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실을 찾아서
땅과 하늘의 이치 본문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 있는 생명의 진리는 무시하고 무엇이든지 믿음으로만 해석을 하려 한다. 그래서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무조건적인 신앙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모든 성경 구절을 원칙도 없이 자기의 지식과 논리로 해석을 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결국 개인의 감정과 지식, 능력의 한계가 개입되어 모든 사람의 말이 다 다른 문제가 나타나는 것이다.
최근 천국의 법통(마16:16-19)이란 글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8) 그러나 이 진리는 천국의 법통이 될 것이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19) 그리스도의 이름이 법통이다! 그것이 천국의 주춧돌이다! 이것을 믿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 는 내용이었다. 즉 주는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이 땅에서 믿는 인연을 갖기만 하면 하늘에서 구원을 받는다는 주장인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와 같이 무조건적인 믿음만 있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말하려고 이 땅의 뜻과 하늘의 뜻과 같다고 가르치신 것이 아니다. 이 말 속에는 진리를 보신 성자만이 알 수 있는 생명의 이치가 들어있는 것이다. 즉 믿기만 하면 무조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말 속에 머물러 그 가르침을 행한 자만이 자기의 형제요 가족이니 이들 만이 구원을 받는다는 뜻인 것이다. 그리하여 이 땅에서 거룩함을 얻어야 하늘에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말씀하려 하신 것이다.
요한 복음 8장에 그 진정한 뜻이 잘 나온다.
31.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37.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38.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예수님은 자기 아비에게 들은 대로 맹신적으로 여호와만 섬기며 진리를 행하지 않고 인간의 양심과 도리를 지키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여호와를 섬기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말한 진리를 깨우쳐 그 진리를 행하는 자야 말로 진정 내안에 머무는 자로서 자유와 구원을 얻는다”고 하시면서 “너희들은 무지하게 여호와만 맹신하니 맹신의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나의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를 죽이려 한다”고 꾸짖으신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를 조상보다 더 절대적으로 모시던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독사의 자식들아, 회개하라!” 하시고 “주여! 주여! 하며 말로만 하나님을 외치지 말고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행하라”고 하신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이 만든 이 세상은 완전한 뜻과 질서로 완전하게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살아있는 자는 이승에서 자신의 삶을 짓고 죽은 자는 결과의 세상인 저승에서 심판을 받도록 되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죽은 자는 죽은 자에게 맡기고 산자는 산자를 따르라고 하신 것이다.
따라서 모든 원인은 현상의 세계인 이 땅에서만 지을 수 있으며 결과의 세계인 저승에서는 그 결과를 가지고 심판받는 것이다. 그것은 나무의 열매와 같다.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나무가 자랄 때 많은 거름과 물과 햇빛을 주어 잘 키워야 하는 것이며 그러한 노력의 결과인 열매를 맺게 되면 그 열매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그 상태에서 머물며 소비자들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영혼도 결과인 세계에서는 더 이상 자신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이 땅에서 이룬 자신을 가지고 그대로 심판받는 것이다.
그래서 하늘의 신들도 자신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땅에 다시 태어나 좋은 원인을 지어야 한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살아있을 때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행하여 올바른 삶을 산 자는 마음의 평안을 얻어 구원을 받을 것이며 살아서 욕망과 집착에 헤맨 자들은 죽어서도 마음의 평안과 구원을 얻지 못하고 끝없이 헤매며 지옥의 결과를 받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은 현실에서 이미 결정되며 사후의 결과의 세계에서는 현실의 것을 그대로 가져가고 새로운 변화가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승에서 얻지 못한 것은 저승에서도 얻을 수 없는 것이 생명의 이치인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구원을 받을 지 여부는 현실에서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일을 마치고 혼자 있는 시간에 자신을 들여다 보았을 때
마음 속에 욕망이 들끓고 집착과 불안이 있는지 아니면 맑음과 평안이 있는지 확인해보면
자기가 구원을 받을 지 지옥을 헤맬지 미리 짐작할 수 있다.
큰 원한과 욕망과 집착이 없이 그 마음에 평안이 깃들어 있으면 좋은 삶을 산 것이며 구원을 받는 것이며 현실에서 마음의 평안을 얻지 못하고 불안과 공포에 떠는 사람은 죽어서도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땅에서 맨 일은 하늘에서도 매게 되고
땅에서 푼 것은 하늘에서도 풀리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아무리 욕심이 많고 마음이 고통스럽고 불안해도
예수님만 믿으면 아무리 죄가 많아도 죽어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갑자기 예수님이 짠하고 나타나서 구원해주는 일은 없다.
현실의 결과가 사후에 그대로 이어지고 결과의 세계에서는 더 이상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열심히 구원을 바라고 형식적으로 교회를 다닌 욕심많고 집착많은 자들이
죽어도 예수님이 짠하고 나타나 구원을 해주지 않으니
세상을 떠돌며 유혼이 되어 성령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은 유대인처럼 단순히 하나님만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맹목적인 신앙을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세상이 이루어지는 진리를 보시고 그 진리대로 살라는 것을 깨우쳐주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는 이러한 진리의 가르침은 빼버리고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고 있으니 이치에 맞지 않고 위선적인 종교가 되고 있는 것이다.
진리도 없는 무조건적인 신앙이 어떻게 좋은 인간을 만들고 좋은 세상을 만든단 말인가?
이것이 바로 인류역사 속에서 맹목적 신앙이 세상을 망친 이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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