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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과 미래

gincil 2013. 4. 20. 21:49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어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이 자기 몫이 아님을 깨닫고 운명인양 체념하고 산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운명이 있는가? 에 대해 매우 궁금해한다.

 

과연 세상에 운명이란 존재하는 것이며 그 운명이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우리가 운명을 두려워하고 바꾸지 못하는 것은 거대한 산처럼 우리들의 앞을 짓누르며 위압하고 있는 운명의 모습에 질려 그 실상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운명이란 한마디로 참외씨를 심으면 참외가 나고 오이씨를 심으면 오이가 나는 것과 같다.

 

운명이란 바로 자기 자신이 타고난 근본바탕에 의해 지어지는 현상인 것이다. 오이씨가 오이의 모습을 벗어날 수 없듯이 인간도 자신이 지은 업에 의해 지니고 태어나는 근본바탕을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나 세상이 이것으로 그치거나 이것만으로 영원히 맴도는 것이라면 살아갈 필요조차 없다.

 

운명이란 고정적인 것도 유동적인 것도 아니다. 운명에 대한 일은 마치 씨를 뿌리고 밭을 매는 농사일과 같은 것이다.

 

현재 그대는 그대가 타고난 자질을 부모라는 환경 속에 뿌려 자신이 그 동안 수고롭게 고심하며 지은 삶을 운명으로 지니고 있는 것이다.

 

농사를 지어보면 똑같은 씨앗이라도 척박한 환경에 뿌리내린 것은 그 결실이 적고 쭉정이가 많으며 기름진 땅에 뿌려진 것은 씨알이 굵고 풍성하다.

 

그러나 아무리 씨앗이 좋고 기름진 땅이라고 하더라도 농부의 땀흘리는 정성이 없이는 풍년을 기약할 수가 없다. 이러한 이치는 불경에서 뿐만 아니라 성경(누가 8 5-8)에도 잘 나와있다.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 버렸고,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 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구절은 예수께서 세상의 실상을 보시고 인과의 이치를 설명하신 것이다.

 

인과의 이치란 어떤 일과 어떤 것이 만남으로 인해 거기에서 세상의 모든 일이 나타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것은 부처나 예수와 같은 성자들이 불경과 성경을 말하기 전부터 있어온 우주의 본래 모습인 것이다.

 

성자들은 사실속 에 존재하는 이러한 불변의 이치와 그 속에 깃들어 있는 진실들을 보고 이것을 세상에 가르치신 것이다.

 

이것이 있기에 세상은 의미가 있으며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즉 우주는 완전한 이치를 그 본질로 하고 있으며 세상의 일은 모두 이 법칙을 통해서 나타나고 존재하고 사라지고 있다.

 

그러므로 세상의 어떠한 일도 이 인과의 법칙을 이용하면 해결하지 못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운명도 이런 인과의 이치 속에 나타나고 있는 삶의 현상으로서 자신의 운명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인과의 법칙 속에 현상을 변화시킬 새로운 원인을 지으면 된다.

 

비록 자신이 호박의 자질을 갖고 태어났다 하더라도 자신의 부족한 천성을 과감히 잘라내고 그 자리에 수박순을 접붙이면 수박이 열리게 되는 것이 바로 인과의 법칙인 것이다.

 

여기에 운명의 주체로서 자유와 창조라는 신의 속성을 부여 받은 인간의 진정한 가치가 나타난다.

 

사람은 자신이 지은 업에 따라 운명의 실을 잣고 있는 거미지만 앞으로 어떻게 짤 것인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주체적인 거미이다.

 

그러나 자기가 바라는 무늬와 곱기로 베를 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나 자기 마음대로 베를 짤 수 있다면 출세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돈 못버는 사람도 아무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운명에 대해 불만을 느끼며 바꾸고자 노력하지만 자기에게 주어진 습성을 스스로 벗어나기는 매우 힘든 다. 돈 후앙에게 바람기를 버리라고 할 수 없는 일이며 마약에 중독된 자에게 마약을 끊어라고 해서 끊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우리 주변의 대부분의 삶들은 쾌락과 재물과 출세라는 현실적 마약에 중독되어 살고 있어서 진실한 가치를 찾기 위해서는 그것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이야기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용기가 없고 바른 이치를 받아들일 양심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신의 호박 같은 습성을 그대로 이어가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사람들은 평생 동안 운명이라는 굴레를 천형처럼 지니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운명을 벗어나기 위해서 세상의 이치와 올바른 삶의 의미에 대한 깨달음이 필요한 것이다.

 

세상일은 엄연한 인과의 법칙에 의해 조금도 쉬지 않고 움직이므로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은 원인이 있고 결과를 가져오며 한번 나타난 것은 절대 저절로 사라지는 법은 없다.

 

이러한 완전한 인과의 법칙을 이해한다면 우리들은 끝없이 좋은 뜻을 짓도록 노력하고 나쁜 뜻은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사회가 어두운 이유는 바로 이것을 무시하고 함부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며 나쁜 행위의 결과가 우리들의 마음과 세상 속에 흐르기 때문이다.

 

세상일은 이치에 의해 꾸며지며 진리에 의해 유지된다.

 

인간의 운명도 이런 이법에 적용되어 잘못된 습성에 따라 화와 복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금의 깨달음이라도 있어 자신의 잘못을 깨달아 바른 삶을 실천한다면 그만큼 그의 삶은 밝아지게 될 것이다.

 

즉 사람은 자기 스스로 더 좋은 자신을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고정된 운명 속에 머물게 되며 자신의 잘못을 밝혀 더 좋은 원인을 짓는다면 더 나은 운명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 이치는 너무나 쉽고 명백하다. 돈을 벌려면 일을 해야 하고, 이름을 떨치려면 자기자신을 가꾸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며, 세상을 위해 보람 있는 삶을 살려면 세상의 이치와 인간의 길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의 법칙 앞에서는 어떠한 사술도 용납되지 않으며 점과 사주, 성명학이나 기도, 심지어 신의 축복 또한 통하지 않는다.

 

신도 자기생각대로 세상을 짓는 것이 아니라 사실 속에 존재하는 일과 이치를 통하여 자신의 뜻을 실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우리들 주변에 존재하는 사실과 이치에 대해 바로 앎으로서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가 있다.

 

현재 내가 원하는 운명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 속에 존재하는 문제를 정확히 보지 못하고, 호박같은 속성을 끊기를 거부하며, 그 문제를 해결할 용기와 대책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일이며 인간의 운명 속에 숨겨져 있는 너무나 쉬우면서도 바르게 알지 못하고 있는 비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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