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실을 찾아서

현대 종교의 문제<심령현상> 본문

☆ 진실의 근원

현대 종교의 문제<심령현상>

gincil 2013. 4. 24. 12:03

지금 우리나라의 종교상황은 진리가 무엇인지, 성자들의 참된 가르침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혼돈상태에 빠져있다.
그 이유는 오늘날 종교가 성자들의 가르침을 그대로 전하지 못하고 
역사적 변천과정에서 성자들이 배척했던 원시종교의 어둠과 세속의 욕망들을 많이 받아들여 원 가르침에서 크게 왜곡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뭐라 하면 종교인들은 종교의 자유라는 이유로
또는 보잘 것 없는 인간이 알 수 없는 신성의 영역이라 하며 
논의를 거부하고 마치 원수를 대하듯 한다.

그러나 종교는 삶의 의미와 목적, 살아가는 방법과 의식주에 이르기까지 
결부되지 않은 곳이 없기 때문에 그 진실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으면 안된다.

만약 종교의 가르침이 사실과 다르고 이치에 어긋나면 
삶이 불행해지고 사회가 파멸로 들어가는 것은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종교가 하늘로부터 내려온 신성불가침한 존재가 아니라 역사적 산물이란 점에서 
이와 같은 종교의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태도는 자신들의 모순과 한계를 깊게 하고 
종교의 본분을 다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상실하게 할 것이다.

오늘날 종교계에는 성자들이 태어날 당시의 원시신앙처럼
맹목적인 믿음과 음침한 심령현상이 땅거미처럼 번지고 있다.

이러한 영적 현상에 대해 성자들은 이를 매우 경계하셨다.

아함경에 의하면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세속적인 주술을 행하는 것을 금지하고 
위반자는 파일제(payattika지옥에 떨어지는 죄)를 범한다고 하셨으며 
또, 팔리어 경전 소품에서는 세속의 주술법들을 축생의 학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예수님도 『심판의 날에 거짓된 자들이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3)』고 하셨다.

즉 아무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씀을 전하고, 성령으로 귀신을 쫓으며, 이적을 행하더라도 
하느님의 가르침을 진심으로 행하지 아니하고 천한 유혼의 힘에 의해 영적 현상을 일으키는 자를 
예수님은 참된 제자로 인정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진리를 전해야 할 종교집단에서 
이러한 심령 현상을 특별한 능력인 듯 선전하며 교인을 모으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으니
이는 어둠의 대변자가 되는 일이며 성자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일이다.

만약 성자들이 지금 이 세상에 나타나신다면
오늘날 종교에서 당신의 가르침을 전하지 않고
맹목적 믿음과 삿된 영적 현상으로 사람들을 어둠과 불행으로 이끌며
기복을 위한 헌금으로 편히 지내는 종교인들을 보고
다시 “독사의 자식”이라고 외치실 것이다.

그러면 종교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큰 죄를 짓는지 모르고
신성을 모독한다는 이유로 예전처럼 다시 성자를 돌로 내려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자와 중생, 진리와 어둠과의 영원한 상호관계이니
중생의 세계에서 성자는 환영받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오늘날 종교가 원시종교화 하여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는 현상들에 대해 
그 진실을 밝힘으로써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종교의 위상을 바로 세우고자 한다.

먼저 심령현상의 진실에 대해 알아본다.

이 영역은 생명의 신비와 이어지고 있어서 종교의 영역인 듯 하나 비정상적인 생명현상에 불과하다.

요즘 매스컴에는 어린아이가 배우지도 않은 승무를 춘다던가
기이한 방식으로 병을 고치는 심령가들이 출현하여 세상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 있는 비밀을 알게 되면 그것은 매우 불행한 일인데 
이를 자랑스러워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한심하고 가슴이 아프지 않을 수 없다.

생명의 질서에서 보면 생과 사는 분명히 구별되는 것으로 
하늘의 뜻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세계를 분명히 나누어 
죽은 자의 영적 현상이 이 세상에 나타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왜냐하면 생과 사가 뒤엉켜 죽은 자가 산자와 함께 머물고 작용을 일으킨다면
생명의 질서는 흐트러져 세상이 붕괴되고 말기 때문이다.

따라서 죽은 자는 이 세상에 머물지 않고 떠나야 하는 것이 원칙으로 
죽은 자의 영적 현상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은 비정상적인 것이다.

특정 종교계에서는 자기들 종교 속에 나타나는 영적 현상들은 
높은 차원의 신들이 일으키는 특별하고 예외적인 현상이라고 주장하지만 
세상은 하나이고 그 속에 나타나고 있는 생명의 질서도 하나이기 때문에
특정종교에만 높은 신이 나타나 편파적인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

하늘의 뜻과 이치는 한치의 어김이나 빈틈이 없어서 
인간들이 세상을 망하게 하는 원인을 많이 짓게 되면
인류 전체도 정해진 법칙에 따라 한 찰나에 소멸시키는 것이 하늘의 엄정함이다.

하물며 삿된 인간이 개인적인 일로 사정한다고 해서 
우주의 질서를 어기면서까지 도와줄 이유가 없다.

만약 세상을 창조한 조물주(하느님)가 인간의 사사로운 일에 개입한다면
그것은 자신이 세운 우주의 질서를 어기는 일이며,
자신이 만든 세상의 완전성을 깨뜨리는 일이며
이 모든 것을 창조한 자신의 완전성을 부정하는 일이 된다.

더구나 높은 차원의 신들은 이 세상에 머물지 않는다.
왜냐하면 높은 차원의 신들도 이 세상에 계속 머물게 되면 
끈적끈적한 중생대의 인력 속으로 빨려들어 다시 윤회해야 하는 운명을 받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명의 진실은 이 세상에 공통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세상에 나타나고 있는 거의 모든 영적 현상들은 
유계를 떠돌고 있는 낮은 차원의 영들이 일으키는 삿된 현상에 불과한 것이다.

심령현상을 보는데 있어서 이러한 이치를 분명히 이해한다면 
오늘날 종교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기이한 심령현상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관념과 실상 사이에 많은 괴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즉 종교 속에 나타나고 있는 거의 모든 영적 현상들은 
한과 집착을 가진 저급한 유혼들이 일으키는 삿된 현상으로서
미래를 예언하거나 안수치유를 하거나 부흥기도를 하는 등 영적 능력을 자랑하는 자들은 
선택받은 존재라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유혼들과 영적 접촉을 갖고 있는 
정신적으로 병든 자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지금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심령현상들은 매우 신비로워 엄청난 비밀과 신성함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부분 낮은 차원의 유혼들에 의해 일어나는 것으로 매우 단순한 원리로 이루어진다.

즉 황진이를 사모하다 상사병에 걸려 죽은 머슴의 장례행렬이 
황진이의 집앞을 지나가다가 상여가 멈춰 움직이지 않았을 때 
황진이가 속곳을 걸쳐주자 떠나게 되었다는 현상과 

선불교의 개조라는 육조 혜능스님의 장삼과 가사를 도적이 강탈해 가려하자 땅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는 현상은 
모두 유혼들이 작용해 일으키는 물체의 고착현상인 것이다.

선가에서 이 말을 들으면 감히 육조스님과 황진이를 비교한다고 난리를 치겠지만
세상에 나타나는 심령현상은 하찮은 유혼들이 일으키는 것이니 그만큼  단순하고 유사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무당이 굿으로 병을 고치는 것과 
종교집단에서 안수기도로 병을 고치는 것도 같은 원리이다. 

이들이 병을 고치는 원리는 고귀한 하느님이 직접 이 세상에 내려와
인간의 몸에 붙은 악마를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힘이 센 유혼들로 하여금 약한 유혼들을 겁주거나 위협하여 떠나게 하는 현상으로 
유혼들 간의 세력다툼에 불과한 것이다.

이처럼 영적 현상은 세상을 밝게 하는 이치나 좋은 원인을 짓는 것이 아니라 
떠도는 유혼들이 벌이는 사소하고 무의미한 현상에 불과하기 때문에
높은 차원의 신들이 그런 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내려오실 이유가 없다.

오늘날 이 세상에는 폭력과 거짓과 욕망이 넘치고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한과 집착과 불안이 가득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어도 편히 눈을 감지 못하고 유혼이 되는 운명을 맞고 있는데
그 결과 세상에는 인류의 수보다 더 많은 유혼들이 떠돌고 있다.

더구나 오늘날 종교 속에는 교인들을 유혼으로 만드는 왜곡된 교리가 들어있어
이러한 현상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성경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마태복음 27장 60절)

『이것에 놀라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온다. 
선한 일을 행한 사람들은 부활해 생명을 얻고 악한 일을 행한 사람들은 부활해 심판을 받을 것이다.』 (요한복음 5장 28절)

기독교에서는 이와 같이 이치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일들을 만들어
신성미화와 전도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구절들은 예수의 말씀이 아니라 후대의 사도들이 쓴 글이니
실제 그러한 일이 있었는지 확인할 수 없으며 아무런 증거도 남아있지 않다.

그런데 오늘날 성직자들은 이런 환상적인 구절을 근거로 
진실한 교인은 죽어 몸이 썩은 후에도 구원의 날이 오면 
무덤에서 다시 새 몸을 받아 일어난다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어리석은 교인들은 죽어도 세상을 떠나지 못하고 
다니던 교회에 계속 머물며 구원의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유혼들은 생전에 품었던 자신의 욕망과 집착과 한을 
과거 자신이 인연 맺었던 곳에 가서 풀려고 하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의 유혼은 교회로 몰려들고, 불교신자의 유혼은 절로 몰려들며, 토속 혼령들은 무속인들에게 나타나 
지금의 종교집단에는 영들이 우글거리며 심령현상이 자주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심령현상이나 기적이 많이 나타나는 종교유적지는 가지 않는 것이 좋다. 
완전한 신은 그런 곳에서 기도한다고 나타나지 않으며
그런 곳에 나타나 영적 현상을 일으키는 존재들은 거의 모두가 세상을 떠도는 유혼들로서 
그곳에 가면 그들과 인연을 맺거나 감염되기 쉽기 때문이다.

오늘날 신흥종교가 크게 번성하고 있는 이유도 그 속에 영적 힘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들은 생전에 자신이 집착한 욕망이나 가슴에 맺힌 한을 풀기 위해 
저 세상으로 떠나지 못하고 이 세상을 계속 맴돌게 되는데

생전에 세상을 축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김을 받고자 하는 욕망으로 깨달음을 얻으려고 한 수행자들은
평생동안 체득한 경지와 논리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죽어도 편히 눈을 감지 못하고 자신의 욕망과 한을 풀려고 계속 떠돌게 된다.

그래서 자신과 같은 길을 가는 욕심많은 수행자를 택해 
깨달음의 환상으로 그를 유혹해 자신을 받아들이게 하고
자신의 영적 능력과 논리를 전해 새 종교를 만들어
수많은 영들과 사람들을 끌어들어 자신을 섬기도록 함으로써 생전의 한과 집착을 푸는 것이다.

그들의 논리는 평생동안 치밀하게 궁리하고 연구한 것으로
중생들이 보기에 한치의 허점이 없이 보이며
시공의 한계를 넘어서는 영의 특성을 이용하여 신통술을 부리기 때문에
그들이 변장한 장엄한 모습과 교언영색한 주장에 속은 영들과 사람은 
마치 그곳에 위대한 진리가 있는 것으로 착각하여
이에 매달리고 퍼뜨림으로써 급속도로 교세가 팽창하는 것이다.

사람이 한번 영에 감염되면 자신도 모르게 영의 조종을 받게 되는데
영에 씌인 사람들은 영이 시키는 대로 종교집단에 나가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해지고 몸이 아파 어쩔 수 없이 나가게 되고 
그곳에 가면 편안함을 느끼게 되므로 한번 신흥종교에 빠지게 되면 벗어나기가 힘든 것이다.

오늘날 신흥종교의 집회가 주기도문과 같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자기의 양심을 밝히고 
진심을 다한 회개로 인류를 위한 소망이 되지 아니하고 
굿판과 같이 광적인 흥분상태를 보이는 것도 
그 근본에 유혼이 자리잡고 있으며
집회군중의 의식 흐름이 무당의 접신상태와 유사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이상한 영적 현상을 자랑하며 세를 팽창하고 있는 신흥종교인들을 살펴보면
거의 대부분이 영에 접해 있으며 
절이나 교회에 다니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서도 영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영이 스며들면 본인은 이를 잘 느끼지 못하나 
주변 사람들이 보면 그가 달라진 것을 확연히 느끼게 된다.

이들은 매일 종교집단에 나가 철야로 기도를 하고 먹지 않아도 기운이 넘치며
하늘나라 이외에는 현실이 무의미해져 가정과 직업을 내팽개치고 
그동안 애써 모은 모든 재산을 아낌없이 바치며
지하철이나 역에서 부끄러움도 모른 채 큰 소리를 외치는 등
정상적인 사고로는 하기 어려운 일들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것이다.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얼굴이 창백하거나 검게 변하고
특별한 원인없이 심신이 아프며 인격장애를 나타낸다. 

그 이유는 죽은 자의 기운이 산자의 생기와 다르기 때문에
사기가 생체에 붙으면 그 이질적인 기운으로 말미암아 
몸에 통증이 오고 정신에 이상이 오는 것이다. 

요즘 많은 병들이 병원에 가면 의학적으로는 아무 원인이 없는데 까닭없이 몸이 아픈 이유는 
거의 대부분이 신체에 유혼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영이 사람의 몸에 들어오면 육체는 두개의 주인을 갖기 때문에 이중인격을 보이게 되는데 
그 특징은 두 개의 의식이 충동질하는 대로 행동하기에 
행동을 종잡을 수 없는 인격파탄 증세를 보이는 것이다.
그중 여러 개의 영이 들어오게 되면 다양한 정신상태를 나타내게 되는데
이런 경우를 다중인격이라 한다.

그리고 오늘날 많이 나타나고 있는 자폐증과 자살과 같은 행동 뒤에도 유혼의 작용이 깃들어 있다.

정신이 혼미한 유혼들이 아이들 몸에 들어와 정신을 지배하게 되면
아이들은 제정신이 아닌 유혼처럼 멍하니 있게 되고 
타인과의 접촉을 꺼리며 말을 하지 않는 자폐증세를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정상적인 사고로서는 감히 할 수 없는 자살같은 일을 저지르는 배경에도
광적인 집착을 가진 유혼들이 들어와 인간의 사고를 마비시키고 광기를 충동질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요즘 서구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슬람권에 알 카에다와 같은 자살 특공대가 성행하고 있는데 
이들이 자폭 테러를 쉽게 감행할 수 있는 이유도
광신적인 종교환경 속에서 몸에 이미 신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이들이 교인들의 이성을 마비시켜 신의 영광을 위해 기꺼이 몸을 바치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영에 한번 감염되면 이들과 인연을 끊기 대단히 어려우며 
현실의 삶은 물론 영원히 계속되는 생명의 길도 망치게 되니 
이들과 인연을 맺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사회는 이러한 이치에 무지한 현대문명의 영향으로
점치러 가거나 영적 종교에 가입하는 것을 교양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어서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강도나 살인을 하면 인간의 한 생애를 망치는데 그치지만
심령현상에 의한 영적 오염은 한 인간의 영혼을 근본적으로 망가뜨려
인간으로서의 종자와 순환마저 단절시켜 버리기 때문에 그 악업은 매우 크다.

따라서 이러한 치명적인 영적 감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심령현상이 많이 일어나는 곳에 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유혼들이 사람들의 몸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이유는
떠돌아다니는 생활이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기 때문이다.

유혼은 몸이라는 보호막이 없기 때문에 무제한의 의식의 자유 속에 있게 되는데
이때 불안한 의식은 자연환경과 의식의 변화에 따라 
끝없는 환상과 공포에 젖게 되며 엄청난 고통을 당하게 된다.

유혼들은 자신이 살아있는 듯 착각하여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존재이기 때문에 
환상 속에서 보는 일들도 실제처럼 느낀다. 

그래서 그들은 기압의 변화에 몸은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고 
뜨거운 태양 열과 겨울의 얼음 속에 화탕지옥과 한냉지옥을 겪게 되며
유계 나름대로의 존재양식에 의해 갖가지 불안과 공포가 형상화된 괴물과 형벌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소위 세상에서 말하는 지옥의 실체인데 
이처럼 지옥이란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후의 영혼이 의식 속에서 느끼는 생생한 체험현상인 것이다.

유혼은 사람의 몸에 들어오면 자신의 집을 얻고 
지옥의 환상과 고통에서 벗어나 편하게 지낼 수 있기 때문에 
호시탐탐 산자의 몸을 노리며 한번 들어오면 스스로 떠나지 않는다.

그러나 건강한 인간의 몸은 우주의 조화체로서
생명력이라는 신비한 보호막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사후 결과체인 미약한 기운인 유혼이 쉽게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유혼세계를 이루고 있는 어둠의 세력들은 인간 세상에 자신들의 근거를 마련하고자
교묘한 말법과 수단을 인간세상에 퍼뜨림으로써
인간 스스로 몸을 열어 자신들을 받아들이게 하는 거대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

이러한 말법들 중 대표적인 것으로 생생한 사실의 세계를 무기력한 관념의 세계로 만들어버린 공사상과 각종 명상기법, 신령을 섬기는 각종 미신과 성령주의 등이 있다.

지금 동양의 공사상에 기초한 각종 명상기법들이 세상에 크게 유행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매우 위험한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즉 단식기도와 각종 명상기법을 통해 몸을 허약하게 만들고 스스로 몸의 문을 열게 되면 
그 틈을 이용하여 유혼들이 들어와 인간의 몸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요즘 명상법들은 공사상에 근거하여 화두를 버리고 마침내 자신마저 버리라고 하고 있는데
이 말은 객을 위해 주인자리를 비우라는 교묘한 술수이니
주인이 자리를 비우면 그 자리에 객이 들어와 주인행세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한 자리를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 자들이
진리의 세계를 밝히지 않고 주로 신통술에 의지하는 행태를 보이는 것은 
바로 이러한 함정에 빠져 유혼의 노예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생명의 세계를 위협하는 또 하나의 거대한 음모로 원시신앙에서 많이 나타나는 접령 현상이 있다.

기독교에서는 원시종교의 이러한 접령현상을 성령이라는 말로 바꾸어 
자신들의 종교에서 나타나는 령은 미개한 잡령이 아니라 하느님이나 그 천사의 령이기 때문에 
미신이 아니며 이들이 몸으로 들어오면 진정한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인간의 몸으로 들어오는 성령이 
하느님의 영이거나 높은 차원의 신일 수가 없다.

왜냐하면 전지전능한 하느님이나 높은 차원의 신이 영원하고 완전한 천국을 버리고 
혼탁한 이 세상에 나타나 추한 인간의 몸에 무수히 거주하며 떠돌아다닐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영혼은 의식으로 존재하기에 연극배우가 분장하듯이 마음먹기에 따라 다른 존재로 변하여 인간의 의식에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하느님의 모습을 가지고 나타나는 성령이라는 존재는 
기독교인들이 주장하듯이 하느님이나 천사의 현현이 아니라
기독교적 배경을 가진 유혼들이 자신들의 종교적 집착과 한을 풀려고 하느님의 베일을 쓰고 나타난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에서 하나님의 은사라고 주장하고 있는, 
구약에 나오는 성령들의 행태가 이상한 것은
바로 이들이 하느님의 모습을 쓰고 나타난 유대민족의 한 맺힌 유혼들이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두려워 말라 내가 아이(지명) 왕과 그 백성과 그 땅을 다 네 손에 주었노니""너희가 성읍을 취하거든 그것을 불살라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라"(여호수아8장8절)

*안식일에 어떤 사람이 나무하는 것을 발견한지라 그를 끌어 왔으나 어떻게 처치할는지 지시하심을 받지 못한 고로 가두었더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일찌니 온 회중이 진 밖에서 돌로 그를 칠찌니라 [민수기 15장 32-36절]

*고라가 모세와 불화하자 다른 사람이 말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가 진노하여 “이 모든 말을 마치는 동시에 그들의 밑의 땅이 갈라지니라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 가족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 물건을 삼키매” “여호와께로서 불이 나와서 분향하는 이백 오십인을 소멸하였더라”  [민수기 16장 34-35절] 

*저희가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나오는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 저희가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의 잘못함을 인하여 진노하사 저를 그곳에서 치시니 저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사무엘하 6장3-7절] 

*엘리사가 벧엘로 올라갈 때에 작은 아이들이 성읍에서 나와 그를 조롱하자 엘리사가 뒤로 돌이켜 그들을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의 사십이 명을 찢었더라 [열왕기하2장 23-24절] 

* 이스라엘 지파 중 야베스 길르앗에서는 한 사람도 총회에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니 용사 만이천명을 그리로 보내며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가서 야베스 길르앗 주민과 부녀와 어린 아이를 칼날로 치라 너희가 행할 일은 모든 남자 및 남자와 잔 여자를 진멸하여 바칠 것이니라 하였더라 [사사기 21장 8-11절]

이것이 바로 성령이 이끌던 유대신앙의 실체이니
그들의 행태가 다른 원시신앙의 신령들과 마찬가지로 
현실에 대한 강한 욕망과 집착을 가지고 있음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성령을 중시하는 자들은 성령을 받아 새롭게 변해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부흥회와 단식기도 등을 통해 반드시 성령을 받아야 하며
성령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말은 다른 의식을 지닌 유혼에게 몸을 주고 그 영의 노예가 되어 살라고 하는 것이니 
어둠의 세계가 생명의 세계를 지배해 자신들의 종으로 삼으려는 거대한 음모인 것이다.

따라서 성령에 의지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산자의 길을 버리고 죽은 자의 노예가 되는 길이니
하느님이 인간에게 세상의 주인이 되어 살라고 한 축복을 저버리는 배은망덕한 짓인 것이다.

어둠의 세계가 이처럼 정법을 흩트리고 인간의 길을 왜곡하는 이유는 
밝음과 진리 밖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그들의 속성 때문이다.

즉 사람들이 사실과 바른 이치에 따라 밝게 살면 
신령에게 의지할 필요가 없어 그를 섬기거나 환대하지 않고 
명상에 빠져 유혼에게 몸을 내어주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유혼들이 이 세상에 머물 곳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밝은 이치와 참된 인간의 길이 세상에 자리잡으면
잘못된 삶으로 인간이 유혼이 되는 경우가 거의 없어지기 때문에
어둠의 세계를 채워줄 유혼의 충원이 이루어지지 않아
어둠의 세계는 순환을 통한 재생의 힘을 잃고 스스로 붕괴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생명의 진실을 깨달아 유혼의 꼬임에 속아
어둠의 세계를 위하여 자신을 바치는 어리석은 일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기독교계에서는 자신들의 종교에서만 하느님의 은총으로
특별히 하느님과 그 천사가 성령으로 출현한다고 주장하지만
종교집단에서 그토록 많이 일어나는 성령현상이 어찌하여 국가적으로 큰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안 나타나고 
인생에 실패하거나 사업에 실패하여 종교에 의지하는 자들에게 주로 나타나는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 이유는 심령현상을 일으키는 영들이 주로 낮은 차원의 유혼으로서
그들이 정체를 나타낼 수 있는 곳은 생명의 기운이 넘치는 밝은 세상이 아니라 어둡고 침침한 곳이며
자신들이 술을 부릴 수 있는 대상은 심신이 허약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에서 큰일을 하는 밝고 강한 기운을 가진 사람에게는 영적현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또 신을 섬기는 종교에서는 성령에 의한 하느님의 말씀을 중시하는데 이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
완전한 하늘의 뜻을 예수님과 같은 성자도 다 밝히지 못했는데 
삶에 문제가 많고 심신이 부실한 자의 영적 접촉을 통해 하느님의 뜻이 밝혀진다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완전한 진리와 하늘의 뜻은 중생의 눈으로 볼 수 없으며 
오직 완전한 이치와 깨달음을 얻은 성자들의 가르침을 통해 밝혀지는 것이 세상의 진실인 것이다.

오늘날 인류가 이만큼 진리의 빛 속에서 인간답게 살고 있는 것도
인류역사에 이따금 나타나는 성자들이 밝히신 진리에 의해 가능한 것이지
성령을 통해 하느님이 전한 말씀에 의해 살고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유혼들이 사람의 몸에 들어오면
그들은 과거에 자신이 행했던 습과 욕망을 산자의 몸을 통해 펴려하기 때문에 
산자는 배우지도 않았던 행동을 갑자기 하게 된다.

즉, 명상을 통해 특이한 기를 받고 자신이 전혀 하지 못했던 영무를 추거나 영동타법을 하고
방언을 하거나 배우지도 않은 주역을 술술 풀어내는 일들은
바로 이와 같이 살아 생전 다른 지식과 기술을 지녔던 유혼들이 들어와 하는 행동이니 
좋아할 일이 못된다.

세상의 이치는 현재 자기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이면 계속 할 수 없으며
자신이 배워 체득한 것은 자신이 원할 때마다 언제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쇠다루는 일을 완전히 배운 대장장이는 
언제 어디서나 쇠를 녹이고 담금질을 하여 좋은 연장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진정한 깨달음 또한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자기 마음속에 열매 맺은 것이기에
언제 어디서나 그 묘용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제3의 존재를 믿어 그와 감응할 때만 발휘하는 능력이란 참다운 능력이라 할 수 없으며
그곳에는 영적 요소가 개입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즉 무당과 같이 접신후 기이한 능력이 나타나거나 수행과정에서 다른 기운을 받아 나타나는 행동은
다른 기운의 작용에 의한 것으로 
이러한 기운들은 자기가 원하여 온 것이니 인연이 다하면 스스로 떠나가는 것이다.

용한 점쟁이가 갑자기 능력을 잃고 손님이 떨어지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이 몸에 머물며 신통력을 자랑하던 신이 떠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들 중 악독한 존재들은 숨어서 기회를 엿보다가 
일정한 계기에 산자를 협박하여 노예로 삼는다. 

이러한 악귀들이 산자의 몸을 지배하는 계기는 
사람의 몸이 자기를 지킬 수 없을 만큼 쇠약해져 
유혼의 영기가 사람의 생기를 제압할 수 있을 때이다.

그래서 대개 신이 들리는 경우를 보면 
큰 병을 앓거나, 정신을 잃고 쓰러지거나, 금식기도나 고행으로 몸이 극도로 쇠약해졌을 때인 것이다. 

그리하여 산 자가 고통에 못 이겨 악귀에게 굴복하면
굿과 같은 접신행사를 벌여 정식으로 자신의 노예로 삼고 그제서야 몸을 편안하게 해준다.

그래서 몸종이 된 인간에게 
자신(유혼)의 한과 집착을 대신 행하게 하여 헛된 삶을 살게 함으로써 
산자는 자신의 삶이 없는 껍데기 인생을 살다 죽으면 정처없이 떠도는 유혼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처럼 죽은 영이 산자의 몸으로 들어오는 원리는 
종교에서 성령을 받거나 무당이 접신하는 과정이나 모두 같은 것이니
오늘날 종교와 심령현상 속으로 들어온 거대한 어둠의 음모를 눈치채고
그들의 제물이 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영은 삶의 이치를 몰라 생명의 질서를 어기고 헤매는 중생이기 때문에 
인간의 일을 방해하기는 쉽지만 좋게 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죽은 자와 산 자가  함께 있으면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더구나 영이 하나 집안에 들어오면 그와 인연이 있는 영들도 따라 들어오기 때문에 
그 집안에는 우환이 끓고 불행이 겹치게 된다.

이들은 유계에서 지옥도의 악몽 속을 헤매다가 편히 쉴 곳을 찾아 헤매는데
자신을 환대해 주는 곳이 있으면 얼씨구나 하며 떼거리로 몰려든다.

그러므로 무당이나 점집과 종교의 영적 현상은 가급적 멀리하는 게 좋다.
이들을 멀리하면 할수록 그만큼 심령현상과 멀어져 마음을 맑게 간직할 수 있고
바른 이치에 따라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자식의 운명을 좋게 하려고 용하다는 작명소나 사주명가를 찾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세상일은 지은대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특별한 비결을 사용하여 좋은 일이 생기는 경우는 없다.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그것은 이치에 없는 일이기 때문에 영적 요소가 개입되었다고 보면 된다.
이런 일들은 얼핏 운명을 좋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더 큰 불행을 가져오는 원인이 된다.

만약 성명학이나 사주팔자를 보는 자들이 운명의 원리와 세상의 이치를 알고 있다면 
그들은 자신의 운명부터 바꾸어 크고 당당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수리철학을 통해 인생을 마음대로 재단해보려고 욕심내다가
생생한 삶의 실상을 숫자로 완전히 해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영을 받아들이려고 산기도를 하러 떠난다.

그리하여 깊고 음침한 산속에서 영이 붙으면 눈동자에 신기가 돌면서 
남의 마음을 맞추거나 일반인이 알 수 없는 용한 소리를 해서 사람들의 인기를 끌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소리는 유계를 헤매고 있는 병든 영들이 
환상 속에서 보고 들은 것을 전달하는 것에 불과하기에 
그 말속에는 결코 참된 삶의 길과 이치가 없다.

그러므로 이들의 말을 믿어서는 안되며 그들을 찾아서도 안된다.
이들과 인연을 맺게 되면 인연있는 어둠의 기운들이 따라 들어오게 되는 것이니
이름을 짓던 무엇을 하던 이들을 찾아갈 것이 아니라 
좋은 삶을 산 훌륭한 사람의 지혜를 빌리는 것이 좋다.

좋은 삶을 사신 분들은 사실에 근거한 바탕위에서 
이치에 따라 현실을 개척한 지혜와 덕성과 밝은 기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교를 믿으면 편안해진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러나 그것이 올바른 진리의 실천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여 편안함을 얻었다면 바람직한 일이겠지만 
문제는 그냥 있는데 오직 신에게 의지하여 편안함을 얻었다면 그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다.

사람들은 예수나 부처님이 자신의 짐을 받아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종교에서도 그렇게 주장한다. 

그러나 높은 차원의 신은 삿된 중생의 사사로운 요구에 의해 쉽게 응하시는 분이 아니며 
인간들이 호소한다고 해서 감정이 흔들릴 분도 아니다.

종교에서 절대적 존재에게 의지해 편안해지는 이유는 하느님이 그짐을 덜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있는 영에 의해 마취가 되어 일종의 자기상실 상태가 되기 때문이니
마치 술이나 마약을 통해 잠시동안 자신을 잊어버리는 것과 같다.

문제는 문제를 직접 풀어야만 해결되는 것이며 이를 외면해서는 절대 스스로 풀리지 않는다.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생기는 우주의 법칙은 절대불변의 영원한 법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을 잊는 것은 일시적으로 편안함을 얻을 수 있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망각한 순간에는 모든 것이 다 해결된 것 같아도 
현실로 돌아오면 또 다시 잠재된 문제에 부딪혀 더 큰 불안과 고통을 갖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종교인들이 바로 이런 함정에 빠져있는 것이다. 

그들은 절이나 교회에 가면 편안한데 
현실로 돌아오면 다시 고통과 불안이 다가와
또 다시 절이나 교회를 찾아가는 현실도피적인 악순환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는 이를 이용하여 날로 부유해지고 개인은 더욱 황폐화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러한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여 종교를 아편이라고 했던 것이다.

평안과 구원은 성령이나 지장보살의 보살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에 쌓인 공덕과 결실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즉 구원이란 세상을 위해 공덕을 쌓고 좋은 근본을 자신 속에 기름으로써 
영혼의 결실이 우주의 완전한 생명질서에 의해 받게 되는 당연한 댓가인 것이다.

인간은 올바른 진리와 공덕의 길을 실천함으로써 
마음속에 있던 업과 욕망을 극복하고 순수한 신성(불성)을 완성하여 맑고 강한 영혼이 된다.
그리하여 가벼운 것은 높이 오르고 무거운 것은 아래로 가라앉는 자연의 이치에 의해 
맑게 정화된 영혼은 높은 차원으로 승화하고 
탐욕과 원한에 얽메인 영혼은 무거워져 유계를 떠돌며 지옥의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인들은 잃어버린 이러한 생명의 질서를 깨달아 
스스로에 의지해 부지런히 진리를 배우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본래 성자들의 가르침은 맹목적인 믿음으로 인한 미신과 무지를 제거하고
인류를 밝은 삶과 바른 이치 속으로 인도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종교는 원 가르침에서 크게 왜곡되어 
사회를 정화시키는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인간을 영적으로 오염시켜 제 정신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오늘날 절이나 교회, 신흥종교 등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백일기도나 금식기도, 부흥회 등은 
무당의 강신현상처럼 유혼을 받아들이는 통로가 되고 있으니 
모든 것이 거꾸로 되는 말세의 대표적 현상인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은 종교집단에 들어가는 것보다 들어가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구원을 받기가 쉽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버렸다.

세상에 영적 현상이 많이 나타나는 것은 매우 좋지 않은 징조이다.
이러한 현상은 진리가 사라진 어두운 세상, 국민의 정신이 망해버린 세상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일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심령현상이 많이 나타나는 나라들은 반드시 불행해졌다.
유태인들이 그랬고 인도인들도 그랬고 몽고인들도 그랬다. 

인류역사의 발전은 항상 인간성을 간직하고 사실에 밝은 순수한 민족들에게서 나타났던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사람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 종교의 영적 현상이며 
종교는 그만큼 세상에서 위험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말을 하면 종교계의 거센 반발이 나타날 것은 뻔한 일이지만 
세상의 불행을 보고도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면 
세상 사람들이 계속 불행에 빠지는 것을 보면서도 방관하는 
비양심적이고 죄스러운 일이기에 밝히지 않을 수 없다.

빛이 있으면 그 주위가 밝아지는 것이 당연한 법칙이다.
오늘날 우리사회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종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국민정신이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탐욕스럽고 이기적이며 비양심적으로 변해버린 이유는 
우리사회의 종교가 성자들의 가르침을 바르게 전하지 못하고 진리로서의 생명력을 상실하여 
사람들에게 참된 삶의 길을 제시하지 못하다는 증거인 것이다.

생명의 진실과 삶의 이치를 깨달아야 한다.
세상은 산자에게 주어졌으니 살아있을 때 세상의 주인으로 열심히 노력하여 좋은 원인을 지어야 하는 것이며
죽은 자는 세상과의 인연이 다했으니 후일을 기약하며 모든 것을 잊고 떠나가야 하는 것이다.

세상은 진실과 진리로 이루어진 완전한 법계이기에
올바른 이치와 성실한 노력만이 문제를 해결하여 행복을 가져다준다.

참된 진실과 영원한 진리를 깨닫게 되면 해야 할 일이 많다.
학문과 과학은 새로운 모습과 기준을 찾아야 하고 
종교는 왜곡된 것을 바로 세워 태초부터 존재하는 영원한 진리로 되돌아가야 하며 
환상과 오류 속에서 헤매고 있는 우리들의 삶을 사실과 이치에 근거해 다시 세워야 하는 것이다.

이일은 매우 어렵고 불가능해 보이지만 사실과 바른 이치에 근거한다면 반드시 이룰 수 있다. 
왜냐하면 세상은 하나이고 그 속에 있는 진실도 하나이며
세상을 구하고 완성에 이르는 길도 하나이기 때문이다.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하지 않고 
더 나은 세상과 자기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해 밝고 좋은 원인을 짓는다면
우리나라는 세상에서 가장 정의롭고 부강한 나라가 될 것이며
개인의 영혼은 맑고 강해져 완성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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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영에 감염된 자는 고치기가 매우 힘듭니다. 
현대 의학이 정신병자들을 수용치료 위주로 관리하는 것은 그만큼 병의 원인을 밝혀 치유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신병은 다른 의식이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 의식이 몸을 지배하기를 강하게 바라고 있어 그 의지를 꺽을 길이 마땅치 않습니다. 

퇴마사가 어떤 능력이 있는지 몰라도 무당과 같은 영매가 대부분입니다. 
소설같은 데서 보면 퇴마사가 맑고 강한 힘을 가지고 귀신을 잘 쫒아내는데 
정상적인 인간의 의식으로는 영을 볼 수 없으며 
영을 볼 수 있는 자는 영이 든 자이거나 극히 소수의 깨달음을 얻은 자이다. 

그러나 현실 속에 깨달음을 얻은 자가 거의 없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퇴마사는 종교단체 같은 곳에서 강한 영적 힘을 얻은 영매가 대부분입니다. 

그들은 강한 영을 이용하여 사람의 몸에 들어온 약한 영을 위협하거나 
설득하여 쫒아냅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상징물을 이용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칼이나 종교의 부적같은 것입니다.
그들은 칼이나 위협적인 상징물로 정신병자를 마치 죽일 듯이 위협하면 
귀신들은 그것이 진짜인 줄 알고 착각하여 도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효과가 그리 큰 것이 아니니 
이것이 가짜인 줄 알면 영들은 그러한 술수에 속아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귀신을 쫒아낸다고 안수기도를 하다 사람을 때려 죽이는 사고를 치는 이유도 
이러한 수법을 귀신들이 알아차려 효과를 거두지 못하기 때문에 무리를 하다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설혹 효과를 보더라도 더 큰 귀신에 매이게 되니 환영할 바가 못됩니다.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이 직접 바른 법을 배우고 깨우치는 것입니다. 

생사의 이치를 알아야 귀신에게 휘둘리지 않으며 그들을 내보낼 수 있습니다. 
올바른 생명의 이치를 알면 나의 육체와 정신을 강하고 맑게 만들 수 있고 
내 힘이 강해지면 유혼은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못하는 것입니다. 

진리와 완성으로 나아가는 올바른 생명력을 거부할 것은 
이우주에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들에게 생사의 이치를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영이 되어 세상에 떠도는 것은 한과 집착 때문이며 
결국 자신을 망치는 길임을 깨닫고 그들을 떠나가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면의 영들에게 같이 노력하여 올바른 생명의 길을 찾자고 설득하고 
그들의 한과 집착을 풀어주기 위해 적극 도와주겠다고 설득해야 합니다. 

바른 이치에 근거해 정도의 길을 간다면 
영적 감염은 저절로 사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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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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