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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와 수녀는 왜 독신인가? (22) 본문

☆ 진실의 근원

신부와 수녀는 왜 독신인가? (22)

gincil 2013. 4. 24. 12:12

성직자들에게 왜 평생 독신으로 살아가는 길을 택했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세상과 인연을 끊고 자신을 성직에 바치고 독신으로 살아가는 이유를 
세상을 향한 사랑과 진리를 향한 열정이 세상사는 일보다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말대로 그들이 성직자를 선택한 이유가 세상을 향한 사랑이라면 
그보다 더 소중하고 고귀한 삶은 없다. 
그들의 마음 속에 자기를 다 바칠만한 세상을 위한 큰 사랑이 있는 자라면 
반드시 이생을 통해 훌륭한 성취를 이루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성직자가 현실을 살아갈 힘과 근기가 없어 성직의 길을 가기 때문이다. 
이는 오늘날 구도의 길을 가는 대부분의 경우도 그러하다. 

무능력하여 하는 일마다 실패하고 실연이나 나쁜 운명으로 살아가기 힘들거나 
영적 감염으로 사회생활에 부적응한 자들이 가는 길이 종교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이란 인간의 인연을 지니고 태어난 자라면 벗어나기 힘든 인연이다. 
그런데 이런 인연을 벗어버리고 종교에 귀의한다는 것은 
정상적인 운명을 지닌 인간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가장 뛰어나거나 가장 허약한 인간인 것이니 한둘 이외에는 대부분 현실도피라고 보면 틀림없다. 

그들은 세상의 경험을 통해 자신 속에 좋은 원인을 쌓지 않고 
종교의 울타리 속에 안주하여 세상을 잊고 살며 
자신이 알지 못하는 소리를 함부로 지어서 잘 하는 진실이 약한 자가 인기있는 종교인 된다. 
왜냐하면 현 종교 자체가 성자들이 깨달은 세상의 진리가 아니라 
인간들이 만든 우상과 관념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세상을 보는 눈은 더욱 희미해지고 
하느님의 은총만 믿고 자신 속에 지은 용기와 지혜와 인내가 없으니 
다음 생에 나면 세상을 살아갈 힘이 없어 거지팔자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진리는 세상 속에 있으며 세상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절이나 교회 속에 조용히 앉아 수행을 한다면 절대 구원과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 
세상 속에서는 깨어지고 넘어지는 체험이 있다면 세상이 흘러가는 모습이라도 보지만 
가만히 앉아 짜여진 세상만 본다면 결코 세상의 실상과 이치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면 과거 성자들을 모셨던 제자들은 왜 독신으로 살았는가? 하고 물을 것이다. 
성자들의 육친 제자들과 오늘날 종교집단의 성직자들과는 다르다. 
성자들의 제자들은 진리의 제자로 살아있는 성자들의 언행을 따라하면 그대로 깨달음으로 이어졌지만 
오늘날 종교의 성직자들은 영적 믿음의 제자이며 변질된 관념의 제자이기 때문이다. 

성자들은 종교를 만들지 않았고 경전도 만들지 않았으며 자기를 섬기라고 하지도 않았다.
오직 진리만을 받들고 지키고 행하라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종교는 그 뜻과 진리를 지키지 않고 성자들을 우상화하는 일에 종사하고 있으니 
성직자들의 독신이 빛이 바래는 것이다. 

수행자가 되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니다. 
세속보다도 진리를 소중히 여기기에 
모든 거짓과 잘못된 원인으로부터 단절하고 완전한 선업으로 자신을 진리화해야 한다. 

일반인은 진리를 배워 가능한 좀 더 좋아지기를 바라지만 
성직자는 진리의 길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기 때문에 상근기를 지녀야 한다. 
따라서 성직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야 하며 
자신의 모든 애욕과 집착을 버려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성직자의 길을 가는 많은 사람이 근기가 약한 중생으로 
현실을 버릴 수 없으니 위선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재물욕, 성욕, 명예욕에서 벗어나지 못해 온갖 추문을 만들어내는 것이 교단의 현실인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근기가 약한 대부분의 중생들은 성직자가 되어 종교 속에서 구원을 얻기보다는 
현실 속에서 구원과 깨달음을 얻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결혼과 구도의 삶은 병행될 수 있는가? 

한마디로 말해 무방하다. 
왜냐하면 다른 수도과정과 마찬가지로 결혼도 삶의 중요한 과정으로 
결혼생활을 통해서도 많은 실생활을 경험하고 자신을 닦아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석가나 노자, 소크라테스와 같은 성자들도 모두 결혼한 적이 있는데 
이들은 결혼생활을 통하여 중생들의 삶의 어려움을 느끼고 
인생의 덧없음을 체득했으며 다른 사람과 세상에 대한 사랑을 길렀던 것이다. 

선이나 기와 같은 동양의 수련법에서는 부부생활을 하면 도를 닦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수행의 본질이 기의 축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정화에 있다는 것을 안다면 
결혼해서 실제의 삶을 체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수행과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결혼은 사람으로 태어나 경험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사회적 과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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