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실을 찾아서

육조(六祖) 혜능송(慧能頌) 본문

☆ 진실의 근원

육조(六祖) 혜능송(慧能頌)

gincil 2013. 4. 23. 22:18

<질문> : 수행자

유정래하종(有精來下種)
인지과환생(因地果還生)
무정기무종(無情旣無種)
무성역무생(無性亦無生)

육조단경의 핵심이요 수행의 요체라 들었습니다
허해구 선지식님의 명쾌한 해석을 부탁드림니다

<답변>

이곳은 부처님의 종지인 사실에 대한 가르침(인과의 이치와 진실)을 밝히는 곳입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에 대한 종지는 팔정도에 의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고
세상을 축복하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침으로써
숙생에 쌓인 모든 애욕과 집착과 사사로움을 불살라 버릴 때만
맑고 깨끗한 해탈심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법을 폄하하여 소승선이라 하고
스스로를 대승선이나 최상승선이라고 칭하면서
모든 것을 버리고 자성을 깨달으면 단박에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 속에 내재된 숙생의 업과 애욕과 집착을 모두 지워버려야 하는 것인데 
잊겠다는 결심만이나 한순간 자성을 발견하는 요령만으로는 결코 이를 지울 수가 없으며 
세상일과 부딪혀 자신 속에서 일어나는 모두 유혹과 집착을 극복할 수 있을 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선가에서 소위 자성을 보아 견성을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세속과의 인연을 끊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흙탕물이 가라앉아 얼굴을 비치듯
어느 순간 애욕과 집착이 가라앉아 맑은 마음자리를 보게 되는 일을 말하는데
하지만 이것은 순간일 뿐 다시 세상과의 인연에 부딪히게 되면
가라앉았던 애욕과 집착이 다시 일어나 마음이 흐려지고 중생심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요가수행으로 비상비비상처라는 최고의 경지에 올랐으나
전해 들려오는 고향소식에 마음이 흔들림을 느끼고는
다시 모든 수행을 버리고 보리수 나무 밑에 앉아 정각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선언하신 말씀이
『나의 깨달음은 수생에 걸쳐 공덕에 쌓아 이생에서 비로소 완성하여 이룬 것이니
더 이상 고행이나 명상이나 신에 의지하지 말고
팔정도를 배워 좋은 원인을 쌓음으로써 해탈을 얻도록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부처님의 종지를 거스르고
공덕이 없이도 홀연 깨달을 수 있는 일확천금의 방법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부처님이 말하지도 않았던 범부선, 소승선, 대승선, 최상승선이란 구별을 만들어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말법의 소이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우주에서 가장 완전하고 절대적인 인과의 법칙은
모든 일은 원인이 쌓여야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데
어찌 우주에서 가장 완전하고 신성한 해탈지경이
원인없이 단박에 이루어지거나 깨달아질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세상을 열심히 살지 않고도 한순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돈법은
인과의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며 헛된 말법인 것입니다.

이러한 일확천금의 달콤한 유혹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선가는 크게 흥하였으나
이를 따른 수많은 수행자들은 헛된 법을 따르다가
세상을 위해 아무 공덕도 짓지 못하고 인생을 낭비하고 말았으며
한소식 하지 않고서는 사람구실하지 못하는 선가의 풍토속에서
수많은 선사들이 평생을 깨달았다는 거짓속에서
자신도 망치고 세상도 망치는 죄업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그래서 선가에서는 깨달은 자가 수많이 나왔으나
그곳에서는 뜻을 알 수 없는 추상적인 오도송만 난무할 뿐
세상을 밝히는 구체적이고 밝은 이치는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깨달음은 진실한 것이 아니었으며 마음이 열리지 않았기에
깨달았다는 말만 할 뿐 인과법에 대해 말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선가의 영향으로 동양사회에는 자신을 바쳐 좋은 원인을 지으려는 사람이 적어지게 되었고 
도를 삶과 별개로 생각하는 경향이 나타나 불교는 관념화되고 무기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나도 한 때는 육조단경의 환상에 심취하여 그 공함에 빠지기를 즐겼지만
진실을 알고 난 지금 그것은 한갓 헛된 망상이었으며
세상을 오도하는 말법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말법에 의지하여 깨달았다고 주장하는 선사들의 게송에 얽메여
그곳에 불변의 진리가 있는 양 귀한 시간을 소비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분명히 말하거니와 부처는 하늘과 세상과 인간의 뜻이 모여 
우주의 정화로 수천년에 한번 드물게 피어나는 것이니 
자신에게 그 뜻이 이르러 부처의 공덕이 무르익었다면
아무 수행을 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일상 속에서도 완성의 순간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너무 깨달음에 신경쓰지 말 것이며
어떻게 해야 세상을 밝히며 좋은 원인을 지을 수 있는가를 화두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 진실의 근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티벳 사자의 서에 대해서  (0) 2013.04.23
구도자와 직업  (0) 2013.04.23
사주  (0) 2013.04.23
전생체험이란?  (0) 2013.04.23
경쟁의 의미  (0) 2013.04.23
Comments

세상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법
진실의 근원 ginc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