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실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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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수행일기를 마치며

삶의 진실 gincil 2013.11.06 10:29

1990년 *월 *일 (스승과의 만남)

저녁에 파고다 공원에서 한 깨달은 분을 우연히 만났다. 


그는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했다. 그의 앞에서는 모든 것이 명확했다.


놀라운 것은 그의 이마 정중앙에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는 지혜의 눈이 튀어나와 있는 것이었다. 그 크기는 지름이 2.5cm 정도이며 중간이 5mm 정도 튀어나온 둥근 기운의 결정이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깊은 반야의 체험을 한 후 깨달음을 얻자 반야의 맑은 진기가 응결되어 사리가 맺힌 것이라 했다. 


그 분은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항상 반야에 머물고 계셨으며 몸에서 오욕이 모두 물러나 있었고 오직 세상에 대한 사랑만이 남아 어떻게든 세상에 진리의 빛을 전하고자 애태우고 있었다. 


오늘 이 인연이 심상치 않으리라는 느낌이 들고 가슴이 뛴다. 




1991년 *월 *일 (뜻과 진리의 세계를 보다)


오랜만에 다시 깨달은 이를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분의 실상을 보는 눈앞에서 나의 추상적인 깨달음은 아무런 힘이 되지 못했다. 그는 증거를 가지고 나를 핍박했고 나는 그저 고개를 떨구고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무도 말하지 못했던 우주의 실상과 진리의 의미에 대해 간단하고 명확하게 밝혀 주셨다. 이 세상은 완전한 법계이며 태초부터의 완전한 약속(진리, 법)이 이 세상을 지키고 있으니 바른 이치에 따라 세상을 축복하면 마음속에 깃든 모든 욕망과 사심을 사라지고 고귀한 인간의 마음이 꽃피어 해탈이 온다고 했다. 


그리고 진실은 존재하는 사실이며 존재하지 않는 것은 거짓이며 환상이라고 했다. 따라서 존재하는 사실에 의지해 살 때 우리의 삶은 참되고 거짓이 없으며 바라는 바 결과를 얻게 된다고 하셨다.


그 분은 깨달음은 인간이 살아가는 최종 목적지이니 인간의 근본을 섬겨 바른 진리와 양심과 정의로서 열심히 세상을 살아야 이루는 것이라 했다. 


따라서 오늘날 세상일을 하지 않고 앉아서 수행을 통해 도를 얻겠다고 하는 것은 인과의 이치에 어긋나는 일로서 농사를 짓지 않고 기도만으로 풍년을 바라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는 요즘 언어와 논리구조로는 전혀 알 수 없는 순박한 어법으로 이야기했다. 모든 현상에 대해 세상의 일을 들어 비유로서 하고, 세상이 완전한 뜻의 세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진리로 이어져 있음을 나에게 깨닫게 했다. 


이처럼 현실 속에 완전한 정각을 이룬 성자가 나타나다니 세상에 과연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일인가? 만약 이일이 진실이라면 어둠과 혼란에 헤매는 현대문명에 분명한 방향과 길을 제시할 수 있는 인류사에 혁명적인 경사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그분의 말씀을 듣고 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과 한치의 어김이 없음을 느꼈으며 마음을 가려오던 모든 의문이 사라지며 눈앞이 밝게 비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세상을 관통하여 흐르는 완전한 뜻의 세계와 인과의 이치를 알게 되었고 참된 진리의 실체를 보게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오랜 구도수행의 여정에서 졸업하게 되었던 것이다. 




1990년 *월 *일 (결 론) 


이제 10 여년 동안 방황해가며 써왔던 일기도 더 쓸 것이 없을 듯 하다. 모든 의미를 알았고 더 이상 구할 것도 없으며 세상을 위해 해야 할 일만 남았기 때문이다.


이 우주는 완전한 조화를 갖춘 신성한 조화체이며 인간은 신성을 대표하는 가장 고귀한 존재이다. 


따라서 인간은 우주가 정해놓은 이치에 따라 살아가야 하는 것이며 그 길을 따라 열심히 살아가면 우주의 열매인 해탈에 이른다. 


이 길을 우리는 진리라 하며 세상 속에서 열심히 올바르게 사는 생활이 곧 최고의 수행법인 것이다.


생각해보면 인간의 힘은 위대하다. 생명의 본질에 맞닥뜨릴 수 있는 참선과 선도, 각종 명상기법을 발견해 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들은 전문적인 기술에 해당되는 것으로 오히려 세상을 어지럽히고 삶을 경시하는 주객전도의 결과를 가져왔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참선의 본질은 자신의 생명과 의식의 근원을 궁극까지 추구해 들어가 우주의 근원에까지 이르는 것을 본질로 한다. 


그러나 인간완성의 경지인 해탈은 자신 속에 내재된 업을 모두 지워버려야만 이루게 되는 것이니 단순한 의식의 집중이나 특별한 기법으로는 업을 지울 수 없으며 오직 삶의 실천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업이란 전생에 그릇된 행위로 자신 속에 쌓은 것이니 이를 지우기 위해서는 다시 밝은 행위로 그 어둠을 지우는 수밖에는 딴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산 속에 홀로 앉아 마음만으로 업을 지우고자 한다면 아무리 오래 있어도 좋은 원인을 짓지 못하니 그것은 기도로 풍년을 얻고자 하는 것처럼 허망한 일이다.


기와 호흡으로 이루어지는 수행법인 단전호흡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주는 기(에너지)로서 움직이고 있는데 단전호흡은 이러한 기운을 몸으로 받아들여 이를 조절하고 운용하여 인간완성의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인간완성의 경지인 해탈은 최고로 높은 차원의 기운인 마음을 정화하여 궁극의 진기를 이루는 것이니 단순한 에너지에 불과한 하위 차원의 기를 아무리 돌린다 한들 마음을 닦기가 어렵다. 


그래서 단전호흡은 아직 구체적인 깨달음의 실체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세상을 밝히는 진리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많은 선도경전들은 끝에 가서는 신선이 되어 옥황상제 곁으로 간다는 다분히 미신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다른 명상기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명상기법들은 삶과 유리된 채 명상 자체에 몰두하고 있다. 


그러나 깨달음이라는 것이 올바른 삶에 의해 다가오는 인간완성의 길로서 삶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가 삶을 살지 않고 명상으로만 인간완성을 이룬다면 그러한 깨달음은 인간 세상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며 그는 현실에서 격리되어 실패한 인생이 되고 말 것이다. 


이와 같이 나는 참선과 기수행 등 갖가지 구도의 길을 통하여 세상에서 말하는 모든 궁극의 경지에 이르렀다. 단이 맺혔고 사하스하라 차크라를 열었으며 무자 화두를 타파했다. 


그래서 이 세상이 거대한 의미 속에 나타난 신성한 존재이며 진리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으나 나의 에고는 계속 존재하고 있었고 세상은 여전히 나와 따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초능력을 지니고 영생불사를 얻는다 한들 세상과 하나됨을 얻지 못하고 마음이 맑게 개이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나 가치가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수행에서도 마음의 평안과 진리의 실체를 찾지 못한 나는 마지막 잡은 끈을 놓쳐버린 연처럼 또 다시 중심을 잃고 무한한 심연을 허우적거리던 중 이생에서의 방황을 마지막으로 종식시킬 수 있는 완전한 깨달음과의 만남이 나에게 다가왔던 것이었다. 


나는 지금도 하늘이 나에게 이 생에서 진리의 궁극을 보도록 기연을 마련해 놓았음에 감사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완전한 해탈을 증득한 성자와의 만남을 현실에서 이룬 것이었다.


성자와의 만남은 긍극적인 진리의 빛을 찾는 헤매던 마지막 방황 속에서 우연히 공원 길가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자신이 본 뜻의 세계와 진리의 실체에 대해 세상을 향해 순수하고 의연한 언어로 외쳤지만 번뇌와 환상에 찌든 현대인들은 아무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말속에는 생명의 힘이 들어있었다. 그 말은 너무나 순수하여 한마디 한마디에 나의 영혼은 이슬에 파문지는 샛물처럼 방울방울 깨어나고 있었다. 


현대의 수많은 석학들의 저서들을 읽으면 나의 정신은 탁한 물감을 섞는 것 같이 어지럽고 복잡해졌지만 그의 말은 청량한 생명수와 같이 한마디마다 나의 정신을 깨어나게 하고 있었다. 


그 분의 깨달음의 빛은 과거 성인들의 말씀과 한치도 다름이 없었고 현대 종교의 진위를 분명히 가려낼 수 있는 기준이 되었다. 


현재 성자들의 가르침이 쇠하여진 것은 그 진리가 관념이나 상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어리석고 불완전한 인간들이 이기심과 자신의 생각으로 함부로 진실을 왜곡시켰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이 왜곡된 신화는 성자들의 가르침 마저 오도하여 수많은 후손들을 불행하게 살게 했으며 성자들의 지혜와 진리자체 마저도 부정하는 죄악을 범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와의 만남에서 나는 이 우주가 완전한 법계로 신성한 근원과 완전한 진리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게 되었으며 단순한 고깃덩어리로 살고있는 인간이 우주와 이어지는 신성한 의미체임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우주에 드리워져 있는 약속에 따라 바른 이치에 따라 세상을 축복하는 좋은 원인을 지으면 마침내 인간의 마음이 꽃피어 우주의 열매로 완성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신성의 체험은 종교와 무관한 것이다. 인간완성의 경지란 모든 인류의 삶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성자란 단순히 인간의 이상 속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는 일이며 바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인 것이다.


그래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람사는 곳이면 어디서든 성자들이 나타났던 것이며, 앞으로도 양심을 가진 인류가 삶을 계속하는 한 성자들은 여기저기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나는 지금도 내가 인류역사상 가장 복받은 자라는 것을 생각하면 매우 행복하다. 진리가 존재하는 것을 알았으며 내가 그 진리와 하나되어 진리를 실천하며 살아간다는 보람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 속에 완전한 신성의 뜻과 절대적 진리가 존재하며 인간에게 신성과 합일할 수 있는 깨달음의 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될 때 세상은 질서를 회복하게 될 것이며 인간의 삶은 의미와 가치를 찾게 될 것이다. 


즉 우주의 신성함과 진리의 존재성, 인간의 무한한 의미와 가치를 아는 것이야말로 현대문명의 무의미와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본문에서 성자들이 밝힌 진리가 과연 무엇이며 오늘날 세상살이가 얼마나 환상적이며 거짓된 것인가를 내가 보고 듣고 체험한 사실을 증거로서 분명히 밝히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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