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실을 찾아서
성냄에 관하여 본문
이 세상은 완전한 뜻 속에 있다.
물질은 큰 에너지에 휩쓸리고 자연에서는 강함에 의해 지배된다.
그리고 고차원의 의식은 완전한 뜻에 의해 적용받게 되어 있다.
거친 물질의 단계에서부터 순수한 인간의 의식으로 올라갈수록
단순한 힘의 이치를 벗어나 완전한 뜻의 이치에 의해 점차 적용받게 되는 것이다.
자연은 힘과 에너지의 순환에 의해 거대한 자연이 하나로 조화를 이루며 돌고 있는 것이다.
물질적 세계에서는 강한 에너지가 나타나면 그를 중심으로 세상이 움직이고
자연의 상태에서 강한 것이 약한 것을 지배하도록 되어있다.
사람이 채소와 과일을 따먹고 곡식을 추수해 먹는 것에 채소와 과일과 곡식이 항의하는 것을 봤는가?
호랑이가 사슴을 잡아먹는데 사슴이 원망하는 것을 봤는가?
정의를 느끼고 원한을 갖는 것은 인간의 의식 단계에 이르러서 나타나는 뜻이지
자연 속에는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 속에는 오직 힘의 원리를 통한 자연의 순환이 있을 뿐이다.
호랑이가 사슴을 잡아먹는 것은 불의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먹고 살기위한 자연스런 행동일 뿐이며 사슴이 아무 원망하지 않고 도망치는 것도 풀을 뜯어먹고 사는 사슴의 자연스런 생의 흐름일 뿐이다.
이러한 흐름 자체가 자연 속에 흐르는 완전한 뜻인 것이다.
그대는 너무 생각이 많다. 그대는 자신의 생각으로 자연의 자연스런 뜻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물질과 생명의 단계를 지나서 의식적 단계로 진화하면
의식은 완전한 이치로 움직이기 때문에 힘 이외에 모든 것에서 완전한 뜻을 요구한다.
정의와 원한도 인간의 의식이 나타남으로써 비로소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의식적 존재는 단순한 힘에 의한 생존이 목적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공정하고 완전해야 성숙해지기 때문이다.
인간이 동물에 불과하다면 강한 힘으로 모든 이웃을 정복하고 큰소리치며 살면 되지만 인간이란 의식을 지니고 그 의식을 완성시켜야 할 존재로 태어났기에 악을 행하여 남을 함부로 정복하고 거짓으로 부귀영화를 누리면 그 의식을 망치게 되기 때문에 동물과 같이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며 살 수가 없는 것이다.
---------------------------------------------
자연은 완전함이며 완전함이 진리입니다.
무심코 뻗은 나뭇가지 하나에도 우주 자연의 이치가 완전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정리를 다시 해봅시다.
세상은 물질에서 생명으로 그리고 의식으로 더욱 높은 차원으로 진화하여 마침내 근원적 존재(불성, 신성, 조물주)에 이릅니다. 그 흐름을 살펴보면 물질은 에너지에 의해 움직이고 생명은 강함에 의해 움직이고 의식은 뜻에 의해 움직입니다. 그리하여 물질과 생명과 의식은 하나가 되어 우주 질서를 한치의 어김없이 돌고 있습니다.
물질의 단계를 넘어 생명의 세계로 진화하게 되면 그들은 스스로 살려고 나타난 생명체이기 때문에 생의 의지를 근본동기로 움직이게 됩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은 살려고 하는 생명들이 서로 부대끼며 생명력을 주고 받으며 지속적으로 순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약육강식의 원리에 의해 서로 생명력을 주고 받으며 거대한 하나의 생명질서를 이루며 돌게 됩니다. 그들은 매우 의식이 약하기 때문에 원한과 선악을 느끼지 않으며 먹고 먹히며 하나의 순환질서를 이루며 사는 것이 자연스러운 삶인 것입니다. 그래서 동물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영혼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명들 중에 더욱 진화가 일어나 맑은 의식이 나타나면 이러한 의식은 인간으로 나게 되며
인간의 의식은 신성한 존재이기 때문에 점차 자신 속에 세상의 뜻을 비쳐보게 됩니다.
동물의 의식이 흐린 연기와 같다면 인간의 의식은 맑은 물과 같아서
점차 자신의 의식 속에 세상의 뜻과 이치를 비춰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의식은 단순히 살려고 하는 의지와 강한 생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힘을 키울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더 좋은 자기와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지
자유와 주체성을 가지고 그 뜻과 이치를 생각하고 실천하여 완성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상의 이치에 따라 바른 삶을 산 것은 더 좋은 의식을 얻어 완성에 이르게 되고
잘못된 삶을 살아 무거워진 영혼은 유혼이 되어 지옥의 고통을 헤매다 미물로 태어나거나 식물로 태어나게 됩니다. 그들은 의식이 거의 희박해지고 단순히 살려고 하는 본능 만이 남아 약육강식의 굴레 속에 떨어지게 됩니다. 즉 그들이 약육강식의 질서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단순히 생명만 남은 미물로 떨어진 그들이 받아야 하는 과보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원론적인 두개의 질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첫째 세상은 조물주의 뜻에 의해 완전한 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살려고 하는 모든 것을 죽이지 않고 축복해주는 것이 진정한 자연의 뜻이며 이치이다.
둘째 강한 것이 지배하는 힘의 원리가 자연의 이치이다.
인류역사도 강자에 의해 지배되어온 것이 약육강식의 역사이다.
따라서 강함이 자연의 원리인 것이며 인간도 여기에 따라야 한다. 진리와 같은 것은 부수적이며 지엽적인 것이다.
과연 어느 것이 정답일까요? 둘다 정답이 아닙니다.
첫째 질문은 자연현상에 맞지 않습니다.
자연현상은 먹고 먹히며 사는 것이 실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사실적인 현상은 곧 진실입니다.
자연현상은 먹고 먹히며 살도록 하고 있습니다.
만약 모든 생명을 축복해야 한다고 모든 생명을 먹지 않고 살려두라고 한다면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물은 즉시 죽게 될 것이며 식물만 무성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 질문은 관념에 불과한 거짓인 것입니다.
둘째 강한 것이 지배하는 것이 자연의 질서이니
인간세상도 강한 것이 지배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회원게시판의 ‘야만의 역사 속에 흐르는 진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질문]---
>내가 먼저 정직하고 세상 또한 정직하면 살기 편하고 지상낙원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하지만 복잡한 인간 세계를 벗어나 아주 단순하면서도 신비한 자연의 생태계를 보면 과연 정직이 만사해결의 방법인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약육강식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먹이사슬에서 먹잇감에게 정직하게 미리 통보하고 잡아 먹는 생명체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장사꾼이 원가를 공개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자연에서 살아가고 자연의 한 부분인 우리가 과연 자연스러움을 거슬러 살 수가 있을까요?
'☆ 진실의 근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술문명과 인간의 길에 관해 (0) | 2014.05.19 |
---|---|
소크라테스는 왜 독서를 반대했을까? (0) | 2014.05.18 |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사회 (0) | 2014.04.19 |
야만의 역사 속에 흐르는 진리 (0) | 2014.04.19 |
채식하다 사람들과의 마찰을 겪고 있습니다 (0) | 2014.04.19 |
세상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법
진실의 근원 ginc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