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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과 기운의 비밀 본문

☆ 진실의 근원

명상과 기운의 비밀

gincil 2017. 4. 25. 21:10

내가 하는 말이 기독교인들에게 느끼는 독불장군 같은 느낌을 준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이루어지는 사실은 정해져 있으니 상대에게 섭섭함을 주겠지만 진실을 밝히지 않을 수 없고 사실과 다른 거짓과 환상을 믿고 있는 사람과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나도 질문하는 사람에게 좋은 말만 해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상대에게 불행을 주는 일이기 때문에 참된 사실을 밝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을 바로 아는 것이야 말로 자신에게 주어진 소중한 삶을 허황된 거짓에 빠뜨리지 않고 보람있고 가치있게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내가 상대를 폄하하거나 교만해서라고 오해하지 말기 바라며 그대를 위한 진심에서 드리는 말씀이라는 것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교만이라는 것은 사실을 사실과 다르게 함부로 지어서 하는 말이 교만이고 편협한 것이지 사실을 사실대로 밝히는 것은 아무리 무리하게 들리더라도 그것은 진실한 것입니다.

 

이곳에서는 기존 종교의 입장에서 처럼 무조건 믿으라 하지 않고 오직 사실에 비추어 판단하라고 합니다. 사실에 비추어 맞는 일이면 진실이며 진리이니 믿을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이곳을 버리라고 합니다. 그러니 이곳이 맘에 맞지 않더라도 그곳의 가르침과 이곳의 가르침이 어느 것이 사실에 맞는지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세상의 흐름에 따라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믿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면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알지 못하는 어둠이 이 세상에 가득 끼여 그 거짓과 환상에 오염되어 살고 있기에 고해의 바다를 끝없이 돌며 불행한 운명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세상을 말법시대라 하는 것입니다. 정법이 사라지고 말법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이 자신의 가르침은 500년 밖에 가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전해져 내려오는 불교의 가르침이 과연 부처님의 원 가르침과 일치하며 정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만약 지금 불교의 가르침이 정법이라면 부처님의 말씀이 틀린 것이니 부처님이 정각자가 아니겠지요.

 

불교의 진실에 대해서는 이곳 홈페지의 불교의 변질이나 대승불교에 대해 검색해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금덩이를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 금덩이를 가졌다고 하지만 그 금덩이를 잃어버렸다면 그곳에는 금덩이가 없습니다. 어느 종교가 정법은 가지고 있을 때 그곳은 정법이 있는 종교이지만, 정법을 잃어버렸다면 그곳은 정법이 없는 곳이며 결론적으로 그곳에서 가르치는 것은 정법이 아니라 상법이며 말법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한치의 어김없는 인과의 이치로 이루어집니다. 좋은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니 그동안 불교가 역사 속에서 좋은 인간과 좋은 세상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은 불교 속에 부처님의 정법이 사라졌기 때문인 것입니다. 따라서 그대는 보리선수라는 수행단체의 가르침이 과연 부처님의 정법인지를 다시 한 번 현실에 비추어 재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불교에서 팔정도를 행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모르는데 어떻게 바르게 보고 듣고 행하며 팔정도를 행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의 가르침의 근본이 공덕행이라고 해서 공덕을 행하려고 하나, 어떻게 해야 공덕을 짓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공덕을 지을 수 있습니까?
그대에게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공덕을 지을 수 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아니 그대에게 묻는게 아니라 그대의 스승에게 이 질문을 해보시고 그 답을 저한테 알려주시면 그 분이 과연 법을 보는 분인지 세상에 이로운 법을 전하는 분인지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래에 있는 “오래된 영화와 같이 식상한 가르침” 이라는 글을 보면 공덕을 행하라는 말은 쉽지만 오늘날 불교 속에서 그것을 찾기는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하거니와 명상은 정법이 아닙니다.
인간의 의식은 좋은 원인을 지어야 좋아지는 것이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명상을 해서는 절대 좋아지지 않습니다. 이것은 인과의 이치상 명약관화한 원리입니다. 따라서 기를 돌리거나 명상을 해서는 절대 좋은 마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가만히 앉아 마음을 보면, 기껏해야 이미 자신에게 주어져 있는 자신의 마음만을 볼 수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도는 기운으로 인해 몸이 저절로 움직인다고 했는데
그것이 사기가 도는 영적 감염이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어떤 절차에 의해 단정을 내리시는지 물어 보셨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정신으로 사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식에 의해 몸을 움직이고 행위를 하며 원인을 짓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는데 몸이 저절로 움직이고 말이 나오는 일은 없습니다.

그대의 경우처럼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는데 저절로 몸이 움직인다는 것은 자신의 의식이 아닌 다른 의식이 그대의 몸을 움직이는 현상인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 속에 움직이고 있는 기운이 의식을 띤 기운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심해지면 그대의 몸은 점차 그 기운이 지닌 의식에 의해 지배될 것이며 자신도 모르는 말을 하고 다중인격 장애를 갖게 될 것입니다.

 

사람의 몸이 자신의 정신이 의식하지 않았는데 움직이고, 자신이 뜻하지도 않았는데 방언을 하고 다른 목소리로 말하는 것은 다른 정신분열증 환자나 심령현상에서 많이 보던 것이 아니던가요?


그래서 그대의 몸을 저절로 움직이고 있는 기운을 다른 의식을 띤 기운으로 본 것이며, 그대의 미래가 걱정스러워 충고한 것이니 너무 기분 나쁘게 듣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대가 질문하지 않았다면 내가 귀한 시간을 소비해가면서 욕을 먹으가면서 이런 기분 나쁜 충고를 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선택은 그대의 몫이겠지만
이미 그대 속에 들어온 기운이 그대의 의식에 영향을 주어 그대를 말릴 것이니 매우 걱정스럽습니다.

 

나의 수행에 대해 물었는데
내가 그렇게 상세하게 한 이유는 지금 세상에 명상이 하도 성행하며 후인들이 다시는 그런 한계 속에 빠져들지 말라는 경계의 글로 쓴 것입니다. 그대에게 이런 충고를 하는 이유도 그 실상과 한계를 정확히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많은 수행법을 했습니다.
단전호흡을 통해 기를 돌리고 요가행법을 통해 차크라를 관하고 화두를 통해 마음자리를 보았습니다.
남들이 말하는 최고의 경지에 들었지만 그것으로 업이 사라진 평안을 얻지 못했고 지혜가 완성된 나 자신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정기신이라 기로는 마음을 닦지 못하며 마음은 오직 진리에 대한 깨침으로써만 정화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이 수많은 명상과 고행을 했지만 결국 그 한계를 느끼고 팔정도로 인한 공덕행으로 완성에 이르렀다고 밝힌 것과 같습니다.

기운과 의식과 명상의 관계에 대해 아래에 쓴 글을 다시 한 번 인용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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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운에는 여러 가지 기가 있다. 천기와 지기, 해와 달, 산과 강과 같이 자연에서 나오는 기운과 생명의 원기와 죽은 자의 사기 등 수많은 기운들이 있다.

 

일반인들은 주로 호흡과 음식을 통하여 생명의 원기를 흡수하며 살고 있는데 이런 기운은 순수하고 느낄 수 없어 무기라고 한다. 따라서 좋은 음식을 먹고 숨을 잘 쉬며 운동을 열심히 하여 무기를 잘 섭취하는 것이 가장 건강하고 표준적인 일반인의 삶이라 하겠다.

 

건강한 일반인의 경우 몸에 보호막이 있어 외부의 기운이 몸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외부의 의식으로부터 자기 정신을 보호하며 제정신으로 사는 것이다. 그런데 명상을 하게 되면 기문이 열리게 되므로 많은 외부의 기운들을 직접적으로 받아들이기 쉬워진다. 이때 외부에서 들어오는 기운은 각자의 의식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정기신이라 기는 종이요 신이 주인이기 때문에 그 의식에 따라 나타나는 기운이 달라지는 것이다. 의식이 강하고 맑은 자는 맑은 기운을 받게 되며 의식이 허약하고 혼탁한 자는 어두운 기운을 받게 된다. 그래서 해탈한 자는 우주의 근원의 기운과 하나되며, 부와 권력을 얻기 위해 깨달음에 욕심을 내는 경우 과거에 그러한 욕심으로 도를 닦다 죽은 한 맺힌 수행자의 혼이 붙어 거짓 깨달은 자 흉내를 내게 되는 것이다.

 

나의 경우, 세상의 어둠과 불행을 견딜 수 없어 진리를 찾고자 구도에 나섰고 끊임없이 내가 가는 이 길이 세상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를 나의 중심 주제였다. 단을 맺어 양신 출태를 하려고 할 때도 과연 신통을 얻는 길이 세상에 무슨 도움이 되는가를 고민한 결과 그것이 정법이 아님을 알고 버렸던 것이다. 아무리 큰 능력을 얻어도 내 자신의 마음이 정화되지 않고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런 가치와 의미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 많은 수행 과정 속에서도 별다른 마의 유혹을 겪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분명한 목적이 없이 욕심으로 도를 이루고자 함부로 명상에 빠지면 사기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아무 것도 모른 채 함부로 하는 명상은 매우 위험하다.



---[질문]---


안녕하세요
지난번 질문글을 드렸고 주신 답글을 읽었습니다
주신 답글에 글을 올리려 했으나 한국을 오가는등 집안일로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항상 마음이 개운치가 않고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제게 선하게 살아가려하기보다는 깨달음을 얻으려하는것 같다고 단정적이듯 말씀하셨지만
저는 깨달음은 감히 생각지않고
단지 주어진 이번 생에 나와 인연 맺어진 인물들에게만이라도 조금이라도 인연되어 좋았다할 수있는 가치있는 인간으로 살아가기를...
 또 잊어버리고 어리석어 질 때 내 마음을 환기시킬수 있기를...
또 건강과 일신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으로 부처님 법을 따르는 범부입니다
그때 제가 수행하는 곳의 가르침인 인과의 법칙을 믿고 선하게 살며 업을 쌓지않기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질문하셨고  제가 대답을 못햇다고
저에 대해 , 수행단체에 대해 이런저런 단정적인 가정을 하셨습니다
부족한 저는 그 때
너무 단순한 사실을 물으심에 뭔가 더 현학적으로 대답하려 생각했기도 하고(제가 어리석었네요)
그 단순명료한 사실을 왜 물으시는지 의아했습니다
불자라면 인과의 법칙을 믿든다는건
찰나의 나쁜 마음이나 작은 악행도 업으로 쌓여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고
남에게 선업을 베풀어야 쌓인업이 소멸되며 선업이 쌓인다는것
또 나를 힘들게 하는 인연도 어느 생에서 결국 내가 그 대상에게 행한 악업의 결과를 받는 것이란걸 알고
미워하거나 되갚으려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여야한다는것 이란건 다 알고 있지 않나요
그것 말고 뭐가 더 있는지요?
  인과의 법칙을 믿고 선행을 행하고 업을 소멸시키려 한다는 단순 명료한 가르침이라는 저의 표헌에
구체적으로 어떻게하냐는 질문은 무엇을 물으시는건지 모르겠습니다
팔정도나 보시의 종류 같은게 뭐냐고 물으신건지요?
티벳불교수행은 기본적으로 부처님불법을 따르며 수행법에 티벳 밀교 수행법이 있는  차이입니다
제가 게으른탓에  단체에 발을 담갔으나 열심히 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라
제 개인의 질문이 자칫 보리선수에  크나큰 폐가 되는듯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글은  새겨듣고 싶은  좋은 말씀도 많으나
솔직한 느낌으로 말씀드리자면  기독교인들에게  느끼는 독불장군 같은 느낌입니다
제 표현이 좀 촌스럽긴 합니다만
다른 여타의 수행법이나 단체에 대해 단정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단언하실 때는..예를 들어 사기가 들어있는 빙의된 상태이다  등은  몸소 체험 하시고 내린
진실임이 분명함을 말씀하시는건지요
있는 사실을 보기 위해 직접 체험하시고 알아보시는건지 궁금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수행하고 있는 단체에 삿되다거나 사기가 도는 영적 감염이라는 표현을 하실때는 구체적으로 어떤 절차에 의해 단정을 내리시는지 여쭤봐도 될런지요
글로써 쓰니 제 질문의 분위기가 노하거나 해서 드리는 질문으로 오해하지않으셨으면 합니다
저는  궁금함을 여쭙는 것입니다
추가로 더 씁니다
선생님의 수행기를 읽어보았습니다  그리 자세히도 쓴 연유가 궁금하기도 하고
그럼 선생님이 체험하신 기도 삿된 기었던가요
그렇다면 그 영적감염을 어찌 벗어나신 것인지도 궁금하고
만약 아니시라면 선생님은 무슨 연유로
사람들이 수행중 체험하는 기가 삿되다고 선뜻 생각하시는지요
참고로 제가 알고 있는 바로는 (책에서 읽었습니다)  사후세계체험 이나 깨달은 분들의 말씀도
그 분들의 근기나 인식 수준에 따라 느끼고 체험하는게 천차만별인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느 한분의 깨달음의 말씀이 사실적체험이라고는 해도 그 경지가 다 다르다는 것으로 저는 받아들입니다
결국 그 말씀이 다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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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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