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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과 거짓

무위자연의 허상

gincil 2013. 4. 21. 08:50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두고

인위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생생한 현실을 무시한 관념의 소리입니다.

 

오늘날 세상을 망치고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한 말법이

바로 이와 같이 사실을 무시한 말들입니다.

 

삶이란 선과 악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니

선과 악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인간의 욕망이나 감정을 묘사하는 문학작품에서나 할 일이지

진리를 추구하는 자리에서 논할 바가 아닙니다.

 

만약 그 악이 님의 가족을 해치려하고 있고

생사의 문제로 다가올 때에도

악이 선을 위한 불가피한 질서라고 남의 일처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악으로 고통받는 사람에게는

그것은 선과 악이 공존하는 추상적인 질서와 관념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을 갉아먹는 고통이며 절망의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가 진실을 추구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사람들의 고통을 들어주고

억울함이 없는 밝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것 일진데

어찌 그것이 현실의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방관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은 말세라 진리는 흐려지고 정의는 약해졌으며

사람들의 삶은 악과 욕망으로 넘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그냥 내버려둔다면

사람들은 고통 속에 허덕이다 악이 극성한 가운데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어떤 일이 사실과 맞지 않은 관념이나 거짓일 때

그 결과가 잘못을 말해줍니다.

 

그 좋은 예로 요즘 젊은이들이 잘못된 관념에 빠져 소중한 젊은 시절을

삶을 키우는 원인을 짓지 않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은데

 

엄중한 현실과 인과의 법칙이 주는

인생과 사회의 낙오자라는 낙인을 받고서야

비로소 헛된 환상에 빠져 거짓된 삶을 살았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동양사회가 서양사회보다 어두워지고 무기력하게 된 이유도

세상이 고해이며 인위적인 허상에 불과하다는 헛된 관념에 빠져

사실을 무시하고 좋은 원인을 짓는 것을 소홀히 했기 때문입니다.

 

서양은 잘하건 잘못하건 간에

계속 사실에 기초를 두고 문제를 찾으며

원인을 지음으로써 변화를 이룬 반면에

 

동양은 관념에 빠져 선과 악의 구별을 소홀히 하고

문제가 생기면 이를 운명과 자연에 미루는 경향을 보임으로써

스스로 퇴보와 숙명론의 질곡 속으로 빠져 들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사실의 힘이며 한치의 어김없는 인과의 법칙이니

아무 일도 안하는 것은 차라리 구분짓고 사는 것만도 못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짓지 않은 것은

스스로 생겨나지 않은 것이 불변의 이치이기 때문에

좋은 원인을 지으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회가

좋아질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선과 악이 나타나고 있는 이유는

지은대로 결과를 받게 되는 완전한 법칙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치에 따라 살면 삶이 밝고 강해져 건강과 행복과 완성을 얻게 되고

이치에 어긋나게 살면 삶이 어둡고 허약해져

불행해지고 소멸하게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태초부터 정해져 있는 이러한 질서를

진리 또는 법이라 하였고

세상은 진리에 의해 한 치도 어김없는 이루어지는 법계라 하셨습니다.

 

오늘날 진리가 희미해져 이를 부정하고 있지만

이러한 법칙은 우주가 존재하는 한 영원한 것입니다.

 

세상에 악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선이 있기에 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모르고 함부로 한 어리석은 행동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도리를 그르치고 남을 해친 결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진실은 상대성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입니다.

 

세상은 하나이기 때문에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진실이냐 아니면 거짓이냐 하는 판단이 있을 뿐이지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고 하는 상대적 논리는

진리의 세계에선 있을 수 없습니다.

 

분명한 진실을 모르고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면

그것은 세상을 모른다는 말과 같으며

결국 삶을 제대로 판단하고 행동하지 못해

불행한 인생을 맞게 될 것입니다.

 

요즘 말법들은

세상의 모든 것이 분별상이니

원래 선도 없고 악도 없음을 이해하라고 하고

무위자연이라고 하면서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두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무분별지란 것은

반야나 깨달음의 실체를 보지 못한 상태에서 관념 속에서 짓는 것으로

실체도 없는 추상적인 그림만 그리고 있을 뿐입니다.

 

노장사상에서 말하지 말고 단정짓지 말라고 하는 것도

중생들이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을

함부로 말함으로써 악업을 짓지 말라는 것이지

만물속에 흐르고 있는 진리마저 부정한 것은 아닙니다.

 

성자들과 같이 삼세의 일을 모두 깨달은 분들은

진리의 존재에 대해서 한결같이 말씀하셨으며

완전한 세상의 실체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선과 악, 친해야 할 것과 친하지 않아야 할 것,

정법(正法)과 사법(邪法), 연기법(緣起法)과 외도의 법(非緣起法)등을

옳고 바르게 사실대로 아는 것을 正知라고 했습니다.

 

소크라테스도 그릇된 행위는 선악을 모르는 무지에서 비롯된다고 하면서

진리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

덕을 쌓고 선을 실행할 수 있는 기초가 된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진실에 눈을 뜨야 합니다.

진리에 대해 정말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자각하게 될 때

비로소 진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세상 일에 눈을 뜨게 되면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좋은 원인과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나쁜 원인이 명확히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세상은 완전한 이치가 흐르는 법계라 했던 것입니다.

 

세상의 진실과 정해져 있는 법칙을 알고 행동하면

자기가 바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고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선한 마음을 가지고 행동하는 자만이

마음이 맑아지고 인간완성에 이를 수 있으며

세상의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어둡고 탁한 현실속에서

자기 혼자만이라도 진리를 밝히고 선을 행하여야 할 이유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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