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실을 찾아서
연기법을 깨쳐야 한다 본문
부처님법을 믿는 이유는 그것이 세상을 이루는 진리이며 삶을 사는 기본원리로서 인생을 보람있고 가치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깨달은 자는 연기를 보고 법을 본다고 했다.
무릇 불교를 믿게 되면 부처님이 말씀하신 세상을 이루는 실상과 이치를 보아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속에 세상의 문제를 푸는 길이 있고 왜 인간완성을 이루어야 하는지, 왜 바르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해탈에 이르는지 길이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평생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며 법을 설한 것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이야기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매일 부딪히면 자연과 사회현상 속에 있는 이치를 깨우쳐줌으로써 세상을 보게 했던 것이고 세상 이치를 깨침으로써 제자들은 세상을 보게 되고 해탈의 기반을 얻었던 했던 것이다.
오늘날 불교를 보면 사람들은 부파의 논사들이 학문적으로 만든 관념적인 논리를 줄줄이 외우고 다닌다. 매일 딱딱한 12연기를 되뇌이고 열반, 반열반, 대반열반, 무여열반, 유여열반 등 각종 해탈을 줄줄이 꿰며 마치 공기놀듯 갖고 논다. 이렇게 형이상학적인 이야기를 한다고 세상이치가 보이고 해탈의 길이 보이는 것이 아니다.
생생한 부처님의 연기법을 깨쳐야 하는 것이다.
세상은 완전한 법계이며 인과의 이치로 되어 있다. 따라서 세상을 이루는 원리는 어디든 무엇이든 다 똑같은 것이다. 그래서 하나의 이치를 깨치면 다른 이치도 깨쳐 모든 현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자연 속에 존재하는 법계의 원리인 것이다.
부처님은 자연 속에서 연기법을 보고 지어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설하신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을 참된 말을 하며, 사실만을 말하며, 진실만을 말하며 속이는 말을 하지 않으며, 사실과 다른 말을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부처님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말을 많이 하고 있다. 어찌 부처님이 그 많은 말을 하셨는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관념적인 생각을 하는가? 부처님은 말씀은 많이 하셨지만 자기 생각으로 지어서 하신 것은 한마디도 없고 오직 세상 속에 있는 자연의 이치만을 그대로 밝히셨다는 뜻인 것이다.
요즘 말이 많은 것이 윤회의 주체에 관한 이야기다.
그래서 무아론, 비아론이 불교의 단골 논쟁거리였던 것이다.
그럼 내가 어디서 왔는가? 를 알아보자.
사람들은 자신의 근본이 무엇인가 매우 궁금해 한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간단한 세상의 이치로 확인할 수 있다.
요즘 주말농장을 많이 하고 있는데 밭에 나가 콩을 보자!
콩에게 ‘너의 근본이 무어냐?’고 물으면 콩은 자신의 뿌리가 땅에 내리고 있으니 ‘나의 근본은 땅이다’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콩을 심은 사람은 그 콩의 근본이 땅이 아니고 과거에 심었던 콩씨임을 안다.
사람의 근본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요즘 과학교육을 받은 사람은 이러한 이치를 알지 못하고 난자와 정자의 결합에 의한 유전자의 계승으로 자신의 근본이 부모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치를 알고 보면 실제 자신의 근본은 자신이 뿌리내린 부모가 아니라 부모라는 밭에 떨어진 과거의 그의 영혼인 것이다. 인간은 부모라는 육체의 밭에 자신의 영혼의 씨를 심어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세상은 완전한 인과법으로 이루어지니 모든 것은 이 원리에서 예외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가?
하나의 씨앗을 심어 싹이 나면 그 씨앗 속에 있던 기능과 성질이 그대로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성장하는 동안 바탕과 환경의 영향을 받게 되어 그 식물은 자신의 생애동안 겪었던 모든 것을 자신의 열매 속에 담게 된다. 그리하여 기름진 토양에서 햇빛을 잘 받은 씨앗은 크고 잘 영근 많은 수확을 얻게 되며 메마르고 좋지 않는 환경에 심은 씨앗은 말라 비틀어져 과거의 자신보다 못한 열매를 맺게 되고 어떤 경우는 다시 새로운 후생을 낳지 못한다. 자신을 재생하지 못하는 빈약하고 잘못된 삶을 산 것이다.
인간도 이와 같이 자신이 타고난 근본을 바탕으로 부모와 환경의 영향 속에서 새로운 운명을 만들어나간다. 따라서 진리의 인연을 만나 그 영혼을 잘 길렀다면 그 영혼은 다음 생에 더 맑은 지혜와 강한 기운을 얻어 더 좋은 삶을 받게 되고 잘못된 인연으로 잘못된 원인을 지으면 자신을 망쳐 불행한 운명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원한과 욕망과 집착에 무거워진 영혼은 인간으로 나지도 못하고 유혼이 되어 헤메다 지옥과 미물의 과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인과의 이치는 너무나 엄정하다. 따라서 좋은 인연과 진리를 만나 좋은 삶을 짓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며 모든 것이 공하다는 관념에 빠져 분별을 버리고 가르침을 버리고 선근공덕을 짓는 노력을 소홀히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공함에 빠져 지은 것이 없고 세상을 보는 지혜와 용기가 없으면 다음 생에 세상을 살아갈 힘을 갖지 못하고 거지운명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불교를 믿는 이유는 이러한 세상을 보는 이치를 깨치고자 함이며 지혜를 터득하여 좋은 운명을 만들고자 함이다. 그래서 부처님법을 이 세상을 지키는 진리라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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