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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의 근원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에 대해

gincil 2013. 11. 18. 22:45

1. 소승과 대승의 문제

 

소승불교가 부처님의 정법을 보존하고 있으면서도 세상과 단절을 선언하고 독방에 갖혀서 홀로 깨달음을 추구하는 수행법을 했었다는 것은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말은 오늘날 불교의 현실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며 날카로운 지적이다. 그러나 그동안 이곳에 실린 글들을 좀 더 자세히 읽었다면 소승 자체도 정법을 제대로 보존하고 있지 않아 문제가 많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오늘날 남방의 소승불교나 북방의 대승불교에서도 정법을 알아보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만약 남방의 소승불교나 북방의 대승불교에 정법이 살아 있다면 과거 불교를 믿었던 아시아의 불교국가들이 역사의 무대에서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밀려나 서구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속에 사실에 맞는 올바른 가르침이 살아있지 않았으니 좋은 인간을 만들지 못했고 좋은 인간이 없으니 좋은 세상을 만들지 못해 결국 패망의 비운을 맞았던 것이다.

 

불교는 사실을 사실대로 본다고 하는 깨달음의 종교이다. 부처님은 인류사에 태어난 인간 중 최고의 깨달음을 얻으시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진실과 이치를 밝히셨던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신 것은 문자가 없던 2,500년 전의 일이었다. 그래서 부처님이 밝혀놓으신 삼계를 이루는 이치와 좋은 인간을 만드는 길과 좋은 세상을 만드는 길은 부처님이 돌아가시자마자 인간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구전의 시대가 약  200여년간 흘러갔다. 초기 부처님의 직계제자들이 살아계실 때는 그 가르침은 거의 완벽하게 전해졌으나 한 세대가 지나가자마자 법은 급속히 쇠퇴해갔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정법은 가공되고 첨삭되었으며 각종 이론과 관념으로 물들어갔다. 그 중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 당시 인도사회의 문화적 환경이었던 힌두교였다. 그리하여 이백년이 흘러 처음 불경이 생겨난 아소카 대왕의 제 3차 불전결집시에는 당시 힌두적 풍습에 물들어있던 인도 중생들의 입맛에 맞는 체계적이고 현학적인 이론이 만들어진 것이다.

 

당시 전하는 글에 의하면 부파마다 다 경전이 있었으며 그 내용은 부파간에 서로 반대되는 내용이 있을 정도로 변형이 심했다고 한다. 어쨌든 경이 나타났을 때 이미 정법은 심각할 정도로 오염되었으며 힌두교의 염세적 사고가 깊이 스며들게 되었다. 이때 초기불교 속으로 들어온 힌두교의 사상이 바로 세상의 기원을 무명과 환으로 보는 마야(공)사상과 허무주의사상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불교를 공부하면 할수록 염세주의자가 되는 이유도 바로 이때 힌두교의 허무주의 염세사상이 들어온 때문이다.

 

힌두교의 허무주의적 염세성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것이 바로 삼법인이다.
부처님이 삼법인을 말한 적이 없는데 후대 부파불교의 학승들이 불교의 핵심적 내용으로 삼법인(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 열반적정)을 정해 불교를 허망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부처님이 하신 본래 가르침은 이 세상은 완전한 법계로서 모든 것은 지은대로 이루어지니 그 속에는 해탈에 이르는 길과 고통으로 가는 중생의 길 등 모든 가능성이 주어져 있다. 모든 것은 원인과 결과에 의해 끝없이 변하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니 부지런히 진리의 길을 배우고 행하여 빨리 해탈을 이루라고 하신 것이다.

 

깨달음이란 세상을 보는 완전한 눈을 뜨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좋은 인간을 만들어 인간완성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주신 것이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받든다면 그 나라에는 좋은 인간이 많이 날 것이고 훌륭한 인간이 많은 세상은 밝고 건강한 세상이 되며 모든 것이 이치대로 이루어지는 지상낙원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힌두교의 허무주의에 물든 후대의 제자들은 이러한 부처님의 참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삼법인을 염세적으로 해석하여 불교의 생명력을 망쳐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들은 제행무상이라 모든 것이 덧없고 허무하니 세상 모든 일을 고통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들의 삶의 목표는 하루 빨리 이 세상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게다가 제법무아라 나의 실체가 본래 공하여 없는 것이니 이 세상일과 삶에 집착을 갖지 말고 모든 것을 버리고 열반을 얻어야 한다는 소극적이고 염세적인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그러나 눈을 바로 뜨면 불교의 여기저기서 초기 불교의 생명력인 공덕행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부처님의 깨달음이 고행이나 명상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세상을 모두 덮을 정도의 공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이 남아있으며 초기에 사명감을 지닌 제자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가장 큰 공덕인 진리를 전하는 진리행에 자신을 모두 바쳤으며 중생들의 고통을 해결하여 좋은 삶으로 축복해주는 이고득락의 길이 아직도 초기불교의 특징으로 인정되고 있는 사실은 현재 불교의 해석에 많은 문제점이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부처님의 가르침과 현재 불교의 가르침은 정반대인 것이다.

 

이와 같이 허무하고 염세적인 사고방식이 초기불교 속에 자리잡자 초기 불교교단의 기본적인 패턴은 매우 소극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나타났다. 그들은 허망하고 더러운 세상을 하루 빨리 벗어나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생각하고 조용히 홀로 앉아 명상에 잠기며 내몸과 오욕칠정이 더럽고 허망하다는 것을 관하며 해탈을 얻고자 노력했다. 그들은 이와 같이 청정함을 찾는 불법은 욕망의 화신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중생들에게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고차원의 법이라 생각하고 세상의 욕망을 벗어던진 상근기를 지닌 승려들만이 조용히 모여 해탈의 길을 가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세속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최고의 진리로 인정받음으로써 초기 상좌부 교단은 청정하고 고상한 집단으로 세속의 존경과 숭배를 받았고 세속의 권력과 중생으로부터 많은 재물과 토지를 희사받아 귀족적인 장원생활을 누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불교교단은  고도의 전문성을 가진 독립적인 엘리트 집단이 되어 자기 수행에 매진해 나갔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태평세월이 오백여년 흐르자 인도의 불교 환경도 많이 달라졌다. 국제적으로  이교도들의 침입이 시작되어 세상은 시끄러워졌고 힌두교가 이론을 정비하여 인도의 기본종교로서 자리잡아 불교의 위상을 위협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중생구제를 위해 나타난 불교는 욕망에 불타는 세상에 대한 관심을 버리고 현실에 초탈한 고상한 집단이 되어 장원에 틀어박혀 해탈을 얻겠다고 자기들만의 리그를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기존 상좌부 교단에 의해 치여온 대중부 승려들은 이러한 상좌부의 엘리트적인 행태를 소승으로 비판하고 자신들은 대승이라 칭하며 중생구제를 부르짖으며 대승불교를 시작했던 것이다.

 

그들은 기존 상좌부 교단이 너무 엘리트적이고 비현실적이어서 중생구제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고 있으며 초기불교의 유법이 너무 지엽적이고 사실적이어서 무상, 고, 무아라고 하는 불교의 종지에 부합되지 못하므로 부처님이 숨겨둔 비전인 공을 불교의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승운동을 전개한 불제자들 역시 깨달은 자는 아니었다. 그들은 이론으로 무장한 학승들로서 어떻게 하면 현실의 불교의 어려움을 타파하고 중생을 구제할 수 있을 것인가? 상좌불교의 유법을 어떻게 하면 고차원적인 공사상으로 바꿀 것인가를 생각하며 세속적 종교개혁운동을 벌인 것이다.

 

그들은 중생을 구제하는 방법으로 초기 부처님의 가르침이 공덕행에 있다고 생각하여 비록 깨달은 자는 아니지만 중생구제에 힘을 쓰는 보살을 이상적인 인간으로 생각하여 보살사상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들은 진리를 보지 못한 중생들이었기에 그들이 근거하고 있는 이론은 매우 세속적이고 관념적이었다. 그들은 힌두교의 다신사상을 받아들여 수많은 부처님과 보살들을 만들어 신앙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으며 철학적으로는 힌두교의 마야사상을 철학화한 공사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기존 소승불교의 엘리트적인 비현실성을 비판하면서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인 중생을 구하는 공덕행을 강조했으나 진리를 깨치지 못한 중생에 불과했기에 그들이 세상에 전한 중생구제의 방법이 부처님이 그토록 금한 신에 대한 예배와 주문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뜻이 좋아도 길을 모르면 오히려 하지 않음만도 못한 경우가 여기서도 나타난 것이다. 그 이후 불교는 각종 보살과 부처님과 주문이 나타나 밀교로 발전하면서 미신화되는 길을 걷게 된다.

 

그 다음으로 대승불교가 근거하고 있는 공사상의 문제가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많이 언급했으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2. 이미 부처님을 포함한 과거의 성자들은 돌아가신지 오래되었는데 여러 글에서 성자들의 진리라고 언급하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 하고 지적했다.

 

자연의 이치는 과거나 현재나 동일하며 이 세상이 존재하는 한 불변이다.
그래서 수천년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셔서 하신 가르침이나 후대의 깨달은 분이 나타나서 하신 말씀이나 모두 자연 속에 있는 것이니 한치의 다름이 없는 것이다.

 

자연 속에 있는 일과 이치는 분명한 진실이요 진리이니 세상에 나와있는 모든 말도 여기에 비추어 보아 맞으면 진실이요, 진리인 것이며 맞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환상이며 거짓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누군가가 깨달았다고 할 때 깨달음의 진위를 구분하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이 세상 속에 존재하는 실상과 이치를 설하는가? 아니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환상과 자기 생각을 말하고 있는가를 보고 구분하는 것이다.

 

모든 성자들의 가르침 속에는 사실 속에서 이루어지는 자연의 불변의 이치가 들어있기에 수천년 뒤에 가서도 그들이 진리를 보신 성인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성자들의 말은 얼마 남아있지 않지만 그속에는 성자들만이 볼 수 있는 혜안과 세상의 이치가 들어있다. 예수님과 부처님은 많은 인과법을 남겼으니 그 깨우침의 경지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이며 노자와 소크라테스의 경우에도 깨우친 자만이 볼 수 있는 진리의 편린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노자가 하신 “상인은 도를 들으면 기뻐하고 중인은 반신반의하며 하인은 경멸한다.”라고 하는 말씀은 세상인심과 이치를 통달한 깨달은 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이며

 

소크라테스가  "파이돈"에서 생명의 실상에 대해 한 "인간은 전생의 습관에 따라 다시금 메이게 된다. 마구 폭식하거나 제멋대로 산다거나 술에 취해 산 자는 당나귀나 그밖에 탐욕된 동물로 태어나고 부정한 일과 포악한 일, 도적질을 한 사람은 독수리나 매같은 것으로 태어난다. 부지런하고 규칙을 즐기는 이는 개미나 벌과 같이 되고  또 그들로부터 다시 인간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라는고 가르침에서도 생사를 돌고 있는 인과법을 본 자만이 할 수 있는 진리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비록 작은 글귀지만 깨달은 자만이 말할수 있는 실상의 이치를 엿볼 수 있기에 그들이 깨달은 자임을 알아차리고 그들이 말하는 자연의 법을 영원한 진리라고 하는 것이다.


3. 스승께서 초기대승불교에서 만들어진 반야심경의 내용을 사실인 듯이  "반야심경 속에 있는 내용은 눈을 뜨지 못한 너희 장님들끼리 천년을 봐도 모른다.“ 고 언급하신 것이 반야심경의 제작연대에 비추어보아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당연한 말이다. 관자재보살은 부처님 재세시 전혀 존재하지 않은 신으로 후대의 대승불교에서 시절에 만들어진 존재이니 어찌 그 경을 부처님이 만드셨겠는가? 그리고 뒤에 나오는 아제 아제라는 주문도 부처님의 진리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무의미한 꽃노래일 뿐이다.

 

반야심경은 부처님이 해탈의 경지에 대해 말씀하신 것을 후대의 대승 불교인들이 자신들의 논리와 생각으로 가공하여 만든 것이니 그들은 해탈의 경지를 반야로 표현하였던 것이다.

 

스승께서 말씀하신 것은 반야라는 말에 대해 말씀하신게 아니라 당신께서 깨달은 해탈의 실상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니
“깨닫지 못한 중생들이 생각으로 만든 반야심경을 가지고 너희들이 해탈의 경지인 반야를 이해하려 한다면 결코 절대 이해할 수 없다”는 취지로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후대에 만들어진 반야에 대해 언급하셨다고 해서 잘못 말했다고 해서는 안된다. 스승께서는 깨달음의 실체인 해탈의 경지에 대해 언급하신 것이다. 해탈지경과 반야라는 말은 같은 하나의 실상을 다른 단어로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질문]-----------

허해구 선생님의 답변에서 공통적으로
"불교는 500년의 정법시대가 끝나고 대승운동의 시작으로 말미암아 말법의 시대가 시작됬다"
라는 말을 자주 접할 수 있었습니다.

대승불교가 힌두교의 사상을 담았다고 하시는데 사실 그것은 맞는 말입니다.
그 당시의 불교는 너무 대중적이지 않았고 사람들은 힌두교의 사상에만 심취해있었기 때문에
불교를 알릴 목적으로 불교를 힌두교의 신화속에 넣어버렸거든요

아예 석가모니 자체를 힌두교의 수많은 신중 하나의 신으로 넣어버렸다는 말까지
역사책에서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소승불교의 시대가 정법의 시대인가요?
물론 소승불교는 대승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이 만든 언어임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친구녀석의 건축과제를 도와주다가 고대 불교건축역사에 대해 공부하게 되었는데
소승불교일적에는 세상과의 접촉과 소통을 제외한 오로지 혼자만의 깨달음을 추구했기 때문에
모든 불교사원은 한 사람만의 독방으로 설계되어있었습니다.

이렇게 자신만이 깨달음을 얻으려 하는 이기심에 반발하고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자
하여 일어난 것이 대승운동입니다.
대승불교로 인해서 보살이라는 개념이 생겨났습니다.

소승불교일 적에는 '아라한' 즉 홀로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는 사람
대승불교에서는 '보살' 즉 다른 사람에게 가르침과 공덕을 널리 베풀어 깨달음을 얻는 사람

두가지 불교에서의 깨달음의 길이 다르죠
물론 대승운동이 일어날 적 각 사회에서의 좀 안다하는 학자들이 대승불교의 이론에 많이 간섭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중의 하나가 공사상이구요.
하지만 전 깨달음을 대하는 자세만큼은, 대승불교때의 그것이 좀 더 진실의 근원 가르침에 가깝다 생각했었는데
대승운동으로 말미암아 말법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하니 약간 혼란이 옵니다.
분명 소승불교 시대가 석가모니시대와 좀더 근접했었고 다른 학자들의 이론적인 간섭은
역사적 기록상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단절을 선언하고 독방에 갖혀서 홀로 깨달음을 추구하는 수행법을 했었다는 것은
정말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실의 근원 사이트에서 가장 경계하던 것이 아니었나요?

그리고 또 한가지 의문점이 있는 것은
제가 옛날에 진실의 근원 사이트에서
"이세상에 남아있는 대부분의 불경과 성경은 깨달은 분들이 돌아가신지 이미 수천년이 지나
그분들의 가르침과 거의 연관성이 없다. 인터넷 상에서도 각종 왜곡이 엄청나게 일어나고 있는데
하물며 구전으로 전파되던 시기의 왜곡은 어떠했겠는가" 라는 말에 깊은 공감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허해구선생님은 답변을 다실 적에 
"이것이 바로 부처님이 말씀하신 실상이란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자들이 세상에 전하고자 하던 진리였던 것이다"
라는 말씀을 자주 하십니다.
부처님을 포함한 옛 성자분들은 이미 돌아가신지 꽤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요?

물론 아주 먼 과거의 일이고 정말로 그랬는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제가 세상을 보는 눈이 시커먼 것처럼 정말 과거 역사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글들을 보면 볼수록, 오로지 이 한가지 의문점이 생겨서 질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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