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실을 찾아서

올바른 팔정도 본문

깨달음의 길

올바른 팔정도

gincil 2013. 4. 21. 22:34

[ 질 문 ]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부산에서 조그마한 장사를 하고 있는 중년입니다.

부처님의 팔정도의 내용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팔정도가 한 가지가 아니고 여러 가지이고

해석도 여러 가지라서 헷갈립니다.

진정으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팔정도란 어떤 내용입니까?

저는 진심으로 그 내용을 알고 생활에 실천하고 싶습니다

깨닫지는 못할지언정 팔정도라도 생활화하면

보다 나은 삶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 답 변 ]

 

부처님은 정각을 이루신 분으로서

세상이 이루어지고 있는 인과의 이치를 명확히 보셨기 때문에

인간이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에 이르는가를

명확히 밝혀주셨습니다.

 

그러나 당시 법을 펴실 때에는

상황에 처해서 상대의 근기와 공덕에 따라

상대에게 가장 적합하고 필요한 생명의 말씀을 해주셨을 뿐

논리적으로 삼법인, 사제, 육근, 육경, 팔정도, 12연기와 같이

체계를 갖추어 말씀한 것은 없습니다.

 

이러한 논리들은 후대의 제자들이 부처님법을 정리하면서

체계를 갖추어 인위적으로 정리한 것일 뿐입니다.

불경을 보면 하나의 사례에 대해

여러 장소에서 비슷한 내용으로 말씀하신 것이 많은데

그것은 바로 부처님이

항상 상황에 따라 형식에 구애받지 아니하고

자연스럽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입니다.

 

팔정도도 바로 그와 같이 여러 장소에서

어떤 때는 바른 가르침과 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어떤 때는 바른 마음과 의지,

어떤 때는 행위와 업에 대해 이야기한 것들을

나중에 불교학승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을

모아 편집한 것입니다.

 

그러한 내용 가운데는

후대에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에서 발달한 논리들이

차용된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후대에 불경을 보는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그럴 듯한데

그 속에 생명력이 없어

경을 읽고도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살아 숨쉬는 생생한 가르침이

형식화되고 체계화되어 생명력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좋은 음식도 오래되고 손을 대면 상하는 것처럼

부처님의 말씀도 사사로운 생각이 개입되고 가공되어

변질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불경 전편에 흐르는 가르침의 요체를 아는 것입니다.

 

부처님 재세시에도 기존 브라만교와 육사 외도가 있어

많은 잘못된 관념과 주장들로 세상을 어지럽히고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오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브라만을 믿어 광신적인 기복을 행하였고

유물론, 회의론, 운명론, 쾌락론을 주장하면서

세상을 혼동과 어둠속으로 몰아넣고 있었습니다.

마치 지금과 유사한 사회상이었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이때 부처님이 나타나서 하신 진리의 말씀은

이 세상은 완전한 법계로서

모든 것은 인과의 법칙에 의해 나타나고 있으니

이치에 맞지 않는 관념을 버리고 이를 몸에 체득하여

좋은 원인을 실천함으로써

좋은 결과를 얻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팔정도의 근본 가르침입니다.

 

모든 것은 인과의 이치에 의해 이루어지니

좋은 원인을 지으면 좋은 자신과 세상을 얻고

나쁜 원인을 지으면

불행한 자신과 고통스런 세상이 오는 것이니

 

인간을 완성에 이르게 하는 바른 법을 배우고

이를 마음에 새겨 힘써 노력하면

한번 지어진 원인은 사라지지 않고

반드시 결과가 나타난다는 불변의 법칙에 의해

그 정업이 자신 속에 남아

마침내 완성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완성에 이르는 바른 법이란

세상을 이루는 인과의 이치를 배우고

이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에는

세상이 이루어지는 사실적인 이치가 들어있습니다.

그 속에는 삶을 성공으로 이끌고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며

완성으로 이끄는 원리가 들어 있으며

이것이 오늘날 현대인들이 찾고자 하는

진정한 사회과학의 진리인 것입니다.

 

그 근본은 바로 세상과 이웃을 복되게 만들려는

자비와 사랑입니다.

 

요즘 사랑에 대해 명확한 뜻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는데

사랑이라는 것은 무조건 상대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올바른 구실을 하고 대접받도록

 

바른 이치로 축복해주고

불의가 있을 경우 지혜와 용기로

이를 헤쳐 나가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을 사랑할 때

이치에 맞지 않는 자신의 업이 타고

영혼이 맑고 강해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상을 축복하고 인간완성에 이르는

바른 이치를 깨닫는다면

그 다음에는 이러한 깨달음을

계속 간직하고 지키며 실천해야 합니다.

 

여기에 바르게 생각하고(정사유) 바른 말(정어)을 하며

올바른 가르침을 기억하고 어기지 않으며

지키는 정념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알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진리는 삶 속에 있는 것이며 세상은 모두 하나입니다.

 

따라서 삶 속에서 좋은 원인을 짓는 것이 중요하며

바른 생각과 실천이 같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삶에 있어서 세상살이와 도와 수행법은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좋은 원인을 쌓는 정업을 실천해야 하는 것이며

계율에 어긋나지 않는 올바른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정명)

 

그리고 지속적으로 이를 지키며 실천해나가는 삶을

계속해야 하는 것입니다.(정정진)

 

그리고 선정에 대해서는

부처님은 크게 중시하지 않았습니다.

 

과거 거친 인도의 환경에서 우기가 닥쳐와

제자들이 돌아다니지 못할 때

그 동안 배우고 깨닫고 실천하여

자신을 정화한 상태를 점검해보는

반성과 자신을 찾는 시간을 가져보라는 뜻이었습니다.

 

지금은 선정이 중시되고 있는데

공덕을 쌓지 않고

혼자 자기 마음을 찾는다고 앉아 있으면

시커먼 업이 발동하여 마굴로 떨어지게 됩니다.

 

부처님은 오랜 동안의 수행과 고행에서 벗어나

우유죽을 한잔 얻어 마시고

보리수 밑에 앉아 해탈을 얻으신 후에

자신의 깨달음은 고행과 선정으로 온 것이 아니라

수많은 생을 통해 쌓아온 공덕이 세상을 가득 덮어

그 결과로 이 생에서 해탈에 이르렀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기존의 고행이나 선정의 관행에서 벗어나

바른 마음을 갖고 세상을 바로 보고 바르게 행동하여

좋은 선업을 쌓아

모든 업을 지워버리는 바른 길을 걸어야

해탈에 이르게 된다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즉 팔정도의 가르침은 그 동안 인도 수행계에 만연해 온

앉아서 모든 것을 이루려는

관념적인 수행의 병폐에서 벗어나

원인을 지음으로써만이 자신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적인 실천법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도들은 사실을 사실대로 볼 수 있었고

좋은 삶과 밝은 세상을 만드는 좋은 원인을 지을 수 있어

다른 외도법에 비해

사실에 부합된 참된 진리로 인정받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바른 마음과 바른 시각을 갖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면

삿된 마음과 탐욕이 일어나지 않게 되고

자신과 세상을 위해

좋은 원인을 지을 수 있는 힘이 쌓이게 됩니다.

 

이러한 좋은 원인이 자신 속에 쌓이게 되면

그 사람은 중생의 운명을 벗어나

성인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과거에 지은 것을 되풀이하는 자연법에 의해

변화된 자신의 근본은

다음 생에 태어나도 세상을 바르게 보게 하고

선근이 쌓인 마음은 세상을 자비하는 좋은 마음을 내어서

계속 자신의 마음을 고양시킴으로써

해탈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치로 부처님의 직계제자들이

이생에서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렀으며

후생에서는 부처에 이를 것이라고

수기를 받았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팔정도의 기본 원리인 것이며

인과의 법칙에 가장 부합된 깨달음의 정법인 것입니다.

'깨달음의 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전호흡의 실제와 허상  (0) 2013.04.21
성경은 절대적 진리인가  (0) 2013.04.21
천부경의 비밀  (0) 2013.04.21
불교의 본질  (0) 2013.04.21
구도자와 직업  (0) 2013.04.21
Comments

세상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법
진실의 근원 ginc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