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실을 찾아서

능엄신주 본문

☆ 진실의 근원

능엄신주

gincil 2013. 4. 27. 11:25

진리를 찾는 자는 이 세상이 완전한 조화로 되어 있으며 

세상을 지키는 영원한 진리가 존재함을 알아야 합니다. 


진리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이 세상의 길을 찾는 것은 모순인 것입니다. 



세상은 이치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치가 아닌 것은 생겨날 수 없습니다. 


농사를 짓는 자가 때를 맞춰 씨를 뿌리고 거름을 주지 않고 

기도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풍년이 오지 않듯이 

원인을 짓지 않은 채 다라니를 열심히 외운들 되는 일은 없습니다.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생기는 것은 태초부터 불변하는 완전한 진리입니다. 

이런 이치를 분명히 인식해야 삶에 어둠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치에도 없는 그럴듯한 환상들이 세상을 어지럽히니 

세상이 어둡고 사람들의 삶이 불행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내가 이처럼 다라니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라 주장하면 

기성불교에 젖은 사람들은 다라니가 불법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반발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진실과 이치를 모두 보신 부처님이 

이치에도 없는 다라니를 말씀하셨을 리가 없습니다. 



초기 불교에는 다라니와 같은 주문이 없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하던 것이 부처님 사후 약 600년이 지나 정법이 흐려지고 

힌두교의 영향을 받은 대승불교가 성립하면서 

부처님에 대한 신앙과 주문이 불교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대승불교는 기존 소승불교의 귀족성을 극복하고 불교의 대중화를 이루기 위해 

힌두교에서 유행하고 있는 박티 신앙을 받아들여 

부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아미타불 신앙을 발전시켜 나갔고 

중생들이 쉽게 구원의 평안을 느낄 수 있는 방편으로 

요가행법에서 널리 사용되던 진언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진언은 mantra의 의역으로 본래는 베다의 주문을 일컫던 말로서 

보통 내용이 긴 것을 다라니, 짧은 것을 진언이라고 하며 범어를 원문 그대로 외웁니다. 


그러나 주문을 주장하기 전에 먼저 주문의 이치를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이 주문에 대해 말씀하지 않은 것은 

그 속에 사실에 부합되는 인과의 이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문으로 하는 일이 좋아질 것 같으면 

씨만 뿌려 놓고 가만히 앉아서 주문만 외우면 풍년이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자연에는 그런 일이 없기 때문에 

그런 일은 비법이며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본래 부처님은 기도니 주술이니 하는 신비적인 원력으로 

재난에서 벗어나려는 미신적인 수단을 일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중아함경] [장아함경] 및 [사분율] 등에 의하면 

부처님은 처음에 제자들에게 세속적인 주술법을 행하는 것을 엄금하고 

위반자는 파일제(payattika : 지옥에 떨어지는 죄)를 범한다고 하였으며 

또, 팔리어 경전 소품의 소사편 제5에는 세속의 밀법들을 

축생의 학(tiracchana -vijja)이라고 표현하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정법에 위배되는 파일제가 불교의 기본교리로 채택되었으니 

그 말법성을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간혹 주문을 통해 마음의 평안을 느끼고 가피를 입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치에 없는 일을 부처님이 도와주는 일이 없으니 

대부분 그런 일은 유혼의 장난에 의한 것입니다. 


다라니를 하면 무심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에 집중하여 잡념을 버리고 정신을 모으는 것과 

아무 의미가 없는 주문에 집중하여 정신을 놓아버리는 것과는 구분해야 합니다. 


주문은 죽은 자와의 약속 같은 것이어서 

주문으로 정신을 놓아버리면 그곳에 죽은 자의 영혼이 들어오게 됩니다. 


죽은 자가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오면 

그 사람의 의식이 잠자고 죽은 자의 의식이 대신하게 되므로 

그 사람은 수면상태처럼 평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의 몸을 유혼에게 바치고 자신은 뒷방 신세를 지는 것과 같은 것이니 

종교를 믿어 세상의 고통에서 벗어나 평안을 느끼는 것은 

대부분 이와 같이 영들이 인간의 의식을 지배하여 마취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평안은 일시적인 것으로서 

세상의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기 때문에 

세상에 돌아오면 더 큰 문제에 부딪히게 되는 것이며 

이를 잊기 위해 다시 종교로 도피하는 것이 종교의 중독성입니다. 


간혹 영의 힘을 빌어 병을 고치거나 하는 일이 있는데 

이는 큰 귀신이 작은 귀신을 쫒아내는 일이니 

그 삶은 더 큰 위험에 처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세상일은 한치의 오차없는 인과관계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모든 일은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생기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이 자신의 마음 속에 쌓인 업을 닦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기간 동안에 

바른 이치를 배우고 좋은 공덕을 행하는 인간농사를 지음으로써 

더 맑은 마음과 밝은 지혜와 강한 의지를 지닌 좋은 자기를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삶을 통한 인간 농사를 짓지 않고 가만히 앉아 다라니만 외운다고 해서 

수생동안 쌓인 자신의 업이 사라지는 일은 없습니다. 


사람의 업이란 수많은 생을 살아오면서 삶 속에서 행했던 습이 쌓인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삶을 통해서만 이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땅에서 넘어진 자는 반드시 땅을 짚고 일어나야 하는 것이 

영원불변한 인과법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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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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