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실을 찾아서
해탈의 욕구와 생명체를 먹는 업 본문
1. 해탈을 하고자하는 마음 또한 욕구가 아닌가 하고 물었습니다.
욕구를 내는 것이 왜 나쁜가요?
욕구가 나쁜 것이라는 견해는 어디서 들었으며 그 견해가 옳다는 판단은 어떻게 얻었나요?
님과 같이 모든 욕구는 부정적이며 선과 악이 모두 욕구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견해입니다. 이러한 견해가 동양사회를 어둠에 빠뜨리고 무기력하게 만든 주범이었습니다.
욕구라고 해서 다 나쁜 것이 아닙니다.
살려고 하고 더 좋은 자기를 만들려고 하고 더 좋은 세상을 원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입니다.
욕구에는 소망과 욕망이 있습니다.
소망은 모든 일을 이치에 맞게 추진하여 바람직한 목적과 좋은 자기를 이루는 것이고,
욕망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헛된 목적을 추구하여 자기를 망치는 것입니다.
소망은 모든 것이 순리에 맞도록 하기 때문에 행할수록 삶이 건전해지고 심신이 무르익지만
욕망은 이치에 맞지 않으므로 집착할수록 거짓이 생기고 마음이 병들어 자신을 망치게 됩니다. 따라서 좋은 뜻을 품고 열심히 노력할 때 인간의 뜻과 소망이 완성되며 인간완성에 이르게 되는 것이며 이치를 모르고 함부로 허황된 욕심을 부리게 되면 파멸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주의 실상과 생명의 길, 인과의 이치를 깨달아
욕망을 소망으로 바꾸고 한을 축복으로 바꾸면
한과 원망과 어둠이 없는 밝고 건강한 세상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소망을 안고 바르게 살아가기 위해 정법과 인연이 있어 참된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주의 실상과 생명의 길을 바로 알고 자연의 이치대로 바르고 열심히 살아 거짓이 없고 부족함이 없으며 모든 일에 걸리지 않고 당당하게 사는 것이 인간의 길이며 인간완성의 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이러한 깨달음이 있으면 삶을 완성으로 이끄는 소망 속에서 살게 되지만
진리의 길에 대한 깨달음이 없으면 길을 몰라 욕망 속에서 살게 되고,
이루지 못할 헛된 꿈을 품고 이치에 어긋난 수단과 방법을 함부로 사용하여
결국 자신과 세상을 망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같은 일이라도 바른 이치대로 열심히 노력하여 좋은 나를 만들고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부자와 대통령이 되겠다는 뜻을 품는 것은 소망이 됩니다.
그러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자와 대통령이 되어
세상을 크게 한번 호령해 보겠다는 것은 욕망이 되어 자신을 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좋은 마음을 내는 것은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가장 소중한 보물입니다.
좋은 마음을 내면 좋은 뜻을 짓고 좋은 행동을 하게 되고 좋은 자기를 만들고 좋은 세상을 만들게 됩니다. 그러니 어찌 욕구라고 무조건 멀리해야 하겠습니까?
지금 그대는 인간완성의 경지인 깨달음마저 욕구의 일종이라고 생각해서 과연 그것을 추구해야 하는가하고 물었습니다.
지금 그대는 모든 욕구는 더러운 것이라는 잘못된 말법에 빠져 그릇된 판단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번 잘못 판단하여 어둠과 인연을 맺게 되면 자신의 삶을 망치고 세상을 망치게 되는 것이니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인간에게는 인간이 가야할 완성의 경지가 있습니다.
이것은 의식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난 인간의 마지막 목적지인 것입니다.
이 길은 더 좋은 자기 즉 맑은 지혜와 용기와 큰 근기와 좋은 운명과 좋은 세상과 이어지기때문에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찾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그대가 말법의 관념에 사로잡혀 깨달음의 길을 욕망의 일종이라 하여 멀리한다면 그대의 삶은 어둠과 불행의 길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과 해탈의 본질을 공으로 보는 자들이 흔히 하는 말이, 선업도 업이고 악업도 업이니 해탈에 이르기 위해서는 선업도 악업도 짓지 않아야 모든 윤회의 고리에서도 벗어나 후생을 받지 않고 해탈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사실이 아니며 관념으로 만들어진 말법의 생각입니다.
인간은 모든 업을 버려 해탈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악업을 버리고 선업을 지어야 해탈에 이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선업은 업이 아니라 업을 지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악업이 인간이 지니고 나온 불성을 흐리는 흔적이라 한다면
선업은 불성을 맑게 하는 반대되는 흔적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악업을 지으면 업이 두터워지지만 선업을 지으면 업이 사라지게 됩니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악업이지만 정직하게 사는 것은 선업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직하게 살면 마음이 맑아지고 어둠이 없어서
모든 일을 당당하고 밝고 지혜롭게 헤쳐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치는 아함경 원인경에 잘 나타나 있는데, 어떤 업은 다른 업을 일어나게 하고 어떤 업은 다른 업을 소멸하게 한다는 이치에 대한 분명한 언급이 있습니다.
“탐욕 없음과 성냄 없음과 어리석음이 없게 되면 그로부터 일어난 업은 유익한 것이고, 그 업은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며, 그 업은 다른 업을 소멸하게 하고, 그 업은 다른 업을 일어나게 하지 않는다.”
이러한 실상 속에 있는 이치를 모르니
관념에 빠진 자들이 인간의 올바른 이성과 선업마저 버리라고 인간을 오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실상의 이치가 있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의 공통된 가르침인 칠불통계에서도 “모든 악을 짓지 말고 (諸惡莫作) 모든 선을 힘써 행하여 (衆善奉行)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이 하라 (自淨其意)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是諸佛敎)” 라고 선을 권하고 악을 금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선과 실천의 길을 이곳에서 지속적으로 전하고 있는데
그대는 계속 선과 악의 분별을 외면하고 현실을 멀리하는 무기력과 도피의 길을 가고자 하고 있으니 그것이 안타까운 것입니다.
2. 왜 다른 생명을 해치고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그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정확하게 표현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대는 생각이 너무 많습니다. 생명을 먹지 않으면 먹을 게 없고, 먹지 않으면 죽게 되는데, 먹는 이유를 알아야 먹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대는 어찌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먹는 것 마저 이유를 알아야 한다면 왜 화장실에 가야 하는지, 왜 잠을 자야 하는지, 왜 숨을 쉬어야 하는지, 왜 상대를 만나야 하는지, 왜 적과 맞서야 하는지, 왜 위험을 피해야 하는지 결론을 내리기 전에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겠군요.
식물도 생명이며 죽음에 두려움을 느끼는 존재라서
생명 자체를 해치며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식물이나 동물이 잡아 먹힐때 또는 살해 당할때
한을 갖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먹는 것을 정당화시키는 것이 어처구니 없고
그러한 현상이 일반적이라는 이유로 자연스럽다고 표현하는 것은 얼버무린다는 느낌밖에 안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님의 이러한 생각은 현실을 무시한 관념적 사고방식입니다.
모든 생명이 살려고 하는 생명의 의지도 있지만
또 서로 자신을 주어 하나로 조화되어 순환하는 이치도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서로 생명력을 주고 받으며 하나의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나무와 풀은 살려고 태어났지만 초식동물에 먹힘으로써 초원의 질서를 유지하고 초식동물은 육식동물에 먹힘으로써 생태계의 균형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만약 그대처럼 모든 생명체가 살려고 하는 것이 불쌍해 모든 것을 그대로 둔다면
생태계의 질서는 일그러져 모든 생명이 한꺼번에 사라지게 됩니다.
어찌 실상의 이치를 무시하고 자신의 생각으로 세상의 조화를 왜곡하려 합니까?
이처럼 모든 생명체가 살려고 하는 의지가 있지만 서로 하나가 되어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먹고 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도 완성되기 이전에는 동물의 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다른 동식물을 먹고 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동식물을 먹더라도 그 의식이 미약해 원한을 맺지 않으므로
먹어도 큰 문제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식이 강한 동물일수록 한이 커지기 때문에
그 의식을 정화시켜 갈수록 의식이 큰 동물은 멀리하고 의식이 미약한 식물을 섭취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동물을 함부로 살생하면 살업을 지어 마음이 어두워지고 운명이 나빠지기 때문에 자신을 수행코자 하는 자는 다른 동물을 해치는 업을 짓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생명체는 존재와 정화의 원리 속에 있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 다른 생명체를 먹어야 하고
먹되 탁한 것은 먹지 않고 가능한 깨끗한 것을 먹음으로써 완성을 지향해 나가는 것입니다.
3. 모든 것을 인간위주로 생각하는 것이 과연 세상을 위한 것인지? 인간을 위한 것인지? 물었습니다.
세상은 하나의 질서 속에 조화체로 돌고 있고 인간은 그 속에서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며
더 좋은 자기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어찌 인간만을 위한 과정이라 하겠습니까?
인간이 동물적 탐욕에 휩싸여 세상과 환경을 약탈적으로 해치고 살아간다면
결국 자신들과 세상을 망치게 될 것이며
인간이 자연의 질서 속에서 생명의 이치와 영혼의 정화를 실천한다면
좋은 세상과 인간완성의 경지를 얻을 것이니
이것은 인간과 세상 모두를 위하는 길인 것입니다.
---[질문]---
>1. 해탈을 하고자하는 마음
>
>또는 세상을 위한 마음은 형태가 다른 "욕구"가 아닙니까?
> 세상에 이롭고 선해보이기 때문에 욕구라고 표현하기를 꺼리는 겁니까?
>만일 그 마음을 욕구라 할수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
>2. 음식을 먹는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정확하게 표현해 주세요.
>
>자연스럽다는 표현이 얼버무린다는 느낌밖에 안듭니다.
>단순히 식물이나 동물이 잡아먹힐때 또는 살해당할때
>한을 갖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정당화 시킨다는 것도 어처구니 업고
>
>제가 이 질문하는 이유는 생물은 고통을 느끼고 죽기를 원하지 않기때문입니다.
>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물을 환경으로 본다는 사람도 있었는데
>도대체 근거가 뭡니까?
>하다못해 개를 예로 들어도 오죽하면 개만도 못한인간이라는 욕이 나왔겠습니까?
>
>3. 세상을 위한 겁니까? 인간을 위한겁니까?
>
> 만약 허해구님이 세상을 위한 것이라면
> 한가지만 예를 들어 동물이나 자연을 위한 시급한 문제 한가지와
> 생각하시는 해결책 하나를 말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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