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실을 찾아서
중도가 진리로서 성립할 수 있는가? 본문
1. 중도가 중시된 이유
오늘날 대승불교를 신봉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선(禪) 교(敎)를 통털어 중도가 불법의 최고원리로 일컬어지고 있으며 그 실체가 공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초기에 중도란 말은 양극단을 지양하며 그 가운데서 조화를 찾는 관념적 원리로, 그 내용이 공이 아니었으며 그리 중시되지도 않았다. 중도란 말이 경전에 처음 나오는 것은 부처님의 첫 설법을 기록한 초전법륜경인데, 여기서 중도란 고행도 쾌락도 아닌 팔정도를 말하는 것으로서 중도란 팔정도를 지칭하는 하나의 부수적인 술어에 불과했다.
초기에 불교의 핵심 가르침은 칠불통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악을 멀리하고 선을 행하여 마음을 닦아 해탈에 이르는 것이었으며 팔정도와 연기법, 실상을 밝히는 유법(有法)이 주된 내용이었다.
그런데 왜 중도가 중시되고 이것이 유법을 능가하는 최고의 진리가 되었을까?
여기에는 초기의 부처님의 가르침인 실상법과 연기법을 파기하고 공법을 부처님의 핵심 가르침으로 만들고자 하는 특정 부파의 의도가 숨어 있다. 이러한 부파에는 진보적 성향을 가진 대중부와 그 영향으로 생겨난 대승부파가 있는데 이들은 초기부터 내려오던 부처님의 전통적인 실상법과 인과법이 낮은 수준의 중생들을 위한 방편에 불과하며 실제 부처님이 전하려고 한 고차원적인 진법은 따로 숨겨져 있으며 그것이 바로 일체가 아무 것도 없다는 공법으로서 중도에 그 비의가 숨겨져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물론 이것은 부처님의 원음이 아니라 부처님이 돌아가신후 이백년간 불법이 구전으로 전승되다가 각 부파가 자체적으로 교리를 정리하면서 나타난 부파간의 교리상의 이견이었다.
그러나 이 문제가 심각한 것은 이러한 주장은 그동안 전해져 내려온 기존 불교와는 다른 가르침이 있다고 하는 주장으로 만약 이러한 새로운 견해가 사실로 인정될 경우 기존 부처님의 가르침이 완전히 뒤바뀌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만약 이것이 다른 말법의 견해라면 불교는 이러한 교리를 받아들이는 순간 말법으로 변질되어 버리는 위험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그래서 기존 불교계를 이끌어오던 상좌부에서는 부처님의 기존 가르침인 사실성을 부정하는 대중부의 주장을 부처님법을 근본적으로 파괴하려는 말법의 음모로 규정하며 이들과 사활을 건 투쟁을 벌이게 된다.
즉 초기불교의 역사는 실상법과 인과법을 고수하려는 기존 법통을 가진 상좌부와 이러한 가르침은 방편에 불과하며 참된 진리는 말씀하지 않은 중도인 공에 있다고 하는 대중부간의 투쟁의 역사인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느 것이 옳은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초기불교의 형성과정인 부파불교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2. 부파불교의 형성과정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육친 제자들은 희유한 보물인 부처님 법을 잘 보존하고 널리 전하여 큰 공덕을 쌓고자 했다. 그들은 각자가 불사의 진리를 전한다는 사명감으로 충만했으며 인도 전역으로 흩어져 부파를 형성하며 법을 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부처님과 같이 완전한 법안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법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고 각자의 기억과 이해에 따라 불법을 받아들인 것이 다 달랐다. 그래도 육친제자들이 살아계시고 그 영향력이 미치는 초기에는 부처님의 원음이 지켜졌으나 그분들이 모두 돌아가시고 10여세대가 흐르자 부처님 가르침의 실체는 점점 흐려져 갔다. 당시에는 문자문화가 발전하지 않아 구전으로 전승된 것이 이러한 경향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그 후로 불교교리의 정립과 전파는 육친 제자들의 몫이 아니라 그들에게서 배운 제자들의 몫이었다. 그들은 부처님의 참 진리를 세상에 널리 전하기 위해 각 부파별로 자신들이 보고 듣고 이해한 것을 기초로 교리를 만들어 나갔다. 이것이 아비달마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법안이 열린 분들이 아니라 불교를 이론적으로 배우고 연구한 학승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정리하고 사유한 불교교리에는 아직 깨닫지 못한 중생의 습이 묻어있었다. 또한 그들은 인도에서 태어나 힌두적 관념과 논리 속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그들이 불교를 정립하면서 만들어낸 아비달마 이론 속에는 자연스레 염세적이고 관념적인 힌두교의 논리가 자리잡게 되었던 것이다.
즉 초기 불교교리의 정립은 부처님의 생생한 깨달음의 원음이 아니라 부파의 논사들이 철학적 사유로 정리 보완하고 취사선택한 이론적 체계였던 것이다. 초기의 경전을 아함경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아함(Agama)이란 말은 “전승된”이라는 뜻으로 그 말처럼 초기 경전은 구전으로 전해진 불설을 부파의 논사들이 정리하고 체계화시킨 것이지 친설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는 당시 초기 부파불교의 논사들도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바였다.
그리하여 최초의 성문불전인 제3차 결집이 이루어진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 대왕 때까지 약 200여년의 구전의 시간이 흘러갔다. 그동안 부처님의 가르침을 두고 부파간에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교리상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 남아있는 자료가 없으니 알 수가 없다. 다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부처님의 생생한 모습과 가르침은 기억의 한계와 논사들의 개인적 관념과 논리에 의해 많은 변질이 있었고 문자가 생겨나면서 경전의 기초적인 성문화가 진행되었으며 20여개 부파가 형성되어 치열한 논리싸움을 벌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하여 각 부파별로 자신들이 전승해온 경전과 논리를 기초로 경전을 만들어 나갔다. 그래서 각 부파마다 경전이 있었으며 부파별 특징에 따라 경전의 내용은 많은 차이가 있었다. 예컨대 구사론의 세친과 논쟁을 벌인 중현은 “상좌 슈리라타는 잡아함 제322경을 [불설로] 인정하지 않을지라도 결집에 포함된 것이라는 사실마저 부정해서는 안 된다”거나 “각 부파에서 전승한 교법에 따라 서로의 경을 부정하게 되면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이는 그만큼 상좌부와 대중부의 부처님 법에 대한 입장이 크게 달랐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각 부파별로 수많은 경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남아있는 경은 상좌부의 니까야와 설일체유부의 아가마만이 전해지고 있다. 니까야의 경우 인도에서 멀리 떨어진 섬나라인 스리랑카에 전해져 인도의 정치적 변화의 영향을 받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며 아가마는 북인도에서 번성한 쿠샨왕조에서 편찬 보존되다가 북방으로 전래되어 오늘날 동북아시아에서 아함경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그 외 나머지 경전들은 인도의 정치적 격변기에 이슬람세력의 침입과 힌두교의 포섭으로 불교가 소멸되었기 때문에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이들 아비달마가 구전으로 맥을 이어오다가 역사 속의 기록으로 처음 등장했을 때는 벌써 두개의 커다란 흐름이 불교계에 자리잡고 있었다. 하나는 부처님이래 가섭존자로부터 전통적으로 교리를 이어내려온 고승들이 즐비한 상좌부의 견해로 부처님이 깨달음의 눈을 얻으시고 세상의 실상과 사실간의 인과의 이치를 밝혔다는 주장이며 다른 하나는 힌두교의 영향을 받아 관념적인 철학성을 강조하는 진보적 개혁파인 대중부로 그런 사실적인 가르침은 어리석은 중생들을 위한 방편에 불과하고 진정한 가르침은 비의로 전해진 고차원적이고 철학적인 공성이라 주장한 것이다. 문제는 이 두 부파의 주장이 부처님법의 본질을 의심할 만큼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며 그동안 수많은 논리적 변화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것이다.
이러한 두 개의 흐름은 불교가 힌두교의 영향으로 7세기 중엽부터 급속히 밀교화되고 불교의 본질인 열반이 힌두교의 탄트리즘과 동질시되어 힌두세계로 흡수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반목하며 부처님법의 정통성을 놓고 다투게 된다.
초기부터 부처님법을 전통적으로 계승해오던 상좌부 계통의 기존 교단은 원칙적으로 모든 것은 실체가 있다는 유부의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그들은 부처님 법이 깨달음으로 삼세를 보는 법안을 얻어 인류 최초로 세상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밝히신 것이기 때문에 신을 섬기는 다른 종교나 관념으로 만든 주장과 달리 어디서나 확인할 수 있는 사실적인 법이며 영원불변의 진리로 확신했던 것이다. 이러한 상좌부의 유부교리는 부처님의 상좌인 가섭으로부터 면면히 이어져온 정통성있는 교단의 기본체계로서 초기 인도에서 불교 그 자체로 인식되었다.
이들은 모든 것이 실제한다는 기본원칙 아래 불변의 자성을 가진 일체현상 간의 인과관계를 논하는 방대한 교리체계를 세웠다. 이러한 교리의 바탕에는 ‘삼세실유(三世實有) 법체항유(法體恒有)’라는 기본개념이 있었다. 즉 모든 법은 우리의 삶을 유지 보존하는 근거로서 과거, 현재, 미래의 3세에 걸쳐 존재하는데 이러한 법들이 3세에 걸쳐 존재할 수 있는 것은 각각의 현상에 고유한 성질인 자성(自性; 혹은 自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부가 일체를 유라고 말할 때, 존재하는 모든 것이 변치 않는 성질인 자성이 있어 서로 간에 영향력을 주고 받는다고 본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사실과 인과적 증명성을 중시하는 과학적 사고와 일치한 것으로 불교는 이미 2,500년 전에 오늘날 과학의 근본이 되는 진리체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유는 부처님이 실상을 보는 진리의 법안을 가지셨기 때문이다.
이렇게 초기 불교교단을 이끌어오던 정통성있는 상좌부에서 교리를 총정리하여 실유적 교리체계를 완성하자 힌두교의 영향을 받은 개방적인 대중부의 논사들은 이러한 상좌부의 실유적 입장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기 시작했고 그 중 가장 핵심적인 주제가 일체 법의 실체성과 관련된 문제였다.
대중부는 보수적이고 계율에 엄격했던 상좌부에 비해 진보적이고 개방적인 성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불교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전통에 얽매기 보다는 개인의 사유와 논리를 중시했으며 부처님 말씀에 근거한 사실적이고 과학적인 인과법보다는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사유에 더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그들은 실유성과 인과법을 중심으로 한 정통적인 불교교리에 대해 고도의 철학적인 힌두적 관념과 논리를 활용하여 비판을 가했는데 힌두교의 마야(환)사상의 영향을 받아 일체법의 존재성을 부정하고 모든 것이 실제로는 텅 비어 있는데 사람들이 착각으로 존재한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기존의 부처님법은 부처님이 실상을 보는 눈으로 밝히신 것으로 모든 것이 사실적으로 존재하며 한치의 어김없는 인과관계로 이루어져 있어서 이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그 속에 이고득락의 길과 해탈에 이르는 모든 길이 있음을 가르치신 것이었다. 그러나 대중부의 논사들은 이러한 실체법은 부처님이 방편으로 가르치신 낮은 가르침에 불과하고 진실로 전하고자 하신 고차원적인 가르침은 모든 것이 없다고 하는 공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자 수백년간 전통을 이어오며 부처님법을 지켜오던 기존 상좌부에서는 개방적인 젊은 논사들이 힌두교의 관념적인 견해를 담은 진보적인 이론들을 부처님의 정법이라고 말하며 기존 교리가 잘못되었다고 하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리하여 상좌부에서는 대중부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부처님의 사실적인 가르침을 힌두교의 염세적 관념으로 변질시켜 정법을 훼손하려는 말법의 음모라고 이들을 배척했던 것이다.
이러한 갈등은 불전결집과정에서 폭발했다.
처음 부파간의 분열이 일어나 대중부가 생겨난 것은 부처님 사후 100년 경에 있었던 2차 결집시에 다섯가지 계율 때문이었다.
즉 승가가 대중들에게 보석을 받아도 되느냐? 음식을 먹어도 되느냐? 여러 곳에서 보시를 받아도 되느냐? 하는 계율상의 문제로 대중부는 현실에 맞게 발전적으로 해석해 가능하다고 보았는데 상좌부는 기존의 전통적인 금욕주의 입장을 강조해 불가한 것으로 결정하였다. 이에 반발한 진보적인 승려들이 따로 나와 부파를 형성한 것이 바로 대중부인 것이다.
하지만 최초의 성문경전인 니까야를 만들었던 BC 3세기의 3차 결집시에 일어난 부파 분열은 매우 심각했다. 당시 3차 결집을 주관했던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 대왕은 기존 상좌부의 사실적인 유부이론을 반대하는 대중부의 승려들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모두 흰옷을 입혀 교단에서 쫒아냈다고 한다.
이들은 쫒겨났지만 불교 속에 여기저기서 머무르며 연구를 계속하며 자신들의 논리를 전파해 나갔다. 그들이 기성 종단으로부터 밀려 났다고 해서 속인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승려였기 때문에 불교를 떠나지 않고 자신들을 받아 주지 않는 주류불교에 대항하여 독자적인 교단을 만들어 조직적으로 대항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대중부의 본격적인 출현인 것이다. 이들은 비주류이기 때문에 기성 교단과 달리 음성적인 활동을 많이 했는데 이들의 영향으로 대승불교가 생겨나고 각종 대승경전들이 저자없이 만들어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당시 인도에 체류하던 중국의 구법승 현장이『대당서역기』에 남긴 글을 보면, 기존 부파 불교인들이 갖가지 상이한 교리적 입장에 따른 대립·쟁론을 벌이는데 “대부분 소승을 배우고 대승은 믿지 않는다”라고 기술하고 있는데 이를 살펴보더라도 당시 인도에서 상좌부가 주류이며 대중부와 대승불교는 소수파였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3. 대중부의 반격과 중도의 출현
그래서 대중부 논사들은 불교계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확립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한다. 종교인으로서 그들이 할 수 있었던 일은 인도 불교계를 이끌어가던 정통성있는 상좌부의 기본 교리를 깨고 자신들의 교리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문제삼은 것은 초기 불교의 기본교리였던 실상법과 인과법이었다. 그들은 힌두교의 마야(환, 공)사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기존 부처님 법에 대한 과감한 변형을 시도했는데 무위의 범위를 확대하여 부처님법의 유위성을 약화시키고 인과법의 상의성을 강조하여 제법의 실체성을 부정함으로써 마침내 불교를 사실적인 진리가 아닌 관념적인 공철학으로 변형시키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대중부를 중심으로 충분한 이론적 토대가 충분히 갖추어지자 대중부에서는 유부의 이론을 전면적으로 뒤집고 공론을 도입하기 위한 전면적인 쿠데타를 도모하게 된다. 그들은 부처님이 처음 제시한 실상법은 어리석은 중생을 위해 방편으로 설한 것에 불과하고 진정으로 가르치고자 하신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공이라는 논리를 부처님법의 핵심교리로 만들기 위해 진제와 속제라는 이원적인 진리체계를 주장하게 된다. 눈앞에 보이는 사실세계 이외에 또 하나의 관념적인 이상세계가 존재하는데 이것이 부처님이 숨겨둔 참된 진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들의 주장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한 근거로 제시한 것이 바로 중도진리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발언의 정당성과 법통성을 주장하기 위하여 부처님이 무기를 말씀하시거나 각종 사례에서 부정으로 일관한 사례를 골라 그 속에 부처님이 말씀하지 아니한 진정한 비의가 있다고 주장하며 그것이 바로 참 진리인 공이며 중도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들은 부처님이 말씀하지 않으신 무기에 주목했다. 그들은 일체지자인 부처님이 굳이 말씀하지 않은 것은 그 속에 무언가 달리 전하려고 한 비의가 숨어있다고 보았으며 그 본의가 바로 양극단을 부정하고 중간을 취함으로써 실상을 올바르게 파악할 수 있다는 중도논리라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이 말씀하지 않으신 것은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실상을 밝히는 가장 올바른 방법이었기 때문인 것이지 다른 숨겨진 비의가 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러한 이유는 경전에 분명히 나온다. 즉 경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실상과 이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편협한 견해를 가진 중생이 묻는 대로 답을 할 경우 오히려 자기 식으로 받아들여 더 큰 오해를 할까봐 상대에 따라 대기설법을 하신 것이다.
부처님이 가장 경계했던 부분이 바로 이와 같이 눈앞의 사실로 증명할 수 없는 우주의 근원과 같은 형이상학적 문제였다. 잘 아시다시피 이러한 사실적인 문제가 아닌 관념적 논란에 대해 부처님은 무기로 대응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부파의 논사들은 부처님이 말씀하지 않으신 무기에 대해 불제자로서 지켜야 할 금기를 어기고 눈뜬 장님의 사유와 논리로 함부로 추론하여 그 답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들이 무기와 같은 모든 문제에 대해 끝없는 철학적 사변을 전개했던 이유는 관념론자들이 흔히 빠지는 형이상학적 욕구와 최고의 종교에 요구하는 철학적 과제에 대한 답변 필요성 때문이었다.
불교가 최초로 우주의 실상을 보는 일체지자를 탄생시켜 우주의 모든 실상과 진리를 밝힌다고 하자, 불교는 가장 완전한 종교로서 중생들이 가진 모든 철학적 의문에 대한 답을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으며 불교를 연구하는 수많은 학승들도 스스로 자신이 가진 철학적 의문을 해결해야 할 절실한 필요성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철학적 의문들은 부처님 재세시에도 있었던 일반적인 현상으로 관념에 빠져 살던 수많은 수행자들은 이러한 의문에 대해 부처님이 답을 해주지 못한다면 부처님 불신하여 떠날 수 밖에 없다고 협박하였던 것이다. 그만큼 생각 속에 사는 관념론자들에게 우주의 존재근거와 생명의 신비 등과 같은 형이상학적 질문들은 벗어나기 어려운 유혹인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부처님의 제자라면 응당 부처님이 말씀하지 않으신 무기에 대한 금기를 지켜야 했으나 철학적 사유로 일생을 보낸 학승들은 그 한계를 벗어나 이러한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해 답을 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오늘날 불교 속에는 부처님이 14무기로 언급하시기 않았던 모든 문제들에 대한 답이 모두 나와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부파의 논사들은 경에 나오는 여러 가지 불특정한 사례들을 모아 자신들의 논리로 중도라는 새로운 진리체계를 만든다. 즉 <초전법륜경>의 "고락(苦樂)중도", 자아의 연속, 비연속과 관련한 불상부단(不常不斷)의 중도, 존재와 비존재를 부정하는 유무중도(有無中道), 자기원인설과 타자원인설을 부정하는 자타중도(自他中道) 등을 제시하면서 부처님이 단견과 상견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를 말씀하려 하셨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구체적 실체가 없이 내용이 다 다른 것을 모은 것이었으니 통일성이 없어 초기에는 팔정도가 중도였다가 나중에는 팔부중도로 공이 중도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들이 구성한 중도 논리는 苦樂의 문제는 극단적 행위에 대한 중도의 조화이고, 斷常의 문제는 불멸하는 자아의 존재에 대한 유무 이견의 조화이며, 自作他作의 문제는 고의 원인에 대한 유무 이견의 조화이고, 一異의 문제는 영혼이라는 존재의 유무 이견의 조화로 보아 극단적인 경계를 벗어나면 부처님이 말씀하려한 중도인 실상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단견과 상견이라는 양극단은 무조건 틀렸으며 가운데서 조화를 찾아야 한다는 관념적인 결론이 과연 진리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아니다!
가운데가 진리라는 관념적인 결론은 논리적으로 실상을 파악하려는 중생들의 관념적 접근방식인 것이지 법안으로 사실속의 법을 보는 깨달은 자의 가르침이 아닌 것이다.
깨달은 분의 말씀은 항상 사실 속에 인과의 이치가 명확하게 제시된다. 본래 깨달음의 진리는 중생들의 헤아림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법안을 지닌 자가 나타나 중생들이 보지 못하는 실상과 이치를 존재하는 그대로 밝히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 가르침은 사실 속에 있지 관념 속에 있지 아니한다.
이 세상은 완전한 법계이니 그 속에 나타나 있는 일체 현상(법)은 모두 과거에 지은 원인이 환경과 만나 완전한 인과의 이치에 의해 나타나는 복합적 현상이다. 따라서 현상이 있으면 그를 구성한 가장 올바른 원인과 이치가 있는 것이지 관념적 결론인 중간이라는 법칙은 현실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관념적으로 양극단은 아니니 중간으로 가야 한다는 중도의 논리는 깨달은 분이 법안으로 실상을 보고 사실적으로 밝힌 가르침이 아니라 생각 속에 사는 후대의 학승들이 관념으로 만들어낸 논리인 것이다.
모든 업을 지우고 나기 생겨나기 이전의 근본자리로 돌아가면 그 의식은 반야의 공을 얻는다. 그래서 혼자 있을 때는 공에 들고 깨어있을 때는 모든 업이 사라진 맑은 마음거울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비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생각이 사라지기 때문에 중간에 생각이 끼어들지 않으며 사물의 뜻과 이치가 마음거울에 있는 그대로 비치는 것이다. 그래서 깨달은 자는 사실만을 이야기하지, 생각이나 논리로 말을 만들어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여래를 일러 “참된 말만을 하며, 사실만을 말하며, 진실만을 말하며 속이는 말을 하지 않으며, 사실과 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도진리는 논사들의 철학적 사유에 의해 만들어진 관념적 논리인 것이지 법안으로 본 사실 속의 진리가 아닌 것이다.
4. 중도의 사례
이하에서는 과거 중도라고 이름 붙혀진 사례에서 말씀하고자 했던 진정한 의미를 찾아보고 중도라는 진리체계가 공통된 내용이 없는 것으로 본래 성립할 수 없는 것임을 밝히고자 한다.
『초전법륜경(初轉法輪經, The Dhammacakkappavattana Sutta)』
세존께서는 다섯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출가자가 따라서는 안되는 두 가지 극단이 있다. 그것은 저열하고 통속적이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는 감각적 욕망에 대한 쾌락의 탐닉에 몰두하는 것이며,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는 자기 학대에 몰두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두 가지 극단을 따르지 않고 여래는 중도를 완전하게 깨달았나니, 이 중도는 눈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과 높은 지혜와 바른 깨달음과 열반으로 인도한다."
여기서 중관불교에서는 이 구절이 부처님이 중도라는 깨달음의 실체를 밝힌 최고의 경이며 그것이 중도이며 그 실체가 공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구절은 깨달음의 실체를 이야기하는 구절이 아니라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에 대해 언급하는 구절이다. 문장구조상 이 방법도 아니고 저 방법도 아니니 올바른 방법으로 해탈에 이르렀다는 구조가 되어야 하는데 앞에서는 두 방법이 틀렸다고 말하다가 갑자기 목적격인 중도를 깨달았다고 하니 문맥구조상 맞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도란 무엇인가? 그 정확한 내용은 원문에 명백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성스러운 팔정도(八正道)로 바른 견해[正見], 바른 사유[正思惟], 바른 말[正語], 바른 행동[正業], 바른 생계[正命], 바른 정진[正精進], 바른 알아차림[正念], 바른 집중[正定]이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참으로 이 중도를 통하여 완전하게 깨달았으며, 눈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과 높은 지혜와 바른 깨달음과 열반을 얻었다.”
이처럼 초전법륜경 자체에서 팔정도가 바로 중도의 실체이며 중도가 바로 방법론임을 직접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원문에서 중도란 것이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단임을 명확히 하고 있으며 중도가 공이라는 말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는데 중관론자들은 전해들은 중도론을 생각없이 되풀이하며 중도가 부처님의 깨달음의 본질이며 그것이 공이라고 견강부회하고 있는 것이다.
유무중도(有無中道)
[깟짜나곳따 경」(가전연경, S12:15)
"가전연아. 바른 지혜로 여실히 세간의 집(集)을 관하는 자에게는 이 세간에 없음(無)이 없다. 가전연아. 바른 지혜로 여실히 세간의 멸(滅)을 관하는 자에게는 이 세간에 있음(有)이 없다."[남전대 제13권,상응부경전2 가전연경p.24]
이 가전연경은 존재의 유무를 부정하고 중도를 논하는 대표적 경전으로 인용되고 있다. 즉 존재인 유(有)는 현상계의 소멸원리를 살펴보면 부정되고 비존재인 무(無)는 현상계의 생성원리를 살펴보면 부정되므로 진정한 실체인 공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한역 경전과 달리 원전의 내용은 그렇게 중도를 이야기하는 식으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바로보면 그 실상을 알 수 있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럼 [깟짜나곳따 경」(가전연경, S12:15)을 살펴보자!
깟짜나곳따 존자가 부처님께 바른 견해[正見]가 어떻게 해서 있게 되는가 하고 묻자 이에 대해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깟짜야나여, 이 세상은 대부분 두 가지를 의지하고 있나니 그것은 있다는 관념과 없다는 관념이다. 깟짜야나여, 세상의 일어남을 있는 그대로 보는 자에게는 세상에 대해 없다는 관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깟짜야나여, 세상의 소멸을 있는 그대로 보는 자에게는 세상에 대해 있다는 관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부처님은 세상의 일을 있는 그대로 보는 사실적인 견해를 지니면 세상이 있다거나 없다거나 하는 잘못된 편견에 빠지지 않는다고 설명하신다. 그리하여 다음 구절에 고에 관한 사례를 들어 사람들은 갈애와 사견에 빠져 집착하여 고통에 빠지지만 갈애와 집착에서 벗어나 사실대로 볼 경우 고의 발생과 소멸에 대해 혼동되지 않고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하신다.
"깟짜야나여, 세상은 대부분 집착과 취착과 천착에 묶여 있다. 따라서 그러한 집착과 취착을 '나의 자아'라고 여기지 않는 자는 '단지 괴로움이 일어날 뿐이고, 단지 괴로움이 소멸할 뿐이다.'라는 데 대해서 의문을 가지지 않고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결론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것이다.
"깟짜야나여, '모든 것은 있다'는 것이 하나의 극단이고 '모든 것은 없다.'는 것이 두 번째 극단이다. 깟짜야나여, 이러한 양 극단을 의지하지 않고 중간[中]에 의해서 여래는 법을 설한다. 무명을 조건으로 의도적 행위들이, 의도적 행위들을 조건으로 알음알이가, 알음알이를 조건으로 정신·물질이...............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소멸한다.”
즉 갈애나 편견에서 벗어나 연기법에 의해 실상을 제대로 파악한다면 모든 법을 바르게 이해하여 해탈에 이르게 된다는 말씀인 것이다. 따라서 사실과 인과의 이치를 설한 이 경을 근거로 유와 무의 중도인 공을 설하셨다는 것은 사실과 다른 것이다.
유무중도(有無中道)
[쌍윳따 니까야: 44 아바까따 쌍윳따 10]
방랑 수행자 왓차곳따가 부처님께 와서 자아가 있는가 물었을 때 이에 부처님은 아무 대답 없이 침묵하고 계셨다.
"그러면 자아가 없습니까?" 두 번째도 역시 부처님은 침묵하고 계셨다.
중도론자들은 그 해석을 자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그 중도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침묵하신 이유는 다른 중도와 마찬가지로 사실적인 현상은 유무로 획일화하여 단정할 수 없을만큼 미묘한 내용이 있으며 또 실제 답을 할 경우 오히려 실상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는 만약 '자아가 있다' 고 대답한다면, 중생들이 자기에 집착하는 아상을 키울 것이 염려되신 것이며 또한 만일 '자아가 없다' 고 답했다면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는 단멸주의자들처럼 함부로 살아갈 것이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질문자가 “자아가 있느냐 없느냐”고 단적으로 물을 것이 아니라 어떻게 자아가 후생의 과보를 받게 됩니까? 하고 물었다면 그 이치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부처님은 삼계의 실상을 모두 보는 일체지자이기 때문이다.
초기불교에 있어서 자아란 인연따라 이어지는 것이며 고정된 자아는 없어도 인연으로 변화하며 만나 과보를 받는다고 하고 있다. 이처럼 자아란 단순논리로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는 복잡미묘한 현상이기에 부처님은 상대의 근기를 보아 답을 하지 않으신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완전한 인과법에 의해 지은대로 육도윤회를 돈다. 큰 선근 공덕이 있는 이는 천상에 나고 한과 집착에 매인 이는 지옥에 떨어진다. 또 그 죄가 큰 이는 그 의식체가 흩어져 사라지기도 하고 미물로 나기도 한다. 또 반대로 흩어진 의식체가 다시 모여 새로운 생명체를 구성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의식체가 고정되어 있다고 할 것인가? 아니면 없다고 할 것인가? 이러한 미묘한 생명의 실상이 있으니 단순한 흑백논리로 묻는 질문에 답을 하지 않으신 것이다.
자타중도
<중아함 제3권 13경 도경(度經)>
부처님이 사위성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상에는 지혜가 있다고 자처하는 세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일체가 숙명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는 주장과,
일체가 신의 뜻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과,
일체가 인(因)도 없고 연(緣)도 없이 이루어졌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는 진리가 아니며 옳지 않다. 어째서 그런가?
만약 사람이 행하는 모든 행위가 숙명으로만 이루어졌다든가,
신의 뜻에 의한 것이라든가, 인도 없고 연도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사람들은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모를 것이며 거기서 벗어나는 방법도 모를 것이다.”
여기서 부처님은 인간의 운명이 신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며 자신의 업에서만 결정되는 것도 아니고 환경 속에서 자신의 업과 노력에 인연이 닿아 결정되는 것임을 보고 하나에만 집착한 견해들이 편협하다고 부정한 것이지 무조건 극단은 틀리고 중간이 옳다고 관념적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다음 구절에서 이렇게 해답을 말씀하신다.
“내가 스스로 알고 깨달은 바에 의하면, 모든 것은 인과 연이 합하여 일어나며 무명과 집착으로 인하여 괴로움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괴로움의 [현실]을 알아야 하고, 괴로움의 [원인]을 끊어야 하며, 괴로움이 [멸한 상태를 증득]해야 하며, 괴로움을 멸하는 [도]를 닦아야 한다.”
단상중도(斷常中道)
상윳따 니까야 사후의경[Parammaranasutta]
사후의 경[Parammaranasutta]에서 보면 사리불과 깟싸빠 존자가 사후의 여래에 대해 대화를 하는 것이 나오는데 여기에 부처님이 답을 하지 않으신 이유가 잘 표현되어 있다.
여기서 존자 깟싸빠는 사리불이 “여래가 사후에도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는지,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 “ 부처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고 답을 한다.
그 이유로 깟싸빠는 “그것은 바른 이치에 맞지 않고, 청정한 삶을 시작하는데 맞지 않고, 싫어하여 떠남에 도움이 되지 않고, 사라짐에 도움이 되지 않고, 소멸에 도움이 되지 않고, 적멸에 도움이 되지 않고, 곧바른 앎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올바른 깨달음에 도움이 되지 않고, 열반에 드는데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말씀하시지 않았다”고 대답했던 것이다.
여기서도 부처님이 중도라 하여 다른 길이 있기에 말씀을 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답을 하는 것이 오히려 실상을 아는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생멸중도(生滅中道)
(쿳다카 니까야, 우다나경)
부처님이 열반에 대해 직접 설하신 것은 《우다나》에만 있어 중히 여겨지고 있다. 여기서 깨달음이나 열반은 개념적 사유로 파악될 수 없고 오로지 성자의 깨달음에 의해서 파악되는 것이라 설명되고 있으므로 ‘극묘(極妙)’라고 불리우고, 극난견(極難見)’이라고도 일컬어진다.
“수행승들이여, 거기에는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고, 머무는 것도 없고, 죽는 것도 없고, 생겨나는 것도 없다고 나는 말한다. 그것은 의처(依處)를 여의고, 전생(轉生)을 여의고, 대상을 여읜다. 이것이야말로 괴로움의 종식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중도론자들은 이 구절을 근거로 열반이 단순히 생한 것도 아니고 멸한 것도 아니라고 하여 생멸중도를 설명한 것이라 한다.
그런데 오늘날 불교에서는 이와 달리 열반하게 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고 영원히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논리이다. 실상은 여래여거(如來如去)이니 부처님은 항상 오고 감이 자유로우신 것이다. 해탈에 이른 부처님이 가고는 다시 오지 않는다는 논리는 이 세상을 환상과 고로 보는 염세적 시각에서 나온 논리이다. 세상이 고해이기 때문에 온다는 것 자체를 허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해탈에 이른 부처님이 이 세상을 떠나 영원히 소멸하는 것이라면 부처님이 그토록 오랜 세월 법을 펴시고 공덕을 행한 것이 모두 단순히 사라지려고 온 것에 지나지 않으며 평생을 가르친 모든 가르침이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고통이 아니다. 이 세상은 완전한 법칙과 질서가 드리워져 있는 완전한 법계이며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은 모든 존재 중에 가장 큰 복을 받은 것이며 천상의 신들도 부처의 과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땅에 반드시 다시 나야 한다. 따라서 이렇게 좋은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을 절대 부정적으로 염세적으로 생각해서는 안되며 부처의 과를 무의미하게 소멸하는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러한 여러가지 이질적인 중도사례를 분석해볼 때 양극단은 아니며 가운데를 지향해야 한다는 공통된 중도원리를 도출하기는 다소 무리하며 억지인 것으로 보인다.
5. 중도론의 종합인 용수의 중론
어쨌든 양극단을 부정하고 가운데를 지향한다는 관념적 인식론의 일종인 중도진리가 만들어지자 이를 근거로 기존 상좌부의 실체법과 인과법에 반대하던 대중부와 대승불교 쪽에서는 기존 불교계의 세력판도를 뒤집으려는 대대적인 반격을 시작한다. 그 대표주자가 바로 용수인 것이다.
그는 대중부에서 발전시킨 무위의 범위 확대, 연기법의 비실체화와 같은 이론들을 총 종합하여 초기 상좌부의 실상법과 인과법이 무상, 무아라고 하는 부처님의 기본가르침과 어긋나며 연기하는 것은 서로 의지하여 자성이 없으므로 모든 일체 법(현상)은 실체가 없는 공이라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용수는 자신이 주장하는 공이 부처님이 그토록 오랜 세월 감추어 두었던 중도에서 근거한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저서를 중론으로 이름짓고 중도대선언을 공표한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대승불교국가에서 공이 불교의 중심으로 인정되자 그 근거로 삼은 중도론이 불교의 핵심교리가 된 이유이며 대승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중도가 부처님의 최고의 가르침으로 인정받고 있는 원인인 것이다. 그래서 중도론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에 정통성을 부여받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경전인 초전법륜경의 팔정도마저 공이라고 견강부회하고 중도가 부처님의 진정한 비의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즉 중도대선언은 소수 진보파인 대중부와 대승부파가 초기 주류였던 상좌부불교의 사실적인 유법을 파기하고 그 자리에 힌두교의 관념적인 마야, 환, 무실체성을 도입하기 위한 공개적인 도전장으로 중도가 그 도구로 사용된 것이다.
오늘날 용수는 부처님 다음가는 깨달음을 성취한 보살로서 대승불교의 핵인 공사상을 정립한 제2의 부처로 칭송받고 있다. 그러나 그는 깨달음으로 법안을 얻어 공이라는 진리의 실체를 밝힌 것이 아니라 그동안 대중부에서 축적된 여러 가지 무위와 관련된 이론들을 모아 이를 총 결집하여 공사상을 정립한 학승에 불과한 것이다.
깨달은 자는 생각이 없기 때문에 용수와 같이 관념적 논리를 전개하지 않는다. 맑은 마음에 비친 그대로 사실을 이야기하고 그 속에 나타나는 인과의 흐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용수의 중론은 이러한 사실을 보고 밝힌 가르침이 아니라 모두 추상적인 명제를 대상으로 논리적으로 접근해 들어간 철학적 분석이론인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학자들은 용수의 중론이 고대 관념적 인식론의 최고 철학적 고전이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나가르주나는 중도의 부정 논법을 활용하여 절대진리는 언설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 하여 인간이 할 수 있는 4가지 사유형태의 한계를 제시하고 팔부중도(八不中道)를 내세워 이 모든 것을 부정함으로써 이 세상의 실체가 공하며 부처님이 전하려고 한 비의가 바로 공이라고 결론내린다.
그는 현실을 부정적으로 보고 참된 진리는 이상 속에 있다는 힌두교의 이원적 사고를 받아들여 참진리(최고의 진리, Param rtha, 眞諦, 勝義諦)인 무루, 공과 거짓진리인(덮힌 진리, 俗諦, 世俗諦)이 유루, 유법이 존재한다고 구분짓는다. 그에 의하면, 최고의 진리(Param rtha, 眞諦, 勝義諦)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실체로서 인간의 사고 내지 인식작용이 미치지 않는 초월적 상태를 말하는데 이것은 플라톤의 이데아의 세계, 본질의 세계와 유사하며 세상의 흐름과 무관한 영원한 무루의 실체를 의미한다.
이에 비해 거짓 진리(덮힌 진리, 俗諦, 世俗諦)는 상대적인 진리로 인간의 시각과 사유에서 본 법을 이야기하는데 플라톤의 현상의 세계, 동굴의 세계를 의미하며 부처님이 초기불교에서 밝힌 유위법을 의미한다.
따라서 용수는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덮힘>의 세상으로 환영에 불과하므로 눈을 뜨기까지 그것은 마음을 괴롭히는 고통의 바다지만 이를 깨치면 고통스럽던 꿈은 이슬처럼 사라지고 영원한 평안과 해탈 속에 머무르게 된다는 것이다.
즉 부처님이 중도로서 양극단을 부정하며 무언가 말씀하려고 하신 것이 바로 참된 진리(최고의 진리, Param rtha, 眞諦, 勝義諦)인 공이라는 것이다.
용수는 기존 상좌부의 소승불교가 실상법과 인과법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왜곡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중도대선언으로 모든 것이 공하다고 가르치신 부처님의 정법으로 돌아왔다고 파사현정을 했다고 자찬한다.
그러나 불교사적 입장에서 보면 이는 파사현정이 아니라 불교의 완전한 힌두화이며 정법 500년설이 사실로 나타나 마침내 불교의 본격적인 변질이 나타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로서 불교는 힌두교의 마야사상과 거의 동일한 교리를 갖게 되었으며 힌두교에서 불교를 지파의 한 형태로 인정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 초기부터 가섭의 전통을 이어오던 기존 제도권인 상좌부의 사실과 이치에 근거한 실상법이 정법이겠는가? 아니면 소수파로 기존 설을 반대하며 힌두교의 마야(환)사상의 입장에서 현실을 부정하며 관념적인 공성을 주장한 대중부가 정법이겠는가?
6. 결론
이러한 중관론의 문제점은 첫째 부처님이 전하려고 한 것은 공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공은 세상에 널리 전할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승불교에서는 우주의 실체가 모두 공이며 이것이 부처님이 전하려고 한 진법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것은 후기에 논사들이 만든 논리에 불과하고 부처님이 그러한 말씀을 하신 적은 절대 없다.
초기에 공은 깨달은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해탈지경에서 체험하게 되는 고차원의 의식상태를 의미했다. 따라서 이러한 경지를 본다면 그는 이미 깨달은 자이니 공은 오직 깨달은 자들끼리만 전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중생들에게 공을 널리 전한다는 것 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말인 것이다.
그럼 공 즉 진정한 반야를 체험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마음의 업이 모두 사라지게 되니 심해탈을 하게 되는 것이며 그 마음은 법안을 얻어 온 우주를 있는 그대로 비치니 혜해탈을 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깨달은 자가 보게 되는 것은 공이 아니라 태초 이래로 존재하고 있는 삼계의 실상과 이를 이루고 있는 인과의 법칙을 보게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깨닫지도 못한 수행자들이 만들어 놓은 산과 같은 관념적인 불교교리에 의하면 부처님과 같이 사실적인 법계의 실상과 이치에 대해 한 말은 한 마디도 없고 오직 수행에 관한 과정 상의 이야기와 세상이 공하고 환이라는 이야기 뿐인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견성으로 마음자리만 보았지 그 내면에 깊이 가라앉아 있는 숙생의 업을 지우지 못했기 때문에 모든 업이 사라진 맑은 마음거울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함만 보고 허망한 이야기만 하는 것이지 부처님처럼 삼세의 실상과 인과의 이치에 대해 한마디로 하지 못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깨달음의 눈으로 이 세상이 완전한 법계이며 세상은 완전한 인과의 이치로 이루어진다고 했지 이 우주의 실체가 없다고 말씀하신 적은 없다. 그 분이 보신 것은 태초부터 존재하는 자연 그대로의 실상과 이치인 것이다. 부처님이 한마디도 설한 바가 없다는 말은 이러한 본래부터 존재하는 삼계의 실상과 이치 이외에 당신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하신 말씀은 한마디도 없다는 뜻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불가에서는 이 우주가 환이며 실체가 없는 공이라는 말이 마치 부처님이 하신 말처럼 상식화되고 있다. 그러나 만약 부처님이 오늘날 불제자들이 세상의 실체가 없다고 하는 허망함에 빠져 올바르게 분별을 하지 못하고 평범한 현실인들보다 더욱 그릇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아신다면 자신이 법을 전하신 것을 후회하실 것이다. 지금 불교는 그만큼 부처님의 정법으로부터 너무 멀리 벗어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부처님이 전하려고 한 비의가 따로 있으며 그것이 중도이고 공이라는 말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며 후대의 논사들이 만들어낸 하나의 관념이며 이데올르기에 불과한 것이다.
둘째 중도는 공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중도법칙이 있다고 가정하여 그것을 공이라 주장했지만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중도를 설한 경들은 각 경우마다 답을 하지 못할 사정이 있어 대기설법으로 그리 했던 것이지 중간이 진리라는 법칙은 없으며 또 중간이 공이라고 말씀하신 경우는 없는 것이다.
셋째 용수는 절대진리인 진제, 즉 공은 언설로 표현할 수가 없으므로 부정을 통해서만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중생의 시각일 뿐이다. 눈을 뜬 자에게는 세상 일이 너무나 분명하고 당연하지만 눈뜬 장님에게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것이 진리 속에 존재하는 일이다. 그래서 중생을 눈뜬 장님이라 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삼계를 보는 법안을 가진 일체지자이시다. 그런 분이 삼계의 현상에 대해 모르고 설명하지 못했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실상이 보이면 보이는 데로 표현하면 되는 것이다. 보지 못하면 표현하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하면 전할 길이 없고 실천할 길이 없다. 진리의 실체를 알 수 없다는 말은 진리를 보지 못하는 눈뜬 장님인 중생들이 진리에 대해 말을 할 수 없을 때 하는 말이다.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정법이 안개 속에 가려져 실체를 알아볼 수 없으니 용수는 이처럼 허공 속에 땅따먹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나가르주나의 실체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실상을 보지 못하니 생각과 논리로 부처님 법을 요체를 짐작하려 했고 그 방법으로 모든 것을 부정하는 부정논법을 사용한 것이다. 그가 실상을 보지 못한채 관념과 논리로써 반야를 이해하고 이 세상이 아무 실체가 없는 공이라고 결론짓자 불교는 눈앞의 일도 부정하는 관념적인 종교가 되었으며 그 영향으로 세상이 모두 공하며 허망하다는 이데올르기에 빠진 불제자들은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고 비현실인이 되어 자신도 망치고 세상도 망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던 것이다.
'☆ 진실의 근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기법을 깨쳐야 한다 (0) | 2013.07.26 |
---|---|
무위법의 확대와 불교의 관념화 (0) | 2013.07.26 |
공이 과연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인가? (0) | 2013.07.26 |
무아설은 부처님의 친설이 아니다 (0) | 2013.07.26 |
불교의 중도는 공이 아니다. (0) | 2013.07.26 |
세상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법
진실의 근원 ginc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