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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포기하고 싶은 그대에게

gincil 2013. 4. 20. 21:52

요즘은 매우 살기 힘들고 어두운 세상이라 삶을 부질없다 여기고 포기하려는 이들이 눈에 많이 뜁니다.

 

그만큼 세상 속에 길이 보이지 않고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겠지요

 

나도 젊은 시절, 실연과 실직, 허무의 아픔을 뼈저리게 느꼈었기에 그대가 지금 가지고 있는 아픔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아픔은 당사자가 아니면 아무도 그 고통을 대신 느낄 수 없다는데 해결의 어려움이 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 그대가 겪고 있는 삶의 무게는 그대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세상사람들이 겪었거나 겪으면서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살아가기 어려운 말세의 시간 속에 상처없이 살아갈 수 있는 영혼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진리가 사라지고 삶의 의미가 흐려져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모르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삶의 무게에 힘들어하는 것은 당연할 귀결이라 하겠지요.

 

따라서 오늘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인생이 무엇인지, 이 세상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삶의 진실과 의미, 우주의 실상과 바른 이치를 깨닫게 된다면 삶의 어둠은 걷히게 될 것이며 그대는 우주의 흐름과 하나되어 조화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그대에게 다가와 있는 이별의 슬픔은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지옥의 저주와 같이 그대의 삶을 무의미하게 하고 이 세상 모두를 상실한 것 같은 아픔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더구나 요즘은 감각적인 시대라 남녀간의 사랑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있고 매스컴에서도 이에 가장 크게 다루고 있어 그대의 아픔은 더욱 크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별의 슬픔을 겪을 때 내 사랑만이 가장 귀하고 별난 것 같아도 그것은 세상사람의 수만큼 흔한 일이며 나의 업에 기인한 독특한 집착일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남녀간의 사랑은 그 원천에 애욕과 소유욕이 자리잡고 있어서 이루어지는 경우보다 헤어지는 경우가 더 많으며 그 별리의 슬픔은 집착한 만큼 크게 다가오고 논리나 이성으로는 해결할 수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세상 모든 것이 없어도 행복할 것 같지만 사랑이란 상상처럼 그렇게 완전하고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그토록 그대를 안타깝게 했던 사랑하는 이의 모습도 머지않아 시들며 사랑의 달콤함도 거친 현실 속에서 곧 일상사가 되고 맙니다.

 

내가 본 어느 깨달은 분은 애욕과 집착을 벗고 반야에 들자, 모든 미움과 원망이 사라지고 세상이 측은해 보이는 연민만이 가득했으며, 남녀간의 일을 보면 흥분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워진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그토록 아름답다고 여기고 지상최고의 가치라고 여기는 남녀간의 사랑도 깨달은 이의 시각에서 볼 때는 결국 극복해야 할 집착이며 애욕에 해당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남녀간의 사랑과 혈연의 인연은 육신을 이어주지만 진리와의 인연은 그 사람의 정신을 밝혀 영원한 삶과 밝은 세상을 만들기 때문에 모든 성자들은 진리를 중시하고 육신의 인연을 경계했던 것입니다.

 

끝없이 흐르고 있는 생명과 진리의 길에서 볼 때 남녀간의 일은 거대한 생명의 흐름 위에 은물결처럼 반짝이다 사라지는 것이라면 영원한 가치가 있는 진리의 길은 이 세상을 영원히 지켜주는 등불과 같은 것이라 하겠습니다.

 

진리의 길에서는 상대를 축복하고 세상을 좋게 하는 것만 있을 뿐이지 더 좋고 더 친하며 내 것이 되어야 한다는 소유의 감정은 사사로운 것에 불과할 따름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따라 나서라고 했을 때 한 제자가 처자식에게 인사한 후 뒤따라 간다고 하자 "농부가 손에 쟁기를 들고 뒤를 돌아본다면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않다"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세상을 밝게 만드는 일이 개인적인 애욕에 대한 집착보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훨씬 더 크고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그대 앞에는 남녀간의 사랑 뿐 아니라 그보다 소중한 많은 것이 그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직장도 구해야 하고 가족도 봉양해야 하고 국가와 사회를 위하여 해야할 일도 많으며 인간으로 태어난 보람과 가치를 찾기 위해 이루어야 할 일도 많은 것입니다.

 

따라서 사랑이 실패했다고 해서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어리석음을 보여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대는 자신이 죽음으로써 삶의 모든 무게에서 면제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커다란 착각이며 오해입니다.

 

그대가 죽는다해도 그대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으며 후생의 그대에게 계속 이어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생명은 이 현실의 삶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그 영혼의 씨앗으로 계속 이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자연계의 모든 생명은 나고 죽고 다시 태어나는 순환과정을 통하여 영원히 생명을 이어가고 있으며 인간의 영혼도 죽음으로 인하여 사라지지 아니하고 계속 윤회를 하며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그대가 자신의 삶을 저버린다면 그 나약함은 후생의 그대에게 이어져 그 나약함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불행한 운명을 짊어지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가치없는 죽음은 수천만 명이 죽어도 하늘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나 가치있는 죽음은 한 명이 죽어도 통곡하는 것이 하늘의 엄정한 뜻인 것입니다.

 

만약 지금 그대가 애정문제로 헛되이 죽는다면 그것은 하루살이의 죽음처럼 쉬 잊혀지고 말 것이며 그대의 후생은 그 무지와 나약함으로 내내 불행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그대는 자신의 삶을 헛되이 버림으로써 한낱 미물과 같이 무의미하게 인생을 끝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대는 지금 이 세상이 매우 무의미하고 고통스러운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성자들은 이 세상은 완전한 이치가 깃들어 있는 신성한 세계(법계)라 했으며 이 세상 속에는 생명과도 바꿀 수 없는 진리가 깃들어 있다고 했습니다.

 

지금 그대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벌레보다 못한 보잘 것 없는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이 세상 속에는 신에게까지 이를 수 있는 축복의 길이 열려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즉 신성한 이세상 속에는 지은대로 받는 완전한 이치가 자리잡고 있어서 자신을 귀하게 여기고 바른 이치대로 세상을 축복하면 그 영혼이 열매 맺어 신의 차원에까지 이르게 되지만

무지하고 나쁜 인연과 벗하여 어둡고 염세적인 것을 받아들이고 세상을 어둡고 고통스럽게 하는 나쁜 원인을 짓는다면

그대의 영혼은 그 유약함과 잘못된 삶으로 말미암아 불행한 운명을 맞게 될 것이며

후생에는 천한 미물로 태어나는 업보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짐승보다 못한 악인이 나타나게 되고 인류를 위한 사랑 속에 성자가 되신 분들도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바른 진실을 알아 세상을 밝히고 자신을 축복하는 삶을 지음으로써 말세의 어둠에서 벗어나 완성으로 나아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진실은 알고나면 너무나 간단하고 명확한 것이지만 모르게 되면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둠을 헤매게 됩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현생은 삼계(현상계, 유계, 천상계) 중 생명을 가꿀 수 있는 유일한 차원으로서 그대의 영혼을 가꿀 수 있는 소중한 기회입니다.

 

왜냐하면 이 현상계는 원인이 만나 새로운 결과가 나타나는 인과관계가 이루어지는 곳으로서 이 현상계가 아니면 모든 생명은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상에 있는 신들도 자신을 더욱 완성시키기 위해 현생에 태어나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이 생에 태어난 것에 감사해야 하며 주어진 시간 동안 진리를 가까이하여 좋은 삶과 좋은 영혼을 가꾸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진실을 모르기 때문에 요즘 사람들은 자살을 손쉬운 삶의 해결책으로 생각하고 자살사이트를 인기 있게 만드는가 봅니다.

 

그래서 진리에 대한 무지가 가장 큰 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그대에게 닥친 이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감정을 떠나, 있는 것을 사실 그대로 바라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별의 아픔은 영원히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아도 실상 그것은 개인적인 것에 불과하며 감정적인 업에 기인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별이 다가왔을 때 그것에 매달려 울 것이 아니라 자신을 성숙시키는 절호의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평소에 사람은 아무리 자신의 마음을 닦으려 해도 업이 마음속에 숨어있어 절대 자신의 업을 볼 수 없고 지울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인해 진정으로 아파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의 영혼을 다해 진실하게 대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자신의 내면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와 같이 자신의 영혼을 아프게 하는 이별의 시련에 부딪혀 자신 속에 스며들어있던 숙업과 정면으로 맞닥뜨릴 때 이를 슬기롭게 극복만 한다면 그는 자신의 영혼을 한 단계 더 성숙시키는 커다란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는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마다 각자가 지니고 있는 숙업과 선근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이는 이별의 상처를 세상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시키나 어떤 이는 상대를 원망하고 세상을 저주하는 쪽으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게 될 인생의 갈림길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삶의 진실을 알고 인생의 지침이 될 수 있는 좋은 가르침을 만나는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가르침을 만나지 못하는 경우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업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살게 되어 주어진 운명의 굴레를 계속 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진실에 대한 이번 인연을 계기로 이별의 아픔을 개인적 집착과 애욕을 극복하고 세상과 인생을 생각하며 참된 보람과 가치를 찾는 기회로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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