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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진실을 찾아서
얼마 전에 어떤 분이 이곳의 가르침이 다른 성자들의 가르침과 거의 같은 소리라고 했다. 지식이 많은 사람일수록 그렇게 보인다. 이러한 일은 과거 스승님이 법을 펴실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느날 어떤 유식한 사람이 찾아와 스승님의 말씀을 한참 듣고 나더니, 하는 말이 “여러번 보았던 영화를 다시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곳의 가르침은 세상 속에 흐르고 있는 살아있는 뜻과 이치를 깨우친다. 그러나 다른 곳의 가르침들은, 성자들의 말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생생한 뜻과 이치가 사라지고 그 이름만 남아있다. 그래서 진실하지 못한 자들이 자신이 알지 못하는 성자들의 말에다가 중생들의 입맛에 맞게 아름다운 말로 치장하고 논리적으로 꾸며 겉으로 보기에는 이곳의 가르침보다 더욱 그럴듯하고 호소력이 있어 ..
그동안 집에서 놀다가 학교 입학해서 천진난만하게 행동하는 것이니 심각할 정도가 아니라면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어른들이 볼 때, 아이가 애어른처럼 모든 것을 기억하고 챙기며 조용히 집중하기를 바라겠지만 사람은 본래 기억이 없이 비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좋습니다. 마음속에 업이 사라지면 마음이 자연과 같아지므로 개인으로서의 기억이 사라지고 어린아이같이 순수한 모습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상이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으므로 홀로 있을 때는 무한한 평안에 들며 세상과 부딪히면, 자연과 같은 맑은 마음에 세상이 있는 그대로 비쳐 그 속에 있는 뜻과 옳고 그름을 바로 깨달아 지혜롭게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아이들의 경우, 업이 사라진 경지가 아니라 업이 숨어있는 상태이므로 겉으로 보기에는..
인간과 생명이 나기 이전의 수백 억 년 전의 일을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창조의 시간에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보거나 아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이것은 성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자들 또한 창조주를 보거나 만난 적은 없으며 수백 억 년 전의 태초의 창조 시간에 어떤 과정을 거쳐 창조가 이루어졌는지 몇쌍의 생명체가 만들어졌는지 세부적으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너무나 신성하고 순수하여 아무도 그와 가까이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창조주의 완전한 뜻과 원력이 있어 앞으로 나타날 이 우주의 모습과 질서를 만들 원인과 질서를 지어 놓았고 창조주의 분신으로 나타난 이 세상은 스스로 그 뜻 속에서 움직여가며 지은대로 받는 법칙 속에서 물질과 생명과 인간과 완전한 법계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입..
공리주의(功利主義, Utilitarianism)는 유럽사회가 종교개혁을 거쳐 근대화되면서, 합리적이고이상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한 도덕적 사회적 행동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나타난 철학사상입니다. 대표적인 주창자는 영국의 경험론자인 벤담으로 그는 영국의 경험적 전통에 따라 오직 사실로 나타난 결과를 중시하여 결과에 따라 선악이 결정되며 법과 제도 또한 결과에 따라 그 유용성이 판단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인권이나 자연권같은 관념적 주장이나 동기가 얼마나 선했느냐 하는 것은 선악의 결정에 중요하지 않으며 오직 결과를 가지고 판단합니다. 따라서 사회 다수가 즐겁고 행복한 결과를 가져오면 그것은 좋은 행동이고 좋은 제도이며, 그러므로 인간의 행동도 다수가 이익이 되는 결과를 가져오도록 행동해야 한다는 윤리적 기준을 ..
이 세상의 주인은 인간입니다. 세상은 인간이 짓는 원인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세상은 과거로부터 물려온 무지와 관습에 의해 스스로 신의 노예가 되어 끌려 다니고 있습니다. 신이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일은 해도, 좋게 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신에게서 벗어나 자신의 의지대로 이치에 따라 사는 것이 가장 좋은 삶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모든 어둠에서 벗어나 완전한 맑음을 이루었을 때 그 영혼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주위를 맴도는 모든 영적 존재들은 인간의 마음을 흐리게 하는 어둠의 요소들입니다. 따라서 신에게서 벗어나는 만큼 인간의 마음은 어둠에서 벗어나 맑아지는 것입니다. 터신도 그러한 영적 어둠에 속합니다. 따라서 인연을 끊고 맑은 정신으로 사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바로..
여기서 나오는 분단생사, 변역생사, 7종생사는 부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부처님은 생생한 현실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보고 매우 쉬운 말로 세상이치와 생명의 길을 있는 그대로 묘사했지 그렇게 현학적이고 관념적인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 말이 나타난 것은 고도로 철학화되고 관념화된 대승불교가 나타나면서 초기 부처님의 원 가르침을 소승이라고 하찮게 보고 자신들의 교리를 대승이라 자화자찬 하면서 화려하고 환상적인 말뿐인 이론을 만든 것입니다. 부처님의 제자로서 부처님보다 더 큰 깨달음을 얻은 자가 없는데 어찌 감히 부처님 법을 하찮은 소승이라고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자는 부처님의 제자가 아니라 부처님법을 파괴하려는 말법의 앞잡이일 뿐입니다. 부처님 이후 부처님과 같이 정각을 얻어 생사를 넘나든 자가 ..
길을 보지 못하니 중생이라 하여 고통의 바다를 맴돈다 하지 않습니까? 중생은 진리의 인연을 만나기 전에는 좋은 자기를 만들기가 매우 힘이 듭니다. 이곳에서 진리의 빛을 만났으니 좋고 나쁜 원인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진리가 희미해진 세상에서 옳고 그름과 좋고 나쁜 기준을 찾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어두운 세상에서는 진실보다 거짓이 더 멋지고 정법보다 말법이 더 위세를 떨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즘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진리’라고 하는 말만 봐도, 기독교, 불교와 같은 종교단체와 심지어 사이비 단체에서도 똑같이 ‘진리’라는 말을 쉽게 사용하지만 그 뜻은 천차만별입니다. 따라서 언제 어디서 누구나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기준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사실과 이치입니다. 사실이란 이 세상이 ..
세상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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