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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의 근원

사실과 인과

gincil 2013. 4. 23. 22:48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일은 사실 속에  '있는 일'을 바로 아는 것입니다
있는 일을 알아야 현실 속에서 자기가 바라는 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생각 속에 산다면 결코 사실 속에서 길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모든 일을 판단할 때는 항상 사실 속에 있는 일을 통해서 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깨달은 분께 문제를 물을 때 
만약에 이런 조건이면 어떻게 됩니까? 하고 상상속의 일을 가정해서 물으면
“그런 문제 말고 너의 생활 속에 있는 문제를 물어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생각 속에 있는 질문은 사실 속에 없는 일들로서
마음에 비어있는 그 분의 반야심에 아무 것도 비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실체가 없는 질문이라는 뜻이지요.

사실 속에 있는 질문을 해야 점차 사실을 보는 눈이 밝아지고
사실 속에 흐르고 있는 인과의 이치에 대해 밝아집니다.

만약 생각으로 문제를 만든다면 생각이 많아져
마음이 흐려지고 판단력이 약해져 관념적인 인간이 되고 맙니다.

우리가 늘 하는 말로 물에 빠진 어머니를 먼저 구할 것인가? 
아니면 부인을 먼저 구할 것인가? 선택하라고 말을 합니다.
어느 것이 옳은가 물으면 답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경우엔 분명한 답이 있습니다.
이런 때는 누구를 택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헤엄 못치는 사람이나 살 가능성이 약한 사람을 구하면 되는 것입니다.

나는 거지에게 돈을 주는 것이 큰 공덕이 안된다고 했지
나쁜 일이라 한 적이 없습니다.

테레사 수녀가 한 일에 대해서도 
성자에 어울리는 큰 공덕을 짓는 일이 아니라고 했을 뿐
나쁜 일이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

글을 전체적으로 보지 않고 한구절만 보고
생각만으로 이해를 하니 이런 의문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실을 볼 때 구체적인 인과로 보아야 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하는 일이 나쁜 결과가 오는 일인데
그러한 사실과 이치를 모르고 그 사람을 도왔다면
그 사람은 그러한 구분도 못하고 
남을 함부로 돕는 어리석은 업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향후에도 그런 경우에 부딪히면 사물을 분간할 힘이 없어서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애매한 일을 할 때는 항상 확인하고 실천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좋은 의도로 거지에게 준 돈이 거지에게 좋은 일이 될지 나쁜 일이 될지 모른다면
그러한 일은 거지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큰 공덕은 되지 못하며 
그냥 일상적인 좋은 일일 뿐입니다.

내가 낳은 자식이 살인을 했다면 나(부모)는 나쁜 업을 짓게 되는가? 하는 질문도 생각 속의 질문입니다.

내가 낳은 자식을 좋은 가르침을 주어 훌륭한 사람으로 잘 길렀다면
자신에게도 좋은 근본이 쌓이고 자식에게도 좋은 근본이 쌓이는 좋은 공덕이 됩니다.
반대로 잘못된 가르침을 주어 나쁜 인간을 만들어 나쁜 일을 하게 했다면 
둘다 나쁜 업이 쌓이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좋은 업과 나쁜 업을 가르치게 됩니다.
자식도 부모의 가르침을 배워 좋은 일과 나쁜 일을 실천하며 자신의 공덕을 쌓아나가게 됩니다.
그 모든 지은 일의 합이 공덕의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식이 살아있는 동안 많은 일을 했고 부모도 많은 일을 했을 텐데
자식이 저지른 살인 하나만 가지고 삶의 결과를 평가하여
자식을 가르친 부모의 공과를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살인도 욕망을 위한 살인도 있을 수 있고 정의를 위한 살인을 할 수도 있고
사고로 살인할 수도 있는 것이니 
모든 것을 단순화하여 살인행위 하나만을 상정하여 
어떤 잘못이 되느냐고 의문을 갖는 것은 정확한 질문이 아닌 것입니다.

세상의 인과를 볼 때는 원인과 결과의 구체적 관련성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님은 자식이 여러 가지 원인을 가지고 삶을 살아왔던 현실을 무시하고
단순히 부모의 가르침과 자식의 죽음 만을 연계시킵니다.
생각으로 모든 것을 단순화시키는 관념적 논리지요.

그러나 자식의 죽음은 부모의 출산이나 교육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기 보다는
주체적인 생명체인 자식이 자신의 독자적 삶을 살면서
평생동안 지었던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기인하는 바가 클 것입니다.

즉 어떤 나쁜 범죄를 저질러 그와 연계되어 살인을 했을 수도 있고
나쁜 친구를 사귀었을 수도 있고
악령에 들려 미쳐 사람을 죽였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어찌 부모가 자식을 낳은 것과
자식이 살인한 것이 연결이 될수 있습니까?

물론 부모가 잘못 가르친 탓도 있겠지만
그런 것은 자식이 그동안 쌓아온 많은 살인의 원인에 비한다면
극히 작은 거의 무시해도 될 원인이겠지요.

이처럼 여러 가지 측면이 있는 현실을 보지 않고 
관념적으로 부모의 출산과 자식의 살인만 연계시키니 오류에 빠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편의를 생각해 칼을 만들었다면 
장인의 마음 속에는 세상을 생각하는 마음과 능숙한 기술의 업이 쌓일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그 칼로 살인을 했다고 해서
그 칼을 누가 사용하는지도 모르는데 
그 칼을 사용한 사람의 업이 만든 사람에게 다가올 수 있겠습니까?

그 칼로 살인한 사람도 자신이 지은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살인을 했을 텐데
그 칼을 만든 사람이 책임을 지는 것은 맞지 않는 것입니다.


의사의 사소한 진료 실수로 환자가 사망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실수일 뿐입니다.
단순한 실수에 따른 배상을 하면 되는 것이며
살인마와 같은 대접을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변화기에 대한 가르침에 대해,
어느 사람이 앞으로 우리 세대 안으로 인류의 종말이 오니까 대충 살고 죽어야겠다"라고 잘못 받아들인 경우 
여래님도 업을 짓게 되는 것입니까?하는 질문을 했는데
이것도 인과를 구체적으로 살펴 보아야 합니다.

깨달으신 분은 세상을 구하겠다는 자비심에서 세상의 이치를 그대로 밝히셨으니 
업을 지을 것은 없고 세상을 위한 공덕만 쌓일 것입니다.

반대로 받아들인 사람 중 좋게 받아들인 사람들은 
자신과 세상을 위해 공덕을 쌓을 것이니 좋은 업을 짓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님의 말대로 그분의 가르침을 자신의 근기대로 멋대로 해석하여 사회에 해를 끼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가르침과는 정반대로 해석한 자기 책임이니
인과는 성립하지 않는 것입니다.

인과는 원인과 이치가 상호 연계가 있을 때 생기는 것이지
바른 이치를 전한 것을 잘못 해석하여 나쁜 이치로 받아들인다면
바른 가르침과 나쁜 판단 사이에 인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라
모든 것을 거꾸로 생각하는 자신 속에 있는 업의 책임이니
둘 사이에 인과관계는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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