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실을 찾아서
우리나라 성령현상 본문
오늘날 우리나라는 불같은 성령현상이 일어나 개척교회가 세계적 성장을 이루고 현실에 지친 사람들은 너도 나도 신의 기적과 구원을 바라고 교회로 달려가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현상을 한국이 새로운 선민으로 여호와의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아전인수적인 해석을 한다. 그런데 수천년간 기독교를 믿어오던 정통 기독교 국가들에서는 별로 일어나지 않는 성령현상이 왜 우리나라에서 불같이 일어나는 것일까? 여기에는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과는 다른 매우 위험한 비밀이 숨어있다.
성령이 많이 나타나는 가장 주요한 원인은 한국의 미신적 상황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비극적인 일이 많았고 사회의 혼란과 타락으로 원한과 욕망에 얼룩진 한이 많았으며 제사와 조상신, 무당, 점집 등으로 영적으로 매우 타락한 나라였다. 이러한 유혼들은 풀잎의 이슬처럼 온 세상에 가득 번져있어 산자들의 속으로 들어오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신을 주인으로 섬기는 기독교가 들어와 너도 나도 영을 받겠다고 금식기도를 하며 스스로 자신의 몸을 바치고 나서자 사람의 몸으로 들어올 기회를 노리던 유혼들이 ‘이때다!’ 하고 성령의 모습으로 몸으로 들어와 재림주 행세를 하며 섬김을 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그동안 박태선 장로의 천부교, 이장림의 다미선교회, 빈야드 운동 등 사회적인 비판을 받을 만한 극단적 성령운동과 사이비 교주들이 많이 나타났는데 그 이유는 바로 이러한 하급령들이 대거 성령의 모습으로 나타나 자기의 욕망과 집착을 풀려고 하기 때문인 것이다.
이러한 영들은 창조주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종교적 욕망과 집착을 가진 저급한 영들이 변장하여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진리를 밝히는 일이 없으며 무조건적 성령 영접을 통하여 귀신세상을 만듦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한다. 그래서 허약한 자의 몸으로 들어간 거짓 성령은 곧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어 광적인 행동을 보이며 여러 가지 사사로운 욕망을 충족시켜 줄 것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여러 신흥종교의 교주들이 재물과 여자문제로 각종 추문을 일으키는 일도 알고 보면 그들의 몸에 든 영들이 생전에 하지 못했던 자신들의 욕망과 집착을 영매를 통해 대신 푸는 과정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영적 혼란을 기반으로 신흥개척교회에 성령이 비처럼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수많은 성령 현상이 나타나자 진실을 알지 못한 사람들은 더욱 더 그 신비에 취해 비정상적으로 교회에 심취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한국 교회의 급성장 배경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신비적인 성령현상이 빈발하면 결국 우리나라는 고대 이스라엘이나 중세 유럽사회처럼 합리적 이성과 이치가 사라진 맹신적 무지만 남은 후진국이 되고 마는 것이다. 따라서 성령이라고 무조건 좋아해서는 안된다. 진정한 회개와 진리의 실천, 예수화라는 삶의 변화가 따르지 않는 영적 현상은 악령의 감염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그렇다면 요즘 우리나라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령현상들을 살펴보자.
대표적인 성령현상으로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지는 현상, 몸이 진동하는 현상, 몸이 뜨거워져 발을 데는 현상, 이빨이 나고 금니가 생기는 현상, 방언현상, 치유현상 등이 있다. 과거 무당들에게서나 볼 수 있었던 이러한 현상들을 하나님의 영이 나타나는 것으로 착각하며 잡령을 성령으로 숭배하는 기독교를 보면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는 것이다. 만약 예수님이 하늘나라에서 동방의 한국이란 곳에서 기독교를 믿는다고 하면서 자신이 가르쳐준 진리와 인간의 길을 가르치지 않고 오직 신노름만 하고 있는 것을 보신다면 매우 비통해 하실 것이다.
그럼 먼저 집단적인 성령현상으로 경련을 일으키며 약 20-30분 쓰러져 있다가 깨어나서는 황홀한 체험을 했다고 하는 혼절현상을 살펴보자. 이것이 과연 성령현상이라 할만한 영적 현상인가?
아니다! 이러한 영적 현상은 우주를 창조한 하나님의 은사라고 하기에는 매우 유치하고 조잡한 현상이다. 높고 신성한 하느님이 할 일이 없어 나약한 사람들의 몸에 들어와 발을 동동 구르게 하고 쓰러지게 함으로써 자신을 나타낸단 말인가? 만약 이것이 신이 하는 일이라면 그 신은 매우 저급한 신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누가복음(9:39, 42)에도 이와 유사한 현상이 나타난다.
"귀신이 그를 잡아 갑자기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몹시 상하게 하고 ... 귀신이 그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이러한 경련현상은 우리나라 무당들의 접신현상에서도 비슷한 형태가 나타난다. 무당들이 접신하는 것을 살펴보면 경련하고 실신하며 황홀한 체험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의 성령이나 무당의 몸주나 누가복음의 마귀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따라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나타나는 많은 성령현상이 잡령들이 일으키는 현상일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전 기독교 지식란에 『성령은사의 징조』란 제목으로 그러한 심령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내용이 있었다.
“님의 두 팔이 슬슬 움직여지면서... 나중에는 급기야 아주 아주 빠르게 빙빙빙 돌려지면서... 꿇어 앉은 님의 무릎이 앞쪽이 진동과 함께 들려지면서... 몸이 붕붕 뜨면서...약 30센티미터정도... 운동을 심하게 했을때 근육이 뻐근하고 결리는듯한 통증도 수반될때도 있답니다. 지각이 흔들리고 온 지구가 들썩거릴듯한 환상체험이 오면서... 꼭 콘크리트 바닥을 내 옆에서 거대한 굴착기게로 파들어갈때 흔들림처럼 온 옴이 덜덜덜덜두두두두 떨리다가 님의 손이 바람개비처럼 빠르게 돌려지며 펄럭이듯 하실겁니다.... 흡사 선풍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빙글빙글 돌며 온 몸이 붕붕뜨듯 들리며 진동을 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기수련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체험하는 현상이다. 가부좌를 한 상태에서 온몸이 떨리고 사지가 자기 스스로 놀고 몸이 허공으로 튀어오르는 현상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무의미한 현상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이 자신의 모습을 보이신다는 것은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그리고 요즘 금사역 현상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또한 매우 유치한 일이 아닐 없다. 어떻게 성장이 멎은 사람의 이빨이 나고 해 넣은 이빨이 금이빨로 바뀐단 말인가? 이런 성령현상은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객관적으로 검증하고 경찰 수사를 한다면 하나도 증명되지 못할 것이다. 자기들끼리 있는 자리에서 무슨 말을 못할 것인가? 이처럼 허황된 성령현상이 신도를 끌기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 대표적인 성령현상으로 인정되고 있는 것이 방언현상인데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방언의 유무를 구원의 증거로 보는 경향까지 있다. 그리하여 기독교인들 중에는 방언을 하지 못하는 것을 수치로 알고 방언을 하게 해달라고 애타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과연 방언이 진정한 하느님의 은사일까? 우리는 방언을 하는 자들 중에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도덕적으로 비판받을 자들도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방언하는 것만으로는 하느님의 구원을 받았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방언을 하는 경우에도 자기가 알지 못하는 소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알지도 못하는 방언을 유창하게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게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진정한 하느님의 은사라면 지식이나 교훈이 그 속에 있어야 하며 그 말이 이해되어야 한다. 사도 바울도 방언은 분별과 통역이 가능해야 한다고 했다. 따라서 세상의 진리나 인류의 미래를 본 것도 아니고 하느님의 신성한 뜻이나 진리와도 관계없이 마구 쏟아져 나오는 무의미한 방언은 하느님의 소리라고 하기보다는 다른 종교에서 흔히 나타나는 귀신의 소리와 별반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진정한 성령이 나타나 거룩한 신의 말씀을 전한다면 세상을 밝히는 진리를 말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성령이 나타나 진리를 밝힌 적이 없다. 오늘날 전해지는 진리는 모두 인간의 몸으로 태어난 성자들의 육성을 통해 나타난 것이지 성령이 나타나 밝힌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것만으로 봐도 방언이 진리를 창조한 창조주 하나님의 소리가 아니라 생명의 길을 몰라 세상을 떠도는 귀신들의 씨나락 까먹는 소리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구약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 것이라고 하지만 구약을 섬기든 유대인들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해 예수를 죽이고 말았다. 이처럼 진리는 불확실한 하나님의 성령이나 계시를 통해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는 자의 마음이 깨끗해져야만 바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성령을 받았다는 사람들 중에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줄줄이 꿰는 사람이 있다. 아브라함이 과거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가족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자기 부모형제 일보다 더 자세히 안다. 그러나 망한 유대민족의 민족역사를 줄줄이 꿰고 남의 조상이 한 맹신적인 행동을 본받는다고 해서 그 속에 무슨 이치와 지혜가 있으며 이 세상과 자신의 삶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요즘 기독교 지식란에 올라온 글들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진리와 전혀 무관한 지엽적인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안식일을 지키자, 유월절을 지키자, 예수가 구름을 타고 오실까? 바벨론의 정체, 성경의 여인들... 등등등] 도대체 이러한 내용을 안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인간이 바른 삶을 살아가는데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이처럼 진리가 사라지고 유대인의 사소한 일상사가 본받아야 할 삶의 근거로 이야기 되고 있으니 기독교의 맹신적 신앙이 현대에 어울리지 않는 비이성적인 종교라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현상 중에 대표적인 것이 치유현상이다. 이것은 기독교에서 자랑하는 전매특허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 또한 미신적이며 믿을 바가 못된다. 확실하지 않은 것을 믿으며 기적을 바라는 것은 오히려 병을 키울 수 있는 것이다. 과거 유명한 여배우였던 남정임씨가 성령을 받고 병이 나았다고 선교하다가 결국 유방암이 재발하여 죽고 말았다. 또 오늘날 성령부흥집회에서 절름발이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현상이 빈번히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 또한 의학적 임상적으로 증명된 바가 없다. 만약 이러한 치유능력이 객관적 사실이라면 의학적으로 절름발이로 확인된 환자 몇명을 선발하여 치유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치료를 하도록 하면 분명히 증명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 경우 능력이 증명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치유능력은 기독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종교에서도 일반적으로 존재하는 현상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민간요법으로 널리 전해지고 있는 무당들의 굿은 과거 주된 용도가 병을 낳게 하는 것이었다. 무당들은 귀신을 쫒아낸다고 칼을 휘두르며 환자를 위협한다. 이것은 오늘날 기도원 같은 곳에서 목사가 병을 고친다고 방언으로 기도하고, 마귀를 쫓아낸다고 병자의 면전에 대고 소리를 지르며 심지어 때리기도 하는데 그 모습만 다르지 하는 행태는 별로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요즘 다른 종교에서도 기운의 작용으로 손이 자동적으로 몸을 두드림으로써 병을 낳게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안수기도와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리고 안수기도 또한 분명하지 않는 영적 기운을 함부로 사용하며 무리를 하다 보니 사람을 죽이는 부작용까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조잡한 현상을 거룩한 하나님의 영이 하는 일이라고 보기에는 유치한 측면이 많은 것이다.
그럼 치유현상 속에 있는 진실은 무엇인가?
그것은 영들 상호간에 역학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세상에 나타나는 영들은 각자의 삶을 통해 형성한 영적 힘이 다 다르다. 영들끼리는 서로 의사가 통하니 강한 영이 약한 영을 쫒아내는 것이다. 따라서 영적 치유 현상은 물리적으로 아픈 병증은 치유할 수 없으나 까닭없이 아픈 신병에는 효과가 있다. 그 이유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신병의 경우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나쁜 기운(사기, 유혼, 귀신, 잡령)들이 사람 몸에 붙어 병을 야기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기들은 죽은 사람의 기운이기 때문에 산 사람의 생기와 정반대이기 때문에 이러한 사기가 사람의 몸으로 들어오면 그 붙은 부위에 통증과 병이 생겨나는 것이다. 현대에 들수록 까닭없이 몸이 아픈 병이 많은데 그 이유는 한과 욕망과 집착에 의해 떠도는 유혼들이 많고 이러한 사기들이 사람들의 몸에 많이 스며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잡령들은 사람 몸에 들어오면 같은 무리들을 사람 몸 속에 끌어들이기 위해 주변의 사람을 감염시키게 되며 좋지 않은 일(원인모를 질병과 각종 사고 등)을 자꾸 일으키게 된다. 따라서 귀신들이 많이 모이는 무당이나 점집, 그리고 귀신놀음을 하는 종교단체에 자주 가는 사람들은 이러한 잡령에게 감염되기 쉽다. 그리하여 이런 곳에 많이 다닌 사람의 집안이 풍비박산나는 이유는 이러한 인연으로 만나게 된 귀신이 주변에 있는 귀신들을 떼거리로 불러와 집안 사람들에게 붙어 장난치기 때문이다.
이런 잡귀에 의한 원인모를 병을 치유하는 데는 영적인 치유가 효과적이다. 이러한 영적 병증을 치유하는 원리는 몸에 들어와 병을 일으키는 잡령에게 겁을 주거나 설득하여 쫒아내는 원리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무당은 칼을 들고 설치고 기독교에서는 하나님과 주의 이름으로 겁을 주어 쫒아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그 작용이 항상 확실한 것이 아니며 또 귀신이 꽤가 있어 단순히 겁만 주는 줄 알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그리고 귀신은 깡패와 같이 어리석고 무지하며 욕망과 집착이 많은 존재라 ‘이미 생사가 갈렸으니 모든 원한을 풀고 떠나라!’는 이치에 맞는 말을 잘 듣지 않는다. 그래서 겁을 먹고 떠났다가도 다시 그 욕망과 집착을 풀기 위해 돌아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한번 몸에 영이 들어오면 장애와 같아서 해결하기가 매우 힘이 든 것이다. 한마디로 무당이나 성령치료 등은 헤메는 유혼을 상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시적인 것이며 그 효과를 믿을 수 없고 검증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면서 그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기적, 혹은 표적을 보고 믿을 것이 아니라 오직 진리의 말씀을 믿고 행할 것을 바라셨기 때문이다. 세상은 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리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성령치유는 진리적 현상이 아니라 비이치적이고 비정상적인 생명현상으로 자랑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영적 현상에 의존하지 말라고 한 것은 모든 성자들이 공통적으로 하신 이야기로 부처님은 이와 같이 기적에 의지하는 행위를 엄금하고 이를 어기면 지옥에 떨어지는 죄(파일제 : payattika) 를 범한다고 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성령현상을 무조건 하나님의 영으로 확신하고 이를 구원의 징표로 생각하여 여기에 목을 매는 일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왜냐하면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오늘날 나타나고 있는 성령현상들은 창조주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거룩하고 신성한 모습이 아니라 일반 심령현상과 같이 매우 저급한 형태로서 잡령들의 신노름일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아 세상이 좋아지고 구원을 받는다면 여호와를 목숨처럼 섬기며 매일 성령에 젖었던 유대사회가 그렇게 사악하고 위선적이 되어 망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현실이 그렇게 되지 않은 이유는 유대인들이 섬기는 영이 진정한 하느님의 영이 아니었으며 하나님의 뜻이 그들의 말처럼 무조건적으로 구원해주는 것이 아니었으며 비처럼 쏟아지는 성령이 떠도는 하급신들의 변장하여 나타나는 비정상적인 심령현상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여호와를 모시고 성령에 젖어사는 유대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 회개하라!”고 꾸짖으며 “말로만 주를 외치지 말고 주의 뜻을 행하라!” 했던 것이다. 진정한 구원과 지상천국은 하나님을 섬기고 성령을 받아서 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양심과 정의를 지키고 진리를 실천해야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래 기독교에서 성령은 가장 높으신 창조주 하느님의 영이시기에 모든 일을 성령이 주체적으로 행하시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요즘 부흥목사들은 마치 무당이 귀신부리듯 자기들이 필요할 때 언제나 성령을 호출하여 마음대로 활용한다. 그리하여 성서보다 부흥가의 말이 우선시되고 그의 종교적 야망을 성취하기 위해 성령이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성령부흥 운동은 하느님의 목적을 위한 신성한 역사가 아니라 개인의 목적과 야망을 위해 사회의 혼란과 미신을 부추기는 영적 탈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성령현상이 진정 세상에 복이 되기 위해서는 진정한 회개와 내적 변화로 예수님처럼 살고자 하는 인격적인 변화가 있는 성령체험이 되어야 할 것이며 개인적인 성령체험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공감대를 갖는 진리실천 운동으로 발전되어야 사회적으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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