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실을 찾아서

대승경전의 유래 본문

☆ 진실의 근원

대승경전의 유래

gincil 2013. 4. 24. 12:24

부처님은 중생을 모두 구하겠다는 보살심으로 끝없는 생을 돌며 세상을 모두 덮을 만한 큰 공덕행을 쌓은 후 범행을 모두 마치고 마침내 인간완성의 경지인 마음의 열매 즉 해탈심을 얻으셨다.

  

해탈심은 마음의 모든 찌끼가 사라져 오직 순수한 맑음 하나 만이 남은 것이니

인간의 의식이 모든 것이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는 경계인 반야와 합일하는 것을 말한다.

  

해탈에 이르게 되면 생각이 일어나지 않고 아무런 업이 없는 맑은 마음에 세상이 있는 그대로 비치게 되니 

세상 일과 부딪히면 실상이 생각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반야심에 닿아 세상 일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해탈의 경지를 사실을 사실대로 바로 본다고 하여 눈을 떴다, 깨달았다고 하는 것이며 이에 반해 중생은 눈앞의 일도 바로 보지 못한다고 하여 눈뜬 장님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깨달은 자가 실상을 보고 물으면 눈뜬 장님들은 실상 속의 일을 전혀 알 수가 없다. 마치 장님에게 콩을 손에 쥐어주고 이것이 콩이다고 하면 장님은 그것이 콩인지 알고 실상을 다 아는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눈을 뜬 자가 한 걸음 더 나가 콩 색이 노랑인지 검정인지 물으면 장님은 전혀 알 수가 없다. 보이지 않으니 알 길이 없는 것이다. 여기에 눈을 뜬 자와 보지 못하는 장님과의 차이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학문과 종교의 진정한 정체이니 현대문명이란 실상을 보지 못하는 중생들이 자기 생각으로 논리를 지어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재단하며 주물러놓은 결과인 것이다. 그래서 똑같은 현상을 두고서도 사람에 따라 정반대 논리가 나와 매일 서로 다투고 있으며, 진리를 밝혔다는 종교간에도 싸우고, 인간을 행복하도록 하기위해 만든 공산주의는 오히려 세상을 불행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던 것이다.

  

깨달은 자는 세상을 볼 때 있는 사실 그대로를 말한다.

자연에는 눈앞에 있는 일들 간의 인과관계가 있을 뿐 추상적 개념이나 논리 같은 것이 없기 때문에 성자들은 어려운 문자나 개념적인 학문적 용어를 쓰지 않고 평범한 언어들로 세상을 표현한다. 완전한 법계인 사실 속에서 완벽한 이치에 따라 나타나는 세상 일을 보시고 인간이 행복해지는 길과 해탈에 이르는 길, 그리고 이 세상이 극락정토가 되는 길을 있는 그대로 쉽게 설명하신 것이다.

  

그래서 현대 불교학자들은 부처님의 초기 가르침의 원형을 숫타니파타나 잡아함의 사실적인 구절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은 이치를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대구형식이 많이 사용되며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평범한 언어로 쓰여 있다.

  

부처님의 모든 업이 사라진 맑은 해탈심에 비치는 실상의 이치는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같다.

  

부처님은 생각으로 법을 만들어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보이는 사실과 그 속에 존재하는 이치를 있는 그대로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래는 참된 말만을 하며, 사실만을 말하며, 진실만을 말하며

속이는 말을 하지 않으며, 사실과 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고 전해지는 것이다.


아함경에 여러 장소에서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구절들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도

이와 같이 같은 현상 속에는 언제 어디서나 같은 이치가 되풀이되고 있음을

항상 똑같이 보셨기 때문이다.

  

부처님에게 있어 이 세상의 모습은 있는 그대로 우주의 진리가 스며있는 경전이었으며

그것을 나타난 대로 표현하면 그것이 진리의 법음이었다.

그래서 깨달은 자는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를 말로 표현하지 문자로 억지로 말을 짜 맞추지 않는다. 

이러한 성자들의 가르침은 항상 눈앞에서 목격할 수 있는 일상적인 일이며 너무 쉬운 말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머리 속에 많은 지식이 든 자들에게는 너무 평이하고 가치없어 보인다. 

그리고 너무나 쉽고 맑은 진리이기 때문에 근기가 높지 않고 마음에 어두운 자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맑은 물에 물고기가 놀지 않듯이 초기 성자들의 곁에는 사람이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부처나 예수와 같은 성자들의 초기 가르침은 욕심이 많고 관념에 찌든 기존 기득권 세력에게 항상 거부받았으며 마음이 순수한 자들이나 하층민들에게만 전해졌던 것이다.

대승경전을 보면 항상 부처님이 수천명의 군중과 수만의 보살들의 환호 속에서 설법을 했다는 구절들이 나오는데 실제 부처님의 제자가 9명 뿐인 것은 그의 곁을 항상 따라다니며 법을 배우고자 했던 사람이 9명밖에 없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거친 환경의 인도 전역을 돌아다니며 법을 전하다 길 위에서 돌아가신 것은 법을 들으러 오는 사람이 없어 자비심에서 법을 전하려 사람을 찾아다녔기 때문이었다. 전해오는 말처럼 가만히 앉아있어도 그렇게 법을 들으러 오는 사람이 많았다면 구태여 수만리 거친 인도 황야를 맨발로 돌아다닐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부처님이 돌아가시고 제자들이 법을 전하기 시작하자 점차 불교가 흥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제자들이 부처님의 맑고 순수한 가르침을 당시 인도 환경과 중생들의 입맛에 맞게 조금씩 논리를 보태고 양념을 쳐 미화를 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기독교 또한 마찬가지이니 종교의 역사는 이러한 진리의 변질사연이 숨어있는 것이다.

  

성자들은 가르침을 글로 쓰지도 않았고 종교도 만들지 않았다.

그냥 있는 그대로 자연 속에서 일어나는 정해져있는 세상의 진실과 인간이 구원을 받는 길을 밝혔을 뿐이다.

이것을 후대의 제자들이 미화하거나 우상화하여 중생들의 입맛에 맞추자

종교가 세속화되면서 급속히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모든 종교의 피할 수 없는 변질과정이니 세상을 모두 보신 부처님께서는 다른 세상일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가르침마저 세상 인심에 의해 오래가지 못하고 변질될 것을 미리 아시고 정법이 500년 밖에 가지 않는다고 하신 것이다. 정법이 500년이라는 것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초기에 부처님이 설한 실상에 관한 유법(有法)이 힌두교의 영향을 받아 대중부로 자유분방하게 변형되기 시작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대승불교가 나타난 시기가 바로 A. D. 1~2 세기로 부처님 입멸이후 약 500년이 지난 시기이기 때문이다.


초기 불교의 가장 권위있는 부파가 있는 것을 설명했다 해서 설일체유부이다.

이 학파의 철학체계는 부처님 사후 약 천년 간에 걸쳐 완성된 것이지마는 '모든 것이 있다'고 하는 것이 기본입장이었다.

이들은 사실에 기초하여 명확한 인과의 이치를 밝히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이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존재하는 사실들간에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현상을 이루는 원리(법, 다르마)를 밝히려 했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실로 존재하는 것이라 생각하여

세상의 모든 존재들을 내면세계와 객관세계로 나누어 체계적으로 분류하였다.

이것을 제법분류법이라고 하는데, 구사론에서 말하는 5위 75법이 그 완성된 모습이다.

  

5위(位)는 이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정신과 물질세계를 크게 다섯 가지 요소로 분류한 것으로

물질적 요소(색법), 마음의 요소(심법), 마음의 작용(심소법), 물질과 마음이 어우러진 나타난 것(심불상응행법), 인간의 사량으로는 잘 알 수 없는 것(무위법) 으로 구분하였다.

그래서 모든 존재하는 것이 연기법으로 해석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들은 법(法)이라는 것은 삼세(三世) 어디서나 있으며

인간의 내면세계와 외부세계의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으므로

법은 삼세(三世)에 실유(實有)한다고 했다.

이를 삼세실유론이라 한다.

  

따라서 이들에게 있어 무위법 또한 대승의 해석과는 달리 하나의 존재하는 유적 형태였으며 

부처님의 해탈심 또한 인과관계의 결과로 나타나는 유적 존재였던 것이다.

  

이러한 초기의 실상에 근거한 가르침은 점차 제자들에 의해 불교가 논리화, 사변화되고 

힌두적 환경과 정치적 영향으로 다른 이교의 관념들이 들어오면서 그 생명력이 약화되게 된다.

  

그래서 초기 부처님의 유법을 숭상하던 상좌부 중 일부가 개혁적인 성향을 띠면서 대중부로 갈라져 나갔고 각자의 불법에 대한 견해에 따라 20여개 파로 나눠지면서 각 부파의 성향에 따른 경전이 만들어지게 된다.

  

지금 초기의 경전으로 알려져있는 아함경도 모두 한꺼번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비교적 초기에 설일체유부 계통으로 보이는 잡아함경, 중아함경이 만들어졌으며 그후 법장부 계통의 장아함경이 나타나고 진보적 성향을 가진 대중부 계통의 증일아함경이 제일 나중에 만들어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부파불교 내부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부처님 사후 500년이 지난 기원 전후부터 대중부를 기반으로 대승불교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당시 상좌부를 근간으로 한 기존 부파불교는 승원을 중심으로 고도의 복잡하고 난해한 법(法)논리를 전개하면서 소수의 지식인들만이 알 수 있는 철학적인 종교가 되어갔고 왕실과 귀족들의 지원아래 엘리트적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그래서 재가 신자들과 개혁적인 대중부 승려들은 중생들의 아픔을 외면하고 권력과 유착하여 일신의 안락함을 누리면서 추상적인 논란만 일삼고 있는 기존 승단을 비판하면서

부처님의 본래 정신으로 돌아가 중생들의 구원을 위한 불교가 되자고 대중부를 형성하고 대승불교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들은 기존 승려의 편협하고 이기적인 모습을 '소승'으로 공격하고

스스로를 '대승'이라 이름하면서 경전을 편찬하고 대중적인 신앙운동을 발전시켜 나가게 된다.

  

그들은 당시 국수주의화되고 있는 당시 인도의 정치적 격동기를 틈타 다시 종교로 정립된 힌두교에서 믿음의 종교인 박티신앙을 받아들여

부처를 믿기만 하면 법을 몰라도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아미타불 신앙을 발전시켜 나갔고

대중부의 철학적 영향을 받은 나가르주나(용수)는 중관사상을 마련하여 대승불교의 철학적 기초를 마련하게 된다.

  

부파불교 중에서 대중부의 교리는 매우 자유분방하고 개혁적이어서

그들은 과거 부처님의 말씀에 대한 얽매이지 않았고 매우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논리를 변형시켜 나갔다. 

이러한 과정에서 당연히 사회적 배경인 힌두교의 영향을 받아들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대중부의 교리를 살펴보면 거의 대승불교의 교리와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대승의 기본교리인 불타론(佛陀論), 보살론(菩薩論), 심성본정설(心性本淨說) 등도 대중부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즉 대승불교는 초기 부처님의 가르침이 숨어있다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인도라는 힌두적 지역적 환경에서 변질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연구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사변적 논리가 발달해 나타난 부파불교의 철학적 연구결과였던 것이다.

  

이로서 모든 것이 변화하듯이 부처님의 정법 또한 시간의 변화를 넘어서지 못하고 

부처님이 예언하신 대로 정법이 500년이 지나자 그 원형이 크게 훼손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승불교는 우리들이 생각하듯이 인도에서 기존 소승불교를 뒤엎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반동적 개혁운동이었을 뿐이며

인도 불교의 역사는 기존 부처님의 가르침을 견지하고 세부적인 내용을 계속 연구해간 상좌부 계통의 부파불교의 역사였다.

  

중국의 구법승 현장이 인도에 체류하던 7세기 때에 쓴 글을 보면,

기존 부파 불교인들이 갖가지 상이한 교리적 입장에 따른 대립·쟁론을 벌이는데

“대부분 소승을 배우고 대승은 믿지 않는다”라고 기술하고 있는 것은

당시 인도에서 대승이 매우 소수파였음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13세기경 인도 불교가 본토에서 자취를 감추게 될 때까지 계속되었으며

대승불교는 중국 등지의 북방으로 전래되어 카니시카왕의 제4차 불전결집 이후에야

고도의 철학적 사유로 말미암아 북방에서 크게 인기를 얻게 된다.

  

그 이유는 인도북방과 중국에서는 초기 불교교단의 전통과 영향력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었고

대승불교의 철학적 논리과 수행 중시 사항이 중국의 사유적이며 도가적인 수행 기풍과

그 맥을 같이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인도내의 소수 개혁파인 대승론자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철학적으로 전개하여 완벽한 이론 체계와 관념체계를 갖추어가며 남몰래 경을 만들어나가며 세를 확산해 나갔다. 그 결과 AD 1세기경에 반야계통의 대승경전이 나타났으며 AD 2세기경에 화엄경이, AD 4세기경에 법화경이 지어졌다. 

  

그리고 3세기 경에는 나가르주나(Nagarjuna:龍樹)에 의해 공에 관한 철학적 논리가 부여되면서 대승불교가 완전히 틀을 갖추게 된다.

그는 여러 저술들을 통하여 <반야경>의 공(空)사상을 철학적으로 논리화시키고

대중부의 철학체계를 발전시켜 부처님의 사실적인 견해와 기존 힌두교의 주장들을 모두 비판 배척하게 된다.

  

용수는 모든 존재는 연기에 의하여 생기므로 단독으로 존재할 수 없으니,

이것을 깨달으면 진공중도의 바른 견해를 얻을 수 있다는 반야공관을 설하였는데, 

이 설에 기초를 둔 학파를 중관파(中觀派)라고 한다.

  

중관파의 시조인 나가르주나(용수)는 남인도 안드라 왕조의 데칸고원에서 탄생하여

젊었을 때에는 브라만 출신으로 방탕을 일삼다가 후에 불교를 배운 사람으로서

힌두사상 뿐 아니라 그 당시의 여러 사상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는 처음 유부에 출가하였으나 후에 대승의 교리를 체득한 후,

중싸타바하나왕조의 보호아래 공 사상을 펼치다 나가르쥬나콘다에서 입멸하였다.

  

저서로는 [중론(Madhyamakakarika,中論)], [대지도론(大智度論)],

[대품반야(大品般若)], [십주 비바사론(十住 毘婆沙論)]이 있는데,

특히 [중론] 은 중관학파를 형성하여 6세기 이후에 크게 흥기하게 된다.

  

용수 탄생 당시 인도 불교계는 기존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아비달마 승단들이 20여 종의 교파로 난립되어 있었고

  

한편에서는 이에 불만을 품은 혁신적인 불교도들이 대승경전의 편찬과 대승불교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또 불교외적으로는 전통적인 육파철학(① 산키아(Smkhya)학파

② 요가(Yoga)학파 ③ 니야야(Nyya)학파 ④ 바이세시카(Vaisesika)학파

⑤ 미만사(Mims)학파 ⑥ 베단타(Vedant)학파)이 하나 둘 정비되어가면서

대중적인 힌두교가 서서히 인도사회를 점령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상계의 혼돈 속에서 공 사상의 대가인 용수가 탄생하여

그 당시 사상적인 흐름인 현실과 이상을 구분한 이원적 사유방식으로 불교를 재창조하게 된 것이다.

  

용수는 『중론』에서 모든 사물은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의존적인 연기관계로 존재하기 때문에 자성이란 없으며 모든 실체는 공이라고 한다.

  

자성이란 것은 인과 연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자립적인 것이며,

항상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홀로 존재할 수 있는 고정불변한 실체라고 할 수 있는데

연기법으로 이루어진 세상에선 홀로 존재하는 자성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이 세상의 본질은 무자성(無自性)이며 공이라고 하는 것이다.

  

용수는 부처님이 실체에 대해 하나의 법을 밝힌 것과는 달리

“세속적인 덮힌 진리와 최고의 진리에 기초하여 붓다는 법을 설했다”고 주장하면서 이원론적인 논리전개를 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최고의 진리(Param rtha, 眞諦, 勝義諦)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실체로서 인간의 사고 내지 인식작용이 미치지 않는 초월적 상태를 말하는데

이것은 플라톤의 이데아의 세계, 본질의 세계와 유사하며 세상의 흐름과 무관한 우주의 영원한 무루의 실체를 말한다.

  

이에 비해 덮인 진리인 속제(俗諦, 世俗諦)는 상대적인 진리로 인간적 사유에서 본 법을 이야기하는데

플라톤의 이론에 비유한다면 현상의 세계, 동굴의 세계를 말한다.

  

그래서 진제에 의하면 이 세상의 일체 사물은 생겨나지도 멸하지도 않으며

늙고 죽은 것도 모두 거짓된 관념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래서 사물이 생겨나고 멸하며, 인간이 늙어서 죽는 것은 <덮힘>의 결과에 지나지 않으니 이 <덮힘>을 제거하면 불생, 불멸의 무루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견지에서 용수는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덮힘>의 세상이며 꿈과 환영에 불과하니

눈을 뜨기까지 그것은 가슴을 괴롭히는 고통의 바다지만 

일단 눈을 떠버리면 그 꿈은 아침 햇살 속의 이슬과 같은 것이니

더 이상 꿈 속에는 한 조각의 진리나 사실이 없으며

영원히 자유로운 평안과 해탈 속에 머무르게 된다는 것이다.

  

용수는 이와 같이 <중론>에서 <반야경>에 나타나는 공관을 이론적으로 해명하고

대승불교의 역사적 위상을 확립시켰지만

생생한 깨달음의 실체인 해탈지경을 실체가 없는 관념적인 공으로 변질시킴으로써

불교는 사실에 관한 실천적인 법에서 관념이 지배하는 추상적인 법으로 변질되게 된다.

  

즉 부처님의 해탈지경은 업이 사라진 인간의 완성된 마음으로 우주의 실상과 진리를 비추는 생생한 거울이었는데

관념론자의 사고와 논리에 의해 철학적 사유로만 존재하는 실체가 없는 텅빈 허공으로 변해 버리고 만 것이다.

  

이때부터 인간완성의 모범적인 경지인 부처님의 해탈지경 대신에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텅빈 허공이 깨달음의 실체로서 자리잡게 된 것이다

  

부처님은 생생한 깨달음의 경지가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나타나기 이전의 반야지경이라는 이야기를 했지 이 우주가 공하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는데

후대의 수행자들은 선정 수행시 일시적으로 체험하는 텅빈 의식의 존재를 보고

이것을 자기 생각으로 만유의 근본인 우주의 바탕으로 오해한 것이다.

  

이것이 후에 아뢰야식으로 발전하면서 유식론의 근거가 되는데

이처럼 대승의 기초가 되고 있는 공사상과 유식론은

후대의 수행자들이 깨닫지도 못한 자신의 체험을 불교 속으로 가져와 부처님 법을 변형시킨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연기하면서 변한다고 하여

눈앞에 존재하는 이 세상과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현실마저 고정된 실체가 없는 공이라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관념의 극치요, 사실을 부정하는 말법의 소리인 것이다.

  

이로서 불교는 눈앞의 일들마저 무시하는 관념적인 종교가 되었으며

현실을 경시하고 실천력이 떨어지는 무기력한 종교가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판단할 때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현재라든가 우리 생애라든가 인류생존시라든가 우주존재시라든가 하는 기준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눈앞의 현실을 판단해야 하는 실제상황을 관념으로 굳이 무시하고

모든 일을 관념적인 우주시간으로 보아 영원한 것이 없다고 공하다고 한다면 

이보다 더 어리석고 세상을 속이는 일은 없는 것이다.

  

기준이 없이 태초의 시간까지 고려해 사물을 판단한다면 

어떠한 인과나 판단을 할 수가 없으며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용수는 힌두교의 마야사상을 받아들여 

이 세상은 무지한 범부들이 집착하고 있는 것과 같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오온을 필두로 하는 제법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그 환상을 벗어나면 본래 속박되지 않고 해방되지도 않은 제법의 본래 모습인 진여를 보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유정에서부터 열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꿈이나 환과 같으며

부처님의 깨달음마저도 하나의 차별관념에 불과하다고 하는 것이다.

  

이처럼 불제자의 입에서 생생한 부처님의 깨달음의 실체를 부정하고

해탈마저 하나의 분별심이며 착각에 불과하다는 말을 하고 있으니

어찌 이것이 올바른 법의 실상을 밝힌 말이며 불제자의 말이라 하겠는가?

  

그런데 오늘날 이러한 논리가 불교의 가장 차원높은 사상으로 인정받고 있으니

그래서 요즘의 불교가 부처님의 원 가르침에서 많이 벗어났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나가르주나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대승불교는

부처님의 기본적인 가르침이며 삶을 구성하는 실체적 요소로 간주되었던

모든 다르마(法)와 실체를 부정하고 모든 것이 공하다는 관념을 받아들임으로써

기존 불교계를 지배해오던 부파불교의 승단인 소승불교와 서로 양립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부처님의 사실적인 법을 이어받은 전통적인 설일체유부에서는

이러한 중관학파를 ‘도무론자(都無論者 : 모든 것이 무라고 부정하는 자)’라고 하였고,

경량부는 세친의 〈구사론〉이나 그에 대한 경량부 주석서를 통해

‘일체의 법체가 모두 없다’고 하는 사람들을 ‘일체가 없다는 집착’에 빠져 있다고 하여 이단으로 간주하였다.

그리고 인도불교의 전통을 이어받은 스리랑카 상좌부에서도 중관학파를 대공부(大空部)라 하여 이단으로 비판하고 있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우리들은 이러한 현상을 단순하게 생각하거나 쉽게 넘겨버려서는 안된다.

  

역사와 법통을 가진 거대한 기존 교단에서 새로 나타난 사상을 이단으로 간주하는 것은

그만큼 대승의 교리가 기존 부처님의 가르침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점이 많다는 것을 명백히 나타내고 있는 것이니 우리가 대승불교의 공사상을 판단하는데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같은 대승불교의 유식학파에서조차 중관학파를 ‘있지 않음’에 집착하고 있는 극단론자로 공격·비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처럼 유무의 극단설을 비판·부정하여 연기 중도를 선양하려 했던 중관학파가

도리어 무 또는 공만을 주장하는 극단론으로 취급받아 역공 당했다는 사실은

논리로서 우주의 실체를 규명하려 했던 관념적 사변론의 당연한 귀결이었다.

  

이처럼 대승불교에서 일체를 부정하고 우주의 실체가 공하다는 결론을 내리자

불교는 힌두교와 거의 관념의 차이가 사라지게 된다.

  

처음부터 브라만적 사고방식 속에서 생겨나 자라온 불교였고

힌두교와 더불어 교리의 변천이 이루어졌으며

나중에는 힌두교 속으로 함몰되어버린 불교의 역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부처님의 사실적인 가르침은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의 교리변천을 거치면서

다시 힌두교화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이것이 나중에 힌두교파에서는 불교가 힌두교와 유사한 교리를 가진

지파의 일종으로 무리없이 수용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힌두의 최고철학가 상캬의 不二論(Advaita)철학을 살펴보면

현실을 인정하되 그 실체는 공하다고 보는 대승 불교의 이중적 사고방식과 동일함을 알 수 있다.

  

그는 절대자 브라흐만은 절대 존재, 지고한, 순수한 의식은 

말과 관념을 넘어선 세계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부정적인 표현만을 통하여 그 근처까지만 접근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존재로서의 순수의식, 지고한 존재를 '높은 브라흐만'이라 하고

반면 속인들이 생각하듯 현상세계를 창조하는 낮은 창조신을 '낮은 브라흐만'이라 한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진리를 궁극적 진리와 세속적 진리를 구별했다.

즉 인간의 말과 생각으로 접근할 수 없는 궁극적 진리의 세계와

인간 세계에서 통하고 표현되는 세속적 진리의 세계로 구분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세상에서 말하는 신, 업, 윤회, 자아, 창조 등은

궁극적 진리로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세속적 진리로 본다.

따라서 신에 의해 나타난 최고의 지식인 베다의 공부와 선정을 통해서

신의 실체를 만나야만 해탈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힌두교의 우주관과 수행법은 사실과 실천행을 중시하는 부처님의 가르침과는 달리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과 선정을 중요시하여 현실과 유리되는 경향을 보이게 되고

이것이 불교에 영향을 주어 다시 불교는 공과 선정에 몰두하는 현상을 보이게 된다.

  

중관학파의 말대로 세상이 고통이고 환상이며 나의 실체가 없다면

그러한 사고방식과 인생관을 가진 사람은 삶을 소중히 여기고 좋은 원인을 짓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을 것이다.

  

대승불교에서는 내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모든 집착이 헛된 욕망임을 알았을 때

집착을 버리고 사심없이 바르게 살 수 있다고 하지만

어차피 환상인 세상에서 옳고 그름마저 의미가 없고 해탈마저 분별심에 불과하다면

선악을 가리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신을 불태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또한 정말 중관학파의 주장이 사실이고 이 세상이 헛되다고 한다면

사람들이 자기 멋대로 산다고 해도 양심이 거리낄 일이 아무 것도 없다.

왜냐하면 세상은 공이며 실제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공덕의 가치와 인과법, 사실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사라지고

모든 것을 부정해버린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중관사상이 유행하면서

세상은 어둡고 무기력해지며 사람들의 삶은 운명적이고 체념적으로 변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후대의 대승불교를 믿은 동양사회는 

사람들이 공을 찾느라 선업과 악업이 모두 소용없다 하니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아 사회는 어둡고 무지하게 되었고 

공한 세상에 적극적으로 좋은 원인을 지을 이유가 없으니

가난하고 나쁜 일이 많아져 어둡고 불행한 세상이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초기 가르침인 실상과 진리에 근거한 최고의 과학을 무시하고

관념적 논리에 빠져 인간이 가야할 길을 외면함으로써 불교가 받은 업보였으니

부처님이 현실 속에 최고의 과학과 인간세상이 행복해지는 길을 밝혀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계승하여 발전시키지 못하고 

또 다시 우매한 힌두교의 철학과 신앙을 받아들여 오염됨으로써

과학과 이성을 앞세운 후발주자인 서양에 정복당하는 역사적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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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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