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실을 찾아서

인간의 동물성과 신성 본문

☆ 진실의 근원

인간의 동물성과 신성

gincil 2013. 4. 24. 11:44

마광수의 문화신문 연재소설 제목에 "별것도 아닌 인생이"라는 것이 있다.
이소설에서 그는 그의 문학적 주장처럼 인간의 말초적 감각을 자극하며 그것을
예술적 탐미주의라는 주장으로 호도하고 있다.

이와 같은 관능적 예술의 흐름은 길을 보지 못하고 헤메고 있는 
현대문명의 물질주의 및 쾌락주의와 맥을 같이 한다.

이러한 주장의 내면에는 인간은 근본에 있어서 동물과 다름없기 때문에
완전성과 지나친 엄격성을 주장하는 것은 위선이며
어느 정도 일탈과 쾌락을 즐기면서 한계를 인정하고 살아가는 것이
정상적이라는 관념이 깔려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이 지닌 신성함과 무한한 가능성을 무시하고 천함을 자극하여 
인간을 타락시키고 무의미하게 만들자는 것에 다름아니다.

이러한 흐름이 오늘날 압도적인 현상이 된 배경에는
근대문명의 과학주의와 상대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근대 과학주의는 그동안 전통적·종교적 관습에서 나타나는 많은 미신과 부조리를 
비판하면서 현실속에서 검증가능한 것만을 믿고 상호공존 속에서 진리를 찾아가려고 했다.

이러한 근대과학이 인식가능한 범위내에서 판단하고자 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었지만 
그러나 그 인간적 한계로 말미암아 자신들이 알지도 못하는 영역 
-성자들이 완전한 시각에서 본 절대적 진리와 신성한 근원-까지도 
부정하는 교만을 저지른 것은 매우 큰 잘못이었다.

그들은 사실의 60% 밖에 인식하지 못하는 중생의 어두운 시각으로
자기 멋대로 세상을 판단하여
세상속에는 물질밖에 없으며 인간의 정신이란 단백질의 화학적 반응에 불과할 뿐
세상에는 오직 생존경쟁의 동물적 삶만이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현대과학과 문명은 신성은 존재하지 않고 모든것은 상대적이며
절대적 진리는 인정할수 없다는 또 하나의 독단적 이데올르기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세상속에 있는 길이나 의미를 알지 못하여
진리와 인간에 대해 냉소를 띠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자신들의 시야에 빛이 보이지 않는다고 진리마저 부정해 버린 그들의 단견이
인류의 삶에 미친 결과는 너무나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현대과학과 문명이 인간에게서 삶의 의미와 근거를 제거하고
인생을 단순히 생존과 쾌락을 위한 과정으로 전락시켜 버리자
인류는 신성과 이상을 잃어버리고 동물적인 삶만을 추구하게 되었으며
결국 소유와 착취를 위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일으켜 인류사의 참화를 빚어내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근대과학이 인간의 의미와 가치를 지탱하는 신성과 진리를 부정하고
세상은 무의미하며 인간은 동물적인 존재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리자,
삶의 의미와 근거를 상실한 사람들은 무너져버린 마음의 허공을 메우기 위해
현실속에서 출세와 쾌락을 추구하기 시작했으며

과학의 증언에 의해 신성과 양심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게 된 사람들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인간성을 나타내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길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의 모습인 것이다.

이러한 흐름에 동조하여 현대문명과 예술은 인간의 본질을 알지 못한 채
인간성의 추구와 해방이라는 허울좋은 명분아래
인간의 동물성과 탐욕을 부추기는데 일조하고 있다.

더구나 이러한 경향은 물질자본주의의 상업적 속성을 이용하여
더욱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세상 속에는 신성한 근원이 존재하며 지은 대로 받는 완전한 법칙이 작용하고 있다.

살아 생동하는 생명과 사고할 수 있는 의식이 생겨나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이 세상에 신성한 근원이 작용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사람들이 매일 매일 일터로 나가 무언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원인이 결과를 가져오는 인과의 법칙을 자신의 내면속에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눈이 100% 열린 성자들이 공통적으로 본 가장 소중한 진실들이었다.
모든 성자들은 신성한 근원에 대해 한결같이 이야기했고
완전한 진리를 받들어 지키라고 굳게 말씀하신 것이다.
이러한 진실의 의미를 분명히 안다면 우주의 실체를 다 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진실을 모르기 때문에 현대인들의 삶은
혼돈과 무의미 속을 헤메는 것이며
함부로 지은 악으로 말미암아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우주를 감싸고 흐르고 있는 완전한 인과의 이치는 지은 대로 받게 한다.
선한 것은 좋은 결과를 가져오고 나쁜 것은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니
현대문명과 예술이 예술적 탐미주의나 사실주의라는 미명으로
인간의 동물성과 모순성을 인간의 전부인양 미화한다면
인간세상은 힘과 욕망만이 존재하는 생존경쟁의 아수라장이 되고 말 것이다.

인간은 욕망을 근거로 하여 태어나지만
점차 욕망을 극복하고 완성을 이루어야 할 존재인 것이다.
아무리 성과 욕망이 인간에게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신성함과 가능성을 보지 못하고 욕망과 본능에 집착한다면
그 사회는 신성함은 사라지고 동물성만이 남고 마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욕망과 집착으로 흐려지게 되면
이치를 망각하여 사실을 사실대로 보지 못하게 되고
환상과 편집증 속에서 비양심적이고 동물적인 행동을 보이다
결국 자신과 세상을 망치고 만다.

또한 욕망과 환상을 쫒으면 병이 많이 걸리며 단명한다.
그 이유는 생명력은 살아 생동하는 현실의 삶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삶의 조화와 진실을 멀리하고 환상과 탐욕을 많이 짓게 되면
사실속에서 나오는 생기를 잃어버려 병약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술가들 중에도 사물의 조화와 마음의 정화를 추구하는 이들은
곱게 늙어 장수하게 되지만
환상과 자극을 추구하는 추상파나 초현실주의자들은
비극적이고 단명한 삶을 살게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끝없이 돌고있는 완전한 인과의 고리 속에서
환상과 욕망을 추구하는 예술가들은
타락의 고리인 욕망과 집착과 혼돈의 길을 걸음으로써
영원한 생명력인 신성과의 연계고리를 끊고
탐욕과 무의미 속에서 불행의 늪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보들레르이다.
그는 "악의 꽃"을 쓰면서 인간의 해방과 욕망의 자유를 외쳤다.
그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부정하고 사회도덕과 규범을 조롱하면서
인생은 쾌락을 즐기고 본능을 자연스럽게 표현함으로써 인간다워 진다고 외쳤다.

그러나 인과의 이치는 명확한 것이어서
그가 욕망과 방종을 택한 결과
그는 20대에 낭비벽으로 금치산자가 되고 평생 빚쟁이에 쫓겼으며
성병으로 머리털이 다 빠져버리는 비참한 최후를 받았던 것이다.

이와 같이 인과의 이치는 완전하며 그 가능성은 땅에서부터 하늘끝까지 열려져
있는 것이니 사람으로 난 이상 좋은 원인을 행하여 완성에 이르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현실에 존재하는 인간을 다 똑같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겉으로는 다 똑같은 사람 같아도 그속에는 동물적 욕망에 가득한 저급한
인간으로부터 우주의 근원적 차원에 도달한 완전한 성자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천차만별한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살아생전 욕망과 집착으로 마음이 어두워진 사람들은
사실을 사실대로 보지 못하고 잘못된 판단과 인연으로 불행한 운명을 맞게 되며
죽어서는 한과 집착에 맺혀 유혼이 되어 이승을 떠돌게 된다.

이들 유혼들은 이승을 떠돌면서 꿈과 환상속에 빠져들게 되는데
이들이 꿈과 환상속에서 받는 악몽이 바로 지옥이 된다.
왜냐하면 영적 세계의 법칙에 의해 유혼들이 꿈과 환상속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체험은 실제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서운 사실은 오늘날과 같은 물질자본주의 문명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유와 욕망에 과도하게 집착해
모두 유혼이 될 운명에 처해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참으로 불행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건전한 상식과 양심에 의해 인간적 도리를 지키고
남에게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이는
자신의 생명의 씨앗을 다시 거두어 인간으로 윤회하게 된다.
이들은 큰 한과 집착이 없기 때문에 죽음과 동시에 깊은 잠에 빠지게 되는데

그순간 그는 다시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죽을 때는 모든 집착과 한을 풀고 떠나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차원보다 더욱 더 승화되어
바른 이치와 사랑으로 자신속에 끼어있던 사사로움과 집착을 모두 불살라
맑고 깨끗한 마음의 열매를 얻은 이들은
우주 근원의 진기와 반야의 마음을 얻게된다.

그 진기는 가장 근원적인 기운이어서 모든 것과 교감하며
그 맑은 마음에는 세상의 모든 일이 있는 그대로 비치어 인과의 법을 설하게 된다.

이들의 몸은 우주의 근원적인 순수한 기운으로 가득 차기 때문에
모든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생명력을 지니게 되며
동물적 생존에 필요한 정은 더 이상 생성되지 않아
남여간의 애욕에서 졸업하게 된다.

완성된 이들에게 있어 남녀간의 정염은 세상이 생각하듯이 아름다움이나 쾌감이
아니라 어지러움이며 사소한 개인적인 감정일 뿐인 것이다.

이들은 죽어 우주의 중심인 근원의 차원으로 들어가는데
이 근원의 차원이 곧 우주의 근본인 창조의 차원으로
여기에서 바로 우주가 비롯되고
완전한 뜻이 나타나 온 세상을 지키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 세상속에는 완전한 질서와 법칙이 존재하는 것이며
인간은 자신이 짓는 바에 따라 동물에서부터 신성에까지 이를 수 있는 것이니
세상이 무의미하며 인생이 별것이 아니라고 함부로 말해서는 안되는 것이며
좋은 세상과 축복된 미래를 위하여 참된 공덕을 쌓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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