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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수행 본문

☆ 진실의 근원

마음의 수행

gincil 2013. 4. 23. 22:52

[질문] 

>게시판, 주요문답, 새글란에서 글들을 읽으며, 
허 선사님께서 가르치려는 정법이 무었인지 어렴풋이 짐작해 가고 있습니다.  
>또한, 올바른 공덕행 만이 진정한 수행이라는 말씀에 비추어 볼때, 
제가 그동안 마음 공부랍시고 했던 것이 많은 부분 관념에 치우친 것이라는 것도 알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덕행이라는 것은 실천이며, 어떤 마음작용과는 거리가 좀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드는 의문은 (이것도 관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게 있는 어떤 마음의 성향들 (올바르지 않는 일에 집착하는 성향, 두려워하는 마음 등등)을 
극복해 보기위한 마음의 훈련 또는 마음의 연습 (어찌보면 명상이라고도 말할수 있겠네요)들 또한 가치없는 일인지요?  
물론 이같은 성향들도 어떤 업으로 인해 나온 것이므로, 
그것을 상쇄할 어떤 실천행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마음의 연습이란 것은 이같은 업 상쇄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고, 
시간 낭비일 뿐이며 효용이 없는 것인지요?  
가르침에 늘 감사드립니다

[답변] 

수행은 삶 속에 있어야 합니다.
수행과 삶이 분리되면 삶이 그만큼 참되지 못하고 가식적이 됩니다.

수행이란 바른 삶을 사는 것이며 삶속에서 원인을 짓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삶과 수행이 분리되지 않고 참다운 삶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몰라 그동안 동양의 수행계가 세상과 멀어져 세상에 큰 복이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수행을 왜 할려고 합니까?
깨달음이 목적입니까?
아닙니다. 깨달음은 삶의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가 깨닫는다 하더라도 결국 해야 할 일은 세상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이유도 좋은 삶을 살기 위한 것으로
깨닫기 전에도 공덕행을 해야 하는 것이며 깨닫고 나서도 공덕행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깨달음은 선한 길로 나아가는 인간의 길에 있어서 하나의 이정표일 뿐입니다.

그러니 욕심으로 깨닫는 자에게는 그것은 하나도 덕될 것은 없습니다.
깨달음이란 세상을 위해 짐지는 일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선한 사람들은 그러한 고생을 즐거움으로 여기니 
세상을 위해 더 큰 공덕을 짓기 위해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공덕행이 마음의 수행과는 좀 거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며 
마음작용만으로 수행하는 것이 효과가 없는가를 물었습니다.

마음의 수행도 뜻을 내었다는 점에서 수행에 속하지만 본질적인 수행이 되지 못합니다.
지금 님이 생각하기에는 공덕행은 별 효과가 없이 보이고 
혼자 마음을 들어다보며 비우는 마음수행법이 커 보이겠지만
그것은 여태껏 마음을 관하는 수행법이 습관이 되서 그런 것이지 실제 좋은 수행법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원인을 짓지 않고 혼자서 마음을 닦는 일은 인과의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인연이 있어야 하며 원인이 지어져야 결과가 생기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업을 지우는 깨달음의 순간에 도달할 수 있는 것도
실천을 통한 깨우침과 그로부터 얻은 강한 근본과 진실한 기운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따라서 아무런 원인도 짓지 않고 혼자서 수행한다고 앉아있으면
업이 많은 자기 마음 속을 혼자 헤매다 생각과 환상에 빠지기 때문에 
마장에 들게 되는 것입니다.
공덕이 없는 자가 깜깜한 어둠 속에서 혼자 앉아 얻을 것이라고는 
무지와 환상과 마장 밖에 없습니다.

자기 마음속에 눌어붙어 있는 숙생의 업은 생각만으로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실천행이 있을 때 
인연 속에서 업을 지우는 깨달음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무조건 좋은 원인을 지어도 업이 지워지지만 
이치를 알고 실천하면 더 큰 효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팔정도도 먼저 정견, 정사유, 정념으로 먼저 바른 진리를 배우고 새긴 후
정업, 정명, 정정진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평생 하신 것도 먼저 제자들에게 세상의 실상과 이치를 깨우치는 것이었으며
연후에 공덕행으로 그것을 실천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공덕행을 통해 현실 속에서 실상과 이치를 깨우치고 마음을 닦으면
마장에 들 이유가 없으며 삶을 통해 막바로 업을 지워 반야에 들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삶을 통해 수행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수행법입니다.
삶을 통해 인연을 지으며 바쁘게 살아가는 일이 아무런 수행이 안되는 것 같아도
삶을 통해 수행하는 습관을 들일 때 가장 쉽고 효율적으로 업을 지울 수가 있습니다.

세상을 위해 자신의 몸을 바쳐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을 보고 
삿된 욕망에 집착하는 자신을 뉘우치고 사심을 버리게 되는 것이며
진리를 실천하는 가운데 세상을 사랑하는 안타까운 마음에 불이 일어 
자신의 습을 태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을 진실로 사랑하고 섬기는 선근이 있을 때만이 
삿된 자기를 버리고 사심이 없고 맑은 완전한 자기를 이룰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출세욕이나 명예욕 같은 습은 지운다고 생각한다고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선근이 있어 허명보다 참된 공덕과 보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될 때 비로소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삶을 통한 수행이 습관이 되면 살아가는 모든 순간들이 깨달음의 연속이 됩니다.

그러는 순간들이 공덕이 쌓이면
어느 순간 맑고 선한 마음이 자신 속에 오롯이 자리잡은 것을 깨닫게 되며
마침내 세상을 축복하는 맑고 좋은 인간의 마음이 꽃피어 해탈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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