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실을 찾아서

현실의 범위 본문

☆ 진실의 근원

현실의 범위

gincil 2013. 4. 23. 22:14

<질문> 靑天
현실의 범위는 어디서 어디인지요.
보통사람들이 사는 사회를 현실이라고 하는것인지요.
한치앞도 볼수 없는 사회를... 현실이라고 하는것인지요.

저는 잘모르겠습니다. 저는 현실에 멀어지지는 않았습니다만....
현실이외의 것을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이라는것은 수면에 내보이는 조그만 빙산이 아닐까 합니다.
그 아래의 것은 현실이 아닌지요.
그것은 미신이 아니지 않습니까. 신비스럽고 현실에 벗어나는것...하지만 그것이 진짜 현실이 아닐까요. 수면위에 조그만것의 큰 뿌리...
답변부탁드립니다. 현실의 범위는 어떤건지요



<답변> 현실의 무상과 진실과 거짓

세상의 일속에는 진실과 거짓이 있다.
부처님께서는 인간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여 정법과 비법이라 했다.
그 차이는 무엇인가?
그것은 올바른 이치와 존재하는 것에 기초하여 나타나느냐?
아니면 거짓되고 허황된 것에 의지하여 나타나느냐 하는 차이인 것이다.

올바른 이치에 의해 좋은 뜻을 쌓아나갈 때 하늘의 근본뜻과 일치하여 밝음과 평안과 완성을 얻게 되고 
이 세상이 하나가 되어 움직이고 있는 완전한 뜻을 무시하고 내것에 집착하여 이치를 거슬러 행동하게 된다면 어둠과 불안과 고통과 소멸을 얻게되는 것이다.

현실은 바로 이와 같이 완성과 소멸의 두 개의 커다란 고리가 나타나고 있는 장소인 것이다.

실체를 보지 못하는 중생들의 눈에는 세상의 일이 너무나 어마어마하고 불확실한 것처럼 크게 보여도 세상의 실체를 알게되면 너무나 간단한 일이다.

이 세상은 움직임 속에 있으며 완전한 이치속에서 자신의 완전성을 나타내며 영원히 돌고 있다.

이것을 오해한 인도철학에서는
끝없이 변화하며 흐르고 있는 현실을 무상하다 하여 본디부터 변함없는 불성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 나타난 모든 것은 환이요, 업이니 여기서 벗어나는 것이 본디 순수한 불성으로 돌아가는 길이라 주장했던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소위 동양쪽 명상가들의 일반적인 시각으로 동양철학의 근본적 한계이며 딜레마인 것이다.

장자에 보면 꿈에 나비가 되어 노닐다가 깨었는데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모르겠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것은 우주적 시간속에서 인간이 갖는 찰나적 시간을 상대화하여 현실과 꿈의 구분을 무시해 버린 것이다.

시간이 끝없이 흐르고 세상 모든일이 변화속에 있다고 해서 세상일이 모두 허무하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동양철학에서 무상하다고 비관적으로 보는 변화과정은 완전성을 나타내기 위한 살아있음의 표현인 것이지 영원한 것이 없다는 식의 허무의 표현이 아닌 것이다.
세상의 완전함은 변화속에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며 그 변화의 시간은 완성의 가능성을 부여하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을 산다는 것은 모든 것이 무상하다고 세상의 짐을 벗어버리고 모든 것이 그치는 적멸의 길로 들어서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 속에서 좋은 것을 지어 완성에 이르기 위한 과정인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 깃들어 있는 이러한 참된 의미를 알지 못하고서는 결코 진실을 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며 이를 분명히 보셨기에 부처님은 세상은 참으로 살아볼 만한 곳이라 했던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영원불멸한 완전한 근원(불성, 신성, 조물주)으로부터 나타나 완전한 구조로 이루고 끝없이 돌면서 이세상의 삶을 이어나간다.
그리하여 뿌린 씨앗은 결과를 낳고 그 결과는 열매를 맺어 다시 씨앗을 뿌리며 영원히 이어져 나가는 것이다.

세상의 일은 바로 이씨가 뿌려져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으며 다시 씨가 되어 돌아가며 세상을 구성하는 원리로 되어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이 씨의 상태로 머물 때는 아무런 작용을 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아도 그것은 현실에 대한 원인으로 대기하면서 잠재되어 있는 것이니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세상사람들은 세상의 일이 순환하여 씨의 상태로 머물 때를 가장 이해하기 힘들다.
실체가 보이지 않는 무의 차원인데 모든 원인을 함축하고 있어 인연을 만나면 다 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단계에서 많은 명상가와 철학자들이 앞이 보이지 않아 환상과 거짓을 범하였고 오류를 저질렀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깨달은 자와 깨닫지 못한 자의 차이인 것이다.
깨달은 자는 시각이 거의 100% 열리기 때문에 유와 무를 오고가고 있는 중간의 끊어진 단계인 씨앗의 인과관계를 완전히 보아 삶의 의미와 우주의 존재방식을 명확히 밝혀 인류의 빛이 되지만 중생들은 이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환상과 거짓과 생각을 짓게되어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완전한 인과의 이치에 의해 완성을 향해 한치의 어김없이 이루어지는 이치를 정법이며 진실이라고 하고 인과의 고리를 벗어나 이치에 닿지 아니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환상이라 하며 거짓이라 하며 비법이라 하는 것이다.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라 믿고 따르고 완전한 세상을 무질서하다고 보고 가치있고 신성한 삶을 무의미하다고 보며 사랑하고 축복하는 삶을 소유과 탐욕으로 물들고 깨닫지 못한 자를 깨닫았다고 섬기고 없는 것을 있다고 믿고 영이 하는 장난을 진실이라 믿는 것들이 바로 그러한 비법들로서 이러한 것들은 인과의 이치상 성립할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에 이를 믿고 따른다면 그결과는 소멸의 고리를 돌아 헛되고 불행한 결과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끝없이 변화하면서 새로운 원인을 낳고 있기에 하나하나가 중요하다. 따라서 그 하나 하나의 과정은 영원을 망치는 것일 수도 있고 완성과 이어지는 것일 수도 있기에 삶을 살아가는 매 과정이 중요하며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세상사람들이 욕망에 집착하여 이치를 그르치면서까지 재물과 명예와 권세의 노예가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끝없는 변화속에서 완성을 지향하고 있는 우주적 흐름을 모르고 작은 욕심에 집착하여 우주의 전체의 완전한 뜻과 흐름에 역행하는 삶을 살고있는 어리석은 현상인 것이다.

현실은 바로 이와 같이 세상 속에 있는 진실과 거짓이 지은대로 결과를 받는 장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러한 완전한 세상과 인과의 고리를 안다면 올바른 뜻을 실천하여 세상을 축복하고 자신을 완성시키는 길을 가야 하는 것이다.

그대가 말한 '신비스럽고 현실에 벗어나는 일'은 아무리 순간적으로 기분좋은 일이라도 존재하지 않는 일이며 올바른 이치와 완성의 길에 맞지 않아 결국 자신을 망치게 되는 것이기에 바람직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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