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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본질에 대하여 본문

☆ 진실의 근원

삶과 죽음의 본질에 대하여

삶의 진실 gincil 2013.09.15 00:52

인간은 기본적으로 갈애와 욕망에 의해 존재하며 움직이기 때문에 진리의 인연을 만나지 못하면 갈애와 욕망에 따라 동물과 같이 충동적으로 살게 되며 그 마음이 어둡고 무지하여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하게 되고 한과 집착에 얽매여 그 영혼은 죽어도 자유롭지 못하고 세상을 떠도는 유혼이 되어 지옥도의 고통 속에서 자신의 영혼을 망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자들은 이러한 생명의 길을 보고 동물과 같이 욕망에 파묻히지 말고 자신의 영혼을 잘 보존하여 완성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타락하기 쉬운 인간에게 계율을 정해 자신의 영혼을 지키게 한 것이다. 즉 계율이란 성자들이 욕망에 의해 혼탁해지기 쉬운 인간을 맑고 좋은 인간으로 만들고 한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인간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도리를 밝혀놓은 것을 말한다.

 

인간은 계율을 지킴으로써 욕망과 위험에 빠지지 않으며 한을 짓거나 맺지 않고 맑고 자유로운 정신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계율은 단순한 삶의 규칙이 아닌 것이며 오직 깨달음에 이르러 생명의 길을 완전히 보신 성자들만이 말할 수 있는 고귀한 생명의 길이며 인간의 도리인 것이다.

 

그리하여 갈애와 욕망을 계율과 바른 이치에 의해 통제하여 거짓없이 살아나가면 마음은 맑아지고 행복이 찾아오며 완성에 이르게 되고, 욕망을 마음대로 분출하여 방탕하게 되면 그 삶은 불안해지고 한이 깃들게 되어 파멸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계율을 지키지 않고 거짓을 행하고 남에게 나쁜 죄를 범하며 애욕에 집착하는 일은 자신의 마음을 어둡게 하며 한을 짓게 된다. 그래서 그 마음이 어둡고 무지하며 불안하고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더구나 남의 마음에 한을 짓게 하면 그 마음이 그대의 영혼을 붙잡아 윤회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길을 모른채 윤회를 맴돌게 되면 영원히 되풀이 되는 생노병사와 이고별리의 고통 속에서 헤매게 되며 나쁜 인연을 만나 원한을 맺게 되면 유혼이 되어 타고난 자신의 희귀한 영혼마저 파멸시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계율을 지켜 바른 이치에 따라 진실되게 삶으로써 마음의 맑음과 평안을 찾고 이웃과 세상을 축복하는 공덕의 길을 알게되면 윤회를 벗어나 영생의 차원에 이르러 자신을 보존할 수 있게 되며 더 승화되면 천상에 오르고 해탈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 영생의 경지에 이르러 자신을 보존하게 되는 단계에 이르게 되면 나고 죽는 한계에 묶여있는 윤회에서 벗어나 영원히 자신을 보존하고 나아가 불멸의 생명을 얻게 되니 이를 죽음에서 벗어난다고 하는 것이며 애욕에 집착하여 생노병사와 이고별리의 고통을 반복하며 윤회의 바다를 맴돌면 소멸에 이르게 되니 이는 길을 죽는 길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계율을 지키는 것은 죽음을 벗어나는 길이요, 방탕은 죽음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욕심내지 않으면 죽지 않고 도리를 잃으면 저절로 죽음에 이른다."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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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지혜가 부족하고 업이 두터운 까닭에 이렇게 다시 질문을 올리는 것을 용서바랍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인정을 해야만 진리로 받아들일 수 있기에 드리는 질문입니다.

 

창조주께서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 하나의 영혼을 따로 따로 만드셨는지

아니면 오직 하나의 <나>인 생명만이 존재하고 각각의 영혼들은 연기법에 따라 생성 소멸되는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얼음이 녹아 물이 되고 물이 수증기가 되어 구름이 되고 다시 비가 되어 내려와 인연에 따라 또 다시 얼음이 되는 것처럼

마치 바닷물이라는 하나의 영혼이 인연에 따라 파도가 치면서 잠시 떨어져 나온 파도의 물방울이 각각의 영혼은 아닌지..

 

내 몸을 보아도 이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자라면서 먹고 마신 모든 생명들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으며,

내 마음 역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보고 듣고  배우고  겪으면서  형성된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 마음의 주인인 영혼 역시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세월 동안 쌓이고 쌓인 삶의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인지..

 

육체의 삶과 죽음이란 눈에 보이기에 누구라도 알 수 있으나 영혼의 삶과 죽음은 눈에 보이지 않고 다만 깨달은 사람에게만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진심으로 알고 믿음으로 확고히 이해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깨달음이란 자신의 업을 모두 지워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도 한 점의 의심이나 두려움이 없이 삶과 죽음을 이해하는 것이며,

 

그들이 아는 생명은 영원히 흐르는 물의 순환처럼 생명 또한 영원한 순환임을 알고 찰라의 삶에 집착하지 않으며

영원한 생명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하나가 됨으로써 영생하는 것은 아닌지 진심으로 여쭙겠습니다.

 

[답변]----

그대는 자신의 논리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답을 진리를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보인다. 자신의 생각과 논리를 버리고 사실을 중심으로 생각해야만 생각이 사라지고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왜 마음과 영혼을 따로 생각하는가?

자기가 타고난 의식의 씨앗이 영혼인 것이며

이 영혼은 일상의 생활 속에서 겪는 마음이 모여 다시 영혼을 가꾸게 되는 것이다.

 

태초에 조물주의 뜻이 있어 기운이 나고 우주를 가득 찬 기운이 수억년을 스치는 가운데 신령스런 진기가 되며 이러한 진기가 더욱 스치고 부딪혀 점차 의식을 띤 영기가 생겨나는 것이다. 이러한 진기가 여러 차원으로 진화하여 생명체나 인간의 영혼으로 나기도 하고 그 의식을 더욱 진화하여 높은 차원의 천상에 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조물주의 완전한 뜻이 새로운 뜻을 낳고 이 뜻들이 서로 부딪혀 세상을 만들며 생명과 영혼과 여러 차원의 세계가 나타나는 것이지 하나 하나의 영혼을 조물주가 따로 만들어 치부책에 적어둔 대로 개개의 영혼을 좌우하는 일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깨달음은 찰라의 삶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깨달은 자는 매 순간의 주어진 일에 가장 사실적으로 가장 올바르게 대처하는 것이다.

다만 사사로운 일에 욕심내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은 세상에 대한 사랑과 진리로 완전히 승화되어 나에 대한 사사로운 욕망과 집착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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