며 호박이 수박이 되는 경우가 없다.

 

모든 것은 과거에 지어진 속성이 되풀이 되고 있으니

인간도 전생에 자신의 삶속에 있었던 자질과 품성이 다시 나타나 운명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서양학문과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현대사회는 윤회와 전생을 부정하며

인간의 운명은 부모에게서 받은 육체의 유전자나 현생의 교육에 의해서만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서 육체만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영혼 그 자체의 질서에 의해 별개로 순환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성자에게 물었다.

『나의 근본은 무엇입니까? 』

그러자 성자가 말했다.

『밭에 있는 콩에게 너의 근본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콩은 자신의 근본이

밭이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밭에다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농부는 그 콩의 근원이 밭이 아니라 자신이 작년에

수확하여 뿌린 콩씨라는 것을 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도 자신의 근원이

피를 물려받은 부모인 줄 안다.

 

그러나 자신의 근원은 부모가 아니라 전생에 자신이 지어놓은 자신의 영혼인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영혼으로부터 자신이 나고 전생에 형성한 자질과

성품이 이생에서 다시 피어나는 것이다. 이생의 부모는 자신의 영혼이

뿌리박고 살아가는 밭인 것이다. 』

 

이처럼 인간의 영혼도 과거에 살았던 모든 흔적을 담아 계속 순환하며

후생의 운명을 결정짓고 있는 것이다.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운명이 모두 다른 이유도

환경과 교육 때문이라기보다는 전생에 살아온 각자의 모습이 달랐기 때문이다.

 

콩농사를 지을 때 환경이 좋으면 잎이 크고 수확량이 많아질 수 있지만

노랑콩이 검정콩이 되는 경우는 없다.

 

환경과 타고난 근본이 인간의 운명에 미치는 영향력의 차이도 이와 같은 것으로

환경이 전생의 결과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미래와 후생에 좋은 운명을 가지기 위해서는

현재의 삶을 통해 좋은 품성과 훌륭한 능력을 지니도록 노력해야 한다.

 

서구철학에서 근대 인식론의 개창자인 존 로크는 ‘인간오성론’에서

인간은 태어날 때에는 백지상태지만 경험을 통하여

백지상태인 마음이 물들어 관념을 형성한다고 했다.

 

즉 인간의 인식은 감각과 반성이라는 두 가지 경험에서 생기며

그때 그때의 감각이나 감정을 합한 총체가 자아이므로

인간의 의식은 경험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대륙의 합리론은 인간이성의 합리성을 주장하고

인간의 타고난 이성에 의해 진리를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라는 명제를 기치로

생각하는 나를 정신이라 부르고, 이를 항상적 실체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 이성의 완전성에 기초한 이 이론은 왜 똑같은 이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사람에 따라 성격과 능력이 차이나고 운명이 왜 다른지에 대해 설명해주지 못하고 있다.

 

철학사조에서 이 두가지 이론은 큰 족적을 기록했지만

진리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 이론들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단순한 지적 유희에 불과하다.

그들은 실상을 보지 못했기에 단순히 생각과 논리만으로 이러한 이론을 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사유와 인식능력에 대해 깊이있는 통찰력을 지니고 있는

동양에서는 인간내면에 대한 사실적인 성찰을 통해

윤회와 업의 이치로 이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모든 업을 털어버리고 완전한 시각을 얻은 부처님은

모든 생명이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는 반야의 경지를 체험하고

인간의 업과 인식능력이 생과 사를 거쳐 어떻게 이어지고

어떻게 운명에 작용하고 있는지 명백히 밝혔다.

 

즉 인간의 영혼은 윤회를 통해 후생의 근본이 되고

전생에 지은 공덕과 업은 영혼을 통해 후생에 이어지는 것이니

전생에 좋은 품성과 선근을 지은 사람은

후생에서도 큰일을 하며 완성으로 나아가고

사사로운 욕망에 집착해 그릇된 행동을 일삼은 이는

그 마음이 어둡고 욕망이 가득해 지옥의 업과 소멸의 과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인식능력은 완전하거나 모두 같지 아니하며

각자가 지닌 전생의 업에 따라 다 다르다.

바로 여기에 좋은 삶으로 좋을 자기를 만들어야 할 궁극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며

경험론과 합리론의 궁극적인 합일점으로서

인간정신을 완성시켜 나가야 하는 생생한 실천의 길이 나타난다.


출처 진실의 근원(http://www.gincil.com/) 사실과 이치로 삶의 의문을 밝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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