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실을 찾아서

생명의 질서, 빙의, 업의 존재 본문

☆ 진실의 근원

생명의 질서, 빙의, 업의 존재

gincil 2016. 9. 4. 01:27

김XX님과의 토론 과정에서 몇가지 분명히 해야 할 사항이 있어 밝힙니다.

그것은 생명의 질서 속에 있는 천상과 지옥의 존재에 대한 것과

영의 감염에 대한 것과

업의 불합리성에 대한 것입니다.

 

이문제는 분명히 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많은 혼란이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실상을 분명히 밝히고자 합니다.

 

김XX님은 이곳에서 천상과 지옥의 일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이곳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환상적인 천상의 신에 빠진다고 주장하며

그것이 혹세무민의 증거라고 합니다.

 

천상과 지옥의 존재에 대해서는 모든 성자들이 공통적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성자들의 재세 당시 그 가르침을 부정하며 성자들을 비난하고 법을 파괴하려던 자와 똑같은 주장인 것입니다. 그들의 이름은 지금도 남아 세상의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 이곳에서 천상과 지옥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해서 환상을 전하고 혹세무민한다고 하는 그대의 주장을 보면서 소크라테스 시절의 소피스트들을 떠올립니다. 그들은 당대의 지식인으로 강연자, 문필가, 교사로 종사하면서 지식을 팔고 웅변과 변론술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을 보지 못하는 눈뜬장님이라 자기의 독단적인 경험과 논리에 빠져 모든 것을 자기 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모든 소피스트들의 주장이 다 달랐고 보편적 진리도 나타날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길을 보지 못하는 자는 영원히 어둠에 헤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소피스트 중 대표적인 사람으로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모두 변한다고 주장하며 영원하고 절대적인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은 가변적이고 상대적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프로타고라스라는 사람은 인간이 만물의 척도로, 인간에게 좋으면 선이고 나쁘면 악이라고 하여 인간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트라시마쿠스라는 사람은 정의는 강자를 위해 존재하며 이긴 자가 정의의 기준이 된다는 극단적 주장을 합니다.

 

이처럼 그들은 세상의 진실과 그 이면 속에 있는 진리를 보지 못하고, 자기 생각 속에서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한 것입니다. 특히 제논이란 철학자는 '제논의 역설'로 불리는 궤변으로 유명합니다. 그의 역설에 따르면 '날아가는 화살은 움직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모든 존재는 순간에 놓고 보면 정지 상태이기 때문에 순간이 이어진 시간 속에서 화살은 계속 정지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제논의 두 갈래 뱀의 혀뿌리에 걸리면 진실도 거짓으로 변한다.” 고 했습니다. 이렇게 소피스트들은 오늘날 지식인들처럼 진실은 알지 못한 채 교활한 논리를 내세워 상대를 제압하는 것에 지식의 목적을 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열린 눈으로 보니 소피스트들은 세상의 실체를 전혀 알지 못한 채 좁은 자기 생각에 갇혀 현상의 한쪽 면만 보며 진실을 왜곡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그들을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실제로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으면서, 뭔가를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이것이 당시 사회를 이끌어 가며 지식을 자랑하던 소피스트들의 실체였으니, 이는 오늘날 실상을 전혀 보지 못하면서 자기 생각으로 수많은 환상과 논리를 만들며 세상을 호도하고 있는 우리사회 지식인들의 실상을 보는 것과 같아 씁쓸한 면이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이 세상 속에 개인과 세상, 선과 악, 삶과 죽음과 같은 모든 현상들이 완전한 흐름과 이치 속에서 하나로 돌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소피스트들이 인간이 지켜야 할 선과 절대적 가치는 없으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고 성공하면 된다고 주장하는데 대해, 소크라테스는 이 세상이 완전한 뜻과 생명의 질서 속에서 이루어지며 절대적 가치와 진리가 있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이런 이유로 소크라테스는, 생각 속에서 한쪽 면만 이야기하는 독단적인 소피스트들에게 ‘너희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실상과 이치를 아무 것도 모른다’고 하시며, ’너 자신을 알라!‘고 하는 유명한 말을 남기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파이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산자는 죽은 자로부터 오며 죽은 자는 산자로부터 온다.

따라서 모든 생명은 죽은 것으로부터 나타나므로 당연히 죽은 뒤에 영혼이 존재한다.

인간이 죽으면 지은 대로 받는 사후의 세계가 있으며, 삶의 결과에 따라 도는 윤회에 대해서도 밝혔습니다. "인간은 전생의 습관에 따라 다시금 매이게 되는데 마구 폭식하거나 제멋대로 산다거나 술에 취해 산 자는 당나귀나 그밖에 탐욕스런 동물로 태어나고 부정한 일과 포악한 일, 도적질을 한 사람은 독수리나 매 같은 것으로 태어나며 부지런하고 규칙을 즐기는 이는 개미나 벌이 되며 또 그들로부터 다시 인간이 나올 수 있다."고 하여 사후의 인과가 이루어지는 생명의 실상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맑은 영혼의 자유와 평안을 얻는 것이라 했습니다.

 

영혼이 육체에 이끌릴 때는 어지럽고 어둡고 탁하고

육체에서 자유로울 때는 맑고 지혜롭다.

 

혼이 저승으로 가면서 지니고 가는 것은 오직 교육과 체험 밖에 없으니

혼이 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선하고 지혜롭게 되는(깨우침을 얻는) 수밖에 없다.

이것이 죽은 영혼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한다.

 

그래서 저승에서 있어야 할 시간을 머물러 있은 다음에, 다시 이승으로 오게 된다.

 

영혼이 욕망과 쾌락에 매어 있으면 육체에 계속 매이게 된다.

그래서 물질적 세계인 현실과 무덤을 배회하면서 계속 헤매게 된다.

이러한 망령은 선한 자가 아니라 비천한 자이다.

이러한 망령은 전생의 생활이 나빠서 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영혼의 자유를 얻고자 하는 자는

모든 육체적 얽매임 욕망과 쾌락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철학으로 무지를 깨치는 지혜(깨우침)을 얻어야 한다.

 

그리하여 자신을 충분히 정화한 사람은

감옥과 같은 지상에서 벗어나 순수한 곳으로 올라가서 그곳에서 살게 된다.

 

그리고 철학으로 무지를 깨치고 지혜를 얻은 사람은

영원히 육체없이 살게 되며 순수한 곳보다 더욱 아름다운 거주지에 머물게 된다.

 

이와 같이 삶과 죽음을 하나로 관통하는 생명의 질서가 있고 지은 대로 받는 완전한 천국과 지옥이 있기에 소크라테스는 자기를 모함하여 죽이려는 자들도 용서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법정에서 마지막 변론을 하면서 천국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죽음이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이고, 저 세상에는 우리보다 먼저 죽은 현자들과 성자들이 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저 세상에서 그분들과 함께 사는 것보다 더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소? 그런 곳으로 갈 수만 있다면, 나는 한번이 아니라 백번이라도 죽을 수 있소. 그러므로 재판관 당신들이나 시민 여러분도 결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선한 사람은 삶과 죽음 속에서도 악이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오.”

 

“이렇게 완전한 사후 세계가 나를 기다리고 있기에, 나를 심판한 사람들의 의도가 나에게 악을 행하는 것이었다 해도, 나는 그들은 물론 나를 고발한 사람들에게도 화를 내지 않는 것이오. 자, 이제 헤어질 시간이 왔소. 나는 죽기 위해 가고 당신들은 살기 위해 가지만, 우리 중 누가 더 나은 운명을 향해 가는지는 오직 신만이 아실 것이오.”

이것이 바로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 사람들이 놓치는 행간에 있는 천국의 진정한 모습이며 생사를 초월하여 인간이 가야 할 길인 것입니다.

 

이처럼 소크라테스가 세상을 보는 열린 눈을 가지고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 육체와 생명, 개인과 사회로 연결되는 우주의 실상과 완전한 진리를 이야기하니, 눈앞에 있는 세상만 보며 자기 논리에 빠져 궤변을 일삼던 소피스트들은 자신들의 한계와 허구를 날카롭게 지적하는 소크라테스에 대해 겉으로는 아무 반박을 못하지만 속으로는 미워서 그를 제거하려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나 부처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분들이 천국과 지옥의 논리로 사람들을 깨우친 것은 그대는 잘 알 것입니다.

 

예수님이 처음 전리를 전하실 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는 것부터 시작하셨고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라고 하셨으며

돌아가실 때는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떠나가셨습니다.

 

그리고 거지와 부자의 예를 들어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천국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지옥의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는 예를 들어 천국과 지옥을 증거하셨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초기의 경전들은 대부분 선업과 악업을 통한 과보로

천상과 지옥에 간다는 구조로 되어 있으며 자신이 지은 결과에 따라 육도윤회를 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눈이 열린 성자들이 모두 공통적으로 천상과 지옥을 이야기했는데

어찌 이곳에서 천상과 지옥을 밝힌다고 혹세무민이라고 합니까?

 

두번째로 빙의가 없다고 주장하며, 이곳에서 천상과 지옥의 거짓을 퍼뜨림으로써 사람들이 신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고 주장했습니다.

 

성경에도 사람에게 든 마귀를 돼지에게 집어넣어 쫒아냈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대의 말처럼 하자면 예수님이 없는 일을 만들어 거짓말을 한게 됩니다.

부처님의 경우도 악마 파순과의 싸움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성자들이 하신 이런 말씀이 모두 거짓이란 말인가요?

 

그대는 영혼의 존재를 인정했습니다.

영혼이 있으면 잘못지은 영혼이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연히 떠도는 유혼이 생기나는 법입니다.

 

이러한 명확한 이치를 보고도 부정한다면

그대의 의식이 눈앞의 일도 부정할 만큼 어둡고 무지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곳에는 많은 위험한 곳에서 영에 감염되어 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최근에도 그러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지우개란 분이 올린 글입니다.

 

다소 황당한 이야기지만 인터넷을 통해서 프@#이라는 사이트에 가입을 하고 글을 보고 잠을 자는데 이마사이에 가느다란 무언가를 심기 시작하더군요. 그리고는 이튼날부터 따끔거리며 그 매개체를 통하여 소통을 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시하려해도 인체에 연결을 해놓았으니 답답하기가 말로 할수 없더군요. 그이후 또 어떤 무속관련된 분의 글을 읽다가 갑자기 열에너지 같은것이 덮쳐오더니 저를 범하려고 했는데 거부하려해도 않되더군요. 그냥 당하고 말았어요.

 

그이후부터 또 이 기가 저를 지켜보는 것 같이 느껴졌고 별별 현상이 이루어졌고 특히 어떤 경우는 제 뇌에다가 기를 뺏다가 넣다가 하면서 협박을 했습니다.그 뒤부터 잠을 방해하면서 이상한 현상으로 괴롭혔습니다. 너무 무서워서 블러그에다 제가 경험한 내용을 올리고 프@#관계자들에게 어찌된 일인지 여쭈어보니 그사이트에는 타락천사들이 너무도 많은데 스타활성화시기 였기에 더욱더 조심해야 했는데 제가 노출이 되어 일이 벌어진 것 같다고 하더군요.

 

메일로 어떤 분이 글을 주셨는데 외국에서 그런 피해자들이 많다면서 그 실체를 알리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루미나티라는 둥 프리메이슨이라는 둥 하더군요. 전파무기 프로그램으로 사람을 외계인과 접촉하는 환상을 불어주면서 자기들의 아젠다에 맞게 이용한다는 글 내용이었습니다. 그이후 계속되는 감시와 신체를 괴롭히는 현상은 지속적이었어요. 정신과에 가니 조현증이라고 하더군요. 이런 현상이 있기 전에는 정신과에 갈 일이 없었죠. 지금도 고통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최면하는 곳에 갔더니 제입으로 지저문명에 사는 아갈타라는 파충류라고 합니다. 태호,복희,단군 별의별 것들이 다나왔어요. 하지만 괴롭힘은 계속되었고 퇴마(굿),천도제,구병시식 종교도 가져보았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무속인에게 가면 조상(신명과 허주)이라고 신내림을 하자며 꼬득이더군요.

 

이러한 사례를 보고도 그대는 이글을 올린 사람이 단순히 착각으로 신이 들렸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사이트에는 서구의 신지학회로부터 이어지는 일루미나이트 프리메이슨 채널링 외계인 계통의 악마가 들린 자가 있어서 사람들에게 영적 감염을 전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귀하도 귀신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으면 그곳에 가서 시키는대로 하면 100% 귀신이 존재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생각 속에서 함부로 말을 만들어내는 자의 말을 듣고 실재하는 빙의 현상을 두고 단순한 착각에 불과하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이곳에서는 영적 환상에 빠지는 자를 가장 경계하며

그런 자는 마에 빠진 자로 이곳의 회원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곳에는 영이 들린 사람이 와서 고쳐가는 경우는 있어도

이곳에서 걸리는 일은 없습니다.

 

이곳에서는 인간이 신에 빠지는 것이 가장 자신의 영혼을 망치는 일이라고 적극 말리며 신에서 벗어나는 길을 알려주고 있는데 이곳의 충고를 듣지 않고 과거의 영적 감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신놀음을 하는 것까지 여기서 책임지라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물에 빠진 자를 건져주니 보따리까지 내놓으라는 격입니다. 그만큼 그대는 지금 경우없는 소리를 하며 이곳을 무조건 비난하기 위해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대와 이곳의 가장 큰 차이점은 업을 인정하느냐 아니냐인 것 같습니다.

그대는 생명 속에 지어져 있는 과거의 업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조물주께서는 전생의 카르마 때문에 비참한 인생을 현생에 산다고 하는 진실의 근원의 어이없는 말을 싫어하며, 자신이 전생에 어떠한 카르마에 얽혔는지는 중요하지 않으며, 자신의 과거의 카르마가 어떠하였던 간에 조물주께서는 그 사람이 만족하며 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며, 죄악을 지으신 분들도 괜찮고 악업이든 선업이든 가리지 않고 그냥 조물주의 법칙을 행하실 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과거에 자신이 지은 것을 반드시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것은 과거의 근본 위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거미가 자기가 거미집을 지어도 그동안 지어놓은 날줄과 씨줄 위에 새로운 집을 짓는 것입니다. 어찌 과거의 모든 것과 관계없이 현재 내가 하는대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주장합니까?

그대는 이러한 기본적인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기에 함부로 결론을 내려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대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 이루지 못하는 것은

열심히 노력이 부족하거나 환경적 부족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업입니다.

아무리 조건이 맞고 노력을 많이 해도 자신에게 필요한 자질이 없고 업이 많으면 원하는 것을 결코 이룰 수 없습니다. 호박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호박이 커지거나 많이 달릴 뿐이지 수박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업의 존재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6장 43절-45절을 보면,

『43.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44.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45.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이처럼 각자의 마음 속에 쌓인 것에서 그 행동이 나오니 어찌 열심히 한다고 나쁜 나무가 좋은 나무가 되겠습니까?

 

이러한 업의 논리는 초기 기독교의 교부였던 오리게네스의 이야기를 통해 말한 바가 있는데 중요한 주장이니만큼 다시한번 인용하겠습니다.

 

초기 기독교의 신학적 교리를 마련한 것으로 알려진 오리게네스는 영혼의 윤회환생과 업(Karama)의 개념을 핵심적인 원리로 교리를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오리게네스는 자신의 주요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명백히 환생의 문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 모든 영혼은 전생의 승리(善業)에 의해 강해져서 태어나거나, 아니면 패배(惡業)에 의해 약해진 상태로 이 세상에 다시 돌아온다. 이 세상에서 그 영혼이 겪는 명예로움이나 불명예스러운 일들은 전생의 공덕이나 악업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오리게네스는 생각하기를, 인간의 영혼은 육체로 태어나기 이전에 존재하며, 신과 만나기 전까지 한 육체에서 다른 육체로 옮겨가면서 경험을 통해 배워나간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윤회환생에 대한 믿음은 초기 기독교 신앙의 근본토대를 이루는 것이었으며 예수의 진리적 가르침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성과 믿음을 강조한 교회의 입장에서는 환생사상이 현생에서의 구원의 필요성을 경시하게 만들고 교회와 그리스도의 역할을 최소화시킨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영혼이 자기가 지은 바에 따라 반복해서 계속 태어나고 결과를 받는다면, 생존 시에 교회를 통해 예수를 믿느냐 안믿느냐에 따라 구원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노력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교회와 예수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교리가 무의미해지고 교회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 초래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신앙주의자들과 교회론자 그리고 로마 황제의 입장이 맞아 떨어져 결국 서기 325년 니케아 공의회 이후 모든 복음서에서 환생을 암시하는 구절들을 완전히 삭제해 버렸으며 업과 윤회를 가르치던 당시의 교리적 용어인 '선재론(先在論)'이란 개념도 교회신학에서 완전히 삭제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대는 업이 현실적 차별을 긍정하는 근거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영혼이 같다고 하는 이상에 빠져 업을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주장은 업을 부정하는 자들이 많이 하는 주장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같은 것이 없으며 과거의 경험에 따라 다 독특한 차이점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어찌 인간의 영혼만이 아무 차이가 없이 다 똑같을 수 있겠습니까?

 

업은 현실에서의 차이를 나타내는 원인이지만 고유의 장점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좋은 업을 가진 이는 세상을 축복하며 더 나아가 인간완성에 이르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실은 있는 그대로 설명해야지

어두운 한쪽 면만 부각하여 왜곡하는 것은 비판을 위한 비판이 되는 것입니다.

 

모르는 것을 함부로 말하는 것은 거짓이며 악이 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 잘못된 말을 믿고 어둠의 길을 가며 세상을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무지가 모든 악의 근본이라 했으며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눈뜬 장님인 중생이 생명의 실상을 보지 못하니 모르면 모른다고 해야지

교만하게 성자들의 가르침을 부정하며

그것이 진실인 듯 자랑스레 말을 만들어 사람들을 오도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생명의 실상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면서

자기 생각으로 함부로 진리를 부정하는 구업을 더 이상 짓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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