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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의 근원

티벳 사자의 서에 대해서

gincil 2013. 4. 23. 22:19

<질문> zoo

안녕하세요.

요즘 티벳 사자의 서 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혹 읽으셨는지요?

그 책에 보면 여러 내용들이 나오는데
자질이 부족한 관계로 정확히 이해하기는 힘이 듭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을 이렇게 질문한다는 것이 어리석지만..
그 내용중에 환생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죽음 이후 중음의 단계를 거쳐
영혼이 맑지 않은 사람들이 다시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는 과정이
나와있는데요.
혹 읽어보셨다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님께서도 맑은 영혼은 위?로 올라가고 평범한 인간들은 다시
반야의 과정을 거쳐 인간의 몸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하셨는데,
어는 정도는 일치하는 같아서요.

그리고..
책을 읽고 나니 뭔가 신비주의? 같은 것을 느끼게 되었는데
이는 말씀하신 생활에서의 선행과 공덕 쌓음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내용들이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전해내려온것을,
많은 사람들이 믿고 따르는 것을
그저 허구와 잘못됨이라고 말하여도 되는 것인지요?

좀 궁금해서..문의 드립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답변>

그 책을 오래 전에 본적이 있다.
내가 본 바에 의하면 그 책에는 상당한 진실이 들어있었다.
왜냐하면 그 책에는 부처님이 하신 말씀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그 책에는 부처님의 깨달으신 눈으로 생명의 비밀을 보신 후에 제자들에게 전하신 말씀에다가 약 1500년 후에 인도승려 파트마삼바바가 불교철학적 관념에서 자기생각으로 여러 가지 미흡하다고 생각한 것을 보완하고 영적 환상과 그 당시의 사람들의 관심사항을 반영하여 재각색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따라서 그책에는 인과의 이치가 담긴 정법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읽어서 인간의 정신을 흐리게 하는 요행과 기복이 담겨있다.

그 속에 있는 내용이 정법인지 아닌지는 이치에서 보면 명확히 나타나는 것이다.
그 글에는 죽음을 당한 사람이 어떠한 상황에 처할 때 어떻게 대처를 하면 좋은 곳에 날 수 있다고 하는 기술적 측면이 많이 제시되고 있다.

여기에는 현실속에서 죄를 많이 짓고 엄연한 인과의 법칙을 조금이라도 피해 보려고 애를 쓴 그 당시 사람들의 얄팍한 인간의 계산과 종교적 이해관계가 가미되어 있는 것이다.

즉, 그 당시 사람들은 죄를 많이 짓고도 좋은 곳에 태어나고 싶었고
종교인들은 그들에게 면죄부를 제공함으로써 대접을 받기를 원했기에
그들의 입맛에 맛는 사후 세계의 인과법칙에 어긋난 기술과 지식을 제시했던 것이다.

그 좋은 사례가 주문을 외우거나 어떠한 장면을 회피하면
좋은 과보를 받을 수 있다고 하는 주장들이 그러한 것들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지은 대로 받는 인과의 법칙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지
단순한 기술이나 지식으로서는 결코 절대적인 우주의 법칙에 의해 나타나는 과보를 조작할 수 없다. 아무리 기술적인 잔재주를 부리더라도 무거워진 그사람의 영혼이 가벼워지는 일이 없는 이상 그 사람이 좋은 세상에 날 가능성은 없는 것이다.

우리가 전생을 알 수 있는 것은 이치에 의한 드러나는 것이지 환상을 보듯 영화와 같이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다.
그 이치는 마치 불을 피우면 무거운 재와 연기는 가라앉고 가벼운 연기는 하늘로 올라가는 것과 같이 영혼도 그 본질의 청탁에 따라 사후세계를 찾아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영혼이 순환하는 과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사람이 죽으면 가슴속에 들어있는 (정확히 명치부근) 인간의 영혼이 아뜩한 기분이 들면서 몸밖으로 빠져 나와 자신의 죽은 몸을 보게 되는데 영혼은 자신에게 장례를 지내는 것을 보고 산자들과 말을 할려고 해보지만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제서야 그는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노곤한 상태로 접어들면서 잠에 빠지게 된다. 이때 영혼은 모든 것이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는 반야의 상태로 들어가게 되며, 이 속에서 모든 기억은 사라지며 오직 생명의 핵만 남아 다시 세상에 감돌다 자신의 기운과 비슷한 생명의 인연에 끌려 들어가 새 생명체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때 잠에 드는 기간은 개인에 따라 다 다르지만 1~2달 사이에 대개의 윤회가 결정되기에 지금 불교에서 지내는 49제는 아마 부처님이 보신 시각을 반영하고 있을 것이다.

반면에 잘못된 삶을 산 영혼의 사후세계는 그가 잘못된 삶을 통하여 짊어진 한과 욕망과 불안에 짓눌려, 죽어도 그 영혼이 편하지 못하고 계속 살아있는 세계에 집착해 떠돌게 된다.

그래서 그 영혼은 과거의 기억을 떠나지 못하고 산 자의 곁에 머물며 세상을 떠돌아 다니는 유혼이 되는 것이다.

현실 속에 나타나는 이상한 영적 현상들은 바로 이차원에서 야기되는 것으로 유혼들은 현실에 대한 강렬한 한과 집착 때문에 자신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기에 계속 현실속에 나타나 귀신 짓을 하게 되는 것이다.

유혼은 마치 씨가 상해버려 씨를 뿌려도 싹이 나지 않은 것과 같은 상태로서 다시 생명체로 태어나는 윤회를 하지 못하고 상한 체로 이승에 계속 머물게 된다.

그러나 문제의 심각성은 이들의 사후고통이 너무 극심하다는데 있다. 이들은 이미 몸을 가지지 않는 상태로 몸이라는 보호막이 없기 때문에 환경의 변화에 따라 악몽과도 같은 엄청난 환상과 고통을 받게 된다.

이때 그들에게는 유계의 공포와 그 나름대로의 존재양식에 의해 갖가지 불안과 공포가 형상화된 괴물과 고통에 휩싸이게 되는데 이것은 영들에게는 실제와 마찬가지로 느껴지게 된다. 이러한 고통속에서 유혼으로 떠돌던 영혼은 피폐하고 영혼의 정기가 고갈되어 다시는 사람으로 나지 못하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지옥도라고 하는 것으로 지옥이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떠나지 못하고 맴도는 영혼들이 현실 속에서 겪게 되는 영적 환상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진리의 빛을 알아 좋은 삶을 산 고차원의 영혼들은 고난과 장애가 많은 현실 속에서 자신의 삶의 길을 지키고 영혼을 더욱 성숙시켰기 때문에 그 영혼이 더욱 정화되어 현실의 탁한 기운의 순환에서 벗어나 고차원의 의식계로 들어가게 된다.

이 세계를 세상사람들은 보통 영생계라고 한다.

영생계는 인간세상의 탁한 기운을 벗어난 차원이기에 현실의 환경이 주는 영향권을 벗어나 편안하고 잠자는 듯한 안락한 상태에 들어간다.
이들을 불교에서는 이러한 경지에 이른 자를 아라한이라 하며 삶을 통하여 의식이 정화된 자들은 여기에 머물다가 다시 현세에 내려와 큰 공덕을 쌓아 완성된 근본계로 들어가게 된다. 이들은 그 정신이 매우 맑고 강하기 때문에 세상에 내려오면 큰 인물이 되어 맑은 정신과 강한 힘으로 성공된 삶을 살게 된다.
부처님께서도 여기에 머물다 이땅에 내려와 마침내 부처가 되셨다고 분명히 말씀하신 적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라한이 더욱 큰 공덕을 쌓아 몸에 100% 진기가 가득하게 되면 우주의 근본진기와 합일하게 되는데 이 차원을 우주의 근본계(불성, 신성, 조물주)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우주를 창조하고 세상을 뒷받침하고 있는 근원적인 우주의식의 차원이며 우주의 핵심인 것이다.

완전한 불성(조물주, 창조주)는 스스로 영생불멸 자존하면서 스스로 완전성을 나타내기 위하여 수많은 생명과 자신을 닮은 인간의 씨를 뿌리고 자신의 완전한 뜻에 따라 좋은 뜻을 끝없이 실천한 자는 우주의 열매가 되게 함으로써 자신과 같은 완전성의 열매를 맺게 하여 완전성의 순환고리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의 생명은 완전한 하늘의 뜻에 의해 끝없이 돌게 되는 생명의 순환 고리 속에서 세상에 대한 공덕과 자비로 자신의 정신을 성숙시키고 정화하는 과정 속에 있다.

이러한 순환과 생명의 이치를 알게 되면 인간의 길은 매우 간단한 것이다.
인생은 거듭되는 윤회의 과정과 인과의 이치 속에서
자기가 지은 원인에 따라 좋아지거나 나빠지는 현상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생명의 길이 어렇게 간단하기에 그 이치를 안다면 세상사 모든 일이 어려울 것이 없다.
사람들은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명확히 모르고 제멋대로 살기 때문에
세상사 되는 일이 없다고 한숨짓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일은 현상을 보면 원인이 있기에 그원인을 극복하는 해결책을 제시하여
열심히 노력하면 모든 문제가 저절로 풀려 나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다만 지은 나쁜 원인이 많다면 좀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뿐인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이야기다.
세상의 모든 일이 명확한 인과의 법칙에 의해 한점 오차없이 엮어지는 것이라면
우리의 삶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 것인가가 분명해 지기 때문이다.

완전하고 엄격한 인과의 법칙에 의하면
한번 지어진 업은 결코 저절로 사라지지 않으며 인연없이 저절로 생겨나는 것도 없다.
그래서 사람은 태어날 때 과거의 업에 의해 지니고 나온 품성과 자질과 성격에
의해 영향을 받음으로써 이생에서 좋은 인연을 만나지 않으면 자신의 운명을 바꾸기 힘든 것이다.
왜냐하면 새로이 접을 붙이지 않는 한 수박은 수박씨대로 호박은 호박씨대로 자기의 꽃과 열매를 피우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삶을 통하여 좋은 인연과 바른 이치를 만나야 하는 이유이며
그렇게 함으로써만이 자신의 타고난 습을 바꾸고 더 좋은 정신을 길러 좋은 운명
을 만나게 되고, 잘못된 업에 빠져 불행의 악순환을 거듭하지 않게 된다.

오늘날 우리사회가 바로 서고 인류문명이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행하는 모든 것이 우리들의 마음과 세상에 그대로 저장되며
우리들의 미래와 후생에 영원히 되풀이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이것이 인과를 아는 인간의 양심이며 바른 정신이다.
세상의 어둠과 혼란은 이것이 흐려짐으로써 나타나는 현상이다.

자기의 삶을 두렵게 알고 자신의 행위에 책임지는 진지함을 가질 때
비로소 밝은 세상과 인간의 길이 회복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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