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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의 근원

인과법 깨우치기

gincil 2013. 10. 14. 22:59

너무 급하신 듯 하다.
평생을 수행한 고승들도 눈앞의 일을 물으면 앞이 깜깜한데
이곳에 오신지 얼마되지 않아 세상의 이치를 한꺼번에 보겠다고 하는 것은 과한 일이 아닌가?
 
완전한 인과법을 볼 수 있다면 그는 완전히 깨달은 자이다.
깨달음에 이르는 것은 수만년을 갈고 닦아야 하는 숙생의 과제이며 인간세상에 드물게 나는 일이니 세상의 이치를 깨치려고 노력하는 것이 인간의 길이며 본분인 것이다.
 
그렇게 살다 인연이 무르익으면 이 생에서 세상을 모두 보게 될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자신이 깨친만큼 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세상이 안 보인다면 더욱 마음을 열심히 닦고 이치를 깨치려고 노력해야지
욕심만으로 바랄 일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 와서 세상을 보겠다는 의지를 내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다른 곳에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 세상에는 많은 학자들이 자기 나름대로 세상을 보겠다고 과거 서적들을 뒤져 논리로 세상을 조합하고 생각을 꿰맞추고 있지만 그것은 안개 속에서 자기 생각과 환상으로 세상을 보는 것일 뿐이다. 종교인들도 진리가 사라진 경전과 신에 대한 믿음 속에서 세상을 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말세의 어둠 속에서 자기의 생각과 환상 속에 머물 뿐 세상이치는 보지 못하고 있다.
 
사실 세상에 나와 세상을 본다고 이야기하는 자들 중에는 진실하지 않고 환상 속에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대부분 자기가 보지도 않고 확인하지도 않는 것을 함부로 말할만큼 진실하지 못하고 비양심적인 것이다.
 
진정 양심적인 사람이라면 자기가 확실히 아는 것만 이야기해야지
자기 생각으로 그럴 것이라고 해서 함부로 진실인 듯 말해서는 안된다.
 
만약 그들을 만나면 이렇게 물어보라. 너는 보았느냐? 그것을 확인했느냐?
그들이 진정 양심적인 자라면 자신은 책에서 본 것이며 그럴 것이라고 생각을 말했을 뿐이라고 할 것이다.
 
과거에 그 책을 쓴 자도 세상을 본 자가 아니고 안개 속에서 자신의 생각과 논리를 쓴 것인데
그에 근거하여 생각과 논리로 짜 맞춘 지식을 어찌 진실이라고 세상에 함부로 전한단 말인가?
 
학자들은 자기가 들은 지식과 짜맞춘 생각으로 세상이 이럴 것이라고 함부로 단정한다. 그래서 말과 논리가 그럴 듯해 것을 현실 속에 실천해보면 하나도 맞아 들어가지 않는다. 이것이 진리와 생각의 차이이며 오늘날 지식인들이라고 하는 자들이 만들어나가고 있는 이상과 현실의 차이인 것이다.
 
그리고 종교인들은 자기가 확인한 것도 아닌 것을 세상에 함부로 전한다.
기독교에서는 아무도 조물주 하나님을 본 적이 없고 신에게 기도한다고 해서 인간을 도와준다는 보장이 없는데 그들은 전해들은 말을 근거로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해준다고 사람들에게 함부로 전한다.
그리고 불교에서는 생명의 길과 깨달음의 길도 모르면서 후대의 용수가 만든 공에 빠져 모든 것을 떠나 지워 버리기만 하면 깨달음을 얻는다고 자신이 알지 못하는 소리를 한다.
 
이것이 오늘날 지식사회의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인간의 정신을 가장 크게 망치고 있는 곳이 바로 대학과 종교인 것이다.
그들은 진실하게, 자신이 분명히 알고 확인한 것만 말해야 하는데
자신이 확인하지도 않은 것을 마치 진실인 듯 이야기하여
오히려 세상사람들을 비진리와 환상에 빠뜨려 진실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는 깨달은 이가 본 명확한 진리가 있다.
 
세상이 완전한 법계라는 사실과
생명이 흐르는 길과 깨달음에 이르는 길과
세상이 이루어지는 이치를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완전한 법계이니 그속에 완전한 뜻과 진리가 있고
모든 이치가 하나로 통하고 있으니
그 속에서 하나의 이치만 통달하면 다른 모든 것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는 완전한 뜻과 기운이 존재하니
완전한 뜻에 따라 기운이 끝없이 움직여
탁한 기운과 맑은 기운을 만들고
탁한 기운은 물질의 근본이 되며
맑은 기운은 끝없이 진화하여 생명을 만드는 진기로 화하여
생명체와 의식의 근본이 되고
이것이 생명의 길에 따라 더욱 사실과 이치에 맞게 진화하면 100% 순수한 진기가 되어
완전한 우주의 열매인 해탈을 이루고 조물주의 자리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일은 근본과 바탕과 환경의 원리로 이루어지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에서 하나라도 이 원리에 따라 상호간의 인과관계를 깨치게 되면
다른 모든 인과관계도 볼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세상은 진리가 사라진 말세라 이러한 분명한 진리를 모른다.
모든 것이 안개 속이며
사람들은 운명이나 환상을 믿고 요행수와 신의 가피에 의존한다.
 
따라서 세상이 완전한 법계이고 하나의 이치 속에 이루어지고 있음을 자각하기만 해도
자기 생각과 요행 수에 빠져사는 세상사람들 보다 한층 높은 차원에 오른 것이며
세상을 살아가기가 매우 편해지고 정확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생명의 이치를 깨쳐 한과 집착에 얽매지 않는다면
죽어서 유혼이 되어 자신의 생명을 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즉 바른 이치를 깨치고 좋은 정신을 가질수록 세상을 바로보게 되며
좋은 삶과 좋은 세상과 좋은 후생을 만나게 된다.
진리와 좋은 마음과 좋은 인간과 좋은 세상과 깨달음은 하나인 것이다.
거짓없는 진실한 마음에 사실과 이치가 비치고
세상을 축복하려는 좋은 마음으로 그릇된 업과 아상과 욕심을 극복하면
마침내 완전히 진실한 마음에 세상이 있는 그대로 비쳐 완전한 깨달음을 얻게되는 것이다.
 
따라서 마음이 업과 욕심으로 흐린 자는 세상을 바로 볼 수가 없다.
사심과 욕망을 극복하고 거짓과 죄악을 버려 마음이 맑아질수록 세상을 바로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을 완전히 넘어서는 자만이 세상을 완전하게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질문 중에서 베푸는 것도 좋지만
그것이 진정한 축복이 되어야지 정으로 베풀면 안된다.
정은 이치를 생각하지 않고 감정으로 상대를 도와
오히려 상대를 망치거나 상대에게 이용당하게 되어 한을 얻는 원인이 된다.
진정한 축복은 이치에 따라 상대가 건강한 인간으로 성장하게 도와주는 것이다.
인간은 정신이 맑을수록 정에 얽매지 않고 이치와 옳고 그름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따라서 혼자있게 되면 외로운 것은 당연한 것이다.
다만 근본이 좋은 사람일수록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이 크다.
따라서 선근이 큰 사람이란 외로움이란 어려운 환경을 잘 극복하는 것이지
외로움을 타지 않는 것은 아닌 것이다.

 

---<질문>---

들어가기 전에 밑에 법문스님에 대한 말씀 잘 읽었습니다. 저도 몇 번 tv나 인터넷에서 법문스님 즉문즉설을 봤었는데요.


예전 같았으면 그 분 말씀에 참으로 공감하며 대단한 분이시구나 했을텐데 어쩐 일인지... 몇 년간 진실의 근원에서 여러 글들을 읽고나서  그런건지 스님 말씀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깨달은 분은 아니시구나..뭐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시각이 예전과는 조금 달라졌음을 느낍니다.


이제 저의 궁금한 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생활하면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들을 인과의법칙에 따라 보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이에 대한 질문을 예전에 어떤 분이  이미 했던 것도 같은데요..어디까지가 원인이고 어디까지가 결과인지 종합적으로 보기가 참으로 힘이 듭니다.  허해구님은 어떤 일들을 보면 딱 보이십니까? 이것도 지금 저의 근기에서는 어쩔 수 없는건가요? 지금 현재 일어나는 일들이고 현실에서 해결해야만 하는 일들인데 저의 업이 사라질때까지 기다리기에는.... 현실에서 계속해서 연습을 해야할 것 같은데 혹시라도  작은 기준이라도 있다면 제시해주셨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저의 성격에 대한 질문인데요. 제가 남한테 베푸는 걸 좋아합니다.  그들이 행복해하는게 저는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그렇다고 막 베푸는건 아니구요.  예를 들자면 여름에 택배 기사분들 오시면 수박이라도 드리고 집에 뭐라도 있으면 경비아저씨 수고하신다고 갖다드리고 같이 일하는 분이 피곤하다 하면 뭐라도 해서 갖다드리거나 필요한 물건을 주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저는 안먹고 좋은거 안써도 남들한테는 더 좋은 걸로 베푸는거 같습니다. 하지만 길가다 가만히 앉아서 구걸하는 사람한테는 절대 지갑을 열지 않습니다.  나름의 사정이 있어 마음이 동하면 지갑을 여는데 몇 십년간 지하철 복도에 앉아 가끔 노래 부르고 앞에 동전통 놓고 계시는 할아버지에게는 이상하게 도와주고 싶지 않더라고요. 예는 여기까지로 하고.. 이런 저의 행동들이 업에 쌓인 좋지 않은 행동일 수도 있을까요? 전 저도 기쁘고 상대방도 기쁘니 좋은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혹시나 마음 한켠에 남을 그냥 불쌍하게만 생각하는 마음이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냥 저는 제가 마음이 동해서 하는 일인데 이게 진정 남을 생각해서 하는건지 아니면 내 마음이 그런 것을 하면 기쁘게 만드니까 ..내가 기쁘고자 하는 것인지 요즘은 이게 옳은 행동일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웃끼리 동료끼리 베풀고 나누는게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닐 수도 있을까요??


마지막으로, 외로움에 대한 것입니다. 외로움을 잘 느끼지 않는 것은 좋은 것입니까? 외로움을 많이 타는 것도.. 잘 타지않는 것도 둘 다 업에 의한 것입니까? 아니면 외로움을 많이 타면 업이 많은 것이고 덜 타면 업이 적은 것이고 이렇게 볼 수도 있는건가요?그것도 아니면 인간의 몸을 받은 생명은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뿐 업에 상관없이 모두 외로움을 타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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