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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교황의 결정엔 잘못이 없다는데, 그것이 가능한가? (2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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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교황의 결정엔 잘못이 없다는데, 그것이 가능한가? (21)

gincil 2013. 4. 24. 12:12

그들이 무오류권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보는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기독교권 속에 예수님 이래 깨달은 자가 나타났다는 증거는 없다. 
많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나타났으나 그들은 모두 영적 계시를 받은 자들이었으니 
그 정신적 수준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교리에 대해 무오류권을 주장한다. 
그러나 앞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현 기독교의 교리 또한 
예수님의 말씀과 달리 진리의 종교에서 영적 종교로 변질되었으니 
더 이상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하느님에게서 선택된 종교로서의 우월성과 독선성은 거론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그 일례로 기독교의 핵심을 사랑이라 한다. 
그러나 이 사랑의 의미에 대해 기독교 내에서 아무도 아는 자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어찌 교리에 대해 무오류권을 주장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기독교인들에게 사랑을 물어보면 
“사랑은 무조건 주는 것이라던가” 아니면 겸손하게 “사랑은 말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고 
고린도 전서 13장에서는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라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사랑에 대한 좋은 말을 많이 알아도 
그 실체와 이치에 대해 분명히 알지 못한다면 정확히 실천할 수 없다. 
세상을 정확히 보지 못하니 삶의 대부분이 불투명하여 좋은 원인을 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사랑하는 지를 모르고 사랑이 제일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냥 듣기좋은 꽃노래에 불과한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모두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한다고 말을 하는데 
오히려 사회는 점차 어두워지고 불행해지는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그 이유는 사랑을 한다고 하면서 오히려 상대를 망치는 원인을 짓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참된 의미는 바른 이치로 상대의 참된 인간적 가치를 북돋구어 주는 축복에 있다. 
즉 가난한 자에게는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능력을 주고 
잘못된 자에게는 뉘우칠 수 있는 바른 이치를 가르치고 흉폭한 자에게는 벌을 주어야 한다. 

만약 세상의 이치가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가 사랑을 한다고 
악한 자, 흉폭한 자에게 무조건 용서를 한다면 
이 세상은 악과 어둠의 세상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고 무조건 사랑하라는 것은 
어린아이의 손에 칼을 마약을 쥐어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잘쓰면 그것은 아이에게 큰 도움이 되지만 
잘못쓰면 그것은 아이와 그 가족에게 큰 해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세상의 일에 대해 그 실상을 모르며 함부로 하는 말은 
참으로 무책임하며 어리석은 짓들이기에 
세상을 보는 눈도 없으면서 무오류권을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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