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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의 근원

현대지식의 한계

gincil 2013. 4. 27. 11:27

유은주님이 지적한 기와 명상과 의통, 사주, 술과 유흥, 테레사 수녀님과 탓닛한 스님에 대한 의문은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시각과 사고로 볼 때 정상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는 반드시 짚어야 하고 또 분명히 알아야 할 문제들입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이러한 현대과학과 학문의 시각은 바뀌어야 하며 

그러한 논리 속에 빠져있는 현대인들의 시각 또한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현대과학과 학문은 성자들이 열린 눈으로 세상을 본 시각과 본래부터 정해져있는 영원한 진실과 진리를 외면하고 

자신들의 한정된 시각으로 본 생각과 논리로서 세상을 왜곡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보지 못하는 세계는 검증할 수 없다며 검토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자신들이 본 것이 세상의 전부인양 논리적으로 추론해서 사람들의 시각을 한정적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문명은 빛을 찾지 못하고 타락과 파괴와 부조화와 인간소외라는  벗어날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히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현대인들은 세상과 인생을 보는 눈을 얻지 못하고 인간의 행복과 가치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다들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고 하는데 더욱 세상은 어두워지고 불행 속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현대의 시각과 논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칠흑같이 어두운 관념의 그늘 속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지금 님이 주장하고 있는 논리들은 바로 그러한 관념들입니다.

무조건 사랑해야 한다던가, 명상은 인간의 가능성을 발견해주는 새로운 비결이라던가 

모두 인간들의 시각에서 만든 관념적인 논리들입니다.

여기에 대해 사실적 시각이 무엇인가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야만 삶을 거짓되게 살지 않고 세상의 흐름과 일치하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님이 제시한 문제점에 대해 검토해 보도록 합시다.


테레사 수녀의 무조건적 사랑이나 탓닉한 스님의 화에 대한 지혜를 예로 들었는데 

무조건 내탓이오 하고 자기에게 책임을 돌리거나 남을 위해 무조건 자신을 바치는 것은 바람직한 삶이 아닙니다.


진리를 위해 자신을 바치면 자신에게 밝음이 쌓이는 것이며

무지와 거짓에 자신을 바치면 자신에게 어둠이 쌓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실을 사실대로 보고 바른 이치대로 행동해야 바른 삶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 분들의 삶이 나쁜 것이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들은 진리의 빛을 깨닫지 못했으니 

인간적인 감정에 따라 자기 나름대로 좋은 일을 찾아 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세상을 이루는 이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세상의 상식적인 사고와 자신의 생각에서 한 것이었기에 바른 삶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테레사 수녀와 같이 남을 위해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바치는 삶은 

남을 위해 이타적으로 사는 모범을 보임으로써 세상을 감성적으로 풍성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자선은 자신의 감정을 만족시킬 뿐 진리적 삶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이나 세상을 좋게 만들지는 못합니다.


수백명의 불구자를 돕는다고 해서 그 사람들의 영혼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며 

세상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른 이치로 그 사람이 태어난 가치와 보람이 있도록 축복해주는 일을 해야 진정한 사랑이 되는 것이며 

그러한 이치를 전하고 실천해야 세상이 밝아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적 행위는 자기의 마음 속에 남아 다음 생에 태어나도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고

다시 똑같은 감정적인 삶을 살게 하는 업이 됩니다.


탓닉한 스님의 화에 대한 것도 화에 대한 판단과 해결을 사실적인 문제로 취급해야지 

내면적인 문제로 왜곡해서는 안됩니다.


화는 화를 내는 잘못된 원인이 있었기에 화가 나는 것이며

웃음은 좋은 원인이 있었기에 웃음이 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잘못된 원인을 짓지 않도록 하고 바른 이치에 따라 좋은 원인을 짓도록 해야 문제가 풀리는 것이지

사실을 외면하고 무조건적으로 내가 먼저 이해하고 베품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닌 것입니다.


문제를 볼 때는 항상 사실대로 바로 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속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 올바르게 적응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이와 같이 이치가 없는 방법들이 그럴 듯한 논리를 내세워 사실을 왜곡하고 사람들을 속이고 있습니다.


사주에 대해서도 일반적으로 내려오는 세상의 입장과 나의 입장은 다릅니다.


님은 사주에 대해 우주의 원리, 인간사의 원리를 음양오행철학이 담고 있으며 

숙명과 업과 인과의 틀을 파헤치기 위한 노력과 그 산물로 보는 것이 좋지 않으냐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주를 믿기 전에 과연 사주를 누가 만든 것인지 근본적으로 의문을 가져봐야 합니다.

그 이치와 틀을 세상을 보신 깨달은 성자가 만들었다면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근거는 없으며 고대서적을 보면 하늘에서 물려받았다고 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그 하늘이 도대체 누구일까요?


따라서 이것은 인간들이 관념으로 만든 것이니

그 속에 세상을 이루는 분명하고 정확한 이치가 있다고 믿어서는 안됩니다.


지금 세상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주역의 원리와 실체는 꿈 속에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성분과 성질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강철의 경우도 탄소 함량에 따라 그 강도가 결정되는 것이지

만든 날짜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탄소함량이 같다면 4.19일 만드는 것과 5.20일 만든 강철의 성질이 다를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사람의 운명도 그 사람이 지닌 업과 성품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지

그 사람이 태어난 날짜에 의해 좌우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운명은 올바른 삶으로 좋은 근본을 지어야 좋은 운명을 얻는 것이지

좋은 사주를 받았다고 좋은 운명을 얻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술집이나, 사창가에서 스트레스를 푸는 행위는 봐줄만하며, 

자기 수양과 정신 육체적 재충전을 위해 명상의 시간을 갖는 것은, 게으름뱅이나 실천하기 싫어하는 자가 빠져나와야 할 무엇이라고 하는 논리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을 했습니다.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그러나 내가 한 말을 그렇게 비약해서는 안됩니다.


사실을 기초로 판단하고 이해를 해야지 

사실을 무시하고 일반화시켜 관념적 결론을 얻으려고 해서는 결코 세상을 바로 볼 수 없습니다.


세상은 항상 기존에 지어놓은 많은 원인들 위에 존재합니다. 

이를 무시하고 과연 술과 쾌락이 좋으냐? 명상이 좋은 것이냐 하고 관념적 질문을 하는 것은 사실적이지 못합니다.


술이 옳은 것이냐 명상이 옳은 것이냐 하고 물을 때는 반드시 주어진 조건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부류가 있어 술과 음식과 쾌락이 필요한 경우가 반드시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명상이 필요한 것이 아니며 술과 음식과 쾌락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각종 술집과 각종 유희장와 춤판, 노래판 등이 생겨납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지친 심신을 달래고 일터로 나아갑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와 같은 현실적인 일들을 관념에 빠져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고 부정해서는 안됩니다.


그 술과 쾌락의 사용에 대한 결과는 각자가 책임지는 것이며 

사회는 그 한계를 넘어서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때 간섭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술이 필요한 사람, 명예가 필요한 사람, 권력이 필요한 사람, 진리가 필요한 사람 등 

각자가 자신의 길을 찾아가다 보면 인간의 욕망은 최종적으로 인간완성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리가 좋다고 이를 일반화시켜 

모든 사람에게 진리와 인간완성을 추구하라고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항상 모든 문제는 사실적 조건 속에서 판단해야 합니다.

현실을 도외시하고 일반적 사변으로 절대적 선을 주장하는 것은 

사실을 보지 못하는 이상주의자의 무지한 견해인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현실주의자가 아니라 

이와 같이 사실을 무시하고 관념적 결론을 내리는 이상주의자인 것입니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그 전쟁이 일어난 배경과 가족과 민족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것이 나쁘다는 관념에 빠져 총을 버리는 이상주의자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현대의 혼동된 시각을 벗어나 세상을 명확히 보는 바른 시각을 얻기 위해서는 

기존의 논리체계와 관념적 사고를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사실적인 새 시각이 열려 바른 세상을 보게 됩니다.


현대의 상식적 시각을 따르는 한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합니다. 

현대는 진리의 빛이 사라진 시대이며 

대부분의 논리들은 깨닫지 못한 중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그럴듯한 논리로 전개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참된 이치가 나타났다면 세상이 이렇게 어둠 속에 헤맬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명상에 대해 바로 보고, 바로 살기 위해 마음에 주는 영양분 중 하나로서의 역할은 충분히 하고 있지 않은가하고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요즘 명상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물으면 자신들은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말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사항일 뿐입니다.


만약 기를 돌리지 않고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와 같은 자신 속에 침잠하여 자신과 세상을 돌아보는 명상을 한다면 괜찮을 것이나 

요즘과 같이 일정한 자세를 취하고 기를 돌리는 명상을 하는 것은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그 부작용이 언제 나타날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수많은 기에 노출되어 있어서 언제 나쁜 기운과 접하게 될지 모르며

한번 나쁜 기운에 접하게 되면 평생 그 기운과 인연을 끊어버리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현실적으로 문제가 많은데 이를 분명히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만든 논리에 빠져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것은 매우 어리석고 위험한 일인 것입니다.


현재까지 명상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결론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좋다는 주장도 있지만 부작용을 일으켰다는 주장 또한 많이 있습니다.


따라서 명확히 검증되지 않은 막연한 논리를 그럴 것이라고 무조건 믿고 행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인생은 분명히 확인된 것을 믿고 행해도 짧은 시간입니다.


그리고 님은 명상이 영원치 않아 쓸모없다고 한다면, 그 이상으로 쓸모있는 무엇을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왜  그것이 명상과 같은 형태이어야 합니까?

명상은 삶을 올바르게 잘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삶을 잘 사는 방법이 있다면 꼭 명상을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님은 명상의 효용성을 애써 강조하는데 그래서 자신과 세상이 좋아진 것이 무엇인가요?


모든 것이 이치 속에서 이루어지는 법계 속에서 막연한 명상의 효용을 믿고 이치를 모른 상태에서 과연 무엇을 행할 수 있을까요?


자신과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좋은 원인을 짓는 것이 필요하며

좋은 원인을 짓기 위해서는 바른 이치와 바른 길을 알아야 합니다.


그 방법은 새글 게시판의 "수행의 정법“에서 누누이 강조한 바와 같이 

바른 이치를 배우고 깨달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나 부처님과 같은 모든 성자들이 제자들에게 가르쳤던 참된 진리의 실천방법이었습니다.


또 다른 무슨 방법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리고 님은 명상 등의 개인적 수련이 아닌,  '깨달은 이'의 가르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가장 큰 의문을 품은 문제라 했습니다.


그렇다면 진리가 사라져 모든 것이 한계에 부딪힌 깜깜한 세상에서 

스스로 빛과 길을 찾아 좋은 자기와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요?


만약 님에게 개인적 수련으로 좋아지는 방법과 이치가 있으면 제시하시기 바랍니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깜깜한 세상에서 장님은 아무리 더듬어도 길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진리의 인연을 만나는 자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성자들은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의 빛은 소중한 것입니다.


그리고 님은 체화되지 않고,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은 깨달음을 헛되다 한다면, 

'깨달은 분'의 가르침에 의한 깨달음 역시, 행동에 옮겨지기 전까지는 관념적 깨달음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것은 사실과 이치를 기초로 진리여부를 판단하는 것이지 

실천 여부를 기준으로 하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님의 주장은 정확한 파악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나오는 가르침들이 옳은 것인지는 사실에 비추어 맞는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성자의 말이라도 그것이 사실 속에 존재하는 진실이나 진리가 아니면 버려야 하는 것이며

사실 속에 존재하며 사실이 이루어지는 이치라면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생각과 실천 여부만으로 옳다 그러다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집안을 운영하는데 있어서 테레사수녀처럼 무조건적으로 아이를 도와주는 것과 

바른 이치를 일러주어 스스로 일어서도록 가르치는 것과는 어느 것이 옳을까요?


여기서는 바로 이와 같이 사실 속에 존재하는 살아있는 이치를 전하고 있음을 알아 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부분적인 여러 가지 부분에서 님의 견해와 다른 것이 있을 것입니다.

여태껏 살아온 길이 다르고 시각이 다른데 어찌 한꺼번에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부디 님의 마음 속에 사실을 사실대로 보는 밝은 시각이 있어 자신과 세상을 가꾸는 참된 지혜를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바로 보게 되면 삶을 허망하거나 거짓되게 살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님이 말씀하신, 호흡을 통해 들이마시는 생기는 귀신이며, 의통으로 발현되는 기는 사람을 살리는 순수한 기운이란 주장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내가 그렇게 말한 적이 없는데 논리의 비약을 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몸으로 받아들이는 기운에는 순수한 기운에서부터 의식을 띤 사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형태의 기운이 있습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음식 섭취와 호흡을 통해 순수한 기운을 받아들이란 말이며 

자세를 취하고 기와 주문을 통해 받아들이는 기운은  영적 기운을 띨 가능성이 있어 매우 위험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의통에 대해 님은, 이 세상에 바로된 것은 하나도 없고, 오직, 그 분을 통해서만 치유가 가능하다는 위험 수위 100% 논리라는 입장을 표했습니다. 


좋은 지적이며 내가 본 사실을 말씀드리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하겠습니다.


그분은 검증된 것을 중시하는 분으로

현대의학의 처방에 대해 실험적으로 검증된 것이라 하여 많이 신뢰하시며 대부분의 사람에게도 이를 권합니다.


다만 분명히 이해해야 할 것은 그분은 매우 드물게 깨달음을 얻으신 분으로

현대문명의 모든 한계를 벗어나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는 눈을 얻으시고 인간의 갈 길을 분명히 제시하신 분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완성에 이른 자가 어찌 평범한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특별한 능력 하나 정도는 없겠습니까?


정상적 인간의 시각에서 보면 불합리한 일이라 할것이나 완성된 인간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이러한 능력은 이미 과거의 책들에 나와 있는 전설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지니신 능력에는 사실을 사실대로 보는 시각과 맑은 의식으로 비정상적인 상대방의 아픈 증상을 비추어보아 치유하는 의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본 바로는 그 의통이라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며 온 세상을 대상으로 하지는 못합니다.

상대에게서 비정상적인 고통이 있으면 그것을 맑은 의식으로 느끼게 되고  

똑같은 아픔을 몸으로 느껴 강한 의식의 힘으로 치유하면 상대방도 아픈 것이 낳게 됩니다.


이때 그분은 상대방의 아픔을 자기 것으로 하기 때문에 상대의 병을 고치면 자신도 똑같은 증상이 나타납니다.


즉 상대가 전립선염이 걸렸을 때 이를 고치는 과정에서 같이 고름이 흘러나왔으며, 등이 굳어진 것을 풀어 줄때는 등의 같은 부위에 상처가 났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히 의식으로 고치는 것이 아니라 강한 의식의 힘이 작용해 그대로 물리적 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위해 너무나 할 일이 많으신 분이 사사로운 병을 고치는데 당신의 몸을 시달리고 시간을 소모할 수 없기 때문에 

병을 고치는 일은 특별히 인연있는 자가 아니면 보아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상대가 느끼는 비정상적 병증은 그 사람의 의식이 아픔을 느끼기에 

당신의 의식이 이를 같이 느끼고 발견하여 염력으로 고칠 수 있으나 

정상적인 노화현상은 몸이 아픔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마음에 비치지 않아 고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내가 본 의통의 실체입니다.


따라서 현대과학과 지식으로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의통이라는 능력에 대해서는 

깨달음이 이르게 된 자가 지닐 수 있는 강한 정신능력이라고 생각하시기 바라며 

내가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있는 그대로 말씀드렸으니 믿는 것은 님의 자유입니다.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는 능력도 바로 이러한 정신의 힘이며 

따라서 이 우주는 의식과 뜻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유심론이 진실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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