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실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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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실체

신성한 하늘의 뜻과 세상의 모습

gincil 2013. 4. 18. 15:57

진리의 빛이 사라진 세상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세상이 우연히 생겨나 제멋대로 흘러가다가 무의미하게 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무의미하고 아무렇게 되는 세상이라면 우리들은 그렇게 애를 태워 가며 좋은 세상을 만들거나 삶의 진실을 찾아 좋은 인생을 지을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없는 것을 찾아 인위적으로 세울려고 하는 것보다 어리석고 무의미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제멋대로의 세상이라면 되는대로 욕망을 즐기며 세상을 이용해먹고 모든 악을 다 저지런다 하여도 양심의 가책을 받거나 해를 받을 염려가 없다. 왜냐하면 삶이나 세상을 지켜주는 어떠한 신성함이나 법칙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 속에 본질적으로 신성한 뜻이 존재하고 완전한 진리가 존재한다면 우리들은 지금과 같이 인간으로서의 의미와 가치를 외면한 채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아무렇게 살아서는 안된다.

 

오늘날 사람들은 현대를 일컬어 과거 신의 권위에 짓눌려 인간성이 말살되던 중세에서 벗어나 진정한 인간의 자유와 주체성을 만끽하는 인간시대가 개막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해방이 무조건적인 종교와 신성에서의 탈출을 주장하는 것이 됨으로써 오히려 삶의 신성함과 진리마저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고 그 결과 현대인은 인간소외와 방황을 숙명처럼 짊어진 채 살아가게 된 것이다.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신의 압박과 비인간성에서 벗어나고자 한 것은 신의 이름을 핑계로 참된 삶을 억압하던 종교의 허위의식과 위선을 벗어나고자 한 것이지 세상 속에 본래 내재되어 있던 삶의 진실과 인간의 고귀함 마저 벗어 던지고자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혼동과 소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인간의 삶너머 이 우주를 주관하는 신성한 근원의 세계와 삶 속에 살아 숨쉬고 있는 참된 의미와 진리를 밝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이미 과학과 대중이라는 사이비 미신에 깊이 중독되어 쾌락에 탐닉하고 있는 오늘날 현실에서 이러한 사실을 밝힌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며 매우 위험스럽기까지 한 일이다. 어둠에 물든 이들은 자신의 거짓된 정체와 위선이 드러날 것을 두려워하여 폭력으로 이에 반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만이 근거없이 흔들리는 인간의 가치와 의미를 바로 세울 유일한 대안이며 인류 사회를 굳건히 세울 기반이기에 밝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성자들이 항상 가르킨 바이지만 이 세상은 절대 우연히 생겨나 제멋대로 움직이는 혼돈스런 것이 아니다. 그런 세상이라면 성자들이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까지 사람들의 탐욕과 거짓을 꾸짖으며 진리를 지키라고 소리 높여 외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들은 지금 눈이 어두워 진리를 볼 수 없고 하늘의 뜻을 짐작할 수 없지만 세상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혜안을 가진 성자들은 신성한 빛의 근원이 분명히 존재하며 이 세상을 밝히는 완전한 진리가 엄연히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분들이 말씀하신 이 우주의 실체는 신성한 근원에서 비롯되어 완전한 형태와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인간은 그러한 완전한 구조 속에 신성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나타난 고귀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성자들이 모두 하나같이 생명의 길과 신성한 세계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그 중 부처님께서는 '나는 전생에 수많은 생을 돌며 공덕을 쌓았으며 바로 전의 생에서는 아라한의 세계에 머물다 이생에 이르러 비로소 공덕을 완성하여 완전한 해탈에 이르렀다'고 하셨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내 아버지'라고 하시면서 '몸만 죽이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몸과 영혼을 모두 멸할 수 있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라' '올바른 삶을 실천함으로써 천국에서의 영생을 얻으라'고 하셨던 것이다.

 

소크라테스도 다이몬이라는 하늘의 뜻을 받아 세상에 올바른 이치와 바른 삶을 가르치다가 제우스신을 믿고 있던 지배층들에게 이방의 신과 헛된 지식을 퍼뜨린다는 누명을 받고 죽음을 당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성자들은 모두 한결같이 신성한 차원의 세계가 이세상을 근거하고 있으니 하늘을 경외하며 인간의 가치와 의미를 찾아 올바른 삶을 살아가라고 가르쳤던 것이다.

 

이러한 신성한 차원의 세계에 대해 좀 더 확실히 하기 위해 여태껏 경전이나 전설 속에 비밀로 전해 전해오던 사후세계의 실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사람은 죽으면 마치 소풍을 가듯이 자신의 육체를 빠져나가 자신의 머리 위에서 자신의 육신과 가족과 이웃의 모습을 본다. 사람들은 그때서야 자신의 무신론적인 시각이 얼마나 무지했으며 잘못된 관념에서 사후를 무시하고 함부로 살았던 것에 대해 후회하게 된다.

 

그리하여 죽은 영혼은 장례식장에 오는 가족이나 친지와 이야기해 볼려고 시도하지만 전혀 그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어떠한 접촉도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비로소 자신이 죽은 것을 깨닫게 된다.

 

이때 이들 중 별무리 없이 삶을 산 영혼들은 피곤함과 함께 깊은 잠에 빠지게 되는데 이윽고 그들은 모든 것이 나고 사라지는 반야의 상태를 거쳐 다시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게 되며 이것을 윤회라고 한다.

 

이때 그 영혼의 완성의 정도에 따라 각자 다른 운명을 갖게 되는데 불교에서는 이를 육도윤회라 하여 인간, 미 물, 아수라 등 6가지 형태의 후생을 받는다고 비유로 설명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도 플라톤이 쓴 『파이돈』에서 "죽은 자는 산자로부터 나오고 산자는 죽은 자로부터 나오며 선한 영혼은 악한 영혼보다 더 좋은 운명을 가진다"고 말 하면서 "인간은 전생의 습관에 따라 다시금 메이게 되는데

마구 폭식하거나 제멋대로 산다거나 술에 취해 산 자는 당나귀나 그밖에 탐욕스런 동물로 태어나고 부정한 일과 포악한 일, 도적질을 한 사람은 독수리나 매 같은 것으로 태어나며 부지런하고 규칙을 즐기는 이는 개미나 벌이 되며 또 그들로부터 다시 인간이 나올 수 있다." 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유혼의 상태가 되어 이승을 떠돌면서 지옥의 고통을 경험하는 가장 저급한 차원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인간의 삶이 탐욕이 많아지고 무지함 속에 집착과 원한이 많아지면 사람들은 죽어도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계속 이승에 떠돌게 된다.

 

이때 영혼들은 육체의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엄청난 환상(꿈의 수백배가 되는) 속에 빠지게 되는데 마음의 불안의 정도에 따라 그 환상의 정도가 더 커져 실제와 같은 지옥을 경험하게 된다.

 

비오는 날 공동묘지에 가면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 바로 기압대의 변화에 몸에 찢어지는 극심한 환상(지옥)의 고통을 체험하는 유혼들이 내는 신음소리인 것이다.

 

즉 지옥이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세상을 떠돌아 다니는 유혼들이 겪는 영적 환상이며 심리적 체험인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하늘이 지은 뜻에 의해 유혼에게는 실제의 세계로 느껴지기 때문에 지옥이라는 차원이 실재하는 것처럼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유혼들은 이러한 지옥의 고통 속에서 영혼이 메마르고 정기가 흩어져 미약해진 기운으로 미물로 태어나야 하는 운명을 맞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진리를 알아 마음에 평안과 지혜를 얻은 사람은 그 마음이 매우 맑고 가볍기 때문에 죽게 되면 강한 상승력을 얻어 생명의 순환고리를 벗어나 영생의 세계에 이르게 된다.

 

이들은 마음에 이미 밝음을 얻었기 때문에 다시 태어나도 악에 물들지 아니하며 참된 생명의 길을 찾아 마침내 완성에 이르게 되는데 불교에서는 이러한 단계에 이른 분들을 아라한이라고 칭한다.

 

이러한 영생의 세계는 번잡하고 끈끈한 윤회의 세계를 벗어난 단계이기 때문에 영혼들은 잠자는 듯 평안한 상태에서 수백년을 머물게 되는데 그 영혼이 맑고 깨끗하기 때문에 탐욕이 넘치는 어두운 시대에는 거의 내려오지 않고 있다가 세상이 정화되어 맑고 질서가 바로잡힌 시기가 오면 다시 세상에 내려와 좋은 세상을 꾸미게 된다.

 

대부분 이들은 에덴과 요순시대와 같은 인류 최초의 맑고 깨끗한 시대에 내려와 살게 되는데 그래서 전설에도 인류의 초기시대의 모습이 깨끗한 낙원시대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문화인류학에서는 원시인들이 현대인보다 더욱 동물적이고 본능적이라고 보고 있지만 순수한 인간의 가치에서 볼 때 초기의 인간들은 천상에 머물던 맑은 영혼들이 내려오는 것이기 때문에 욕망에 찌든 현대인들보다 그 천성이 매우 어질고 지혜가 뛰어났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천성이 어질어 절대 남을 해치지 않았고 상대를 항상 생각하며 축복했으며 지혜가 뛰어나 자연과 조화되어 자족하며 살 줄 알았던 것이다.

 

이러한 낙원은 인간의 탐욕이 문명을 만들어 내면서 마음이 흐려지기 시작하여 결국 문명이 번성하면 그에 비례하여 인간의 마음이 타락하여 세상이 종말을 맞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영혼이 삶의 결실에 따라 여러 가지 차원의 사후를 받게 되는 현상은 마치 불을 때면 가벼운 연기는 높이 올라가고 무거운 재는 아래로 가라앉는 자연의 이치와 같은 것이다.

 

인간의 영혼도 집착을 벗어 마음의 평안과 자유를 얻으면 그만큼 가벼워 위로 상승하게 되고 세상의 욕망과 육체에 집착하여 불안과 고통에 마음이 무거워지면 그만큼 낮은 곳으로 가라앉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치에 의해 이들보다 더욱 의식이 고양되어 신성한 기운이 90% 이상의 높은 경지에 도달한 영혼들은 천상의 세계라 하여 높은 신들과 보살들이 살고 있는 신성한 차원에 도달하게 되는데 종교에서는 이러한 차원을 천당 또는 극락이라고 말한다.

 

이곳에 계신 분들은 맑고 강한 정신력을 지니고 있으므로 모든 것을 의지대로 다 이루되 하나도 이치에 어긋남이 없는 완전하고 자유자재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이 차원에서는 성자들과 깊은 의식의 교류가 이루어져 성자들의 입을 통하여 천상의 소리와 비밀이 세상에 전해지기도 하는데 소크라테스가 들었다고 하는 다이몬의 소리나 예수께서 하늘과 나눈 대화는 바로 이러한 차원의 교류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소리를 무당의 소리와 혼동해서는 안된다. 사람은 자기의 마음수준에 따라 진리의 세계에 접할 수 있으며 신성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마음이 어지러운 사람은 귀신의 소리를 듣고 마음이 신성해진 사람은 신성한 세계의 진리를 듣게 되는 것이니 이러한 현상을 착각하여 귀신의 소리를 신의 소리라 오해하여 세상을 현혹해서는 안된다.

 

많은 사이비 교주들은, 종교를 광신적으로 믿다 죽어서도 저 세상으로 가지 못하고 떠도는 귀신들에 홀리어 그들이 갖고 있는 잘못된 지식과 환상을 진리인양 함부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지만 말세에는 이러한 자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그들의 말이 세상에 구름처럼 번진다. 왜냐하면 그들의 말은 탐욕스럽고 이치에 맞지 않아 거짓된 이들의 마음에 매우 달콤하게 와 닿기 때문이다. 그러면 세상은 점점 어둠이 번지고 고통이 넘치게 되어 결국 망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진리는 언제나 세상의 환영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진리에 대해서 이런 말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진리를 알면 외로우며, 진리를 말하면 어두운 세상의 저주를 받는다』.

 

이 말처럼 진리의 실체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는 것은 없는 듯하다. 맑은 물에 고기가 살지 않듯이 욕망에 부대끼는 세상사람들은 인간이 가야 할 맑고 깨끗한 길인 진리를 좋아하지 않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성자들은 항상 탐욕을 버리고 좋은 결실을 위하여 열심히 노력해야 하며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에, 이러한 말은 탐욕과 허황함에 물든 사람들의 마음에 들지 않을 수밖에 없는 것이며 오히려 자신의 잘못에 대해 책망을 당하게 되면 기분이 나빠 그 악한 힘으로 상대를 해치려 달려드는 것이다.

 

그래서 진리를 말하던 모든 성자들은 항상 외로웠으며 어두운 세상의 무서운 저주를 받았던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과거 성자들이 세상의 존경을 받았는지 알지만 실제 그들의 전도행각은 너무나 비참했고 사람들은 진리를 들으려 하지 않아 그 곁에서 진리를 듣고자 하는 제자들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죽음을 당했고 소크라테스는 사약을 마셨으며 부처는 떠돌아다니다 길에서 죽었고 노자는 진리를 전할 데 없어 떠돌다 다니다 제자 한 명 없이 국경 너머로 사라졌던 것이다. 이것이 진리의 운명이니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넘쳐나는 종교에 과연 그러한 진리가 있는지 실로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오늘날 성행하는 종교에 진정한 생명의 진리가 있다면 세상이 이렇게 추하고 고통스럽게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진리는 소수의 의인에 의해서만 지켜지고 세상의 빛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진리의 길이 힘들고 외로워도 진리는 세상의 빛이요, 인간이 가야 할 궁극적인 길이기에 아무리 현실이 고통스럽고 힘들어도 인간으로 살아가는 한 그 길을 찾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현실의 저주와 고통 속에서도 자신의 밝음을 꺾지 않고 진실과 사랑으로 세상을 축복하여 더욱 자신의 마음을 정화시키면 마침내 마음이 꽃피어 인간의 육체를 가지고 신성한 근원에 도달하게 되는데 우리는 이러한 분을 성자라고 부른다.

 

성자들은 신성과 동일한 자유의지와 창조성, 세상을 꿰뚫어보는 지혜, 생명체를 치유하는 힘, 세상을 움직이고 영혼을 구제하는 강한 정신력을 지니고 신의 진정한 뜻을 인간의 말로 세상에 전하게 되는데

 

이로서 우주는 신성한 근원으로부터 신성의 씨를 뿌려 뿌린 대로 거두는 완전한 법칙을 통해 또 다시 완성된 열매를 거둠으로써 완전성이 존재하는 자기순환방식을 세상에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단계에 이른 분들은 우주의 근원이며 창조의 근본인 근원의 세계, 조물주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데 이러한 차원을 종교에서는 신성, 불성의 세계라 한다.

 

우주는 바로 이와 같이 완전한 신성의 뜻에 의해 나타나 완벽한 구조와 절대적 진리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신성과 진리를 경외하고 그 뜻에 따라 좋은 삶을 짓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 우주 속에 신성과 진리가 존재한다면 오늘날 세상이 왜 이렇게 고통스럽고 무의미한가에 대해 궁금해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문을 가진 이들에게 전혀 뜻밖의 대답이 될지 몰라도 세상이 이토록 어둡고 고통스러운 것은 그만큼 이 우주에 완전한 뜻과 이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이토록 혼돈스럽고 고통스러운 것은 선이 성하면 세상은 질서가 바로 잡히고 평안과 행복이 찾아오며 악이 성하면 혼돈과 무질서, 고통이 따라오는 것처럼 오늘날 세상이 아수라장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은 거짓되고 악한 원인들이 인과의 이치에 의해 서로 악을 낳아 마침내 스스로 붕괴되는 현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아마 조금이라도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오늘날과 같이 사람들이 탐욕스럽고 양심 없이 함부로 행동한다면 더 이상 세상이 지탱될 수 없으리라는 것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이 세상이 신성한 근원과 완전한 진리로 이루어져 있다면 우리들은 결코 삶을 아무렇게 살아서는 안되며 신성한 하늘의 뜻에 따라 인간의 고귀한 인간의 가능성을 완성시키는 삶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우주의 중심에 이 세상을 주관하는 완전하고도 신성한 세계가 존재하며 이 세상에 완전한 법칙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될 때 인간의 삶은 중심이 잡히고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는 눈을 지니게 되는데 부처님은 인간이 이러한 시각을 가지고 사는 것을 정견(올바른 시각)을 가졌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러한 절대적 신성의 존재성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초월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이 되어 미신에 빠질 염려가 있어 노파심에서 신의 진정한 뜻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신은 인간에게 완전한 자유와 법칙의 세계를 제시해놓고 자기가 지은 대로 결과를 받게 되는 완전한 세상을 열어놓고 있다. 그래서 각자가 자기행동에 따른 행과 불행, 축복과 저주의 체험을 통하여 인간이 가야 할 좋은 길을 택하여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살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운명은 인간 스스로 짓는 것이지 결코 하늘이 대신 살아주지 않는 것이다.

 

하늘이 보시기에도 자기가 지은 대로 결과를 받도록 하는 것이 완전한 세상인 것이지 자기를 섬긴다고 유리하게 도와준다면 그것은 신 자체의 불완전성을 나타내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구원을 얻기 위해 주여, 주여! 하며 나를 찾지 말고 신의 뜻을 행하라'고 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자기 영혼의 구세주는 바로 자기 자신인 것이며 결코 신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천국에 이르기 위해서는 자기 스스로 천국의 문에 들어갈 수 있도록 사랑과 진실로 자신의 영혼을 정화하여야 하는 것이지 신을 섬긴다고 감정에 휩쓸려 천국의 문으로 등을 떠밀어 줄만큼 신이 어리석은 존재는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신성한 세계와 진리, 올바른 삶이 있음을 알되, 미신에 빠지지 않고 진리를 지키며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참된 모습인 것이다. 이때만이 진리와 사랑이 자신과 세상 속에 쌓여 세상과 나와 함께 구원받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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