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실을 찾아서
죽은 후에 영혼은 죽지 않고 천국이나 지옥에 가나? (14) 본문
영혼의 존재나 인간이 죽어서 가는 사후세계를 보여달라고 한다.
그러나 어찌 하겠는가?
눈뜬 장님인 중생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을.......
그러나 깨달음을 얻은 성자들은 영혼의 세계와 삼계의 모습을 눈앞의 일을 보듯 훤히 보고
이를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도 바쳤다.
그러한 차이는 세상을 보는 시각 차이 때문이다.
세상은 완전하다.
시력이 0.1인 사람과 1.0인 사람이 세상을 보는 차이가 있듯이
사람도 그 맑기와 깨달음의 정도에 따라 세상을 달리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보지 못한다고 해서 없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인간의 사후세계는 인과법상 단절될 수 없는 생명의 연속선상에 있다.
보이지 않지만 인간이 인식하는 물질적인 현상계와 별도로 의식계가 존재한다.
현대물리학은 우주의 근원적인 물질로 각종 쿼크를 제시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시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물질의 일종일 뿐
그것보다 더 중요한 작용을 하는 생명과 의식의 원인은 되지 못한다.
이 우주에는 물질보다 더욱 미세하고 중요한 작용을 하는 것이 생명과 의식으로
현대 과학의 논리에 따르면 생명과 의식의 원인이 되는 물질을 제시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과학의 논리에 의하면 물질은 영원히 물질만 낳게 되는데
그들은 이 우주의 원인을 물질이라 하기에
물질 속에서는 영원히 생명과 의식의 원인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우주에는 이미 생명과 의식이 나타나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이 우주의 근원에는 물질뿐만 아니라
생명과 의식의 근원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한 현대물리학은 우주의 원인을 찾는데
영원히 실패하고 말 것이며 발도 들여놓지 못한다.
물질보다 더 미세한 것이 기운이다.
이 기운은 태초에 끝없는 소용돌이 속에서 무한대의 청탁의 분화가 이루어지는데
거친 기운은 물질의 근본이 되며 순수하게 정화된 기운은 생명력의 근원인 진기가 된다.
이 진기들은 의식과 생명으로 진화되고
그로부터 나타난 생명체들이 뜻을 지어 우주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생명있는 것들은 현상계의 활동을 통해 영혼을 짓게 되고
영혼과 그 속에 지어진 뜻은 물질계와 별도로 의식계라는 차원을 통해 계속 돌게 되는 것이다.
영혼은 진기 속에 의식이 묻어 있는 형태로 존재한다.
이 영혼이라는 형태는 우주의 물질적 근원인 쿼크보다 더욱 미세한 것으로
인간의 감각으로서는 인식할 수 없다.
그러나 없는 것은 아니니 그야말로 유와 무의 경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이 죽으면 몸에서 영혼이 분리되어 뜻의 세계인 의식계로 들어간다.
그래서 가벼워진 영혼은 끈끈한 윤회의 교류대에서 벗어나 높은 차원에 이르게 되고
강한 집착과 한에 의해 끈적해진 영혼들은 윤회의 흐름에도 들지 못하고
생명력의 제일 밑바닥에서 헤매며 꿈을 꾸듯 지옥의 환상에 빠져 들게 된다.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근본을 망치지 않은 일반적인 영혼은 다시 인간으로 윤회하게 된다.
그리고 더욱 업이 사라져 가볍고 자유로워진 영혼은
혼탁한 윤회의 세계를 벗어나 평안한 차원에 머물게 된다.
이것을 영생의 세계라 한다.
이보다 더 큰 공덕행으로 자신을 태워 업을 지워버린 영혼은
더 높은 차원인 천상에 오르게 된다.
이 세계는 의지만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천국이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높은 차원의 영혼들은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면 전륜성왕이나 깨달은 성자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생명의 이치 속에 존재하는 사후세계를 보는 것은
모든 것이 자기를 되풀이하는 존재의 기본원리를 보기 때문이며
영혼이 맑고 가벼워지면 높이 오르고
한과 집착이 많으면 무거워져 밑에서 가라앉을 수밖에 없는 청탁의 이치를 보기에
인과법에 따라 각자가 받는 영혼의 결과가 다름을 보는 것이다.
그러면 단순히 이치에 의해서만 짐작을 하는 것이냐? 그렇지는 않다.
업을 지워버린 맑은 의식은 극미의 상태에서 여러 차원과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여러 차원에 실재하는 영들과 의식을 통하기도 한다.
그래서 농사꾼이 잎줄기만 보고도 풍흉을 짐작하듯이
일반인이 인식하지 못하는 세상의 진실과 이치에 대해서도
눈앞의 일을 보듯 훤히 알게 되고 설명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영혼은 생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반야의 차원을 지나 다시 인간으로 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과거에 존재했던 모든 기억은 지워지고
기질과 성격 청탁 등 근본성품만 남아 새로운 영혼의 원인이 된다.
즉 과거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반야심경에서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상태라고 묘사했다.
이 반야의 차원에서는 과거의 모든 유적 존재는 사라진다.
그러나 없는 것은 아니기에 과거에 지어진 뜻을 따라 다시 새로운 것이 생겨나서
새로운 생명의 씨앗 즉 영혼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이 우주 속에는 유와 무의 경계선 상에 존재하는 극미의 뜻의 세계가
물질계와 별도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뜻의 세계가 완전한 이치에 의해 생명의 세계를 지탱하고 있다.
이러한 완전한 뜻의 세계가 인간의 삶의 근저에 존재함을 알기에
성자들은 조금도 불의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을 진리에 바쳤던 것이다.
이 우주 속에 지어진 모든 것은 다른 변화가 없는 한
영원히 변하지 않고 자신을 되풀이 한다.
이렇게 한번 지어진 근본이 되풀이되는 것을 모태법이라 한다.
그리하여 좋거나 나쁜 인연을 만나 자신 속에 담게 되면
그것이 다시 모태가 되어 자신을 돌게 된다.
이것이 모든 진화의 원인인 것이다.
따라서 세상과 타협하여 한번 어둠을 짓게 되면
끝없이 돌아가는 생명의 순환 속에서 잘 지어온 자신의 생명의 근본에 어둠을 심게 되고
그로 인해 완성으로 나아가는 그의 영혼이 망가지고
또 오랜 시간을 윤회를 돌아야 불행한 일이 예정되기에
성자들은 한번도 악과 타협하지 않고 시련을 감수하는 것이다.
이러한 완전한 영적 질서가 우리의 생명계의 배후에 존재하고 있기에
성자들은 자신의 삶을 바쳐 진실한 인간의 길을 갔으며
우리에게 진리의 길을 가라고 했던 것이다.
깨달은 자는 이러한 생명의 순환 속에 있는 삼계를 눈앞의 일처럼 훤히 보기에
생과 사를 동일한 삶의 변화로 보기 때문에 삶과 죽음에 집착을 가지지 아니한다.
죽음은 노쇠한 몸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몸을 받는 기회가 되는 것이며
자신을 새롭게 키울 더 좋은 기회를 맞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생명의 원리에 의해 자신이 지은대로 사후의 결과가 정해져있기에
아무리 자신의 운명을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다.
영혼이 죽지 않는 한 한 생명의 죽음은 없으며
생명의 질서에 따라 영원히 업에 따라 돌게 되어 있는 것이다.
자살을 해도 영혼이 죽지 않는 한 자신의 삶에 대한 사후의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으니
이를 이해한다면 무지에서 벗어나 생명의 길을 지키며 선업을 쌓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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