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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있는 일을 보고 있는 일을 가르칠 수 있는 스승이 되는 것 본문

☆ 자연의 가르침

깨달음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있는 일을 보고 있는 일을 가르칠 수 있는 스승이 되는 것

gincil 2014. 1. 5. 17:52

깨달음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있는 일을 보고 있는 일을 가르칠 수 있는 스승이 되는 것이 깨달음이다. 있는 일을 모르면 깨달음이 없는 것이다.


깨달음이란 현실, 즉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철학, 종교, 과학 등 모든 분야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이고 무엇이든지 질문하면 틀리지 않게 대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에 깨달았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것을 물으면 대답을 하지 못한다.


어떤 소금을 먹으면 질병이 낫는다고 하거나 묘 자리를 어디에 쓰면 복을 받는다고 하거나 금강경을 몇천 번 읽으면 깨닫는다고 하는 등의 현실에 맞지 않는 말들을 한다. 금강경을 천 번이 아니라 삼천 번을 읽었다 해서 깨닫는 것은 절대 아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사람은 깨달음으로 해서 있는 일을 통해 자기의 의식을 깨우치고 자기 영혼의 생명을 구한다는 것이다. 즉 영체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다. 이것이 자신의 힘으로 변화기에 생명체의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있는 일을 외면하고, 말을 듣고 말만 배워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연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이 순간 이런 의문을 갖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가장 큰 목적은 있는 일의 실체를 알아서 자신 속에 재앙이 없는 삶이 있기를 원하는 것이고, 또 깨달음을 통해서 행복과 평화,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구하기 위한 것이다.


다만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들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 시대의 가장 큰 불행이다.


무엇이 중요한 일인가?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의 진실을 아는 것이다.


우리가 있는 것들의 진실을 알면 우리가 하는 일은 그만큼 쉬워지고, 또 그만큼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현실 속에서 배우려고 계속해서 노력해야 한다. 현실의 모든 것들이 가르침이다.

 

시집 <나그네> 에 이런 시가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스승이로다.

저마다 대하고 보니

만나고 헤어짐도 가르침이 있도다.

만물은 은혜를 지니고 있고

기쁨은 나에게 있으니

축복이란,

지키고 행하는 일이

농사일과 같도다.

 

세상의 모든 것. 나쁜 것을 보아도 그 속에 있는 일을 알게 되면 그것이 바로 가르침이다.


나쁜 사람을 만났었기 때문에 잘못하면 나쁜 사람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만 산다는 보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나쁜 사람을 만나 보고 나서야, '아하! 잘못하면 나쁜 사람을 만나서 이런 봉변을 당하는구나!'하고 알게 된다. 그것이 모두 가르침이다.


있는 일을 통해서 배우고, 있는 일을 보아도 이해가 안 될 때는 깨달은 자에게 찾아가서 물어보아야 한다.


깨달은 자에게 물으면 "이런 일은 이렇게 해서 있게 되니 당신이 본 것은 이러한 현상을 본 것이다. 그러나 이 현상 속에는 이런 일이 있어서 당신과 어울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그것을 외면했고, 그래서 그 일로 인해서 당신을 이런 것을 잃어버렸고 이런 것을 새로 얻게 되었다"하고 가르쳐 주는 것이다.


깨달은 자에게서 배워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깨달은 자를 통해서 있는 일을 배우면 있는 일을 빨리 알게 되어서 자신도 열반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열반이라는 것은 번뇌와 망상으로부터 벗어나서 편안한 자기를 이루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마음의 평화를 얻고,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을 열반이라고 말한다.

 

생명은 의식과 물질과 기체의 결합체라고 했다. 기체 속에는 의식이 있다. 생명은 삶을 통해서 영체를 남긴다. 그리고 육신은 썩어버리고 영체만 남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영체를 볼 수 없다.


이 영체를 분해하면 의식과 기체로 되어 있다. 물질에 기운이 붙어서 그 기운이 물질을 조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물질 자체가 떨어지니까 기체만 남고, 이 기체 속에는 의식이 잠재해서 다시 살아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영체의 삶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영체에서 의식이 없어지면 그것은 하나의 근본이고 근원의 세계이다. 의식이 없어지면 한 세대가 끝나는 것이다.


다음은 태어남의 세계이다. 의식이 죽으면 다시 부활하는데 이 세계를 죽음과 태어남의 세계라고 한다. 의식이 죽지 않으면 절대로 부활할 수 없다.


티벳의 림포체가 다시 환생을 했다는 것은 부활이 아니고, 태어나는 어린아이에게 죽은 림포체의 살아 있는 의식체가 붙었다는 것이다. 잘못된 전통이 태어나는 아이들의 생명에 나쁜 영향을 미쳐 왔다.


실제적으로 의식체가 사라지지 않으면 부활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의식체가 사라지고 난 이후에 부활이 있고 나면, 자기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해서 전혀 모르게 되어 있다.


사람의 전생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귀신이 장난을 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생명의 세계에서 이동한 의식체, 우리의 몸 속에서 자라고 있는 의식체가 하나의 공간을 벗어나 중력대를 벗어난 곳에서 머물게 되면 이것은 새로운 인류로 이동이 가능하다.


변화기는 6,000년이나 7,000년만에 주기적으로 세상에서 나타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자원의 고갈과 오염에 의해서 세상 자체는 자멸해 버린다. 그러면 거기에는 기형적인 것, 즉 악(惡)만 나게 된다. 좋은 것, 즉 선(善)이 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땅은 쓸모 없이 되어 버리고, 물 자체도 소멸되어 버리고, 그 다음에 공기 자체도 없어져 버리며, 그리고 세상의 기층 자체도 사라져 버린다. 그러면 지구 자체도 달과 같은 세계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세상에는 변화기가 주기적으로 존재하게 함으로써 세상에 끝없이 인류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변화기를 절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기는 과거의 세상에도 있었고, 미래의 세상에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 자신이 과연 자기의 앞날에 얼마만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과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어느 정도 느끼느냐에 따라서, 이러한 일을 받아들일 수도 있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런 기회를 통해서 깨닫게 되면 끝없이 밝은 미래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내세에 가서도 끝없이 밝은 앞날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한 번 자기 속에 쌓이게 된 일은 의식체가 사라져도 그 기운에 의해서 그대로 태어나기 때문에 계속해서 쌓이는 일이 반복된다.


거기에서 성질을 만들어내고, 거기에서 모든 일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하나의 기준이 설정이 되기 때문에 한 번의 작은 깨달음이라도 얻는다면 그 깨달음이 두고두고 자기를 밝은 곳으로 인도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을 태우고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일로 인해 자신이 끝없는 내세를 통해서 복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으므로 잘 알게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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