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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룬궁과 종교의 영적 비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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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룬궁과 종교의 영적 비밀

삶의 진실 gincil 2017.11.15 01:09

파룬궁은 몸에 외부의 기운을 받아 들여 그 기운을 돌리는 수행법입니다.
이 기운이 몸을 도는 것을 그곳에서는 법을 돌린다고 하여 법륜(파룬)이라고 합니다. 불교에서 법의 바퀴를 돌린다고 하는 법륜을 따온 말입니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는 알지 못하는 일이지만 파룬궁의 기운에는 어떤 특정한 의식이 깃들어 있습니다. 즉 그곳에서 돌고 있는 기운은 순수한 기운이 아니라 영적 의식이 깃들어 있는 기운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의식을 띤 기운은 특정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사람의 몸속에 들어오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사람의 몸에 펼쳐 냅니다. 그래서 파룬공에 들어간 사람들은 자신 속에 돌고 있는 기운이 급속한 변화를 일으키면서 무언가 이룰 것 같은 환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더욱 깊이 몰입하며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신기를 받아들여 아무리 돌린다고 한들 깨달음을 얻거나 신선이 되는 일은 없습니다. 인간 완성의 경지인 깨달음은 그 무지를 깨치고 업을 정화하여 완전한 정신을 얻는 것으로, 진리의 인연을 만나 세상을 바로 보고 사실과 이치에 맞는 좋은 원인을 지음으로써 좋은 자기를 이루고 인간완성에 이르는 것이지, 아무런 체험이나 깨달음이 없이 가만히 앉아 기만 돌리는 기술적인 방법으로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무지한 상태에서 계속 신기를 돌리다 보면, 나중에는 그 신기가 몸과 의식을 지배하여 자기를 상실하고 삶을 잃은 채 평생 기운에 종속되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행에 빠진 자들은 현실을 버리고 수행을 한다고 평생을 죽은 송장처럼 사는 것입니다. 삶을 버린 인간은 인간으로서 살아갈 의미와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나의 주장에 대해 반발을 하겠지만, 만약 그것이 진정 좋은 것이면 그러한 수행의 결과로 활력있고 지혜롭고 세상을 바로 보는 능력이 나타나야 합니다. 세상에 좋은 결과가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심신이 무너지고 현실에서 멀어지며 삶에 무능해진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실 속에 나타나는 결과를 보고 그 진실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 수행에 대해서는 진실찾기 게시판에 올려져 있는 나의 수행기를 남편에게 권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속에는 내가 후인들을 위하여 밝혀놓았던 기 수행의 한계와 진정한 수행의 방향이 잘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풀기 위해 교회에 가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수천 년간의 유지되어온 전통있는 종교에 절대적 진리나 신성함이 가득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창조주와 같은 절대적 신의 힘을 빌어 잡신이나 사사로운 정신적 문제를 해결하고 싶겠지요. 그런데 그대가 그렇게 망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현 종교 속에 말로만 듣던 절대적 신성함과 동시에 불합리하고 어두운 영적 그림자가 비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날 종교가 그렇게 비치는 이유를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종교는 처음 세상을 완전하게 보신 성자들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하여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종교는 성자들의 원래 가르침과는 달리 크게 오염되고 왜곡되어, 그 가르침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세상을 무지와 불행 속으로 몰아넣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종교의 시작부터 첫 단추가 잘못 꿰어졌고 영적 오염이 일어나면서 종교가 번성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처음 성자들이 진리를 전할 때는 어두운 세상과 무지한 중생들은 성자들의 가르침을 외면했으며 오히려 진리를 모독했습니다. 그 결과 모든 성자들은 비참하게 살다가 죽임을 당하거나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진리가 이 세상에 올바르게 자리 잡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미약하게 시작된 진리는 소수의 제자들에 의해 명맥만 유지되다가 영적 감염이 일어나면서 급속하게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기독교의 경우 기존 유대교를 믿던 신자들이 죽어 영혼이 되어 보니, 과거 신앙의 가르침상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했는데 죽어서 아무리 기다려도 신이 와서 구원해 주는 기미가 없고 끝없는 헤매임 속에 지옥의 고통이 밀려오다 보니 자신을 달래줄 산자의 몸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지 않는 신 대신 자신을 성령으로 위장하여 신을 간절하게 찾는 기독교인들의 몸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러한 감염은 사도 바울로부터 시작되었으니, 그는 예수교인들을 잡으러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서 영적 저주를 받아 눈이 멀고, 그후 예수님의 영을 만나 기독교를 영접하고 믿음을 중시하는 교리를 펼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은 베드로와 같은 직전 제자들은 크게 교세를 일으키지 못한 반면에, 예수님과 일면식이 없고 아무런 가르침도 받지 못한 채 영적으로만 예수를 만난 바울은 기독교를 크게 일으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갈등 때문에 처음 바울은 예수님의 직계 제자들에게 배척당하여 죽임을 당할 뻔도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기독교의 가르침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당시 유대인들이 로마의 지배 아래서 서러운 노예 생활을 하면서도 하느님의 참뜻을 실천하지 않고 겉으로 율법을 지키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온갖 탐욕과 위선을 행하여 유대 사회를 어둡고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을 ‘독사의 자식’이라 꾸짖으며, 진정한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인간의 도리를 행하지 않고 맹목적인 우상과 믿음만 강조하는 유대교를 벗어나 진리에 따른 참된 삶을 살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는,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로서 죽음으로부터 부활했음을 믿고 예수님을 자신의 주로 영접하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는 합니다. 그 이유는 현재의 기독교가 사도 바울의 믿음 위주의 가르침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처음 만난 것은 영적 계시를 통해 만났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참된 삶의 길을 전하는 진리의 스승이 아니라 그가 전통적으로 섬겨온 유대교의 여호와와 같이 영적 숭배와 믿음의 대상인 신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이 가르친 진리에 관한 말씀이나 율법보다는 과거 유대교에서 익혔던 신앙처럼 성령에 의한 구원을 강조하고 손쉬운 구원의 교리인 믿음을 통한 대속론(代贖論)을 주장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의 핵심교리가 되는데, 이러한 그의 견해를 가장 잘 대변하고 있는 것이 「로마서」에 나오는 다음 구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율법(律法)의 행위 없이 오직 믿음으로서만이 의롭게 된다고 단정하노라.” 이로써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진리의 종교가 아니라 믿음이 주가 되는 영적 종교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세상에는 기독교와 이슬람교, 그리고 요즘 생겨나는 신흥종교의 교인들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그 속에 영적 감염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자기 삶을 살기도 바쁜데, 그렇게 자기 일을 내팽개치고 종교에 빠져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멀쩡한 정신을 가지고서는 길거리에 나가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소리치며 계속 돌아다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광적인 행동은 자신 속에 자기가 아닌 다른 의식이 들어와 자기를 조종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 속에 다른 의식이 들어와 자기의식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종교에 빠져드는 것이며 그러한 비정상적인 종교 활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사람이 비정상적으로 많이 모이는 곳에는 반드시 영들이 활개치고 있으며 그곳에 가면 영에 감염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곳에 특별한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섬기면 복을 받는다는 단순한 교리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은 교리가 좋아서가 아니라 그 속에 인간의 정신을 감염시키는 영적 현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곳에 안가면 내면의 영이 사람을 불안하게 하고 일이 안 풀리게 만들고, 그곳에 가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기분이 좋아지니 마약에 중독된 듯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교회를 열심히 다닌다고 해서 세상일이 풀리는 경우는 없습니다. 진리에 의해 이루어지는 세상에서 모든 일은 사실을 바탕으로 인간이 짓는 원인에 따라 나타나는 것이지 신을 믿고 기도를 한다고 해서 좋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을 밝히고 이치를 가르치지 않는 가르침은 인간 생활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기독교가 세상에서 가장 많은 신자가 있는 것으로 봐서 최고의 진리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신자를 아무리 많이 확보한다고 그것이 세상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들은 교회에 나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준다고 하지만 신자들이 구원을 받았는지 확인할 길이 없으며, 마음의 평안을 준다고 하지만 그것은 사실과 무관한 영적 감염에 의한 마취현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세상에 가장 큰 사랑을 행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들은 사랑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는데 어떻게 세상에 사랑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많은 신자를 자랑하지만 그것은 결국 인류 대부분을 무지와 우상 속에 집어넣어 세상의 주인인 인류를 죽은 자의 노예로 만들며 세상을 어둠과 불행 속에 빠뜨릴 뿐입니다. 그래서 중세에 기독교가 세상을 무지와 우상 속에 집어넣어 세상을 어둡고 불행하게 만들자, 인간의 밝은 정신이 그것을 참지 못해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과학에 기초한 근대문명이 일어난 것입니다.
 
지금 그대는 바로 이러한 기독교의 신의 힘에 의지하여 남편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기독교에 나타나고 있는 성령은 어떤 신인가를 알아보겠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자신들 속에 나타나는 성령이 창조주 하느님의 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거룩하고 신성한 창조주 하느님은 탁한 이 세상에 함부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창조주 하느님은 이 우주와 신과 생명을 모두 포괄하고 넘어서는 절대적이고 신성한 존재로 이 세상에 함부로 나타나 기이한 이적을 행하지 않으며 자신이 지어놓은 완전한 뜻과 이치에 따라 이 세상을 공정하게 운영합니다. 따라서 지금 이 세상에 나타나 이치에 맞지 않게 사사로운 청을 들어주는 신들은 창조주 하느님이 아니라 모두 낮은 차원의 떠도는 신(유혼)에 불과합니다.
 
즉 지은대로 받는 완전한 진리를 어기고 인간 세상에 나타나 기이하고 편협한 영적 현상을 일으키는 신들은, 삶에 대한 원한과 집착에 의해 세상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존재, 다시 말하면 살아생전 잘못된 생을 보냈던 사람들의 영혼인 것입니다.
 
만약 성령이 진정한 하느님의 영이라면 하나의 뜻만 세워도 달에 생명이 살게 하고 온 세상에 오곡이 넘치고 좋은 환경이 계속될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허약한 자에게 남몰래 음침하게 나타나 이상한 영적 현상을 일으키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의 알 수 없는 신을 영접하여 남편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오히려 여우를 쫒으려다 범을 맞는 화근을 불러들이게 될 것입니다.
 
남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실의 문제를 사실대로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세상은 사실과 이치에 의해 움직입니다.
세상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바로 보고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여 사실과 이치에 따라 올바른 원인을 지을 때 문제가 해결되며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다른 종교나 신에 의지하려 하지 말고 진리에 의지하려 해야 합니다.
 
지금 남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문제, 영적 감염 문제, 깨달음의 문제, 신의 가피력과 같은 문제를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문제를 정확히 알지 않고서는 문제를 정확히 진단할 수 없고 해결책을 마련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 실상과 이치를 깨닫고 싶으면 이곳에서 관련 글을 부지런히 읽고 사실과 이치를 깨치고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혼자서는 아무리 애태워도 어려울 것이며 남편이 깨어나 스스로 자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가능할 것입니다.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불교의 경우도 초기 정법 500년 동안에는 그리 불교가 성하지 않았습니다. 중생들의 탁한 마음이 진리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상법이 시작되고 나서 불교가 점점 성하기 시작하여 말법이 나타나자 불교는 극성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대승불교가 시작되어 각종 위경이 나타나고 힌두교 신의 변형인 보살들이 나타나자 불교는 크게 성하였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신앙을 통해 영적 감염이 일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눈앞에 있는 모든 일을 누구나 알아보기 쉽게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눈이 열린 자이며 깨달은 자인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불교의 가르침은 매우 어려우며 한소식 했다는 사람들의 가르침은 거의 이해가 불가능한 정도입니다.
 
그것은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며 진리가 아닙니다. 세상의 진리는 눈앞에 펼쳐진 일들이 있게 되는 이치로서 매우 쉽습니다. 따라서 세상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게 이상한 문자나 관념으로 지어진 말들은 진리가 아니며 생각으로 만들어낸 가공적인 말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불교 속에는 초기 부처님의 실상법과 인과법이 사라지고 공법과 주문이 성행하면서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공덕행 대신 영적인 명상 수행에 치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깨달음은 자신의 정신을 완성하는 것으로 진리를 배우고 깨쳐 자신을 밝히고 좋은 원인을 짓는데서 오는 것이지 가만히 앉아 생각으로 모든 것을 비우는 명상으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만히 앉아 명상으로 깨닫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무 것도 배우지 않았는데 가만히 앉아있다가 갑자기 무언가 새로운 것을 ‘펑’ 안다는 것은 신을 받는 것 이외에는 다른 일이 없는 것입니다. 신을 받아 신이 갖고 있던 지식을 자신이 대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불교 수행법인 주문이나 보살 신앙, 참선 등을 통해 영적 접촉이 일반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종교의 실체로서 그동안 이 세상은 종교 속에 숨은 거짓된 신들이 살아있는 생명의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인간 세상을 속여 온 어둠의 세월이었습니다. 이제 하나의 정보가 순식간에 세상에 퍼지는 인터넷시대를 맞이하여 종교 속에 숨겨졌던 비밀을 밝히니, 그동안 세상을 어둡고 불행하게 해온 종교의 거짓과 위선을 널리 밝혀 더 이상 살아있는 세상의 주체인 인간이 죽은 신에게 속는 일들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며 성자들이 본래 전하고자 했던 참된 진실과 진리를 널리 전해야 할 것입니다.


--[질문]-----

남편이 예전부터 호흡이니 기수련이니 하는것에 대하여 관심이 많아 결혼하고 보니 그쪽 책들이 많았습니다.
(파룬궁을 하면서 불교경전 일부는 버리더군요)
그래서 결혼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오행생식을 하고 있습니다.(20년이 넘어요)
그러다 올해초 직장 동호회에서 파룬궁을 접하고 정신없이 빠져들더니 몸과 마음이 갈수록 피폐해져 가고 있습니다.

남편의 친구에게 도움을 구했더니 위의 말을 하면서 제게 경전을 같이 공부해보라고 하네요
또는 영적인 보호가 필요해 보이니 교회에 나가보라고도 하시구요

여기서 질문은
전혀 준비 안된 제가 그 경전공부를 하면 저도 거기에 빠지게 될까요? (솔직히 무섭습니다)
또한 솔직히 교회를 좋아하지 않는데 지금은 정말 교회라도 데려가고 싶은 심정입니다.
교회에 데리고 가면 좀 괜찮아질까요?

남편은 기독교집안이지만 어렸을때부터 교회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답니다.

지금은 제가 뭔가를 해야할거 같은데 도대체 어떻게 뭘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제발 좀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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