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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과 거짓

인연과 신의 뜻

gincil 2013. 4. 21. 08:44

누구는 불행하게 살다가고 누구는 행복하게 살다간다. 누구는 악하게 살다가고 누구는 선하게 살다간다. 누구는 가난한 곳에 기형아로 태어나 불행한 삶을 살고 누구는 복된 곳에 건강하게 태어나 행복한 일생을 보내고 산다.

 

이를 종교인들은 신이 또 다른 뜻을 실현하기 위한 복안이라고 해석하거나 신의 영광을 보이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러나 만약 이것이 신의 뜻에 의한 것이라면 인간을 불행의 노예로 사용하는 그러한 신은 저주받아 마땅하다.

 

아무리 신이라도 모든 것을 자의적으로 적용해서는 안되는 것이며 특정한 자에게만 악역이나 고통스러운 역을 맡겨서는 안되는 것이다. 만약 감독이 있어 그대에게 항상 비천한 역을 하라고 한다면 누가 승복할 것인가?

 

모든 것을 마음내키는 대로 좌우하는 그런 작위적인 신은 없다. 완전한 신은 완전한 이치에 따라 세상을 유지하고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다.

신은 세상에 완전한 뜻을 지어 삶을 통하여 영원의 열매를 맺도록 하고 있으며 세상에 나타나는 현상은 이러한 뜻을 이어받은 신성의 자식들이 각자 주체적으로 활동하여 지은 대로 결과를 받는 현상인 것이다.

 

어려운 환경에서 이를 잘 극복하여 세상의 빛이 된 사람은 삶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아름다운 결실을 볼 수 있으며 세상을 축복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좋은 징표인 것이다.

 

세상에는 인간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엄연한 인과의 법칙이 묵중하고 완전하게 드리워져 있다. 모든 일은 원인과 결과가 있고 인간의 일도 과거에 자신이 지은 업에 따라 결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지은대로 받는 인과의 법칙을 통하여 진리에 맞는 바른 길을 간자는 완성에 이르고 그릇된 길을 간자는 소멸하는 현상을 통하여 신의 뜻은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콩씨가 얼마나 잘 여물었는지 또 얼마나 큰지를 보고 그 콩이 전번 농사에서 얼마나 좋은 토질에서 병없이 잘 자랐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세상 일은 이와 같이 한치의 어김없는 완전한 인과관계가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대는 선한 자가 고통을 받고 갑자기 각종 사고를 당하는 것이 어떤 연유인지 항의할 것이다.

이러한 일을 설명하는 것이 인과의 이치를 설명하는데 있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지금 세상에는 온갖 나쁜 원인과 잘못된 일들이 가득 차있어서 자칫 잘못하면 이러한 일들이 자기에게 다가올 수 있다.

 

이것을 공업이라 하는데 이러한 일들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은 작게 보면 자기의 잘못이 아니라고 할 수 있으나

크게 보면 자기가 그러한 인연에 가까이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니 전혀 인연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에 자기의 업이라 하지 않고 인연이 닿았다고 말한다.

따라서 위험에 빠지거나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미리 어둠에 다가가지 않는 조심성과 지혜가 필요하다.

 

최근 금강산 여행에서 한 여인이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사태가 발생했다.

지혜있는 자라면 그러한 위험성이 있는 곳에는 여행가서는 안되는 것이다.

위험이 있는 줄 알면서 그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곳은 깊은 어둠이 인연 지어져 있기에 어떠한 위험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그 속에 들어간다는 것은 벌써 그러한 사고를 예기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그보다 더 안전하고 아름답고 편안한 명승지가 아직 많이 남아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자기에게 다가온 악연이라면 이미 주어진 인연이라 생각하여 그 원인을 생각해보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모든 것은 인과의 이치에 의해 이루어지는 만큼

악한 인연은 조심스러운 삶의 자세로 피해야 하는 것이며

다가온 악연(교통사고, 유혹, 기형아) 은 나를 닦아나가는 기틀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내가 지은 인과에 의한 것이든 아니면 공업이 나에게 다가와서 받은 인연이든지 간에

나에게 이미 다가온 인연은 나의 생생한 현실로서 결코 부정할 수 없는 것으로

내가 이 생애에서 농사지어야 할 고귀한 터전인 것이다.

 

세상은 이 현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현상과 원인들이 끝없이 이어지며

새로운 삶과 새 세상을 낳기 때문에 한순간도 자신의 삶을 소홀히 하거나 함부로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과거에 자신이 지은 원인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인과의 이치를 잘못 생각하면 운명론자가 되어버릴 수 있다.

 

인과의 이치 속에는 운명과 그 극복방안이 동시에 제시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인생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인과 속에 있는 운명과 생명의 주체성과의 관계를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실수하는 것을 유심히 관찰해보면 그 사람에게는 그런 실수가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그 사람의 마음속에 이러한 실수를 유발시키는 근원적인 일 즉 업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일을 두고 세상사람들은 '누구도 운명은 바꿀 수 없는 것이다.'라고 말해 왔던 것이다.

즉 운명이란 자기 속에 있던 일, 자신이 한번 지은 일이 자기 속에서 계속 남아 작용하면서 일정한 경향을 나타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운명의 이치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이든지 한번 존재하게 되면, 그 일은 인연을 통해서 계속 나타나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운명의 근원은 과거 자기 속에 있었던 일들이 쌓여서 그 쌓인 것들이 계속 자기 속에서 활동을 한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제각기 성격이 틀리고, 성질이 틀리고, 보고 듣고 말하는 것이 틀리는 것은 자기 속에 있었던 일들이 각각 틀리기 때문에 이러한 경향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삶이 이와 같이 과거의 업에 의해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살아 움직이는 생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으며 지난 인과의 결과 위에 새로운 원인이 쌓이면서 계속 바뀌고 있는 것이다.

 

즉 운명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고, 바꾸어 질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우리 들은 주변에 있는 일을 예를 들어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빨간 물감에다 흰색을 넣으면 분홍으로 변하고, 계속해서 흰색을 더 넣으면 분홍에서 연분홍으로 변한다.

 

그러므로 세상일에 대한 깨달음이 있다면 자기에게 실수를 계속 유발하던 것들이 붉은 색에서 분홍으로 변하고, 분홍이 연분홍으로 변해서 나중에는 아주 연해져 거의 없는 것처럼 변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진실에 대한 깨달음이 없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 업은 영원히 자기 속에서 계속 반복된 활동을 하게 되어 고유한 운명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는 바른 가르침을 통해 사실을 사실대로 보는 깨달음과 지혜를 마음속에 쌓아야 하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밝은 인연을 만나지 못하고 세상의 어둠에 휩쓸려 자기의 나쁜 습성을 반복하거나 무지로 인해 나쁜 습성들을 계속 더 받아들이게 된다면 그 운명은 더욱 나빠질 수도 있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자신의 운명을 좋게 만들기 위해 좋은 원인과 밝음을 계속 자신 속에 쌓아야 한다.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은, 삶을 통하여 새로운 일들이 자기에게 생기게 되면 그 일이 마음속에 들어와서 계속 활동하기 때문에 무엇을 받아들이며 행동하느냐에 따라 운명은 좋은 쪽으로도 변화할 수 있고, 나쁜 쪽으로도 변화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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