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실을 찾아서
복진타락과 공덕(이전 글에 대한 의문) 본문
좋은 질문입니다.
하지만 님은 지금 이곳에서 강자, 또는 승리자의 입장에서만 말하는 것 같다고 하는데
이곳은 하나로 돌고 있는 세상의 진실을 밝히고 있는데 강자의 이론과 약자의 이론이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을 가진 자와 못가진 자, 강자와 약자, 승리자와 패배자로 나누는 시각은
근대에 들어서 세상을 폭력적 착취로 이루어진 갈등관계로 보고
투쟁으로서만 해결이 가능하다는 공산주의 이데올르기가 나타나면서 시작된 것입니다.
이러한 공산주의 이론이 나와 빈부간, 계층간에 갈등이 고조되면서
자본주의 국가는 공산주의 물결을 막기 위해 오늘날 복지국가의 토대를 만들게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갈등적 이데올르기가 나타난 이후부터는
사회 속에는 갈등과 불신이 팽배하여 미움과 투쟁이 그칠 날이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세상을 하나의 이치 속에 이루어지는 법계로 봅니다.
그래서 인간세상을 축복하기 위하여
모든 인간이 스스로 주체가 되어 바른 이치대로 살며 문제가 없는 행복한 삶을 이루고
좋은 영혼을 이루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 길을 밝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득권이나 능력있는 자에게 유리한 논리를 말하는 것은
전혀 이곳의 관심사나 추구하는 바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세상을 바로보고 정확히 판단하기 위해서는
하나로 움직이고 있는 세상을 바로 보고 그 속에 있는 원리를 찾아야 하는 것이며
어느 한쪽 편에 서서 해결책을 찾으면
결국 서로 간에 모순되는 상황을 만들어 투쟁으로 치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서로 간에 다투다가 함께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공산주의입니다.
마르크스는 세상이 하나의 조화체이며 인과의 이치대로 이루어진다는 성자들의 시각과는 달리, 세상이 불평등하고 혼란스럽고 투쟁적이라고 생각하여 현 상황을 인위적으로 파괴하여 자기가 원하는 공산주의 이상향을 건설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다수 대중인 노동자 농민을 선동하여 힘을 규합하여 기득권 세력을 무너뜨리고 노동자 농민 중심의 공산사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힘으로 권력을 쟁취한 무산계급들은 노력에 따라 결과를 받는 기존 질서를 폐기하고 양심적으로 일하고 필요에 따라 공급받는 이상사회를 꿈꾸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과는 별개로 현실 속에는 한치의 어김없는 인과의 이치가 냉정하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상을 꿈꾸며 혁명을 이룬 그들은 인격적이고 이상적인 인간이 아니라 수많은 인간적 결함을 가진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은 아름다운 공산주의 이념을 숭배할 줄만 알았지 스스로 인간적인 미덕을 발휘해야 공산주의 세상이 오는 줄 몰랐습니다. 그리하여 공산주의 이념에 도취된 무산계급들은 자기 할 일은 안하고 무조건 받기만을 원하며 게으름을 피웠습니다. 그러자 모든 것을 동등하게 나누고 노력에 대한 댓가를 보장받지 못하는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자신의 모든 노력과 가능성을 발휘할 사람이 사라져 모든 사람이 평범한 소시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국가의 부는 줄어들어 전체 인민의 밥거리도 제공하지 못하는 가난하고 부패한 나라로 추락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 20세기 말 공산주의는 붕괴되었고 사실적 이치를 무시한 마르크스의 평등주의 이상은 관념적 허구로 증명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을 지키고 있는 영원한 자연의 이치를 무시하고 이데올르기에 사로잡혀 자기 주장만 하는 순진한 이상주의자가 현실 속에서 가장 위험한 것입니다.
문제는 오늘날 그러한 편협한 갈등적 이데올르기가 팽배하여 인류사회를 미움과 다툼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세상을 보는 시각은 세상을 하나의 조화체로 보지 않고 상호간의 갈등관계로 보는 시각이 강합니다. 자본가와 노동가, 개발론자와 환경론자, 부자와 가난한 자로 나누어 항상 서로를 갈등과 긴장 관계 속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조화를 통한 통합과 평화는 없고 오직 다툼을 통한 계산적인 타협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계속 진행되면 인간세상은 조화를 잃고 불신이 가득해 결국 파멸로 가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로 보고자 한다면
강한 자 성공한 자와 약한 자 패배한 자를 구분하는 편향적인 이데올르기에서 벗어나서
하나의 전체로 보아야 합니다. 세상은 하나이며 하나의 이치 속에 서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 전체가 하나가 되어 힘을 합치는 나라는 흥할 것이며 서로 간에 갈등을 일삼고 분열하는 나라는 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동안 내가 이곳에서 한 이야기는 세상을 이루고 있는 실상의 이치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지 어느 한쪽에 편향한 시각을 갖고 말한 게 아닙니다.
국가는 개인이 모여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개개의 국민이 자율적이고 유능할 때 그 나라는 부강하고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국가의 운영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주체성과 능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지은대로 받는 공정한 원리가 사회에 자리잡도록 해야 하며 노력하지 않는 자에게는 그에 합당한 불이익이 돌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사람이 자신에 의지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하며 건실한 삶을 살게 됩니다.
만약 노력해도 공정한 대가가 지급되지 않거나 노력하지 않아도 국가가 모든 생활을 보장해준다면 열심히 일할 자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서구 복지병의 근본 원인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단순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주체적으로 해결하고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함으로써
자기 영혼을 완성시키기 위해 사는 것입니다.
따라서 스스로 자존하지 못하고 남의 도움을 받는 것은
자신의 영혼을 성숙시키는 삶이 아니라 오히려 망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니
국가의 부조를 당연시하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며
가능한 한 의존을 벗어버리고 자존하는 삶을 살도록 해야 합니다.
물론 국가는 국민의 삶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님의 말대로 어려운 형편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어 자존할 수 있게 해주면 좋은 일이지만
국가의 재원은 한정이 있으니 이치에 맞게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게으르거나 능력있는 사람을 무조건 도와 그 사람의 자립심을 망쳐서는 안되며
복지 함정에 빠져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지시혜는 국가의 여력의 범위 내에서 해야지
국가의 지속적인 발전을 해치는 수준까지 가서는 안됩니다.
표를 의식해서 무조건 퍼주기를 한다면 그리스 꼴이 나서 함께 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갈등주의자들은 가난과 실패의 책임을 개인의 책임보다는 환경과 사회의 책임으로 돌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 책임을 남에게 돌리고 세상을 갈등과 투쟁 속으로 빠뜨리려는 이데올르기적인 시각으로 이치로 보면 잘못된 견해입니다. 이러한 시각을 갖게 되면 인과의 이치대로 이루어지는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합니다.
세상일은 원칙적으로 개인의 능력과 책임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세상을 바로 볼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다 똑같아 보여도 그가 과거에 지은 업에 따라 현실적 능력은 천차만별입니다. 따라서 각자의 근기가 다 다르니 일을 하면 반드시 결과에 차별이 생깁니다.
그대의 말대로 실패하고 싶은 사람은 없겠지만 개인의 능력의 차이가 있으니 우열이 가려질 수밖에 없는 것이고 이것은 근본적으로는 과거에 자신이 지은 업의 결과이니 자기 책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똑같이 환경이 나빴지만 정주영 같은 이는 무학이지만
소한마리 가지고 내려와 현대그룹을 이루었습니다.
따라서 자기의 실패를 환경 탓만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물론 많은 사회학적 통계들이 환경의 영향을 강조하고 있지만
삶을 구성하는 요인은 그러한 환경적 요인보다는 개인의 주체적 작용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군요. 세상의 주체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
일반적으로 동정심으로 하는 것이 공덕이 되느냐 하는 걸 물은 것 같은데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 봅시다.
공덕이 되자면 좋은 결과가 나와야 합니다.
지금껏 사람들이 좋은 일 한다고 했는데 좋은 세상은 안 만들어졌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좋은 일이라고 했지만 그것이 좋은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는 좋은 일 한다고 종교단체에 많은 재산을 투자했지만
거대한 종교시설이 생겨나가고 종교의 교세를 늘리는데 사용되었을 뿐
세상을 밝게 만들고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데 전혀 기여하지 못했습니다.
종교가 세상에 좋은 가르침을 전했으면 그것이 복이 되었겠지만
불행히도 말법화된 종교는 영적 미신과 환상을 전해 사람들을 어둠에 빠뜨렸을 뿐입니다.
따라서 길을 알지 못하고 잘못된 곳에 희사하는 것은 공덕이 되지 못하고 한만 짓게 됩니다.
그동안 국가에서 많은 모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밝혀진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태풍이 불었을 때도 수많은 국민성금이 모였고 평화의 댐 때도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엄청난 돈이 반강제로 차출되었고 수많은 코 묻은 돈이 모였지만 그 돈이 청와대로 들어간 이후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밝혀진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한 공공모금의 운영결과에 대해 한국일보 보도(14.12.22)가 한번 있었습니다.
모금을 실시한 3,991개의 감사보고서를 분석했는데 그 단체의 투명성, 효율성을 검증할 정도로 재정 정보를 공개한 곳은 19개(적십자 제외)에 그쳤으며 심지어 연말 거리모금의 상징이 된 구세군 자선냄비조차 상속세 및 증여세법 상 공시 의무사항인 ‘월별 기부금 모집 및 지출명세’를 공개하지 않고 있답니다. 그리고 이 19개 단체의 경우도 기부금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투명한지 비교 분석한 결과, 총 지출액에서 순수 자선사업에 쓴 비중이 단체별로 최대 80%포인트까지 차이가 벌어졌다고 합니다. 많은 돈이 자선사업에 안 쓰고 그 단체의 운영비로 전용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는 좋은 일이라고 했지만 그 단체의 배를 불리는데 사용되고 세상에 좋은 일을 나타난 것이 없는데 어찌 그 사람에게 좋은 일이 했다고 할 것이며 그 사람에게 공덕이 생기겠습니까? 옳고 그름을 모르고 함부로 희사했으니 그 정신이 무지해진 것이며 세상에 악을 번지게 했으니 악업이 생긴 것입니다.
물론 돈많은 사람이 그동안 죄지은 것도 많고 생색도 내고 싶어서
희사하는 거야 안하는 것보다 좋은 거지만 그게 큰 공덕이 되지 못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돈이 분명히 좋은 곳에 쓰일 것을 알고 썼다면
그는 그러한 좋은 일에 대한 식견이 생겼으니 그 의식이 좋아져
다음부터는 더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지혜를 갖게 되는 것이며
그의 희사로 인해 세상이 좋아지니 진정한 공덕이 되는 것입니다.
불우한 사람을 돕는 게 좋은 일이기는 하지요.
그러나 가난을 구제하는 것은 국가도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국가는 국가가 할 일이 있고 개인은 개인이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개인에게 주어진 것은 한정이 있습니다.
개인은 자기에게 주어진 인생과 돈과 시간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해야 하며
가능하면 참된 공덕이 될 일을 골라서 해야 합니다.
가난한 자, 도태된 자, 불행한 자를 돕는 것은 국가의 기본 임무이니 국가에게 맡기고
개인은 가장 우선적으로 자기 인생농사를 잘 짓는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불우한 자를 돕는 것이 나쁘다거나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큰 공덕이 되지 않으니
진리의 길을 가는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돈과 시간을 함부로 쓰지 말고
자신과 세상을 밝히는데 유용하게 쓰라는 것입니다.
---[질문]----
앞서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복진타락과 공덕'이라는 글에 달린 답글을 읽고 글을 씁니다.
사람의 운명이란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며 자신의 운명을 망치고 싶은 사람은 그 누구도 없습니다. 아무리 삶이 힘들어졌다고 해도 그게 반드시 자신만의 잘못이라고 할 수 만은 없으며 외부의 영향도 십분 고려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엔 롤링이라는 무일푼의 이혼녀가 세계적인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사회적인 배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녀 스스로도 해리포터의 탄생은 영국의 사회안전망 덕분이라는 얘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빅이슈라는 잡지 판매를 통해 새 삶을 살게 된 노숙자들, 긴급지원을 통해 주거 및 의료 등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갈 발판을 마련한 한부모가정 등의 사례는 그동안 해 온 일의 특성상 무수히 봐왔습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도 있듯이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을 살아가는 동안 무수히 많은 어려움이 있고 그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쓰러질 수도 있겠지만 그들을 이해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와 기회를 제공해준다면 그것이 공덕행이 아니고 무엇일까요?
너무 강자, 또는 승리자의 입장에서만 말씀하시는 건 아닌지 여쭙고 싶습니다.
'☆ 진실의 근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신만의 원력인지? 아니면 누구나 가지는 원력인지? 집착이란 반드시 버려야 하는 건지? 양자물리학? (0) | 2015.09.06 |
---|---|
사주나 음양오행 이론은 어느정도 맞나요? (0) | 2015.07.26 |
사도바울의 복음 (0) | 2015.07.26 |
꿈 해몽에 대해서 (0) | 2015.07.26 |
성경에 대해 생각하다가 (0) | 2015.07.26 |
세상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법
진실의 근원 ginc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