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실을 찾아서
성령과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본문
님은 성경에 나온 말들이 모두 진실인지 알지만
결코 성경이 일점 일획이 어김이 없는 하느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사실부터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구약은 유대인의 원시신앙이니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신약의 경우도 처음에는 예수의 가르침으로 알려진 짧은 경구들이 구전으로 전승되었고,
이들을 기록한 사도들의 서신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를 구전시대라고 합니다.
지금과 같이 통신이 발달한 시대에도 한 사람만 거치면 말이 바뀌는데 그 당시 교통이 불편하고 전달수단이 없는 시대에 수백년이 지나고 수많은 세대가 흘러간 후 전해진 말들이 얼마나 원 가르침에서 벗어나 있을 지는 생각만 해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인 것입니다.
처음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종말의 시간을 기다리며 최후를 준비하던 사람들은 종말론적 기대감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희박해지자, 종말의 구원보다 전도에 관심을 쓰게 되었고 각 교파마다 성서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당시 교회에서는 정식 성경이 없었으므로 사도들의 서신 뿐만 아니라 짧막한 구전의 전승들을 낭독하곤 했는데 공식적으로 인정했던 복음의 목록이 없었으므로, 교회에 따라 낭독하는 복음서들이 서로 달랐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발견된 낙 함마디 문서의 발굴로 인해, 초대교회가 종말론적인 영지주의적인 성격을 지녔고, 수를 헤아릴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교파들, 교파들간에 각각 다른 복음서와 사도행전들이 혼잡하게 난무했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때 부분이든 전체든 신약이 수록된 희랍어 사본은 대략 5,000여 개, 초기 번역본에 대한 사본들도 약 1만개 이상 보존되어 있고, 교부들의 인용문도 수천에 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초기에 파피루스에 기록되었는데 이들은 대부분 단편들뿐이지만 신약 전체의 40% 가량을 포함하며 반 이상이 기원후 3, 4세기경의 것들이고 그중 가장 오래된 것은 기원후 140년경에 기록된 것입니다.
이러한 성경의 원형들이 AD170년경 첫 경전화 작업을 거쳐 무라토리 정경목록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 정경목록에는 현재의 신약 27서 중에서 베드로 전,후서,야고보서, 요한3서, 히브리서가 빠져 있는데
베드로 전서를 제외한 히브리서, 야고보서, 유다서, 요한 2 3서, 요한 계시록등의 책들은 상당히 오랫동안 어려운 투쟁을 거쳐서 정경으로 채택된 것입니다.
AD367년 아타나시우스는 그의 부활절 서신을 자기 교구의 여러 교회로 보내면서 지금의 신약성서와 똑같은 목록을 제시했으며 어거스틴도 이 정경목록을 지지했습니다.
그것이 마침내 제롬의 라틴어 번역(Vulgata)을 통하여 전 서방 교회에 유포, 사용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의 성경을 보면 베드로를 제외하고 예수의 12 제자의 전도활동이 매우 희미하며오히려 육체적 예수를 만난 적이 없는 바울이 예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주역을 맡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큰 비밀이 숨어있는데 바로 사도들간의 교리다툼에서 바울이 승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기독교 측에서 정경으로 채택하기를 거부한 외경들에는 사도들의 행적과 그 최후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 속에는 사도들이 예수님을 곁에서 모신 분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체험한 영적 내용들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기에 배척되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외경에는 베드로 복음, 베드로계시록, 베드로행전, 요한행전, 도마행전, 안드레아행전, 에비온복음(12사도의 선택) 등이 있습니다.
당시 로마사회나 유태사회는 몹시 혼란스러웠고, 새로운 가치관의 정립을 요구하고 있었던 터라 여기 저기서 많은 사도들과 교회들이 나타나 서로의 교리를 비판하고 교세를 키우기 위해 경쟁하였는데 바울도 그러한 사도들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 바울은 쌍벽을 이루며 라이벌이었던 "아볼로"와 함께 수많은 사도들과 교세다툼을 했는데 이러한 교파간의 다툼은 고린도 전서에 잘 나와있습니다.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이는 다름 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헬라어로 베드로)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고린도 전서 1장 11~12절]
이처럼 교인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이론에 따라 여러 가지 파를 나누어 분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초기 기독교의 분열상은 현대 기독교의 분열상 보다 훨씬 심했던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의 분열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현재는 그래도 정립된 성경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당시는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는 단계라 서로간의 교리논쟁과 인신공격은 치열했으며
당시 바울은 할례파 사람들에게 굴복한 베드로와 바나바에게 위선자라고 비난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최후의 승리자가 바울이었음을 오늘날의 신약에서 당연히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의 신약의 4/1을 차지하는 바울서신들로 인해 진정한 최고의 사도는 바울처럼 비춰집니다.
물론, 예루살렘에 근거지를 둔 정통적인 베드로분파도 무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베드로가 초대 교황으로 추인되었고 천국의 수문장으로 숭상되는 전통이 생긴 것입니다.
하지만 최후의 승리자는 바울분파였습니다.
갈라디아서2장에서 베드로는 히브리민족에게,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사도직을 부여받게 되었는데, 기독교가 공인되고 국교가 된곳은 이스라엘이 아닌 로마제국이었기 때문에 서구 사회에서 결국 바울분파가 정통성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육체를 가진 예수님의 곁에서 그 행적을 보고 배운 사도들의 가르침보다 바울의 가르침이 성경에서 중심이 되는 일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성경에는 베드로와 요한을 제외한 예수를 시봉한 나머지 12사도들의 행적을 제대로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후 AD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예수의 신성(神性)문제를 둘러싸고 생겨난 아리우스파와 아타나시우스파와의 삼위일체 논쟁 때문에 교회가 분열의 위기에 놓이자
황제의 권위에 의해 아타나시우스파와의 삼위일체론이 승리하고
아리우스파는 이단으로 몰려 파문당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초기 기독교 신자들은 예수를 그들을 구원해줄 메시아로 알고 있었지, 예수를 창조주와 동일시하지는 않았습니다.
즉 예수를 신의 독생자로 모든 창조물 중에 으뜸가는 존재요, 모든 선지자 중에 으뜸인 인간으로, 신과 인간의 중간에 독보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예수의 행적을 기록한 복음서 속에서도 여실히 엿볼 수 있습니다.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사도행전 7장 55절]
여기서 스데반과 같은 초기 사도들은 하느님과 예수를 다른 존재로 보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성령은 예수와 하나가 아니요, 신에게서 성령을 받고 예수를 인도하기도 합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마태복음 4장1절]
이처럼 오늘날의 성경은 초기 기독교의 가르침을 충실히 대변했던 아리우스파가 이단으로 몰리고 변질된 아타나시우스파의 교리가 채택되었으며 삼위일체론이 기본교리가 되고 육체적으로 예수를 접한 적이 없는 바울의 가르침이 핵심교리가 되는 사례 등을 살펴보더라도
성경이 일점일획도 어김없는 성령의 말씀이 아니라 사도들과 현실권력과의 타협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귀하가 말하는 성령에 대해서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주의 근본인 하느님이 있다면
그분은 자신이 창조한 완전한 세상과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를 통해서 세상을 완전하게 유지하는 것이지
자신이 마음대로 나타나 원리를 바꾸거나 조작하지 않습니다.
완전한 성령은 바로 하느님의 마음이며
세상의 원리가 바로 하느님의 뜻이며 진리인 것입니다.
진리를 바로 아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진정한 영을 받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그 당시 성령을 섬긴다고 말로만 하고
위선된 행동을 보이며 실천하지 않는 비양심적인 유대인들을 보고
"주여!주여! 하며 입으로만 외치지 말고 신의 뜻을 행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령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의 행동인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인간이 운명의 주체로서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것입니다.
말로만 성령을 받았다 하고 행동을 바로 하지 않는 자는
한치도 어김없는 하느님의 뜻이 결코 용서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창조한 하느님은 결코 이 세상을 떠돌지 않으며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여 자신에게 기도하는 자를 도와주는
어리석은 행동으로 세상의 이치를 흐리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느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기독교의 주장은
이치에 맞지 않는 허황된 미신일 뿐입니다.
믿음이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이 구원의 열쇠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기독교 교단에서 많이 나타나는 성령은
개인의 이해관계와 욕심의 기도에 부응하는 잡신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았다고 말한 많은 목사들이
세상을 혹세무민하는 일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도로 영을 받을 때 그것이 성령이 아니라 잡신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깊이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님은 왜 서양에서는 드문 성령현상이 우리나라 교회에 만연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나라에 떠도는 많은 잡신들이 기독교계의 영적 경향을 틈타
성령의 가면을 쓰고 허약한 신자들의 영혼을 파고들어 영적 현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통 기독교계에서는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는 교회의 영적부흥운동을 미신현상으로 우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은 모든 것을 이치대로 합니다.
잘못된 이치를 행하는 자는 성령을 믿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신의 영광을 위해 벌어진 서방 기독교의 아랍침략 전쟁인 십자군 전쟁이
아랍의 알라신에게 패한 것은 그 일이 세상의 이치에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자신의 이름만 내걸고 상업적 이익을 위해 싸운 서양의 기사들을 축복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조국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고
검약하고 단결한 아라비아 전사들의 손을 들어 준 것입니다.
그리고 무조건적인 사랑이 하느님의 뜻인 것같이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무조건 주고 용서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세상은 무지하고 어두운 세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많은 악행이 근본이 악한 사람들로부터 나타나고 있는데
만약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고 이들을 무조건 용서한다면
세상은 악인들의 천지가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악행은 악한 사람들이 자신 속에 내재된 악습으로인해 악행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 악행 속에 숨겨진 비밀입니다.
따라서 이들을 엄하게 처벌하지 않고 용서위주의 대처를 한다면
세상은 악이 범람하여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어둡고 양심이 망한 사회일수록 강력한 대처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무조건 돕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여
게으르고 여린 아이들에게 일하는 습관을 길러주지 않고
무조건 시혜를 베풀기만 한다면
아이들은 자존할 능력을 상실한 무능력한 사람이 될 것이며
그들은 자신이 태어난 가치마저 까먹는 가치없는 인간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잘못된 사랑이 빚어내는 잘못된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속에 많은 말들이 아름다운 말만 남고
생명력이 사라졌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정체이며 사랑과 성령의 뜻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김기덕 님이 작성한 원문 :
> 그러므로 잘 들어라. 사람들이 어떤 죄를 짓거나 모독하는 말을 하더라도 그것은 다 용서받을 수 있지만 성령을 거슬러 모독한 죄만은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또 사람의 아들을 거역해서 말하는 사람은 용서받을 수 있어도 성령을 거역해서 말하는 사람은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마태복음 12:31-32」
>
>
> 열한 제자는 예수께서 일러주신대로 갈릴리에 있는 산으로 갔다. 그들은 예수를 뵙고 엎드려 절하였다. 그러나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라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치라. 내가 세상 끝날 때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복음 28:16-20」
>
>
> 내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라고 한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만 너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아들이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약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못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마태복음 5:43-46」
>
>
> 그러나 이제 내 말을 듣는 사람들아, 잘 들어라.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 해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사람들을 축복해 주어라. 누가 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대 주고 누가 겉옷을 빼앗거든 속옷마저 내어 주어라.「누가복음 6:27-30」
>
>
>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고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앙갚음을 하지 말아라.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대고, 또 재판에 걸어 속옷을 가지려고 하거든 겉옷까지도 내주어라.「마태복음 6:38-40」
>
>
>
> 그리고 예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하여 제 목수믈 잃은 사람은 얻을 것이다. 사람이 이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나는 분명히 말한다. 여기 서 있는 사람들 중에서는 죽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나라에 임금으로 오는 것을 볼 사람도 있다.「마태복음 16:24-28」
>
세상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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