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실을 찾아서
사리에 대하여 본문
지금 세상에는 사리에 대한 두가지 견해가 병립하고 있다.
하나는 불교적 신앙에 의해 사리를 우주의 보물로 신성시하는 경향이며
다른 하나는 현대과학의 영향으로 사리를 물질적으로 분석하는 시각이다.
그런데 지금은 현대물질과학의 압도적 경향으로 대다수의 사람들은 물질적 시각에 동조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우주에는 항상 생명과 의식현상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것에 대한 실체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생명과 신성에 대한 현상은 오직 성자들의 시각을 통해서만 세상에 밝혀지고 있으니
생명의 실상과 진리의 빛이 희미해진 세상에서 어찌 사리의 실체가 올바르게 밝혀지기를 바라겠는가?
지금 사람들은 현대과학의 영향으로 신성한 생명현상의 결정체인 사리를
칼슘과 열의 결합, 또는 담즙성분의 결정체, 식습관으로 말미암아 몸속에 광물질이 쌓인 것이라고
자기 나름대로 과학적인 해석을 한다.
이러한 현대과학의 해석에 맞서 기존 불교인들은 더욱 기존 교리에 집착하여
사리를 불상과 탑의 복장으로 모시고 공양하면
그 공덕과 가피력은 인간의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사리에 극진히 공양을 올리고 기도하면 악업이 정화되고
부정이 씻겨서 질병에서 놓여나며 소원을 이루고
전생을 알게 되며 죽어서는 천상에 난다고 한다.
그러나 사리의 진실을 안다면
사리를 인간의 한정된 눈과 알량한 지식으로 무조건 물질적으로 분석하는 것도 어리석음이지만
지나치게 신비롭고 광신적으로 섬기는 것도 문제가 된다.
법정 스님은 "부처님의 육신에서 나온 사리는 망치로 때리면 깨지는 거예요. 뭐 대단한 거 아니예요. 부처님의 진짜 진신사리는 45년간 중생을 교화한 가르침, 바로 그거예요. 그런 가르침이 없었다면 불교가 오늘날까지 존속될 수 없었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맞다. 부처님의 가르침의 요체는 진리인 것이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사리라는 현상이 스님의 말처럼 그렇게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리는 생명현상이 나타내는 현상 중 가장 고귀한 것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사리는 무형의 기운이 열에 의해 응결되어 유형으로 결정화되는 것이다.
기운은 뭉치는 현상이 있다.
그래서 이마에 제3의 눈이 나타나고 백회가 튀어나오는 육계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기운을 느끼지 못하는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나 기운을 느끼고 기운이 뭉쳐 머리에 육계가 생긴 사람들은 기운이 유형화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살아있을 때도 기운이 뭉치는데 죽은 기운이 어찌 뭉치지 않겠는가?
동근동기라 같은 기운끼리는 하나로 뭉친다.
화장한 수행자의 몸에서 여러 가지 모양과 형태의 사리가 나오는 것은
그 몸속에 있던 기운들중 같은 기운들끼리 모여 결정화되는 현상이다.
그중 좋은 기운은 맑고 영롱하며 나쁜 기운은 어둡고 탁하다.
따라서 탁한 기운을 띤 어두운 사리가 많이 나왔다고
그 도가 높은 것이 아니며 반드시 자랑한 만한 것이 못된다.
맑고 큰 것이 좋은 것이다.
그래서 깨달은 자의 사리는 매우 크며 아주 영롱한 빛을 띠게 된다.
깨달은 자의 사리는 우주의 근원인 반야의 기운이 응결된 것이니
우주 속에서 이보다 더 귀한 보물이 없다.
이러한 사리는 오직 우주에서 가장 고귀한 진기의 결정체이니
그 사리를 몸에 지니면 악신과 잡귀가 범접하지 못한다.
그리고 천계의 신들이 어떠한 신통을 부려서도 이러한 사리는 만들 수 없다.
왜냐하면 깨달음의 성취에 의해 만들어지는 진기는
오직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의 삶을 통해서만이 지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완성의 경지를 이루기 위해서
천상의 신들도 다시 이땅에 태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평범한 사리는 물론 깨달은 자의 사리도
악업을 정화시키고 질병을 고쳐주며 소원을 이루고
전생을 알게 되며 천상에 나게 하지는 못한다.
세상의 일은 원인과 결과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니
자신이 짓고 행하지 않은 일이 사리에 의해 생겨날 리 만무한 것이다.
부처님이 살아서 정법으로도 중생을 구제하지 못하고 진리를 세상에 다 펼치지 못했는데
죽은 사리가 어찌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겠는가?
다만 사리는 완전한 진리를 밝히신 깨달음의 증거이기 때문에
진실을 배우는 한 인연과 도리로 섬기는 것이다.
그것은 대웅전에서 불상을 섬기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불상에게 삼천배를 한다고 불법을 깨치는 것이 아니듯이
사리를 공양한다고 마음이 맑아지는 것이 아니다.
다만 깨달음과의 인연으로 더욱 자신을 갈고 닦는 계기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리가 사리를 낳는다는 말은 옳지 않다.
사리는 기운의 결정체로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과체는 그 상태로 계속 머무는 것이지 새로운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
신앙심에 이성이 마비된 이들은
사리가 새로운 사리를 낳은다는 말을 믿을 지 몰라도
이치에 눈을 뜨게 되면 이말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된다.
이말은 지금 부처님의 사리라고 불리워지는 많은 양의 사리들을 합리적으로 해석할 수 없어 만들어 놓은 환상인 것이다.
지금 부처님의 진신사리라고 불리워지는 것 중 대부분이 후세에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 부처님의 사리라는 것을 다 모은다면
부처님이 코끼리보다 더 큰 분이셨을 것이다.
그럼 진짜와 가짜의 차이를 어떻게 알 것인가?
부처님의 사리라면 그것은 우주의 진기의 결정이기 때문에
맑은 기운을 가진 자라면 감응이 일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그 진부를 알게되는 것이다.
가짜라면 물질에 불과할 뿐이니 아무런 감응이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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