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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과 거짓

사주팔자(명리학)

gincil 2013. 4. 21. 08:40

명리학이란 개인의 사주, 곧 생년월일시를 분석해 그 속에 있는 음양(陰陽)과 오행(나무····)이 얼마나 있는가를 살피고, 이를 다시 그 사람이 처한 시간과 공간이 어떠한 음양오행 상태인지를 알아내어 그 조화(상생상극)관계를 따져 운명을 판단하는 관념체계이다.

 

이러한 관념체계는 고대 동양에서 우주가 음양오행으로 이루어졌다는 사고방식에서 비롯되었고 이것이 주역에 의한 음양(陰陽) 학설과 오행으로 우주와 인간을 분석하는 오행(五行) 학설로 발전되었다.

 

명리학(사주팔자)이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 시기는 중국 당나라 이후로, 당시에는 연주(年柱:태어난 해)를 위주로 사람의 운명을 분석하였는데 이를 이허중(李虛中)이 일주(日柱:태어난 날)를 위주로 하는 법을 창안해 내었고 송()나라때 서자평(徐子平)이 이허중의 설을 더욱 발전시켜 오늘날의 명리학의 형태를 만들었다.

 

이처럼 명리학은 우주를 꿰뚫어본 성자의 진리가 아니라 변화무쌍한 자연과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한 인간이 미래를 미리 예측하여 불행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했던 바램으로 만들어낸 중생들의 지적 산물인 것이다.

 

따라서 명리학(사주팔자론)은 다른 정신적 산물과 마찬가지로 인간적 한계 속에 있다. 하나의 학문체계가 그 진실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 전제가 맞아야 하며 이론을 구성하는 변수들이 현실을 정확히 대변해야 한다.

 

그런데 명리학은 인간의 운명이 음양오행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는 확인되지 않은 가설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태어난 생년일시가 그 사람이 지닌 음양오행의 성분을 대변하고 있다는 가정을 근본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운명에 대한 시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자신이 지은 업과 공덕에 따라 선천적으로 운명이 결정된다는 자기 결정론과 태어날 때는 모두가 백지상태지만 부모나 환경에 의해 생후에 결정된다는 환경결정론이 그것이다.

 

환경결정론은 영국 경험론과 현대 과학의 시각이기도 하다. 근대 인식론의 시조격인 존 로크는인간오성론에서 인간은 타고날 때는 백지상태지만 경험을 통하여 백지상태인 마음에 물이 들어 관념을 형성하고 이것이 운명을 결정한다고 하여 영국 경험론의 출발점을 만들었다. 로크는 인간의 인식은 감각과 반성이라는 두 가지 경험에서 생기며 따라서 아무리 복잡한 관념이라도 그 


근본은 단순관념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자아의 실체는 없으며 그때 그때의 감각이나 감정을 합한 총체가 자아라고 하여 경험 만이 전부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들은 관념의 장난에 불과하다. 지난 역사 동안 많은 철학자들이 수많은 논리를 만들어 냈지만 진실을 알지 못하고 주장하는 이러한 가설들은 오히려 인간의 정신을 흐리게 만들었으며 세상을 무의미와 혼돈 속으로 빠뜨렸던 것이다. 여기에 서구철학의 한계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운명의 문제에 대해 동양에서는 윤회와 업이라는 이치를 통하여 명확하게 밝혔다. 완전한 깨달음을 얻으셨다는 부처님은 일반 중생들은 그 마음속에 업이 있어 진리의 실상을 제대로 볼 수 없다고 하시면서 중생들을 눈앞에 있는 일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장님과 같다고 하셨던 것이다.


업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살펴보면, 모든 존재는 윤회를 통해 자신을 이어가고 있는데, 그 과정을 통하여 밝은 원인을 쌓으면 마음이 점차 맑아져 우주의 실상을 바로 볼 수 있게 되고 좋은 원인을 지어 좋은 운명을 얻게 되며, 어두운 원인을 쌓으면 업이 두터워져 세상일을 바로 보지 못하고 불행하게 된다는 이치를 밝히고 있다.


따라서 인간은 태어날 때에는 백지상태라는 영국 경험론의 주장은 어리석은 인간들이 자신들의 생각만으로 만들어낸 상상에 불과한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운명의 결정에 있어서 환경도 중요하지만 타고난 자질도 더욱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사주론과 같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자질에 의해서만 운명이 결정된다고 하는 주장은 지나친 독단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사주론은 태어난 생년일시에 의해 오행이 결정되어 있어서 인간의 자질과 운명이 결정된다고 단정 내리고 있으니 그 가정 자체가 매우 비합리적이다. 사주론이 정설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음양오행이 인간의 자질을 결정한다는 것과 생년일시가 음양오행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그런데 사주론은 이러한 가설의 진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이 사주가 음양오행을 표현하고 있다는 당연한 결론아래 운명론을 전개하고 있으니 그 진실성이 의심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물건이나 제품을 사용할 때에도 그것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어떤 이름이 붙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물건의 효용과 가치는 그 재료가 무엇으로 이루어졌고 그 기능이 어떠한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사주가 그러한 것이다. 인간의 운명은 태어난 일시나 이름과는 별 관계가 없으며 타고난 자질과 노력에 의해 대부분 결정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리학은 운명을 구성하는 이러한 사실적인 요인들도 무시하고 생년일시만으로 인간의 운명을 분석하고 있으니 진리가 있는 정식학문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일종의 전통적 관념체계로 간주되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인간의 운명은 크게 두 가지 요소, 즉 그 사람이 타고난 성품과 지혜와 자질 등과 같은 선천적인 요소와 가정과 사회적인 환경 및 노력 등과 같은 후천적인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연월일시의 날짜조합 만으로 인간의 운명을 모두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인간의 관념이 만들어낸 지나친 과잉논리인 것이다.


즉 인간의 운명은 사주 속에 오행(수화목금토)이 얼마만큼 들어 있느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얼마나 좋은 자질과 양심과 용기와 의지력을 많이 가졌는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여 좋은 원인을 많이 지었는가? 그리고 그가 속한 국가와 사회가 얼마나 좋은 환경 속에 있는가? 등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만에 하나 음양오행에 의해 인간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가정하더라도 운명을 정확히 맞추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음양오행의 성분과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환경이 어떠한 음양오행 상태에 있는가를 정확히 파악할 줄 알아야 이를 잘 조합하여 그 사람을 운명을 맞출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사주가가 이것을 정확히 볼 줄 모른다면 아무리 음양오행론이 진실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의 운명을 맞출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의 사주팔자는 음양오행을 파악하는 사주가의 능력과 경험에 따라 백인백색으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아무리 완벽한 사주법이 있어도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으면 현실에 정확히 적용할 수가 없으며 그렇다면 명리학도 완전한 눈과 지혜를 가진 자가 아니고서는 정확히 볼 수 없다는 결론이 성립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완전한 시각과 능력을 가진 성자가 나타나시면 그분은 인간의 운명을 사주로 풀 것인가? 아니다. 절대 그런 일은 없다. 왜냐하면 사주는 진리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자들은 자신이 본 우주의 실상과 진리, 세상의 운명에 대해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일상적인 언어로 쉽게 표현할 것이지, 생생한 삶이 빠진 추상적인 오행의 개념으로 인생과 우주를 도식화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 어떤 사회와 개인이 너무 양심이 없고 죄가 많아 세상이 어두워지고 업이 많아져 불행이 닥친다고 말하는 것이지 화기가 많아 성질이 급하고 세상이 망한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주팔자는 증명되지 않은 가정을 절대적 진리인양 기준으로 삼고 논리를 전개하고 있으니 이러한 근거가 미약한 이론을 믿고 따르다가는 한번뿐인 인생을 망치기 쉬운 것이다. 바로 여기에 사주팔자의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주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삶의 생생한 모습 대신에 개념화된 음양오행만으로 운명을 예측하고자 했으니 아무리 해도 삶의 실체를 볼 수 없었고 그래서 벗어날 수 없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영의 힘을 빌리러 산기도를 하러 많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음침한 곳에서 밤을 새워 수많은 밤을 단식기도를 하게 되면 심신이 쇠약해지고 그 틈을 타서 유혼이 침입하여 영의 노예가 되면 그 영의 능력을 이용하여 아는 소리를 하며 사주를 잘본다고 평가받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영이 붙게 되면 영의 시공간을 초월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에 이를 이용하여 아는 소리를 하게 되고 이것이 사람들의 인기를 얻어 큰돈을 벌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주를 잘보거나 점을 잘치는 사람들은 대개 영이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영들은 남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다른 영과의 연결을 통해 지난 일들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점을 치러가 보면 점쟁이가 전날 있었던 일들을 잘 맞추는 용함을 보인다. 그래서 손님의 마음을 훔쳐보고 "어제 뭘 먹었지? 무슨 일을 했지?" 하고 맞추는 것이다. 그러면 손님들은 "! 이 사람은 용한 사람이구나!" 하고 감탄하여 무조건 믿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영들은 모두 헤매는 유혼들이기 때문에 그 한계가 명백하다. 그들은 욕망과 집착에 의해 이승에 붙들려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세상 속에 있는 이치는 결코 보지 못한다. 만약 유혼들이 세상의 실체를 보고 바른 이치를 안다면 결코 이세상을 헤매면서 고통스러워하고 산자에게 붙은 불행한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사주가들이나 점장이들은 과거는 정확히 맞추나 미래는 맞추지 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는 상대의 마음 속에 있었던 기억들을 보거나 논리를 맞추어 말할 수 있으나 미래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수많은 요소들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신문을 보면 저명한 사주팔자의 대가들이 유명인사들의 팔자를 정확하게 맞추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들은 유명인들의 지난 일들은 그럴듯하게 해석하지만 사전에 미리 그 운명을 예언하거나 팔자를 고쳐주는 일은 없다.


이처럼 사후에 결과를 보고 해석을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진정 필요한 것은 사후에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미리 문제와 원인을 밝혀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다. 만약 사주가들이 세상의 이치를 알고 미래의 운명을 바꾸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면 그들은 세상을 구하는 지도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며 남의 사주나 봐주며 밥벌이하는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운명이란 각자가 타고난 근본을 키워 자신의 열매를 얻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호박의 씨를 타고난 것은 호박을 맺고 수박의 씨를 타고난 것은 수박을 맺는다. 그러나 모든 것이 이처럼 고정되어 있다면 사람은 노력할 필요가 없으며 인생을 살 가치가 없다. 모든 것은 살아 움직이는 것이며, 원인과 결과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니 살아있는 생명의 주체인 우리가 어떻게 원인을 짓는가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는 것이다.


비록 호박의 씨앗은 타고났으나 좋은 인연과 가르침으로 자신 속에 수박을 접붙이면 그의 운명은 수박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운명의 이치이니 우리가 진리를 배우고 행해야 이유도 바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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