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실을 찾아서
옳은 일과 그른 일의 기준 본문
<질문>
일반적으로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은 양심이 될 수도 있고 최소한으로 정해놓은 법이란 것도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우선 양심이라는 것은 결국 자기가 세상에 나와서 보고 들은 것이 쌓여서 생긴 것이 아닌가요.
예를 들어 간통이란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어느 지역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른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반면 그렇지 못한 지역에서는 양심의 가책을 받을테니까요.
법도 마찬가지 일 것 같습니다. 각 나라는 저마다 다른 법 기준을 갖고 있어서 자기가 속한 나라의 법을 어기게 되면 양심보다 더 큰 심적 스트레스를 받겠지요.
이처럼 나라나 지역에 따라 다른 기준이 전체 세상의 기준이 될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답변>
진실은 있는 사실 그대로를 말하며
거짓이란 없는 일이거나 환상으로 지어낸 일을 말합니다.
사실을 기초로 살아가면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지만
거짓이나 환상을 기초로 살아가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거나
엉뚱한 잘못을 범하게 됩니다.
이 세상이 진리로 이루어진 완전한 조화체라는 것은 진실입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이 세상이 무의미하며 혼돈투성이라고 하지요.
이것은 거짓입니다.
사람이 움직이는 것은 자신의 행동이 자신이 바라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자신이 하는 일이 아무런 기약도 할 수 없는 무질서한 세상이라면
살아갈 이유도 조금이라도 움직일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즉 사람들은 자신이 알든 모르든 간에 완전한 자연의 질서가 있을 것이란 가정하여 이에 의지하여 살아가고 있으며
실제 원인과 결과의 법칙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기에 우리는 오늘도 일하러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옳고 그름의 기준은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사실과 이치에 맞느냐에 의해 판단해야 합니다.
사실과 바른 이치에 따라 정확한 원인을 지으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과 세상이 흘러가는 이치가 옳고 그름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간통이 죄가 되지 않는 곳이 있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생각 속에 있는 논리들을 함부로 이야기해서는 안됩니다.
생각 속의 논리에 빠져들게 되면 점차 사실을 보이지 않게 되고
모든 것이 그럴 듯하여 판단정지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진리를 논하는 곳에서는 사실로 존재하는 일들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실에 더욱 밝게 되고 이치에 눈을 뜨게 됩니다.
간통하고 도독질하고 살인하는 것과 같이 남을 아프게 하고
해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에게 좋은 마음 즉 양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양심이란 남을 해치지 않고 손해를 끼치지 않으며
거짓말을 하지 않고 이치대로 성실하게 살며
남을 축복하는 좋은 마음을 말합니다.
인간에게 이와 같이 좋은 마음이 있기에 인간은 인간다운 것이며
이 좋은 마음을 키워 완성에 이르는 것입니다.
완성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양심과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양심이 있어야 세상을 보고 안타까워하며 어둠과 불의를 보고 애를 태워 자신 속에 깃든 업과 삿됨을 지울 수 있으며
용기가 있어야 어둠에 찌들지 않고 장애를 극복해 밝은 지혜와 세상을 극복할 힘을 얻는 것입니다.
좋은 일은 양심을 키우는 일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옳고 그른 것은 사실과 이치에 비추어서 생각해야 할 것이며
좋고 나쁜 것은 인간의 양심을 키우는 일이냐에 비추어서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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