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실을 찾아서

신본주의의 정체, 정신병의 실체 본문

☆ 진실의 근원

신본주의의 정체, 정신병의 실체

삶의 진실 gincil 2017.11.15 01:11

[ 신본주의의 정체 ]


진리의 길을 확신하는 운영자에게 깊은 마음의 감명을 받고 동시에 믿어도 될까 하는 두려움과, 사람이 성자다운 지혜를 갖는다는 게 뭔가 잘못된 게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고 했습니다.
 
님의 말은 인간은 신성을 두려워해야지,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는 신본주의를 대변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모든 성자들은 세상의 주인은 인간으로, 인간의 행동을 통해 세상이 움직인다고 했지, 신에 의해 세상이 움직인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자들은 진리로 이루어지고 있는 세상의 일을 밝히고 인간에게 올바른 삶의 길을 가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 예수님과 부처님과 같은 성자들이 태어났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그분들은 사실과 일치한 진리를 밝혀 어둠에 묻혀있는 중생들에게 축복된 삶을 살도록 노력했습니다.
 
만약 그러한 성자들의 가르침을 완전히 밝히고 행한다면, 어찌 성자다운 지혜를 갖는 게 불가능하겠습니까? 성자들의 지혜를 밝혀 실천하는 것은 성자의 지혜에 가까이 가는 길이며, 그 가르침을 행하여 완전해지면 성자의 지혜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모든 성자들이 인간에게 바라고 원했던 일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인간이 신의 지혜를 알거나 신의 경지에 도달하려고 하면, 그것은 교만한 일이며 불경스러운 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주인은 신이니 신에게 무조건 복종하고 의지할 때 신의 무한한 은총과 계시가 와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신을 세상의 중심으로 놓고 모든 일을 신이 주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신본주의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신본주의가 사실일까요?
아닙니다! 신본주의는 사실과 이치에 어긋나는 거짓된 가르침입니다.
이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현실 속에서, 신의 뜻과 은총에 의해서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말이 거짓이고 환상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일은 신이 아니라 세상의 주체인 인간이 짓는 원인에 따라 움직이며 태초부터 지어져있는 완전한 인과율에 따라 결정됩니다.
이것이 진실이며 진리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깊은 호수에 바윗덩이를 던져놓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호수 주위를 돌면서 합장하고 ‘바위여, 떠올라라! 떠올라 뭍으로 올라오라!’고 기도한다고 해서, 그 바위가 사람들의 합장과 기도력에 의해 떠오르겠는가? 그런 일은 세상에 없다.
마찬가지로 많은 악행을 저지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기도하고 합장한다고 해서 죽은 뒤 천상에 날 도리가 없다. 그 사람은 몸이 병들고 명이 다한 뒤에는 악취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세상일은 사실과 이치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며 기도나 신의 은총으로 이루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주여 주여 하며 나를 믿지 말고 주의 뜻을 행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만약 기도를 해서 신이 일일이 인간의 사사로운 욕망에 감응해서 도와준다면, 맨날 기도나 주문을 외우는 목사나 스님이나 종교인들이 가꾸는 밭의 고구마가 크고 과일도 많이 맺혀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다른 모든 세상일에도 그런 현상이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농사를 짓거나 사업을 하거나 가정의 복을 빌 때도 사실과 이치에 맞지 않는 기도나 헌금을 한다고 해서 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입니다.
 
사실과 이치 속에서 인간이 짓는 원인에 따라 결과가 결정되는 완전한 진리가 이 세상에 자리잡고 있으니, 이에 따라 살면 상황에 적합한 원인을 지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행복을 얻게 되는 것이며, 이러한 진리를 모르고 미신과 환상에 따라 살면 불행에 빠지고 세상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실과 이치에 맞는 진리를 밝혀 사람들의 삶을 무지와 어둠에서 구해 주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큰 공덕행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신에게 절대적으로 의지하며 인간의 지혜에 의지하지 말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을까요?
원시시대 때 인간들은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천둥과 번개, 폭풍우, 화산과 지진과 해일같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보고 이를 일으키는 전지전능한 절대자를 상정해놓고 이에 의지하여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으려 했습니다. 원시인들은 자신이 상정한 절대적인 신이 세상의 모든 일을 주관하는 전지전능한 존재라고 생각했기에 그가 일으킨다고 생각한 천재지변과 세상의 모든 일들에 대해 신성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수 있었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자신의 한계를 신의 뜻으로 미화하여 마음의 안정을 얻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신에 대한 믿음을 통해 신과 자기를 동일시시키자 절대적 존재의 일부가 됨으로서 모든 불안에서 해결책을 찾고 마음의 평안을 얻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원시인들은 합리적 사고와 이치가 아니라 감정적 비이성적으로 실체를 알 수 없는 환상적인 신에게 무조건 의지했기 때문에, 사실과 이치가 나타나고 있는 현실에서 모순이 발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단순하게 믿었던 신이라는 존재는 자식의 바람이라면 무조건 다 들어주는 부모와 같은 존재로서, 그 소망이 옳던 그르던 간에 그들의 소망이라면 모두 다 들어주는 오직 그들만의 신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현실에서 불합리하게 다가올 때가 많았고 구성원의 이익이 갈림에 따라 신의 결정이 모순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알지 못하는 환상 속의 절대적 신을 섬기다보니 무지할수록 신에 대한 의존도가 커져갔고 나중에는 인간 스스로가 무엇을 하려는 것 자체가 불경스러운 일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고귀한 인간으로 태어난 의미와 가치, 개인의 자유와 책임은 사라지고 모든 일이 신이 중심이 되고 인간의 의미는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이것을 신 위주의 사고방식인 신본주의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본주의는 세상의 주인인 인간 세상을 지배하고자 하는 어두운 신계의 음모에 의해 더욱 증폭되어 갔습니다. 처음 세상이 시작될 때는 이 세상에는 사람들이 순수하여 무지와 악을 저지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태초의 모든 건국설화들이 모두 에덴동산과 같은 지상천국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사실과 이치에 따라 거짓 없이 살면 그 마음이 맑고 가벼워 콩이 콩으로 다시 나듯이 다시 윤회하여 인간으로 태어나거나 아니면 높은 차원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그런데 인간의 욕망이 커지면서 문명이 발전하고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인간의 애욕과 집착과 한과 죄악도 커지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인간 세상에는 애욕과 집착과 한에 묶여 죽어도 저 세상으로 떠나지 못하고 이승을 떠도는 유혼들이 많아지게 됩니다. 이러한 유혼들이 많아지면 자기들끼리 모여 세력을 이루고 어둠의 세계를 형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유혼들은 몸이 없는 존재로 세상을 떠돌면 엄청난 지옥의 고통에 시달리게 되고, 또 죽어도 자신이 가진 욕망과 애착을 버릴 수 없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산자에게 나타나 그 몸을 지배하고 자기의 한과 욕망을 풀어주기를 요구합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이비 교주들이 스스로를 하느님의 영을 받았다고 주장하지만, 그 실체는 한과 집착과 욕망에 쩔어 있는 낮은 차원의 영혼이기 때문에 과거에 누리지 못했던 식욕, 색욕, 물욕 등 온갖 욕망으로 섬김을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구세주라고 하는 많은 사이비 교주들이 성적으로 문란하며 재물을 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한과 집착은 고대역사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수많은 고대 전쟁을 살펴보면, 신을 앞세워 전쟁을 한 적이 많았는데, 그것은 민족 간의 다툼 속에서 한을 품고 죽은 많은 영혼들이 자기 민족과 관련된 한과 욕망을 풀기 위해 죽어서도 계속 후손들에게 나타나 민족의 이기심을 고취하고 전쟁을 부추긴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각 민족과 관련해서 나타난 신들은 대부분 『구약』의 신처럼 타민족을 정복하여 자기 민족의 한을 풀어주기를 요구합니다. 그래서 고대국가시절 전쟁이 끊이지 않던 시절에 각 나라마다 신들이 그 민족을 이끌게 되고 수많은 신전이 세워졌던 것입니다.
 
유혼들이 세상을 떠돌게 되면 지옥의 고통에 헤매기 때문에, 이들은 사람 몸속으로 들어와 안락하게 지내기를 바라며, 큰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 자신들을 섬겨주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신들이 나타난 곳에는 반드시 큰 사당이 지어졌던 것입니다. 무당들이 제단과 사당을 만드는 것은 거기에 붙은 신이 자신을 달래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며, 옛날 그리스·로마 시절에 수많은 신전이 생겨난 것도 그곳을 떠도는 수많은 신들이 각자 자기의 안락한 보금자리를 지어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며, 종교가 생기면서 어마어마한 교회와 절들이 생겨난 것도 그곳에 머물러 있던 낮은 차원의 신들이 자기를 섬기며 위로해 주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조물주 하느님이라면 사람들의 고혈을 짜서 자신의 집을 짓게 하지 않습니다. 온 세상이 그의 집이요 터전이며, 온 인류가 자신의 일부일진대, 굳이 인간 세상의 재물과 피땀을 짜모아 모래알처럼 작은 집을 지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둠의 신들은 인간 세상을 그들의 종으로 만들고 그들을 지배하여 편히 지내려고 하기 때문에 인간들이 스스로 자기 정신을 차려 세상의 주인으로 사는 것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주체적으로 움직여 생명의 이치에 따라 밝게 살게 되면, 생명의 이치에 어긋나게 살고 있는 어둠의 신들이 머물 곳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 스스로 지혜를 밝혀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교만스럽게 보며 완성에 이르고자 하는 인간의 자유와 창의성을 스스로 부인하도록 하여 인간을 왜소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들의 음모가 극적으로 잘 나타나있는 종교가 유대교입니다. 유대의 신들은 계시를 통해 인간들이 자신들을 잘 섬기도록 하기 위해, 성경 속에 인간의 주체적 의식과 지혜를 막는 구절을 삽입해 놓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유대의 신인 여호와는 사람들에게 이런 지시를 하고 있습니다.(창세기 2:16, 17)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는 네가 만족할 만큼 먹어도 좋다. 그러나 선악에 대한 지식의 나무의 열매는 먹어서는 안 된다. 네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여기에 나오는 여호와라는 신은 인간이 지혜를 발휘하여 진실을 깨달아 주체적으로 사는 것을 반대하고 있으며 항상 자신을 섬기며 종으로 머물러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인간을 지배하고자 하는 음모를 꾸민 어둠의 세력들은 자신을 섬기는 인간에게는 성령으로 나타나 섬기도록 하고 자신을 따르지 않는 인간들에게는 공포를 주어 인간 세상을 지배해 나간 것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고대신들이 자비의 신이 아니라 편협하고 이기적인 복수의 신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약하고 어리석은 인간들은 이러한 얄팍한 하급신들의 술수에 넘어가 기이한 영적 현상을 나타내는 잡령들을 하나님으로 착각하여 섬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떠도는 신들이 창조주 하느님을 도용하여 인간들의 섬김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매우 간단합니다. 떠도는 신이라는 존재는 의식으로 이루어진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자기 마음먹기에 따라 인간의 마음에 다른 모습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빛이나 장수로 변할 수도 있고 창조주로도 변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지한 인간들은 이러한 진실을 모르고 그 외형만 믿고 무조건 그들을 섬기고 제물을 바치며, 그들이 원하는 대로 성령이 임하옵소서 하며 스스로 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과거부터 내려온 수많은 영적 현상의 진실인 것입니다. 이것이 신본주의 종교에서 성령현상이 번지는 이유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그 원인을 찾아 해결하려 하지 않고 신에 대한 자신들의 정성이 부족함으로 생각하여 더욱 신에게 의지함으로써 마침내 인간의 주체성이 완전히 사라지고 완전한 신의 노예가 되어 자식까지 제물로 바치는 광신적인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에 나오는 유대인들의 신에 미친 무지몽매한 모습으로 어둠의 세계가 꾸민 신본주의에 의해 인간의 정신이 마비될 때 나타나는 참담한 현상입니다.
 
이처럼 잘못된 신의 무지한 선동과 계시에 빠져 사실과 이치를 멀리하고 스스로 신(ghost)의 종이 되면 그러한 세상 속에는 바른 이치가 없고 무지와 미신만 있으므로 결국 그러한 사회는 패망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그 증거를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났을 당시의 이스라엘 사회는 로마의 수탈을 받는 식민지로서, 유대인들은 스스로를 선민으로 생각하며 하느님이 지상천국을 건설해 주신다고 믿고 스스로의 노력을 소홀히 하고 신에 의지하여 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맹목적인 신앙에 의해 사회에는 무지와 미신이 가득했으며 사람들은 인간의 도리와 진실을 잃어버리고 위선과 죄악이 넘쳤던 것입니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위선됨과 사악함은 예수님이 그들을 ‘독사의 자식’이라고 꾸짖은 행적에서도 잘 알 수 있고 예수님이 형장에 섰을 때 예수님 대신 살인자 바라바를 선택함으로써 진리와 신성을 버리고 어둠과 악마의 편에 섰던 것에서도 그 정신 상황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약에 의지하여 여호와를 섬기던 타락한 원시종교의 실체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관습적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신의 우상과 어둠 속에서 고통스럽게 사는 유대인들을 바라보며, 기존 유대교와 유대 사회의 잘못을 따르지 말고 참된 하느님의 길, 즉 진리를 행하라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들은 부모의 말을 듣고 행하나 나는 하느님에게서 본 것을 말한다.”고 하여 자신의 가르침이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유대적 신앙이나 관습과 다르다는 것을 밝혔던 것입니다. 이것은 신만 믿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했던 기존 유대교와는 다른 예수님의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불과 3년 반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진리를 펴다가 33세의 젊은 나이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감으로써 제자들이 그 가르침의 깊은 뜻을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갑자기 돌아가신 후, 뒤에 남겨진 제자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앞길이 막막했습니다. 개인별로 자질에 따라 차이가 있었겠지만, 제자들은 대부분 진리에 대한 이해가 불충분했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도 약했습니다. 3년간 예수님을 하늘처럼 떠받들던 열두 명의 제자였지만, 십자가형이 집행될 시점에는 모두 겁을 집어먹고 도망쳤다는 사실은 그러한 상황을 잘 말해줍니다. 다른 제자들이 모두 도망가 버린 후 오직 제일 제자였던 베드로만 처형 현장에 숨어 있었는데, 그마저도 닭이 울기 전 세 번이나 예수를 모른다고 부정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그 가르침이 명확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자들은 각자가 배우고 깨친 것에 근거해서 진리의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예수님이 전한 정통적인 가르침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것을 주도한 사람은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그는 오늘날 기독교계에서 직계 제자인 ‘12사도’보다도 더욱 ‘사도’의 역할에 충실했다고 칭송받고 있지만, 정작 그는 예수님의 직접 가르침은 고사하고 그분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바리새파 율법학자로 유대 유력가의 아들이었으며 로마와 밀접한 관계로 시민권까지 가지고 있는 로마 시민이었는데, 당시 그는 예수를 믿고 따르는 이들을 처벌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가 그 와중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접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저주를 받아 눈이 멀게 되었고, 성령의 은사를 받아 눈을 뜨고는 예수님을 영적으로 섬기게 됩니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참된 삶의 길을 전하는 진리의 스승이 아니라 그가 전통적으로 섬겨온 여호와와 같이 영적으로 섬기는 믿음의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이 가르친 진리에 관한 말씀이나 율법보다는 과거 유대교에서 익혔던 신앙처럼 성령에 의한 구원을 강조하고 손쉬운 구원의 교리인 믿음을 통한 대속론(代贖論)을 주장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의 핵심교리가 되고 있는데 이러한 그의 견해를 가장 잘 대변하는 것이 바로 「로마서」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율법(律法)의 행위들이 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단정하노라.” 이로써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인과의 이치에 따른 진리가 아니라 믿음이 주가 되는 종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이 말한 것과 배치됩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도 병자를 고치고 여러 가지 일을 하자 유대인들이 왜 율법을 어기느냐고 따졌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나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러 왔다.”고 하면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은 형식적인 규정의 준수가 아니라 참된 사랑의 실천으로 진정으로 세상을 축복하는 데 있음을 밝힌 것입니다. 율법이란 인간이 걸어가야 할 길로서, 거짓말하지 말고 살인하지 말고 도둑질하지 않고 세상을 사랑함으로써 인간의 마음을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만들어 천국에 갈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강조한 삶의 요체로, 그래서 입으로만 주를 외지 말고 주의 뜻을 행하라고 한 것입니다.
 
당연한 귀결로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팔복을 강조합니다. 영혼이 가난한 자, 애통해하는 자, 박해를 받는 자, 고통받고 모함받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온유한 자, 자비로운 자,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면서, 이런 참된 삶을 살고 진리를 세상에 실천하며 자신의 마음을 정화할 때 비로소 복을 받는다고 구원의 원리를 밝힌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밝힌 이 팔복에 관한 성경 구절이 현재 기독교의 기본 교리하고 달라서 많은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기독교의 틀을 세운 바울이 「로마서」에서 “인간은 율법의 행위들이 없이도 믿음만으로 의롭게 된다.”고 선언(declare)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죄를 지어도 용서받을 수 있는 자신들의 종교가 가장 세상에서 우월한 종교라고 자랑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구원을 받는다고 한 예수님의 가르침과 전혀 맞지 않은 정반대의 주장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율법을 강조하는 바울의 교리는 직전제자(直傳弟子)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습니다. 살아생전 예수님을 옆에서 모시면서 그 가르침을 직접 들었던 제자들이 볼 때, 예수님을 전혀 만난 적이 없고 진리의 가르침도 전혀 들은 적이 없었던 바울이란 자가 나타나 제자를 자처하고 스승의 가르침 대신 기존 유대교에서 여호와를 섬기듯 예수님을 신앙으로 섬기는 교리를 전하자, 제자들은 바울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어 이단으로 배척하고 죽이려는 시도를 하게 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부터 그곳에 몰려와서, 무리를 부추겨 바울을 돌로 치게 했다. 그들은 그가 죽은 줄 알고 그를 도시 밖으로 끌어내었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만큼 당시 유대 지역의 교회를 주관하고 있던 직전제자들과 외지에서 자기 나름대로 신앙을 전하던 바울과의 사이에는 깊은 교리적 간극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진리를 이해함에 있어서 성자로부터 그 가르침을 직접 들은 것과 남으로부터 말로 전해들은 것과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바울의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이해는 제자들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상태였으니, 오늘날 기독교가 바울의 교리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예수님의 원 가르침과 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밝힌 사실과 이치에 맞는 진리를 섬긴 것이 아니라 원인과 결과를 알 수 없는 불명확한 하나님만 섬겼기에 자신과 조국을 축복하는 원인을 짓지 못하고 인간의 도리와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했기에 결국 나라를 잃고 수천년간 세상을 떠도는 유랑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의 이성과 철학을 바탕으로 찬란한 고대 문명을 꽃피웠던 로마가 기독교를 받아들인 후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멸망하고, 고대사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던 서구 사회가 환상적인 신의 영광 속에 머물다가 1,000여 년간의 중세 암흑기에 빠져든 이유도 바로 성자들의 진리에 따른 가르침을 행하지 않고 사실과 이치에 맞지 않는 맹목적 믿음과 구원론에 빠져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실 속에서 모든 것을 판단해야 합니다. 즉, 서구 사회가 힘을 잃고 무기력해진 것은 그 속에 사회를 어둡게 하는 잘못된 원인이 작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들이 망한 이유는 세상이 이루어지는 사실과 이치에 따라 좋은 원인을 지은 것이 아니라, 자의적으로 구원을 준다는 불합리한 인격적 신을 믿고, 무조건적인 은총과 계시를 바라며, 이치에 맞지 않는 비현실적인 원인을 지으며 살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 증거를 신의 불합리성에서 벗어나 인간의 이성과 과학적 진리를 되찾음으로써 급속하게 발전하기 시작한 서구 문명에서 분명히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지난 수천 년간 인류가 맹목적으로 신을 섬기고 그 계시를 따르며 살았던 일들이 진정한 창조주 하느님의 은사가 아니라 이 세상을 떠도는 신들이 인간 세상을 지배하기 위한 음모였다면, 그것은 실로 인류사를 다시 써야 할 만큼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동안 신의 뜻을 믿고 섬기며 살아온 거대한 인류의 역사가 고귀한 인간의 삶을 잡신에게 바친 치욕의 역사이며, 인류 스스로를 노예로 만든 어리석음의 극치를 보여주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느님은 세상에 함부로 나타나 기이한 기적을 행하며 이치에 맞지 않게 사사로운 청을 들어주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창조주 하느님은 이 우주와 신과 생명을 모두 포괄하는 너무나 절대적이고 신성한 존재로 한 번도 이 세상에 나타난 적이 없으며 오직 완전한 뜻과 진리로 세상을 주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두운 곳에서 나약한 사람들에게 나타나 이치에 맞지 않는 이적을 행하고 사람들에게 섬김을 요구하는 그런 신들은 모두 낮은 차원의 떠도는 신(유혼)에 불과한 것입니다. 만약 이 세상을 창조한 하느님이라면 작은 뜻을 하나 세워도 바다를 가르고 달에 공기를 채우며 세상을 단번에 풍요한 세상으로 만들 수 있을 텐데 그런 알 수 없는 사소한 일을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역사 속에 나타난 이상한 성령현상은 창조주 하느님의 역사가 아니라 떠도는 유혼들의 장난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창조주 하느님이 나타나 이치에 닿지 않는 성경을 쓰는 일은 없는 것입니다. 과거 구약이 나타난 출처를 살펴보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사람이 신의 계시를 받아썼다고 하는데 그런 일은 지금도 비일비재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신의 계시를 받아썼다고 하는 경전들이 지금 세상에 가득 깔려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이비 종교에서 주장하는 경전들이 바로 그와 같이 신의 계시를 받아 쓴 글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 세상에 나타난 모든 진리는 오직 완전한 영혼과 깨달은 시각을 얻은 성자들에 의해 세상에 나타났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창조주 하느님의 영에 의해 쓰여진 일점일획의 틀림도 없는 완전한 진리라는 주장은 사실과 이치에 맞지 않은 말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절대적 진리로 보고 그 뜻을 밝혀 자신들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것은 토끼 뿔이나 거북이 털을 찾는 것과 같이 근거가 없고 허황된 말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기독교는 크게 가톨릭교(Ecclesia Catholica), 정교회(Ecclesiae Orthodoxae), 개신교로 나뉘는데 각각 그 교리가 다 다릅니다. 만약 성경이 진리라면 그 내용이 달라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개신교의 교파를 살펴보면, 루터의 신학 노선을 따르는 루터교와 성경의 권위와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장로교, 회심의 체험과 신앙고백 후에 하는 세례를 강조하는 침례교, 전통적 신학을 강조하고 감독제 교회를 주장하는 감리교와 그 일파인 구세군, 20세기 초반 성령 운동을 통해 생긴 오순절교회가 있으며, 예수가 재림 시기의 오류를 지적하며 성경 구절의 비밀을 파헤지는 제7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자칭 선지자인 초대 회장 조셉 스미스 주니어가 만든 몰몬경을 중시하는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 그리고 1870년 미국에서 출현하여, 1세기 초대교회의 정통성을 회복하였다고 주장하는 여호와의 증인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성경을 진리적으로 해석한다고 주장하며, 삼위일체, 영혼불멸, 지옥불 교리를 인정하지 않으며 사랑을 실천해야한다는 신념으로 전 세계에서 병역을 거부하고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자체가 하느님이 직접 쓴 것이 아닌 인간의 작품으로 지난 역사 속에서 수정된 적이 많은 것인데, 그것을 절대적 진리의 기준으로 삼고 그곳에 있는 구절을 근거로 자신들 교파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참된 종교인지 여부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얼마나 진리를 잘 실천하여 좋은 영혼을 지을 수 있느냐에 달려있지, 신을 믿거나 성경 속에 있는 유월절이나 안식일을 잘 지키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것은 자신이 맺은 열매(결과)로 자신의 삶을 평가받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의 씨앗이 자라 부지런히 생명 활동을 하여 열매를 맺는 것처럼 인간 또한 삶의 결실인 그 영혼을 보고 그 삶을 판단받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에게 살아가는데 아무 교훈을 주고 좋은 열매를 맺는 길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러한 종교는 인간 세상에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며 분명한 이치가 없는 성경 구절을 근거로 현실에 맞지 않는 주장을 한다면 그것은 세상에 선업을 쌓는 것이 아니라 악업을 쌓는 종교가 될 뿐입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의 핵심인 성경이 하늘의 진리와 일점일획도 다르지 아니하며 성자들의 가르침과 일치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근대에 들어와 발견된 사해문서와 낙 함마디 문서의 발굴로 인해, 초기교회가 종말론적인 영지주의적인 성격을 많이 지녔고,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많은 교파들 간에 각각 다른 복음서와 사도행전들이 난무했으며 교세다툼이 치열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초기 신약이 수록된 희랍어 사본이 약 5천여개, 번역 사본들도 약 1만개 정도 보존되어 있으며 교부들의 인용문도 수천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경의 원형은 AD170년경 무라토리 정경목록으로 나타납니다. 이 정경목록에는 현재의 신약 27서 중에서 베드로 전,후서,야고보서, 요한3서, 히브리서가 빠져 있는데 이러한 경전들은 오랜 동안의 교리적 투쟁을 거쳐서 나중에 정경으로 채택되었습니다.
 
AD367년 아타나시우스는 부활절 서신을 자기 교구의 여러 교회로 보내면서 지금의 신약성서와 같은 목록을 제시했는데 오거스틴도 이 정경목록을 지지했습니다. 이것이 제롬의 라틴어 번역(Vulgata)을 통하여 전 서방 교회에 유포됨으로써 현 성경의 원형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서기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신약성경에 실려 있던 윤회에 대한 언급들을 없애기로 결정하였고 서기 325년 니케아 공의회 이후 모든 복음서에서 삼위일체설을 선택하면서 환생을 암시하는 구절들을 완전히 삭제해 버렸으며 윤회를 가르치던 당시의 교리적 용어인 '선재론(先在論)'이란 개념도 교회신학에서 완전히 삭제된 사실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성경을 절대적 진리의 근거로 삼고 그 문구의 내용을 밝혀 자신들 교파의 정통성의 근거로 삼으려는 주장 자체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이 통하는 것은 기독교 자체가 진리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불합리한 믿음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할 것입니다.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되는 사실과 이치가 아니라 성경 자체를 진리로 믿고 있기 때문에 그 속에 있는 관념적인 단어 하나를 부여잡고 자신의 생명을 바치는 것입니다.


[ 정신병의 실체 ]


그리고 어릴 적부터 정신병을 앓았다고 했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태생부터 정신병을 앓는 이는 없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인간의 근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으로 나는 것이며 태어날 때 과거의 모든 기억을 지우고 오기 때문에 정상적인 정신을 지니고 옵니다.
 
그렇다면 어릴 때부터 정신병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주위의 어두운 환경과 인연으로 인해 영적 감염이 일어나 아이의 의식에 다른 영이 침범함으로써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이 주요 원인입니다. 이것이 현대인들이 알지 못하는 정신병의 가장 큰 원인입니다.
 
요즘은 말세이다 보니 세상을 떠도는 유혼이 많고 특히 종교단체에는 잘못된 교리로 인하여 죽어도 저세상을 가지 못하고 구원의 날까지 세상을 떠도는 귀신들이 버글버글합니다. 그래서 영적 감염이 심해져 정신병이 급속히 늘어나며 어린 아이에게도 자폐증같은 이상한 현상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생명의 이치를 깨달아 어린 아이들을 영적으로 위험한 곳으로 데려가서는 안되며 부모들도 아이들이 어두운 영의 기운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사실과 이치에 맞게 밝게 키워야 하는 것입니다.
 
님의 경우 여기에 올린 글만으로는 자세한 현상을 알 수가 없으니 정확히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만, 영적 감염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어 그 이치를 밝히니 이 글 속에서 도움이 되는 교훈을 얻기 바랍니다.
 
다른 영이 인간의 몸에 들어오면 그 영은 다른 의식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의식을 억눌러 지배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영혼은 자기를 상실하니 마취가 된 듯 황홀해지며 짐을 내려놓은 느낌에 일시적으로 평안해지게 됩니다. 그래서 빛을 느끼고 희열을 느끼지만 그것은 떠도는 신의 한계로 인해 곧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되고 완전한 해결책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현실로 돌아오면 현실의 무거운 짐이 그대로 느껴지고 이를 피하기 위해 다시 황홀경과 평안을 찾으러 종교단체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마약에 빠지면 마약에 의존해 비현실적인 인간이 되듯이 신에 씌이면 신에 의존해서 정상적인 사고를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진행되면 현실이 더 불행해지고 이를 잊기 위해 나중에는 생활도 가정도 자기도 버리고 신에게만 의존하는 광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대가 평안함을 찾았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상황에 해당되는 것이 아닌지 살펴보기 바랍니다.
 
인간은 자신의 영혼으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외부의 영이 들어오면 자신의 영혼은 기생충이 든 생명체처럼 정상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병이 든 상태가 되어 자기 판단에 의해 사고하지 못하고 다른 의식에 의해 간섭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판단력이 흐려지고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다른 의식의 작용 때문에 작은 심리적 충격도 견디지 못하고 안절부절하게 되며 심하게 되면 정신분열증을 일으키며 나중에는 미치광이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이 사람의 몸으로 들어오면 다른 의식체가 들어와 자기의 의식을 지배하기 때문에 그 사람은 더 이상 자기 자신의 영혼을 성장시킬 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자기 정신을 가지고 살면서 삶을 통해 깨침을 얻어 자신의 영혼을 성장시킵니다. 그런데 다른 의식이 자기의 영혼을 지배하면 자기의 영혼은 더 이상 자신을 성장시킬 기회를 얻지 못하고 쭉정이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을 살게 되면, 결국 그 영혼은 부실한 상태가 되어 죽어도 좋은 곳에 가지 못하고 자기를 감염시킨 신들과 함께 지옥계를 떠돌게 되는 것입니다.
 
그대의 경우 어릴적부터 정신병에 시달렸다고 하니 그동안 자신을 상실하고 살았을 것이고 자신의 의지와 지혜를 키울 기회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허약한 의지와 정신으로 게임과 욕망에 쉬이 빠져든 것이고 자신을 주체할 수가 없어 정신병원에 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신이 들린 사람을 가장 천한 인간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타고난 자기 정신을 보존하지 못하고 그 영혼을 다른 신에게 내어주어 자기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자기정신을 주관하지 못하고 다른 영혼에게 의식을 뺏겨버린다면 그는 더 이상 세상에 태어난 의미를 상실하는 것이며 더 이상 자기 삶을 농사짓지 못하는 죽은 자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을 떠도는 신들이 인간의 나약함을 이용하여 인간을 지배하는 비밀이니 이러한 진실을 알지 못하면 작은 영적 현상에 코가 뀌어 평생 자신의 몸을 다른 의식에게 내어주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됩니다. 이렇게 신이 쳐놓은 작은 미끼에 걸리게 되면 무지한 자일수록 더욱 그런 기적을 믿고 자신을 그에 더욱 더 의지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치병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정과 사업의 성공마저 신에게 맡기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되어 신에 매인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 속에 들어온 신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나 한번 영에 감염되면 장애와 같아서 정상으로 회복하는 것은 매우 힘이 듭니다.
따라서 님의 경우에 가장 중요한 일이 들어온 영을 잘 달래서 같이 삶의 축복을 위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리를 배우고 깨쳐 사실과 이치에 따라 바른 생명의 길을 가야 합니다.
생명의 길을 모르고서는 자신의 영혼을 건강하게 지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자신 속에 들어온 영에게,
죽은 영혼이 그렇게 남의 몸에 들어오는 일은 생명의 이치에 어긋나며
자신을 망치고 남을 망치는 일이니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말라고 하시고
사후의 영혼이 계속 세상에 나타나 움직이면 자신의 진기를 소모하여 결국 동물과 미물로 떨어지게 되니 모든 욕망과 집착을 풀고 떠나라고 하며
내가 좋아지면 당신을 위해 축복해주겠으니 서로 올바른 진리의 길로 나아가자고 권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곳에는 신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자신을 건강하게 만드는 길을 많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부지런히 배우고 깨쳐 자신을 새롭게 짓기 바랍니다.
그래서 자신 속에 좋은 것을 담아야 합니다.
자신을 좋게 만들지 않고 어찌 좋은 자기와 좋은 운명을 바라겠습니까?
진리의 인연을 받아들여 자신을 새롭고 좋게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결코 현재의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길을 보지 못하는 자는 결코 목적지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 길이 바로 사실 속에 있는 진리인 것입니다.
사실과 이치에 따라 자기의 영혼을 좋게 하는 원인을 지을 때만이 신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좋은 자기와 좋은 운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질문]-----

진리의길을 확신하는 운영자에게
깊은 마음의 감명을 받고 동시에 믿어도
될까 하는 두려움 의심도 듭니다.
사람이 저렇게 성자다운 지혜를 갖는다는게
뭔가 잘못된게 있는건 아닌지.

아무튼 제인생 어떻게 되는건지 물어봅니다.
태어날때부터 분리불안증이란 정신병으로
시련을 겪다 해결이 되자 그에 상응하는
행복이 찾아 왔는데 게임이란 유혹에 빠져
엄마의 배신감을 샀고 행복도 놓쳤습니다.

내 욕심에 대한 댓가로 정신병원강제입원을
10차례 넘게 당했고
뇌신경 심장 고환등 손상이 커서 회복이 불투명합니다
다행히 살아갈 희망은 생긴 상태지만
제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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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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