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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기

4. 수행의 한계

gincil 2013. 11. 6. 10:29

1989년 *월 *일 (기와 명상의 한계)



화두가 익으니 이제 화두를 잡기만 하면 바로 마음이 드러나고 신실 속의 아한카라의 빛이 바로 드러난다. 

삼전이 열리고 대주천이 일어난다. 그러나 마음은 열리지 않는다. 

아무리 명상이 깊어진다고 한들 눈이 열리지 않고 마음속에 깊이 스며든 숙업을 지우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부처님이 요가수행의 헛됨을 한탄하며 보리수 나무아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앉았던 일을 이제 이해할 만 하다.




1989년 *월 *일 (숙업의 문제)



더 이상 구할 것이 없는 줄 알았는데 가족일과 직장문제가 나타나니 명상이 되지 못했다. 

아직 숙업과 감정의 찌꺼기를 털어 버리지 못했는데 어찌 항상 맑은 반야의 의식 속에 머물 수 있겠는가? 

해탈은 고행이나 수행으로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가득 채우는 공덕행이 있어야 완전한 마음을 얻는다는 부처님의 말씀이 자꾸 떠오른다.




1989년 *월 *일 (마음과 지혜의 완성)



화엄학 시간에 '사사무애 법계설(事事無碍 法界說)'에 의지해 환상의 해탈을 주장하는 선승들의 허구에 대해 지적했다.

오늘날 선승들은 세상을 환이라 보고 그 속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이 법성의 표현인데 걸릴 것이 없다고 논리만 깨쳐 환희를 부르짖고 법안이 열렸다는 환상에 젖는다.



그러나 깨달음과 법안은 완전한 심해탈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마음속에 오욕이 남아 있어 인연에 따라 먼지가 일어나는 사람은 그 마음이 세상을 비춰보지 못한다.



해탈지심이란 그 마음이 완전히 정화되어 일어날 먼지조차 없기 때문에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항상 마음이 깨끗하여 반야지심에 머물어 세상을 비춰보는 상태를 말한다.



그럼에도 오늘날에는 마음에 먼지가 일어나는 사람들이 머리만 깨쳐 해탈했다고 주장하는 자가 대부분이다.

분명한 사실은 마음이 완전히 정화되어 해탈에 이른 자는 지혜가 온다는 사실이다. 즉 심해탈(心解脫)과 혜해탈(慧解脫)은 둘이 아니요 하나인 것이다.




1989년 *월 *일 (조사선의 한계)



현재 조사선(祖師禪 육조이후 부처님의 如來禪과 구분하여 부르는 선가의 수행법)의 깨달음의 문제는 법계를 공한 허공으로 보고 걸리지 않는 자유를 함부로 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깨달음의 실체를 모르는 자가 혼자만의 환상에 젖어 광기를 부리는 것에 불과하다. 그는 생명의 종자인 마음을 버리고 진리마저 외면한 것이다.



관념화된 허위의 평안 속에서 생생하게 움직이는 세상의 고통과 불행을 외면한 자는 양심과 진실이 없는 자이다. 이러한 자는 부처의 정법을 간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비법의 길을 간 자이다.



진정한 깨달음을 얻었다면 마음의 해탈은 물론 세상을 구하는 영원한 진리의 빛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1990년 *월 *일 (혼자만의 깨달음)



나는 한때 모든 것이 사라지고 맑은 마음에 세상이 모두 비치는 체험 속에서 기쁨에 들떠 오도송(悟道頌 깨달음의 시)을 불렀다. 그리고 그 체험이 영원한 완성의 경지로 나를 인도해 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깊고 달콤했지만 그 환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선정 속에 들어가 있을 때는 명경과 같이 맑은 마음속에 모든 것이 거울처럼 비쳐왔지만 다시 세상에 나아가 활동할 때면 갖가지 끈적끈적한 인연 속에서 집착과 욕망은 울렁거렸고 나의 의식은 다시 흐릿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비록 최고의 경지에 이르는 체험을 했다고 자부심을 가졌으나 나 자신을 돌아다보면 아직 나의 깊은 곳에 자리잡은 에고는 사라지지 않고 있었으며 과거의 다른 나를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가운데 세월은 무심히 흘러 3년이라는 세월을 혼자만의 열락 속에서 마음을 태우고 있었다.




1990년 *월 *일 (허망한 시간들)



나는 점차 홀로 앉아있는 시간이 허망하게 느껴지고 부처님의 일화가 사실일 것이라는 판단이 들기 시작했다.



선정삼매에 빠지는 무아지경은 진정한 반야의 체험이 아니었고 진정한 무를 체험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점차 명백해지기 시작했다. 선정으로 『무』라는 화두를 깨치기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1990년 *월 *일 (부처의 진실)



나는 부처님의 말씀이 사실임을 깨달았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고자 아무도 따라올 수 없는 고행을 했으며 두 요가스승을 만나 그들보다 앞선 최고의 경지에 올랐지만 마음을 해탈하여 절대적인 평안에 이를 수가 없었다.



저잣거리에 나가 세상의 번잡한 일들과 바람결에 들려오는 가족들의 소식을 들을 때면 다시 마음 속에 가라앉아 있던 집착과 애욕의 물결이 출렁거렸다.



당신이 깨달음을 얻고 나서 그 실상을 비춰보니 당신의 깨달음은 현생의 고행이나 명상에 의해 온 것이 아니라 수많은 생에 걸쳐 쌓아온 공덕이 세상을 가득 채웠기에 그로 인해 비로소 이 생에서 깨달음을 얻으신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기존의 고행이나 수행보다 바르게 알고 바르게 행하여 좋은 원인을 행하라는 생활 속의 팔정도(八正道 부처님이 밝히신 8가지 바른 삶의 길)를 밝히신 것이었다. 나는 홀로 삼매에 들어있는 시간들이 점차 허망하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1990년 *월 *일 (공덕행)



깨달음은 모든 사사로움을 버리고 더 이상 구할 것이 없는 맑음을 증득한 상태이다. 즉 그 영혼이 모든 집착과 욕망에서 벗어나 걸림이 없는 대자유를 얻은 것을 말한다.



깨달음은 걸리지 않은 순수의식이다. 순수의식은 반야에서 일어나 모든 생명을 낳고, 생명은 다시 완성되어 순수의식으로 돌아가면서 완전한 불성의 영원한 순환이 계속된다.



이것이 인간의 존재이유이며 본질이다. 이러한 인간의 존재목적인 해탈은 우주의 뜻과 인과의 이치와 인간의 공덕이 무르익어야만 이루어지는 우주의 열매인 것이니 욕심으로 구하려고 해서는 오히려 화를 당하게 된다.



반야지심은 논리로서 말하는 공이 아니요, 마음으로 체득하여 이루는 실제의 경지이니 오직 생생한 삶을 통하여서만 증득할 수 있다.



그래서 부처님도 갖가지 고행과 수행으로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오직 세상을 가득 채울만한 밝은 공덕이 있어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선정이란 몸과 마음을 지키고 그 정체를 밝히는데 쓰는 것이며 마음을 닦아 결실을 이루는 것은 오직 공덕행 만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1990년 *월 *일 (현실의 안타까움)



나의 수행에 관계없이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이웃이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다. 세상을 구하지 못한다면 신선이 되어 무얼 하겠는가? 과연 신선이 된다고 한들 세상을 구하는 진리를 밝힐 수 있는 것인가? 의문이 든다.




1990년 *월 *일 (선도의 한계)



가만히 생각하면 여태껏 나는 남의 공부만을 했다. 무조건 앉아 내단을 지켜본들 깨달음은 다가오지 않고 나 혼자만의 지락으로 그친다.



내가 수행을 하는 이유는 몸의 유익을 구함이 아니라 세상을 밝힐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함인데 나의 길은 시간낭비 이외에는 다름이 아니다.



부처님이 명상의 한계에 대해 분명히 밝혔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홀로 앉아 '이뭣고?'로 시간만 까먹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단전호흡도 마찬가지이다. 단전호흡은 연정화기(練精化氣), 연기화신(練氣化神), 연신환허(鍊神還虛), 연허합도(練虛合道)의 단계를 거친다. 기와 신을 다스리고 단을 포태하여 여기에 의식을 실어 불로장생의 신선체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의식을 단에 실어 신선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 의식이 해탈을 하지 못했다면 그는 아무리 영생을 얻었다 하더라도 미혹한 중생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해탈을 위해서는 마음을 깨치는 올바른 삶의 길이 필요한데 그렇다면 그 길은 단을 만드는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른 삶에 있는 것이다.



이제 방황을 끝내고 수행에서 벗어나 삶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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