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실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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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의 근원

가입하기 전에 알고 싶은 의문들

gincil 2018. 2. 9. 23:16

이성을 가진 모든 사람이 의문을 가질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좋은 질문을 해 주셔서 다른 사람들이 모두 다 의문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해 주심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그럼 질문에 대해 답변 드리겠습니다.


 


첫째 질문으로 사실과 이치를 중시하며 인과의 법을 중시하는 이곳에서 사람의 질병을 유혼의 탓으로 돌리는 문제에 대해서 의문을 표시했습니다.


 


물론 이곳 주장이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는 현대 과학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맞지 않는 것은 잘 압니다. 그러나 현대 과학 자체가 인간의 영혼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을 바로 보지 못하는 한계 또한 사실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현대과학이 알지 못하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영적 요소에 진실에 대해서 알게 됨을 감사해야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의 맞추어서 깨달은 자가 볼 수 있는 시각을 비판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깨달음의 눈을 얻으시고 세상의 실상을 바로 보신 모든 성자들은 영혼의 존재를 당연시 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생명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세상을 보는 눈을 얻으시고 생명의 세계와 사후세계,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흐름과 진리를 보신 성자들의 시각과 눈뜬장님에 불과한 학자들이 자기 생각으로 가설을 가지고 만든 이론 중에 어느 것이 과연 사실에 가깝겠습니까?


 


오늘날 현대과학이 성립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종교개혁으로 신을 부정하고 모든 것을 인간의 이성으로 해석하려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영혼이란 존재를 부정하고 인간을 해석했기 때문에, 현대문명은 생명의 실상을 제대로 알 수가 없었고 인간의 의미와 가치 또한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정신적인 실체에 대해서는 거의 문외한인 것입니다.


 


인간의 몸은 육체와 의식으로 구성됩니다. 의식이란 존재를 인정한다면 당연히 영혼이란 것도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현대과학은 영혼이라는 존재를 부정함으로서 모든 것을 육체와 심리적인 요인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인간의 몸에 있어서 인간의 의식이 육체보다 더 큰 작용을 합니다. 그렇다면 정신적, 영적인 요인이 인간의 삶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병에도 더 큰 영향을 준다고 보아야 옳은 것입니다.


 


따라서 현대과학이 보지 못하는 것을 이곳에서 그 해결책을 제시해주고 있는데, 현대 과학이 주장하는 것과 다르다고 해서 현대과학만 맞고 이것이 틀렸다고 말을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는 현대과학이 너무나 많은 한계와 문제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현대과학은 많은 정신병에 대해서 아직까지 제대로 원인 규명과 치료를 하지 못하고 있으며, 현대문명은 인간의 의미와 가치, 생명의 길과 인간의 목적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생명의 실상과 병의 원인에 대해서는 향후 더 깊은 논의를 통해 알게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질문으로, 이삼한님의 가르침과 의통에 대해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 신격화가 아닌지?


또 여래라는 주문을 외치면 유혼들이 왜 힘을 못 쓰는지 의문이 든다고 하면서, 사실과 이치를 중시하는 이곳에서 신비주의를 강조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곳에서 이삼한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의통을 인정하는 것은 그것이 사실과 이치에 맞고 증거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모든 종교의 가르침과 치유 현상에 대해서 평가하고 있는 것은 세상을 이루는 사실과 이치는 영원하며 한결같기 때문에 그에 비추어 사실과 증거로서 그 비밀과 실체를 밝히는 것입니다.


 


장님이 겉으로 보면 모든 것이 다 비슷해 보이며 진실보다 거짓이 오히려 더 자기 마음에 듭니다. 경복궁이 하늘 끝까지 높이 솟아 있으며 금으로 된 지붕을 하고 있다고 해야지 자기 마음에 드는 것이지, 일층에다 나무로 되어 있다고 하면 그것은 자기가 바라는 경복궁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눈을 뜨게 되면, 경복궁의 사실적인 모습을 알게 되며 어느 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알게 되며 삶을 속지 않고 결실있게 보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회원으로 가입하신 분들은 진실한 마음과 사실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어서 이곳에 있는 가르침이 세상의 실상과 이치에 부합된다는 깨침을 얻었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것이지 마음이 어둡고 눈이 흐린 사람들은 결코 이곳이나 다른 곳의 가르침을 다 똑같아 보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진리는 오직 인연이 있는 자에게만 전해진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노자는 높은 차원의 근기를 지닌 상인은 진리를 들으면 기뻐하고, 중인은 긴가민가하며, 마음이 어두운 하인은 이를 경멸한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에 성자들이 진리를 펼쳤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 진리를 이해하지 못한 중생 사회의 비판을 받고 비참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금 환영받지 못하는 이 일을 계속 하고 있는 이유는 어두운 세상 속에서도 뜻 있는 자들이 있어서 세상을 밝히고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뜻을 내고 참된 진리를 찾을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의통을 가질 수 있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 현대 과학의 입장에서는 신비주의라고 주장하겠지만, 그것이 바로 인간 정신의 무한한 가능성과 생명의 실상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 우주에서 가장 완전한 의식을 이룬 자가 그러한 힘도 갖지 못한다면 해탈은 별로 의미가 없고 중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물질적인 현상만 보는 반쪽 시각을 가진 현대 과학의 한계입니다. 현대 과학의 입장에서는 인간은 죽으면 동물처럼 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간 정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부정하겠지만, 이곳에서는 인간의 정신은 단순히 느끼고 생각하는 의식의 주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완성의 경지인 해탈이 존재하며 최종적으로 조물주에까지 이를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완성의 경지인 해탈이라는 경지를 부정한다면 더 이상 이야기할 필요가 없겠지만, 해탈이란 경지가 역사 속에 존재했던 일이며, 세상의 모든 이치와 삼세의 실상을 모두 다 볼 수 있는 완전한 경지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의통 또한 있을 수 있는 능력으로 보아야 이치에 맞는 것입니다.


 


이삼한님은 인류사에 보기 드문 해탈을 하시고 정각을 얻었으며 세상의 실상과 법을 밝혀 세상의 모든 문제를 사실과 이치에 맞게 설명하셨으며 그 깨달음은 더없이 높아 세상 어느 누구도 그분의 질문에 올바른 대답을 하는 자가 없었고 이마에 깨달음의 눈을 지니셨으며 그 마음은 진실했고 모든 오욕을 벗어나 어떠한 사적 이익이나 욕망을 추구하지 않으셨고 세상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가지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다 외국에서 외로이 떠나셨으며 의통을 가지고 상대의 병을 자신의 몸으로 가져와 자신의 원력으로 치료했다는 사실과 증거가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


 


오늘 날 많은 종교단체에서 병을 치료 한다고 하여 사람들의 인기를 끌고 있지만 그러한 치유 현상은 스승님의 의통은 전혀 다른 차원임을 알려 드립니다. 종교단체에서 하고 있는 치유 현상은 떠도는 신의 힘을 이용하여 몸 속에 들어온 영적 기운을 제압하는 현상입니다. 이러한 치료의 문제점은 독을 가지고 독을 치료하는 현상으로 일시적으로 몸을 낫게 할 수는 있지만, 떠도는 사기의 힘을 빌림으로써 더 큰 독에 중독되는 문제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통에 의한 치유 현상은 깨달은 자의 맑게 정화된 기운과 의식을 사용하여 치유하는 것으로 상대의 생명력을 강화시켜 스스로 병을 극복하게 하고, 또 그것이 어려울 때는 깨달은 자의 원력으로써 그 병을 낫게 하는 치료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만큼 자신의 공덕을 소모하게 됩니다.


 


즉 외부의 영적 힘을 빌어서 치유하는 영적 종교의 치유 현상과 의통을 사용하시는 깨달은 자의 치유법은 정반대의 원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영적 종교의 치유 원리는 외부의 신의 힘을 빌려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체불명의 신의 자의에 따라 치료의 확실성이 없지만 의통은 깨달은 자의 맑은 정신력으로 치료하는 것이기 때문에 효과가 확실하며 아무 부작용이 없는 것입니다.


 


눈이 어두운 중생이 볼 때는 두 가지가 비슷해 보입니다만 실제 치료의 원리나 효과의 확실성 그리고 사후 결과에 있어서는 정반대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진실 여부는 현실 속에 나타난 증거를 통해서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실 속에 나타난 현상이 사람들의 삶과 정신을 망치고 세상을 어지럽힌다면 그것은 떠도는 귀신의 장난인 것이며, 그것이 사실과 이치를 밝히고 인간의 주체적인 정신을 강화시키며 세상을 밝히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그것은 인간의 정신이 만들어내는 좋은 능력으로 존중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여래라는 주문을 외치면 유혼들이 힘을 못 쓴다는 이상한 말을 하는데,


그런 식으로 하지도 않은 말을 함부로 만들어 왜곡해서는 안 됩니다. 사실과 다른 말을 함부로 지어내어 말을 하는 것은 구업을 짓는 것입니다.


 


이곳에 오는 많은 사람들 중에 영적 오염에 의해서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온갖 정신적인 망상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상한 소리를 듣는 사람들도 많고 악몽을 꾸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곳에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열심히 운동해서 몸의 생명력을 강하게 하여 다른 영적 존재가 자신의 몸을 침입하지 못하도록 하고 그 다음에 사실과 이치를 깨쳐 자신의 영혼을 맑고 강하게 하여 미신과 무지와 환상으로부터 벗어나 주체적인 삶을 살게 합니다. 맑고 강한 자기의식을 가지고 항상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으면 외부의 의식이 자기를 침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동안 오래도록 외부의 영적 감염에 의해서 시달린 경우 그 정신이 매우 약해져 있기 때문에 당장 치료가 급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럴 경우 다행히 이 시대에 정각을 얻은 분이 나타나셨고 그분의 높은 깨달음은 영적인 세계에서는 어느 정도 느끼고 있기 때문에 그분의 존재를 알리고 자신은 그분의 진리를 따라 사는 자라는 것을 밝힘으로써 어두운 영적 존재들이 자신의 무지와 어둠을 깨닫고 스스로 물러나도록 방편을 쓰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실적인 현상과 이치에 입각하여 영들을 깨우치는 방편을 단순히 복을 구하는 주문이나 성자를 신성시하는 우상숭배로 폄하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스승님은 한번도 자신을 섬기라 하신 적이 없으며 자신에게 은혜를 받은 것이 있으면 세상에다 갚으라고 하셨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셋째 질문으로, 석가모니 부처가 아기 부처라면 자신은 할아버지 부처라 하고 예수는 한 일은 별로 없지만 깨달은 자가 맞다는 식으로 굳이 표현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 그리고 변화기에 대해 말씀하신 시기가 정확하지 않고 유동적인 것은 진리로서의 정확성이 떨어지며 천상의 신과 교류하면서 진리를 말씀하신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질문을 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가 아기 부처라면 자신은 할아버지 부처라고 하고 예수는 한 일은 별로 없지만 깨달은 자가 맞다는 식으로 표현한 것이 교만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답변드리겠습니다.


 


그분이 그렇게 자신을 할아버지 부처라고 표현하신 이유는 항상 반야에 들어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보시고 자신의 실체를 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과거 생에 보살의 경지인 아라한에 머무시다 이 땅에 오셔서 해탈에 이르렀다고 하셨고 당신의 경우에는 이미 과거 생에 깨달음을 얻은 상태에서 다시 이 세상에 왔기에 그 깨달음과 지혜는 처음 해탈을 얻은 부처보다는 더 원숙하다는 표현을 쓰신 것이지 석가모니를 낮추기 위해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분은 항상 석가모니 부처님을 인류사에 최초의 깨달음을 얻으신 분으로 가장 공경하는 어조로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알려드립니다.


 


그래서 별다른 수행이 없이도 현실의 어둡고 힘든 삶을 통해서 자신을 태울 수 있었고 마음의 업이 모두 타버리자 자신이 지니고 온 근본이 다시 피어나 해탈을 얻으셨던 것입니다. 돌 감에서 돌감이 나고 단감에서 단감이 나듯, 과거의 깨달음의 근본에서 다시 현생의 깨달음이 난 것입니다. 따라서 사실을 사실대로 말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진실한 말안 곳이지 교만이 아닌 것입니다. 그분은 한 번도 자신을 자랑하기 위해 말을 하신 적은 없으며 사실을 사실 그대로 밝혔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예수가 별로 한 일이 없다고 한 것은,


그분이 깨달음을 얻었지만 법을 전할 곳이 없어서 주로 사창가나 어부와 같은 하층민들에게 법을 전했으며 그것도 한 3년 정도 법을 전하다가 제대로 법을 전하지도 못하고 죽음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석가모니 부처가 40년동안 법을 전하면서도 극히 일부 밖에 세상일을 밝히지 못했다고 했는데, 3년밖에 법을 전하지 못 했는데 어찌 제대로 진리를 전했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 진리의 가르침이 제대로 전해지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는 진리의 가르침대신 신앙 위주로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는 사라지고 영적인 믿음만 존재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기독교의 실상이기에 이러한 현실을 보고 그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변화기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 정확하지 않고 유동적인 것은 진리로서의 신뢰성이 떨어지며 천상의 신과 교류하면서 진리를 말씀하신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하신 지적에 대해서 답변 드리겠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영원한 것은 없으니 모든 것은 주어진 수명이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생명체는 수명이 있고 인간도 수명이 있으며 한 인류문명 또한 수명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경우 그 주체인 정신이 하는 바에 따라 삶이 결정되고 수명이 결정되듯이, 한 인류문명 또한 세상의 주인인 인류의 의식에 따라 결정되게 됩니다. 따라서 인류의 정신이 망해 모든 인간이 자기정신을 잃고 세상에 어둠과 고통이 넘치면 그 인간 세상은 수명을 다 하고 새로운 인류문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것이 모든 존재의 공통된 존재 원리인 순환의 이치입니다.


 


 


그렇다면 무조건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지금이 세상이 과연 변화기인지 아닌지 그 문제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삶의 의미와 가치를 잃고 욕망과 쾌락에 취해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무의미와 혼란 속에 삶의 방향을 잃고 전쟁과 차별과 악과 거짓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왜 사는지도 모르고 죽어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있으며 불신과 공포 속에서 무엇 하나 마음 놓고 상대를 믿고 살아갈 수 없으며 밤길조차 혼자서 마음 편히 돌아다니기가 어려운 악한 세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온갖 과거에 보지 못했던 심각한 재난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고 있으며 대규모 기상이변이 자주 일어나고 있고 과거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대지진과 화산폭발, 대해일도 점점 자주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이루는 이치는 같은 것입니다. 사람의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지구에서 일어나는 현상도 같은 이치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우주는 같은 원리에서 만들어졌고 운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몸이 아프면 열이 나고 여기저기에 이상증상이 일어나듯이, 지구 자체도 큰 병에 걸리면, 지구 자체에 열이 나 기온이 오르고 또 여기저기에 기상이변과 천재지변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지구는 계속 온도가 오르고 있으며 그 증거로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오르고 있으며 엘리뇨 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없던 기상이변으로 사하라 사막에 눈이 오고 미국이 영하 50도까지 내려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시속 160km 태풍이 유럽을 덮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과거에 드물었던 6.0 이상의 지진과 화산활동이 이제 매우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 더욱 더 잦아질 것이며 그 결과로 최종적으로 변화기가 오게 되는 것입니다.


 



성자들은 모두 이러한 세상의 순환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따라서 이삼한님이 변화기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고 해서 그것을 혹세무민의 말이라고 폄하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성자들도 모두 혹세무민하는 자라고 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이 변화기에 대해서 언급하신 것은 그것이 이 세상 속에 존재하는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이 그런 말을 했음에도 사이비라고 말하지 않는 것은 그분들이 말씀하신 의도가 악한 세상을 경계하고 인간의 정신을 회복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그러한 세상의 진실과 생명의 길을 밝혔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변화기에 대해 말을 했다고 해서 상대를 비난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참된 삶을 위해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아니면 자신의 욕망과 이기심을 충족하기 위해서 그런 말을 하고 있는지에 따라서 그 평가를 달리 해야 할 것입니다.


 


변화기의 시기가 자꾸 왔다 갔다 해서 믿을 수가 없다고 했는데 그 진실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농사를 지을 때 가을이 되면 추수를 해야 할 때가 된다는 것은 다 압니다. 그러나 날씨가 맑고 흐림에 따라, 그리고 바탕과 환경의 여러 가지 요인에 따라서 그 수확 시기가 조금 빨라질 수도 늦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추수 시기는 가을로 딱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스승님도 변화기에 대해 말씀하실 때 앞으로 몇 년 정도 후가 될 것이라는 식의 말씀은 하셨지만 딱 몇 년후 언제라고 고정해 말씀하신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사실을 사실대로 이야기한 것을 그런 식으로 흠집내기 식의 비판을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말씀이 천상의 신과 교류하면서 진리를 말씀하신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모든 업이 정화된 맑은 해탈심을 얻어 그 마음에 삼세를 비추어 실상과 이치를 밝힐 뿐 천상과 이야기를 통해 정보를 알아서 법을 전하는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자세하게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식으로 함부로 사실을 왜곡해서 말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다만 스승님께서는 내면의 진리의 소리를 세 차례 들으신 것으로 보입니다.


젊은 시절에 들으신, '너의 양심과 용기를 동포에게 바치라' 하는 소리와


깨달음을 얻고 난 직후, ‘양심과 정의와 사랑을 통해 인간 세계를 축복하라!’는 말과


‘진리를 알면 외롭고 진리를 말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말이었습니다.


 


이러한 소리에 대해 ‘떠도는 유혼의 소리를 들은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소리는 오직 완성에 이른 높은 의식을 지닌 자만이 들을 수 있는 고귀한 진리의 깨침으로 스승님은 그 말씀을 자신을 내면으로부터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분이 들은 소리는, 현세에 태어나 세상과 부딪히면서 당신의 마음이 정화되면서 전생의 완전했던 근본을 다시 회복함에 따라 과거에 증득했던 부처의 마음에서 나온 사랑과 진리의 깨침이었던 것입니다.


 


세상이치는 공정하니 모든 일은 각자가 지닌 그릇에 따라 나타나는 것입니다.


똑같은 칼이라도 백정이 잡으면 고기를 잡고 장수가 잡으면 나라를 구하듯이


똑같은 눈이라도 중생이 세상을 보면 혼돈과 무의미가 보이고


깨달은 자가 보면 완전한 세상과 진리가 보이는 것입니다.


 


진리의 소리를 듣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신들린 자들은 떠도는 신들이 보는 아무런 뜻과 이치가 없는 기이한 잡소리를 듣지만


마음이 완성에 이른 성자들은 자신이 과거에 깨달았던 진리의 소리와 교훈을 내면속에서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외부에서 그것을 보고 그것이 천상계의 소리인지 유혼의 소리인지 어떻게 구분하느냐고 따지겠지만 인과의 이치상 각자의 그릇대로 보고 듣게 되는 것이니


단순히 의식 속에서 소리를 듣는다고 다 똑같이 볼 것이 아니라


그 분의 행적과 전해지는 말 속에 있는 뜻을 보고 그 진위를 구분해야 할 것입니다.


 


성자들은 내면의 진리의 소리를 듣는 것이며 무당들은 유계의 소리를 듣는 것이니


스승님이 감동 속에서 느낀 진리의 말씀과 무당들이 귀신에게서 들은 소리의 차이를 보면,


비교를 하는 것 자체가 불경스러울 정도로 그 말의 뜻과 가치가 하늘과 땅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세상은 말법이 성하여 귀신 붙은 자나 깨달은 자가 도매금으로 똑같이 취급되고 있어서 이렇게 그 진실을 밝히는 것이니 그대가 진리에 대한 조금의 이해가 있는 분이라면 그 엄청난 차이를 아실 것입니다.


 


넷째 이삼한 님을 여래라고 확신하지 않아도 그 말씀을 진리라고 받아들이면 인간 완성의 길을 열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세상의 일은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뜻과 이치가 태초부터 완전하게 지어져 있기 때문에 수십억 년을 이 우주가 운행하더라도 완전하게 자기를 유지하며 지켜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일을 함에 있어서 좋은 결과를 얻고자 한다면 반드시 태초부터 지어진 뜻과 원리에 따라서 일을 해야 할 것이며 이를 벗어나 원인을 한다면 결코 좋은 결과를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법은 성자들이 나타나 만든 것이 아니라 성자들이 이 땅에 오셔서 이미 존재하고 있는 뜻과 이치를 밝혀 중생들에게 알려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여래를 인정하든 안 하든 간에 세상에 지어진 법은 정해진 것이며 그대로 따라 살면 좋은 결과와 인간완성을 얻고 세상을 밝히는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자들을 존경하는 것도 그 분들이 중생들이 보지 못하는 법을 분명하게 밝혀 중생들이 바르게 살 수 있고 행복을 이룰 수 있게 하셨기 때문에 마음으로 존경하는 것이지 그분들이 도와주시기 때문이 아닌 것입니다.


 


따라서 여래님을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간에 이미 세상에 정해진 길을 밝혀 인간 완성의 길을 간다면, 진리를 깨닫고 좋은 원인을 지어 좋은 자기를 만든다면, 그래서 세상에 기여하는 좋은 사람이 된다면, 그대는 반드시 인간 완성의 경지인 해탈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허해구 선생님과 같은 논리정연하신 분이 그분의 좀 의아한 주장을 계속 옹호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의구심을 갖는다고 했습니다.


 


나도 스승님을 처음 뵈었을 때 겉모습은 촌부와 같았으며 그 말씨는 매우 거칠고 유치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분의 말씀 속에는 현대인들이 알지 못하는 깊은 생명의 비밀과 명확한 이치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분은 그렇게 순수하게 사셨기에 마음에 현실의 때를 묻히지 않았고 완전한 마음을 얻어 인간 세상이 그토록 갈망해오던 세상의 진실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도 깨달음이란 경지가 과연 존재하는 것인지, 인간이 과연 부처님과 같이 성자가 될 수 있는 것인지는 대해서는 아스라한 꿈이나 전설로만 생각했을 뿐 그것이 현실 속에 나타날 수 있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현실 속에서 그런 분을 만날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그동안 많은 깨달은 자나 구세주를 겪어 보았지만 그들은 나의 기대와 의문을 전혀 해결해주지 못하고 부실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만 할 뿐이어서 그러한 나의 확신은 더욱 굳어 갔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처음 만났을 때 또 하나의 거짓된 깨달은 자가 유치한 소리를 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말씀은 전혀 차원이 달랐습니다. 그분은 내가 알고자 하는 모든 생명의 실상과 세상을 이루고 있는 진리에 대해 매우 단순하면서도 사실적인 말로 명확하게 설명하셨습니다. 그 속에는 완전한 뜻과 진리가 있었으며 생생한 생명의 세계와 그와 하나로 이어지는 사후 의식의 세계가 완전한 인과의 이치로 연결되어 돌고 있었습니다.


 


그 분의 가르침이 진실이고 진리이며 그분의 깨달음이 참된 해탈과 정각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내가 그동안 알아 왔던 모든 지식들이 하나로 이치로 꿰어지고 있었습니다. 전설로만 존재해왔던 깨달음의 경지가 인간 세상에 실재하는 것이며 관념 속에서만 전해지던 진리가 살아 있는 생명의 가르침으로 다가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도 한동안 그런 일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 생각과 이상 속에서만 존재하고 있던 일이, 전 인류가 꿈에도 갈망하던 완전한 깨달음과 진리가 내 눈앞에 나타날 줄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로 나의 눈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불경에 생명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나기도 어렵지만 깨달은 자를 만나 진리의 인연을 만나는 것은 더욱 더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진리의 인연을 만나는 것은 하늘에서 떨어진 바늘이 겨자씨의 꽂히는 것과 같고 큰 바다에 눈먼 거북이 물을 마시러 수면 위로 올라 왔을 때 마침 떠다니는 나무에 난 구멍에 머리를 내미는 것과 같이 희귀한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희귀한 일이 현 세상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그분의 이마에는 제3의 눈이라는 지혜의 눈이 나왔으며 그 마음은 진실하셨으며 말은 거짓이 없었고 행동은 정확하고 거침이 없었으며 끝없는 공덕행으로 매일 자신을 바쳤습니다. 그분의 가르침은 완전하셨으니 세상의 모든 진실을 볼 수 있었고 생명의 세계와 죽음의 세계를 한눈에 보고 계셨으며 오직 깨달은 자만이 볼 수 있는 반야의 진실을 모두 다 밝혔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분의 가르침이 완전히 밝혀진다면, 이 세상에는 어떠한 거짓도 발을 붙이지 못하게 될 것이며 모든 사람은 밝은 삶을 얻고 세상은 공정한 이치 속에서 평화와 행복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비록 지금 이곳의 가르침은 사람도 적고 초라해 보이지만 그분의 가르침은 완전한 깨달음에 의해 나타난 가장 진실한 것으로 세상의 모든 거짓과 어둠을 타파하고 인간 세상을 밝게 비치는 영원한 진리의 빛으로 자리잡게 될 것입니다.


 


깨달은 분께서 국내외의 많은 지도자들을 만나며 진실을 밝히고 법을 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평생을 아무도 찾지 않고 환영받지 못하는 진리를 전하기 위해 세상을 떠돌아다니다가 쓸쓸이 외국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은 오늘날 정신적 지도자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라즈니쉬나 태국 왕사, 티벳의 달라이라마와 림포체를 만나고


한국에서 뛰어나다는 선승들과 종교지도자들,


홍수태와 같은 기 수행자와 도인들은 거의 대부분 만났지만


그들 중 참된 마음의 해탈과 깨달음의 눈을 얻어 세상의 실상을 보거나 법을 밝히는 이는 한 명도 없었으며 대부분 신이 들거나 착각으로 관념에 빠져 환상적인 이야기만 하는 자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렇게 있을 수 없는 희귀한 인연을 만난 것을 참으로 복된 일로 받아 들여야지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채 자기 생각으로 판단해 자기에게 다가온 희귀한 기회를 외면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사실과 증거를 보고 판단해야지 그게 드문 일이라고 해서 무조건 부정한다면 그것은 자신에게 다가온 복을 걷어차는 것이며 진리와의 인연이 없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상인은 진리를 보면 멀리서도 그것을 알아보고 매우 기뻐하고, 중인은 반신반의하며, 하인은 그것을 매우 불쾌해 하며 오히려 해치려 한다는 세상의 이치를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부디 그대에게 진리의 인연이 닿아 세상의 실상과 이치를 한눈에 바라보는 큰 깨달음의 시간이 다가오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질문]-----


안녕하신지요. 허해구 선생님.. 전 오래전에 가입하고 이곳의 글을 읽다가 많은 반향심을 일으키고 무엇인가 확신했다가 진짜일까 아닐 수도 있다 하면서 반신반의 하던  사람 입니다. 즉 이곳의 진실여부를 떠나서 훌륭하신 선생님 글과 세상을 위해 무엇인가 하나라도 헌신한다는 선생님뜻을 보며 자기 자신을 반성하고 세상의 삶의 지침을 깨닭는 저를 느끼면서 나름 진리를 알고 싶어했던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우선은 이곳을 칭찬하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선생님께서 쓰신 글들을 보면 이것은 인위적으로 써서는 도저히 이런 글이 나올 수 없는 마음의 진정함이 느껴집니다. 선생님께서는 무엇인가 확신에 차고 그것을 여러사람에게 알리려는 것을 진정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의 진위여부는 둘째로 치고 말입니다. 

  2. 둘째, 선생님께서는 비즈니스를 위해 이곳을 만든 것이 아니라 선생님 나름의 진리를 설파하고 싶어 한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오래전이나 지금이나 그 진리를 전하려는 마음하나 만은 강산이 몇개 바뀌어도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3.  셋째, 선생님께서는 우리 사회가 간과하고 제멋대로 내버려둔 명상, 단전호흡등의 부작용들을 알린 선구자 이고 누구보다 그것을 말리려는 분인 것을 알기에 더더욱 신뢰가 갑니다. 그 예로 여기 선생님 말씀을 보고 제 주위에 누군가가 단전호흡, 요가, 명상 등등을 단순한 다이어트, 심신단련을 한다고 하면서 실행하려고 할때 제가 말린 것이 여러개 됩니다. 물론 그 상대방은 그런 것이 어디있느냐고 하면서 따졌지만 결국 제 설득에 막혀 그러한 것들을 그만둔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그러한 것들에 관해 제가 지식이 없어도 선생님의 설득력 있는 말이 이른바 공덕행을 하게 했을 지도 모릅니다. 

  4. 넷째, 여기 선생님께서 쓰신 말씀은 잠깐만 살펴보면 알 수 있었을 우리 인간들의 큰 인과법칙 오류에 관해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인생이 힘든 사람들의 대부분이 간단한 인과법칙을 몰라 세상을 힘들어 하고 있었다는 애기 입니다. 즉 자만하지 않고 초심으로 돌아가면 누구나 성취할 수 있는 인생의 성공을 두눈 뜨고 놓치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올리는 글들을 보고 심취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렇습니다. 

  

  저는 이곳의 사실과 이치 그리고 인과법칙을 존중 합니다. 


  하지만 그 당시나 지금이나 여기 회원님들은 단 한번의 비판적 사고를 가지지 않고 즉 자신의 사고와 이곳의 사고를 비교 분석 하지는 않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물론 일부 소수의 회원님들이 의문을 제기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 이곳의 글을 쓰신 선생님께서는 진리여부를 떠나 확신에 찬 의견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의구심을 제기할 예의도 없고 명분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척박한 세상에서 아름다운 선행을 하시는 분에게 그 무엇으로 비판을 하겠습니까?  예를들어 선생님과 가장 가까우신 분인 사모님도 이곳의 글을 부분은 모를 지 언정 모두 인정은 못하신다는 글을 올리면서 진리와 인연이 없으면 도저히 어찌 할 도리가 없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해가 아니라 마음이 중요하다는 뉘앙스를 많이 보았습니다. 


  제가 알고 싶은 것은 외람된 사항입니다. 답변을 해주실 수가 있는지요? 


1. 저는 이곳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대부분은 이해가 가고 우리 인간들에게 도움이 된다. 참좋다. 그러나 신비주의를 경계하며 사실과 이치를 중시하는 이곳이 왜 그토록 인과법칙중의 하나인 사람의 질병의 대다수(?)를 유혼으로 돌릴까?  현실의 결과에 모두 원인이 있듯 질병도 인과 법칙이 없음을 간과할 수 없는데도 왜 상가집 애기를 예로 들며 질병의 많은 부분이 유혼과 관련이 있을까? 이상하다. 암은 유전적 원인 담배 술  스트레스 기타 등등 너무나 많습니다.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원인)은 콜레스테롤이 높을 수 없더,(결과) 그렇다면 암이 유혼관 관련이 있다고 치자. 그러면 말기암에 걸린 사람이 현미밥과  채식 위주 식사로 그것을 완치한 사례도 꽤 있는데 그러면 유혼은 채식에 약한 것일까?  식물의 순수한 기운이 암의 독한 기운을 이겨낸 것일까?  무엇이지? 그러면 인과법칙은 유혼의 존재앞에 사라지는 것인가?  허해구 선생님의 견해는 앞뒤가 맞지 않고 있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2.  저는 이곳의 선생님의 글들을 보고 자신을 되돌아 보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뵙지도 않고 애기도 들어보지 못한 이삼한 선생님에 관해서는 앞서 애기했듯 도저히 비판할 자격도 명분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본것과 확인한 것도 없고 이곳의 글들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 분의 지인들을 찾아가서  궁금점을 물어본 들 어차피 전문의 진술 입니다. 저는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진리를 찾아 단전호흡도 최고의 경지에 오르고 여러 많은 서적도 접하기도 하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시다가 어떤 사상의 주된 점이 우연히 이삼한 선생님과 일치해서 성급한 결론을 내리신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곳의 뼈대는 이삼한 선생님이고 살은 허해구 선생님이 붙이신 것으로 저는 이해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밑에 글들을 보니 어떤 분은 여래님을 모독하지 마세요. 진중히 부탁합니다. 하면서 신격화(?)하시는 분도 있더라구요.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선생님 글을 읽고 모두가 공감하고 확신하니 그 위에 계신 이삼한 선생님의 견해도 자동으로 따라온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그렇치 않다면 어떻게 자신이 의통을 비롯해  직접 대면한 적도 없으신 분의 견해와 행적을 자기 스스로 확신하고 신격화 하는 추측으로 일관하는 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말입니다. 그리고 유혼들이 이삼한 선생님의 이른바 여래라는 주문(?)을 외치면 유혼들이 힘을 못쓰는 지 궁금하고 진정 그렇다면 앞서 말한  신비주의를 경계하면서 사실과 이치를 중시하면서도 다시 신비주의를 나타내는 일련의 제가 말 

씀 드린 사항을 어떻게 해명하실 것인지요? 


3.  물론 제가 못보았으니까 맞다 아니다 할 수 없지만 진짜 이것 만 큼은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것이 있습니다.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이삼한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부처가 어린아이라면 나는 그 부처보다 훨씬 높은 할아버지이다. 예수는 한 일이 별로 없지만 깨닭은 사람은 맞다. 라고 말했습니다. 

  진정 그것이 사실이더라도 굳이 그렇게 까지 하실 이유는 없지 않을까? 그냥 겸손함을 보이면서 모두 훌륭하신 성자님들이다 라고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과거 이곳을 알릴때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껴하더라구요. 진정 깨닭은 사람이 과연 자신 보다 먼저 훌륭하신 말씀을 설파하신 분들을 저렇게 폄하아닌 폄하를 하셨을리가 없으니 종교적 색채가 있지 않을 까 하면서 그러더라구요.  그리고 변화기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굳이 안물어 볼 수 없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해서 말입니다. 그냥 변화기가 우리 인간들이 어떻게 하는 지에 따라서 시기가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면 그 어느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종교 색체가 난다고 하는 것이 2012,2016,2020년 으로 날짜를 정해 말씀 하시다가 갑자기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 다고 했다면 그것도 수시로 천상의 신과 교류하면서 말씀하신 것이라면 그 누가 정상적인 진리로 받아 들이겠습니까?  더 이상한 것은 허해구 선생님과 같은 논리정연하신 분이 그분의  좀 의아한 주장을 계속 옹호하는 이유가 무엇일까?라며 의구심을 갖는 것입니다. 솔직히 저또한 몇년간 이곳과 멀어진 이유이기도 합니다. 


4.  마지막 입니다. 선생님의 주장에 의구심을 갖다가도 살다보면 아... 내가 틀렸구나.. 어쩌면 선생님이 주장하신 말씀이 맞는지 도 모른다. 라며 생각한 적이 여러번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삼한 선생님을 여래님이라고 확신하지 않더라도 이곳의 말씀이 진리라고 받아들이면 인간완성의 길을 열 수 있는지요?  아니면 전자가 아니면 모두가 허무하게 무너지는 지요? 


  

  선생님 말씀이 신뢰가 가지 않았다면 애시당초 의구심 조차 가질 이유도 없고 이곳에 글을 올리 지 도 않았습니다. 중이 절이 싫으면 떠나는 것과 같이 인연이 안되면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척박한 세상에서 공덕이라는 아름다운 실천을 행하는 것은 언제나 존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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