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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바른 마음을 얻는 방법 본문

☆ 진실의 근원

맑고 바른 마음을 얻는 방법

gincil 2013. 4. 23. 22:30

<질문>

> 허해구님의 기 수련의 불필요함에 대한 글을 읽고 많은
>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
> 무엇이 정답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
> 수련의 신비함을 얘기할 때는 거기에 끌리고, 허해구님의
> 말씀을 읽을때는 또 거기에 끌리고... 도대체 결론을 내리
> 기 어렵습니다.
>
> 그래서 다시 한번 이 사이트의 글을 읽는 중 알고 싶은 것
> 이 하나 생겼습니다.
>
> 허해구님은 기 수련 같은 걸로는 진리에 다다를 수 없고
> 장점보다는 단점이 훨씬 많으니 그런 것은 하지말고, 바른
> 진리를 알고 바른 행동을 통해 자신의 모든 업을 극복하고
> 맑고 바른 마음을 얻는데 힘쓰리고 말씀하십니다.
>
> 그렇다면 맑고 바른 마음을 얻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 팔정도를 하는게 그 방법인가요?
> 팔정도는 어떻게 하는건가요? 중학교 때인가 고등학교때 배
> 운 바로는 올바로 보고, 올바로 생각하고, 올바로 행동하고
> .. 머 이런거였던거 같은데, 올바로 보고 생각하고 행동하
> 는 것이 어떻게 하라는 건가요...
> 올바름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
> 무엇을 해야한다고는 말씀을 하고는 계시지만, 어떻게 하라
> 고는 말씀이 없는거 같아서 이렇게 질문드립니다.
>
> 무조건 사랑하고 봉사해라~ 이것이 답인가요?...
> 아니면 양심에 맞게 살아라~ 인가요...

<답변>

어떻게 해야 올바른 수행을 할 수 있는가?

이를 위해서는 먼저 우주의 실상과 바른 이치를 알아야 한다.

사랑을 모르면 사랑을 실천할 수 없듯이 세상을 축복하는 법을 모르면 공덕을 짓지 못한다.

지금 세상사람들이 저마다 세상을 위해 일한다고 말하지만 세상이 날로 어두워지는 것은 그들이 올바른 실상과 이치를 모르고 허황된 지식과 잘못된 관념에 빠져 좋은 원인을 짓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행에 있어서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진리를 배우는 일이다.
빛이 없는 깜깜한 곳에서는 아무리 혼자 애를 써도 올바른 길을 걸어 갈 수 없다.

지난 수천년 동안 수많은 구도자들이 산야를 헤매며 수행했지만 도를 이루지 못하고 한을 품은 채 광야에서 쓰러져 죽은 것은 길이 없는 말법에 속아 좋은 공덕을 쌓지 못하고 평생을 잘못된 기법만 수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자들의 재세시, 수많은 제자들은 깨달음의 수기를 받았다.
왜냐하면 성자들은 진리 그 자체였기 때문에 그대로 따라 행하기만 하면
모든 행위가 완성으로 나아가는 원인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깨달음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주의 흐름과 일치하는 참된 진리의 빛을 만나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두운 세상에서 진리를 만나는 일은 매우 힘들며 희귀한 일이다.
그래서 옛부터 사람으로 나는 일도 어렵지만 진리를 만나기는 더욱 어렵다고 했던 것이다.

정법 500년, 상법 1,000년, 말법 1,000년이라 했듯이 요즘은 성자들이 가르치신 정법은 사라지고 온갖 환상과 허황된 명상기법들이 사람들을 혹세무민하고 있다.

오늘날 이처럼 정법이 사라지고 곁가지 명상기법들이 성행하는 이유는 불로소득을 좋아하는 중생들의 허황된 심리를 이용하여 위선된 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거짓을 퍼뜨렸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중생들은 노력하지 않고 일확천금을 얻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노력없이 쉽게 얻을 수 있는 허황된 수행법이 나오면 모두 열광하는 것이다.

과거 주문을 위주로 하는 밀교 수행법도 그랬고 요령만 익히면 바로 깨닫는다는 라즈니쉬류의 명상계통도 그렇다.

그러나 일확천금이란 자연의 이치에는 없는 것이니 중생들의 인기를 끄는 특별비법들은 그만큼 바른 이치에서 어긋나 있다.

그래서 허황된 수행의 열풍이 분 사회는 바른 이치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적고 기이한 행동과 비현실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많은 것이니 이것도 동양사회가 병든 원인 중 하나인 것이다.

우주는 완전한 뜻과 진리로 이루어져 있어서 그 속에서 하늘의 뜻과 흐름대로 바르게 살아간다면 사람은 자연과 조화되어 인간완성을 이루고 세상은 지상천국이 된다.

그러나 자연의 흐름을 어기고 그릇된 원인을 지으면 사람은 파멸하게 되고 세상은 혼돈과 불행으로 소멸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세상에 나타난 모든 존재들은 완전한 인과의 법칙 속에서 한치의 어김없이 자기가 지은 대로 받으며 살고 있다.

이와 같이 세상이 완전한 의미 속에서 완벽하게 짜여져 있는 것을 안다면 우리들은 한순간도 무의미하고 헛되게 살 수 없으며 매순간 진리를 배우고 바른 공덕을 쌓아 인간으로 태어난 의미와 가치를 완성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완전한 인과의 법칙 속에 있어 하나씩 쌓이는 것이지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따라서 인간완성을 이루는 수행도 하나 하나 배우고 행함을 통하여 완성으로 나가는 것이지 단번에 깨달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수행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이 하나씩 가꾸어 나가는 성실한 농사꾼의 자세인 것이다.

진리 속에 있는 일들은 하나 배우면 하나 더 밝아지고 더 밝아진 눈으로 더욱 좋은 공덕을 지을 수 있어 진리 속에 머물면 급속도로 진리화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면 각종 명상기법이나 기수행으로 한소식하겠다는 사람들은 이러한 이치가 너무 시간이 걸리며 막연하다고 불평한다.
그래서 로토복권처럼 한번에 깨달을 수 있는 비법이나 어떤 요령으로 한소식하여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허황된 공식을 말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 우주 속에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는 일확천금의 요행수는 없다. 사과나무에서 맛있는 사과를 얻기 위해서는 거름을 주고 가지를 치고 봉지를 싸고 지지대를 받쳐주고 농약을 쳐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요즘에는 말법이 세상을 뒤덮어 세상과 인연을 끊고 마음을 버리는 기법만 수행하면 막바로 해탈심을 볼 수 있다고 하는 주장들이 많다. 이런 기법들을 수행하면 순간적으로 마음이 비워진 듯한 착각에 든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최면에 불과할 뿐 결코 마음속에 있는 숙업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그 동안 이러한 관념 속의 기법에 의지해 수많은 사람들이 수도를 해왔고 수많은 체험을 했다. 온 몸이 변화가 생기고 머리에 번개가 치고 생과 사를 넘나들었다. 자연과 합일되고 우주를 품에 앉았으며 세상일을 거울보듯 보기도 했다.

그러나 깨달음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 동안 역사 속에는 수많은 구도자들이 있었고 엄청난 수행체험이 있었다.
그러나 부처님과 같이 우주의 실상을 보고 세상을 관통하는 진리의 실체를 보지 못한 것은 생생한 삶 속에서 자신의 영혼을 닦지 않고 관념 속에서 생각만으로 자신의 업을 지웠기 때문이었다.

사람으로 태어나 인간의 근본을 다해 세상을 사랑하고 축복하지 않았는데 인간완성의 경지가 올 수 없었던 것이다.

인간완성의 경지인 해탈은 자신이 지니고 태어난 숙업을 완전히 지워 티끌 한점 없는 완전한 반야심을 얻어야만 이룰 수 있다.

이러한 숙업은 지난 과거의 수많은 생을 거쳐오는 동안 자신의 잘못된 삶으로 자신 속에 쌓은 것이니 다시 올바른 행동으로 이를 극복하는 원인을 지어야만 업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땅에 넘어진 자는 땅을 짚고 일어서지 않으면 일어설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세상 속에 활발하게 살아감으로써 자신의 본분을 다하도록 되어있다.이것이 살아있는 생명의 본질이며 하늘이 인간을 세상에 태어나게 한 이유이다.

인간의 삶의 본질은 생생한 현실 속에 있는 것이며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해 진지하게 살 때만이 자신의 마음을 닦을 수 있고 인간완성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진지한 삶을 떠난 모든 명상이나 기수행법은 모두 관념이며 기술에 불과하다.
삶을 무시한 기술적인 수행법으로 깨달음에 이를 수 있을 것 같으면 인간은 아무렇게나 살아도 관계없는 일이며 그러한 깨달음은 인간의 삶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관념적 수행법에 빠지게 되면 생생한 삶을 포기하게 되고 세상과 떨어져 무기력하게 지내게 된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움직이는 것이며 원인을 짓는 것이다. 따라서 세상에 대한 관심과 활력이 사라지면 인간존재의 의미도 사라지는 것이다.

인간완성의 경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버림으로서 얻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른 이치와 공덕을 완전히 함으로써 이루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허무와 소멸을 통하여 깨달음으로 가려는 자는 관념으로만 인생을 살려고 하는 허황되고 무지한 자이다.

그 동안 세상에 깨달음이 나타나지 않은 이유도 이처럼 말법의 영향으로 쉬운 생활법을 멀리하고 어려운 수행법만 행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도의 길을 가는 사람은 진리의 빛을 찾아 세상 속에서 열심히 좋은 원인을 지어야 한다.

마음속에 밝은 이치와 진실이 가득하게 되면 마침내 마음이 무르익어 인간완성의 열매를 거두는 것이다.

자신을 다 바쳐 세상을 섬길 때 자신 속에 내재된 업과 삿됨이 모두 사라지고 맑은 불성을 증득하게 되는 것이다.

어두운 세상에서 진리를 실천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말세의 경우 악과 어둠의 거대한 장막이 세상을 가린 상태이기 때문에 그 속에서 진리를 전하고 실천하는 것보다 힘든 일은 없다.

그래서 모든 성자들은 진리의 빛을 밝히려다 자신들의 위선과 탐욕이 드러날까 두려워하는 어둠의 세력에 의해 희생당했던 것이다.

따라서 완성에 이르는 공덕을 짓기 위해서는 하늘이 무너져도 흔들리지 않은 양심과 태산이 무너져도 꺾이지 않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온실 속에 나무는 대들보로 쓸 수 없듯이 인간도 큰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시련을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가 나기 위해서는 악이란 악은 모두 모인 오탁악세가 와야 그 시련을 이겨내고 깨달음을 이룰 수 있게된다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삶과 수행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삶 자체가 수행이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끝없이 도는 생명의 순환과정 속에서 완성의 열매를 이루고자 함이니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는 곧 인간완성을 위해 농사를 짓는 과정인 것이다.

따라서 올바른 삶보다 더 좋은 수행법은 없다.
그래서 모든 성자들은 인간완성에 이르는 수행법으로 기술적인 명상법이 아니라 올바른 진리와 참된 삶을 가르쳤던 것이다.

그 동안 이 세상에는 수많은 생명들이 나타나 완전한 법계와 인과의 법칙 속에 밝은 길과 어둠의 길을 걸어갔다.

그중 밝음을 알아 하늘의 뜻과 바른 이치에 따른 영혼은 완성으로 나아가 밝은 미래를 얻었고 그릇된 길을 간 영혼은 한과 고통 속에서 소멸하였다.

따라서 인간완성의 경지는 밝은 진리의 고리를 도는 맑은 영혼 중에서 바른 삶으로 세상을 축복하여 가장 완전한 공덕을 쌓은 영혼이 열매를 맺어 이루게 되는 것이니 때와 연이 무르익으면 저절로 우주의 열매로 나타나는 것이다.

즉 깨달음은 하늘의 뜻과 땅의 인연과 개인의 공덕이 조화를 이루어 나타나는 우주의 열매이니
과일도 해가 좋고 땅이 좋으면 저절로 열리듯이
깨달음도 공덕이 가득하게 되면 뜻하지 않아도 저절로 반야에 들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수천년 만에 한번씩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이들이 나타나는데 이들은 스승에게서 명상과 같은 수행법을 배운 것이 아니다.

이들은 세상을 사랑하는 좋은 마음과 올바른 삶으로 그 영혼을 완성시켰기에 저절로 우주의 열매가 되어 깨달음의 빛을 밝힌 것이다.

이처럼 깨달음은 때와 연이 무르익으면 저절로 오는 것이니 욕심으로 구해서는 안되며 묵묵히 일상의 바른 삶을 통해 공덕행을 실천해 나가야 한다.
깨달음은 올바른 삶에 의한 결실인 것이지 수행이라는 기술의 완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에 공덕을 쌓지도 못하고 인격이 무르익지도 않은 사람이 무리하게 수행하여 욕심으로 구하려 하다가는 오히려 화를 당하게 된다. 그 동안 깨달음을 얻으려다 많은 사람이 화를 당하고 마도에 빠진 것은 이와 같이 욕심으로 도를 구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도자들은 깨달음을 얻으려고 하기보다는 세상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진정으로 세상을 위해 자신을 바칠 수 있을 때 자신의 업과 아상은 저절로 떨어져 버리고 깨달음은 오게되는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들의 삶은 오직 깨달음을 위한 삶이 아니라 진리를 위한 삶이어야 한다.

깨달음을 얻는 과정도 세상을 축복하는 공덕행이고 깨닫고 나서도 세상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삶이니 깨닫던 안 깨닫던 간에 인간이 결국 해야 할 일은 공덕행 뿐이다.

따라서 인간의 가야할 길은 인생을 수행의 여정으로 삼아 진리를 찾고 배우고 행하여 자신을 완성하고 세상을 축복하는 삶인 것이다.

깨달음은 그러한 여정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증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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