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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如來): 2. 한 알의 씨앗 본문

☆ 자연의 가르침

여래(如來): 2. 한 알의 씨앗

gincil 2014. 2. 6. 12:40

2. 한 알의 씨앗

 

깨달음을 얻고 나서 어느 곳에서도 인간적인 대접을 받아보지 못하던 나는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이 오히려 당연한 일같이 여겨지면서도 마음은 그렇지가 못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맥 빠지는 일들뿐이었다.

그렇다면 나의 삶은 얼마나 더 많은 수모와 방황 속을 헤매야 하는가. 그러면서도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잠시도 중단할 수 없었다.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모두가 나를 버린다 하더라도 내 마음은 그들을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나의 유일한 희망이요, 내 삶의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달리는 버스 안에는 사람들이 많이 타고 있지 않았다. 나의 시선은 차안을 둘러보았으나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바로 내 앞좌석에 여승(비구니(比丘尼))이 앉아 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여승이 뒤로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어린아이가 잘못을 들켰을 때처럼 가슴이 뛰었고, 죄인이 된 것 같은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말을 붙였다.

“스님, 말 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나는 먼저 상대에게 승낙을 구하고 나서 다시 물었다.

“스님, 혹시 스님 주위에서 진실한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내 질문에 여승은 조금 당황하는 것 같았다.

나는 버스 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잊고 여승에게 말을 계속했다.

“나는 부처의 말을 아는데 그 가르침을 전할 곳이 없구려. 만일 스님이 나에게 진실한 사람이 있는 곳을 알려 준다면 나도 스님이 원하는 것이 있는 곳을 알려 드리겠소.”하고 말했다.

그러자 여승은 잠깐 동안 나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말했다.

“어디까지 가십니까?”

나는 영도까지 간다고 대답했고, 스님 자신은 초량에서 내리는데 나에게 차를 대접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버스가 초량에 도착하자 나는 여승을 따라 차에서 내렸다.

내가 앞장서서 주변에 있던 찻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여승에게 먼저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대하여 물었으나 확실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조심조심 석가모니의 삶을 통해 보는 세상의 일을 이야기 했다.

여승은 나의 이야기에 지루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관심을 가지고 들어주었다.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4시간이 넘게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도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나는 영업시간이 끝났다는 그곳 종업원의 말을 듣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있었다.

나는 스님에게 집 전화번호가 있는 명함을 건네면서 시간이 있거든 연락해 달라고 당부를 했다.

 

다음날 나는 오랜만에 나를 찾는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어제 밤늦게까지 대화를 나누었던 여승이었다.

그녀는 나의 집 약도를 물었고 나는 그녀에게 어떤 기대를 갖지는 않았지만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만이라도 신바람 나는 일이었다.

그녀는 내가 하는 말을 전부 믿는 것 같진 않았지만 열심히 들어 주었다.

“나는 세상에서 최고에 이른 자이며 나는 자신을 여래(如來)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나를 앞설 자가 없습니다.”하고 내가 말했더니 그녀도 이런 말을 했다.

어떤 큰 스님이 그녀를 보고 깨달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물어 보았다.

“도대체 당신은 무엇을 가지고 자신이 깨달은 자라고 생각합니까?”

나의 질문에 여승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장님이 눈을 떴다면 스스로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이 눈을 뜬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세상을 볼 때 마다 알게 될 것입니다. 깨달음 또한 이와 같은 것입니다.”

 

여승은 내 말을 듣고 돌아갔는데 다음날도 내가 집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찾아왔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하여 설명해 주었다.

“깨달음이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선근이 피고 져서 수없이 계속되는 동안에 하늘도 땅도 움직일 수 없는 마음이 그 속에 피어야 비로소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을 것이다.

만일 책을 통하여 이런 일을 알 수 있다면 왜 지난날 많은 수행자 속에서 깨달은 자가 나지 못했으며, 기도나 고행을 통해서 깨달음에 나아갈 수 있다면 어찌 과거에도 그런 사람이 없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깨달음이란 오직 공덕을 통하여서 오는 것이니 먼저 그 근본이 있어야 하고 다음은 그 바탕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 모든 이치가 자연 속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만일 그릇된 자가 있어서 자신을 깨달은 자라고 말하고 있다면 그 자는 분명히 어떤 문제가 있을 것이니 그런 자는 나를 만나지 않거나 나를 만난다 하더라도 아무 것도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만일 당신이 오늘도 나의 말을 듣고 마음에 닿는 것이 없다면 나와 함께 깨달았다고 하는 자가 있다는 곳으로 여행을 해보면 진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내 말을 듣고 돌아갔던 여승이 다음날 다시 와서 나에게 말하기를 자기에게 돈이 십만 원 정도 있는데 정말 여행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면 당신이 어떤 사람들을 만날 것인지 먼저 상대를 정하라. 그리고 이 여행에서 다섯 군데 정도의 상대를 만나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나의 의견을 말했다.

나는 여승과 함께 다음날 여행을 출발했는데 처음으로 찾아가서 만난 상대는 자신은 깨달은 자도 아니며 또 소문처럼 그런 능력을 갖고 있는 자도 아니라고 부인을 했다.

나는 여승과 함께 미리 선정했던 다음 상대를 만나기 위해 길을 재촉했다. 그러나 상대가 머물고 있다는 곳을 찾아가면 그 곳에는 상대들이 없었다.

나는 몇 군데를 더 찾아보고 나서 그들은 깨달은 자가 아니라고 여승에게 일러주었다.

그리고 그들이 왜 그런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그 비밀을 말해 주었다. 여승은 그때마다 나의 말을 관심 있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 있던 진실들을 하나씩 차근차근 전해 주었다.

여승은 과거 성인(聖人)들의 삶과 삶 속에 존재했던 일들에 대해 나의 말을 듣고나서 더 이상 여행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나는 여승과 함께 마지막 방문지로 조계사를 찾아갔다. 내가 그곳에 가자고 한 것은 행여나 이 나라에 있을지도 모르는 진실한 수행자들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마침 풍채가 당당해 보이는 승려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매우 정중하게 예를 갖추며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스님께서는 나의 말을 다르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혹시 스님께서 진실한 분을 알고 계시나 싶어서 여쭈어 보는 것입니다.”

승려는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대뜸 “어떤 자가 진실한 자인가?”하고 물었다.

나는 다시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바로 보고, 바로 듣고, 바로 말하는 자를 찾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그 승려는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와 여승을 보고 따라오라 하고는 성큼성큼 빠른 걸음으로 앞장을 섰다.

한참을 걸어서 몇 개의 골목을 돌아서 어떤 찻집 간판이 걸린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는 빈자리로 가서 앉더니 우리에게 앉으라는 말도 하지 않고, 우리의 의향을 묻지도 않고  차 석 잔을 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나를 먼저 시험해 보겠다고 하면서 나의 공부가 얼마나 되었는지 알아보아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에게 알아보아도 좋다는 의사를 표했다.

그러자 승려는 이렇게 물었다.

“캄캄한 밤중에 금 까마귀 날아가는 도리를 아십니까?”

나는 그 말을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싶어서

“세상에 금 까마귀가 있기는 있는 것이요?”하고 확인했더니 승려는 벌컥 성을 내더니 혼자 나가 버렸다.

나는 그들의 삶에 한없이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과연 그들은 무엇을 알고, 무엇을 전하고 있단 말인가.

그때까지 내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여승에게 이런 사실을 말해 주었다.

“장님은 없는 것을 가지고 논쟁을 하고, 눈을 뜬 자는 있는 것을 가지고 논쟁을 한다.”

 

나와 여승은 부산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여승은 내가 진실로 깨달은 자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아직 확신이 가지 않은 모양이었다.

여행을 다녀온 후에도 여승은 자주 연락을 했는데, 그녀가 알고자 하는 대부분의 질문들은 내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를 만나더니 시험을 하려고 했다. 그녀는 나를 잠시 만나자고 하면서 시간을 물었다. 내가 좋다고 했더니 어떤 찻집으로 갔다.

여승은 그녀가 필기해 두었던 글을 꺼내 읽으면서 무슨 글인지 알아보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 글을 듣고 나서 내용에 대해 말했다.

“저 말을 한 자도 깨달은 자이다. 저 말을 한 자가 누구인가?”

그러자 여승은 오열을 터뜨리며 지금 자신이 읽은 글은 부처님의 말씀을 보살이 전한 것이라고 말했다.

여승은 다음날 나의 집으로 찾아와서 내 앞에서 세 번을 절하고 제자가 되기를 청했다.

나는 비로소 깨달음을 얻은 지 3년이 지나서야 첫 제자를 두게 되었다.

여승은 나의 제자가 되고 나서 자신이 겪었던 지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삶의 바른 길을 찾기 위해 승려가 되었으나 진리를 알지 못해 방황해야 했던 지난 일들을 고백했다.

나는 그 여승에게 「소연」이라는 이름을 새로 지어주었다.

 

 

소연

이 이름은 내가 세상을 위하여

처음으로 지어준 이름이다.

나는 이 이름을 지어놓고

내 모든 비밀을 이야기해 주었다.

 

 

 

소연 앞에 바친 시

 

소연

외로운 가슴에 핀

한 송이 꽃이여.

이슬 젖던 마음속에

새벽은 오는가.

밝은 세상을 위하여

한 줄기 빛으로 피우려 하니

내 온갖 지혜를 담고 싶어라.

빨간 장미꽃을 생각하다가도

하얀 백합꽃을 그리다가도

한 송이 작은 연꽃이

피기를 원하였노라.

 

소연

네가 세상을 위하여

외롭게 피고,

네가 세상을 위하여

고뇌할 때에,

그 큰 시련에 피던

한 송이 꽃을 두고

소연이라 원하였노라.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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