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실을 찾아서
기독교는 원시종교인가? 고급종교인가? 본문
오늘날 기독교가 우리나라 종교의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 아마 그 이유는 기독교에서 그동안 지은 죄에 관계없이 믿기만 하면 구원을 보장하는 은혜가 충만한 종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최고의 종교이며 유일한 진리를 기독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종교의 기원과 역사를 생각해볼 때 현재 기독교란 엄밀히 말해 원시인들이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해 맹목적으로 믿던 원시종교에 속한다.
종교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원시시대부터 믿어왔던 초월적 존재에 대한 신앙체계이고
하나는 성자들이 나타나 진리를 밝혔던 진리체계이다.
오늘날 사전적 의미의 종교를 찾아보면 ‘신성하거나 거룩하거나 영적이며 신적인 것과 인간의 관계’ 또는 ‘특정한 믿음을 공유하는 이들로 이루어진 신앙공동체와 그들이 가진 신앙 체계’를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는 신에 대한 믿음만을 종교로 생각하는 것은 기독교적 관념을 전제로 한 주장이다.
동양에서 종교의 뜻은 본래 宗敎(종교)라는 한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말 그대로 모든 궁극적인 의문과 인생과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으뜸되는 가르침을 의미하는 것으로 성자들이 나타나 밝힌 근원적 진리체계를 의미한다.
그럼 원시종교와 진리 종교의 차이를 살펴보고 왜 예수라는 성자가 나타나 진리를 밝힌 기독교가 원시종교화 되었는지 알아본다.
기본적으로 종교가 필요한 이유는 인간에게 완전성을 찾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 속에는 조금의 부족한 것도 용납하지 않는 맑고 완전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세상 모든 일에 대해 한점도 의문이 없는 궁극적인 해답을 원한다.
그래서 원시시대 때 인간들은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천둥과 번개, 폭풍우, 화산과 지진과 해일같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보고 이를 일으키는 전지전능한 절대자를 상정해놓고 이에 의지하여 궁극적인 해결책을 찾으려 했다. 원시인들은 자신이 상정한 신이 세상의 모든 일을 주관하는 전지전능한 존재라고 생각했기에 그가 일으킨다고 생각한 이 세상의 모든 일들에 대해 신성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수 있었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인간의 한계를 신의 뜻으로 미화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하여 신에 대한 믿음을 통해 신과 자기를 동일시시키자 절대적 존재의 일부가 됨으로서 모든 불안에서 해결되었으며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부족한 것은 신을 완전히 믿지 않고 인간적인 욕심을 차린 자기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미지의 절대자에 대한 단순한 믿음이니 막연한 기대에 불과할 뿐 여러 가지 한계에 부딪힐 수 밖에 없었고 그럴수록 정성이 부족한 자신들의 문제라 생각하여 더욱 절대자에게 귀의하는 행태를 보였다.
그러다보니 고귀한 인간으로 태어난 의미와 가치, 개인의 자유와 책임은 사라지고 신이 주체가 되어 궁극적으로 인간은 사라지고 신만 남게 된 것이다. 즉 인간은 삶의 주체로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신의 노예로 태어난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절대자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은 자연히 민족적 편견과 미신과 어우러지면서 인간사회를 병들게 했고 이러한 비이성적이고 맹목적인 종교적 현상에 대해 통찰력을 지닌 많은 지식인들은 의문을 제기하곤 했다.
더구나 이러한 원시종교에 있어서는 신의 뜻을 전달하는 제사장의 역할이 가장 중요했다. 그들은 무지한 인간세상에 신의 뜻을 전달해주고 그 초월적인 힘을 대신 행사했다. 그래서 고대사회의 정치와 종교는 하나로 결합하여 신권정치시대가 나타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회가 유대사회였다. 유대교단의 제사장들은 이러한 신의 뜻을 등에 업고 전권을 행세했다. 솔로몬왕도 바로 그러한 제사장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그러나 양심적인 제사장들이 민족을 이끌 때는 문제가 없었으나 이기적이고 잔인한 성직자가 나타나게 되면 그 사회는 자의적인 권력의 행사로 인해 타락했으며 백성들의 고통이 극심해졌다.
예수님이 가장 싫어했던 것이 바로 유대교회의 성직자들이었다.
당시 유대사회의 성직자들과 그에 이끌리는 교인들은 하느님의 참뜻을 실천하지 않고 겉으로는 율법을 지키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온갖 위선과 탐욕을 행하여 유대사회를 어둡고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의 위선과 탐욕을 보고 그들을 「독사의 자식」이라 칭하면서 크게 진노하며 꾸짖었다. 그리하여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주여, 주여! 하며 나를 부르지 말고 하느님의 뜻을 행하라”고 하셨던 것이다."(마태복음 7장 21절).
그리하여 그 미움을 받고 예수님은 결국 위선된 구약의 율법에 의해 유대교의 제사장과 그에 이끌리는 무리들에 의해 죄를 받고 빌라도총독에게 끌려가 십자가에 처형을 당하신 것이다. 빌라도는 예수를 유월절 특사로 용서해주고자 했으나 제사장과 유대인들은 예수대신에 바라바를 용서해줄 것을 요청했기에 예수님은 다시한번 유대인들에게 버림을 받은 것이다. 이처럼 신의 뜻을 모르는 원시종교의 맹목적인 신앙에 의해 의인이 돌아가신 것이다.
이러한 무지와 미신, 위선과 죄악, 신들에 의한 각종 영적 해악 등이 세상을 지배하자 세상은 더욱 어둡고 불행해졌고 폭력이 지배하는 아수라장이 되어 갔다. 이것이 예수가 태어날 당시의 사회환경이었다.
성자들은 바로 이런 오탁악세의 어둠을 뚫고 태어난다고 한다. 왜냐하면 맑고 큰 근본을 지니고 태어난 성자들은 세상의 모든 악과 불행을 겪어야 그 속에서 자기의 가능성을 최대로 발휘하여 자신의 영혼을 완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성자들은 세상에 대한 사랑과 진리에 대한 열정으로 자신을 불살랐고 마침내 자신 속에 있었던 모든 삿된 티끌을 정화하여 마침내 인간완성이라는 영혼의 열매를 얻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깨달음의 눈을 얻은 성자들은 기성 종교들의 거짓과 위선을 비판하며 세상의 진실과 진리, 인간의 길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 속에는 이 세상이 왜 존재하고 왜 문제가 생겼으며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
인간의 의미와 가치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구원의 길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제시했던 것이다.
이러한 성자들의 시각은 모두 똑같다.
그들은 자신들이 진리를 만들어서 본 것이 아니라 태초이래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자연의 이치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자들은 때와 장소는 다르게 이 세상에 태어났어도 그 가르침에는 공통적인 요소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자들이 나타나 밝힌 가르침에 의한 종교를 진리의 종교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세상의 궁극적인 의문과 인간의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있는 참된 종교는 무엇인가?
그것은 더 이상 대답할 필요도 없이 세상을 완전히 보고 그 속에 있는 인간의 길과 행복의 길을 밝힌 성자들의 가르침인 것이다.
그러면 예수라는 성자가 나타나 진리를 밝힌 기독교가 왜 신앙을 위주로한 원시종교화되었는가?
예수님은 황야에서 세상을 위한 안타까움에 자신을 완전히 불살라버리고 자신을 정화하여 완전한 진리와 인간이 살아야 할 길을 보셨다. 그리하여 기존 유대교와 유대사회의 잘못되고 병든 점을 지적하고 참된 하느님의 길 즉 진리를 행하라고 세상을 일깨웠던 것이다. 그래서 그의 말씀은 모든 것이 자연의 이치와 일치했으니 이것이 신만 믿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하는 기존 유대교와는 다른 예수님의 가르침이었다.
그러나 33세의 젊은 나이에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고 그 가르침의 시간이 3년반 정도로 매우 짧았기에 제자들에게 진리에 대해 충분히 가르칠 수 없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갑자기 돌아가시자 사후에 남은 제자들은 무엇을 가르칠 지 막막했다. 개인적 자질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제자들은 대부분 진리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못했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도 약했다.
3년간 인간예수를 신처럼 떠받던 12제자들도 십자가에 처형될 시점에는 모두 겁이 나 예수님을 배반하고 만다. 그 증거는 예수가 돌아가시는 현장에서 제일제자였던 베드로가 닭이 울기 전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정했던 사례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이것이 예수님이 돌아가시던 당시의 예수님 가르침의 실상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당시만 해도 문자가 제대로 보급되어 있지 않는 상황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은 제자들의 기억 속에 저장되어 전해졌는데 이것이 경전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예수님 사후 40년이 지난 후부터라고 전해지며 그후 수백년을 걸치면서 사도와 속사도, 그리고 교부를 통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소아시아와 유럽전역으로 파급되면서 때와 장소에 따라 여러가지 형태로 성서가 변질되어 나타나게 된다.
마태복음, 누가복음 등 제자들의 이름에 따라 다른 내용의 성경이 나타나고 각종 서한문이 나오고 있는 이유는 다 그 때문인 것이다. 오늘날 이때의 초기 신약이 수록된 희랍어 사본이 약 5천여개, 번역 사본들도 약 1만개 정도 보존되어 있으며 교부들의 인용문도 수천에 이르고 있다.
예수님 사후 로마사회나 유태사회는 몹시 혼란스러운 시대로, 새로운 가치관을 요구하고 있었기에 여기저기 많은 사도들과 교회가 나타나 서로의 교리를 비판하며 교세를 키웠다. 그 당시는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는 단계라 서로간의 교리논쟁과 인신공격은 치열했으며 이러한 초기 기독교의 분열상은 현 기독교의 분열상 보다 훨씬 더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흐름은 크게 세가지가 존재한다.
첫 번째는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의 예루살렘을 중심으로한 유대지방의 움직임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마지막에 예수를 부정한 것에 크게 후회하고 자신을 바쳐 예수를 전도하고 가르침을 전했다. 예수에 대한 신앙적 믿음과 직접 들은 진리에 대한 가르침이 균형적으로 섞여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유대사회에 한정되어 있었고 로마로부터 정치적으로 탄압받아 얼마가지 않아 그 세력을 잃고 만다.
두 번째는 바울에 의해 이끌리던 신앙 위주의 교리였다. 다수의 신도들은 어렸을 때부터 유대교의 영향력 속에 살아온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직접적인 가르침이 없어 진리에 대한 깊은 깨우침이 없었고 전해들은 예수님의 위광에 열광했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익숙했던 신앙적 방법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하려 했던 것이다. 또한 기독교가 로마로 뻗어나가면서 그 주된 선교대상이 바로 아녀자나 노예, 하층계급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믿음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원시신앙이 이성적 가르침보다 더욱 효과적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로마에 급속히 세력을 넓혀나감으로써 이 세력이 기독교의 주된 세력이 된다.
그리하여 에비온파 같은 이들은 구약을 받아들여 할레와 안식일, 율법 등을 문자 그대로 지키려 했으며 이들은 예수님을 하느님과 같이 신앙화하여 나중에는 하느님과 예수와 성령을 같은 절대자로 보는 삼위일체설을 주장하는 아타나시우스파로 발전하였다.
세 번째로는 성자인 예수가 가르친 진리의 길을 스스로 실천하여 그 영혼의 정화를 얻음으로써 구원을 얻고자 했던 극단적인 수행자들의 흐름이었다. 그들은 도마와 같이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진리의 복음을 접하여 마음이 맑고 깨우침이 큰 제자들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능한 순수하게 지키고자 애를 썼는데 그들이 흔적을 남기고 있는 영지주의 저술들을 살펴보면 지금의 신앙적 기독교보다 더욱 진리에 가까운 것을 볼 수 있다.
그동안 말로만 전해지던 영지주의 기독교가 세상에 자세히 밝혀진 것은 1945년 이집트의 나그 함마디에서 땅을 개간하던 한 농부에 의해 우연히 52개의 "영지 복음서"들이 무더기로 발굴됨으로써 비로소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그 많은 영지 복음서 사본들 중에서도 특히 도마에 의해서 집필되었다는 〈도마 복음서〉는 성서학자들에 의해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에 이은 제5의 복음서라고 칭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 복음서의 내용에 나오는 예수의 말씀은 거의 불교 사상의 선적(禪的)인 가르침과 흡사한 면모를 보여주어 서구 신학계에 큰 파문을 일으킨 바가 있다.
이와 아울러 "20세기 최대의 고고학적 발굴" 이라고 일컬어지는 사해근처 쿰란 동굴에서 1947년에 발견된 〈사해 두루마리 사본〉은 전통적으로 잘못 이해되었던 초기 기독교의 공동체의 모습과 예수님, 그리고 에세네파의 실체를 드러내 줌으로써 영지주의의 뿌리와 그 관계를 간접적으로 밝혀 주었다.
그리하여 초기교회가 종말론적인 영지주의적인 성격을 많이 지녔고,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많은 교파들 간에 각각 다른 복음서와 사도행전들이 난무했으며 교세다툼이 치열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다.
여기서 "영지(靈知)"란 서구적인 표현인데 단순히 영적 지식을 얻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참된 진리와 인간의 본성과 운명, 그리고 신에 대한 통찰과 같은 깨달음의 종교를 뜻하는 것이다.
또 그들은 예수님이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구원하기 위해 신으로 온 것이 아니라 인간을 영적인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고 그 길을 열어 주는 안내자 내지는 스승으로 왔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초기 기독교 신자들은 예수님을 그들을 구원해줄 메시아로 알고 있었지, 하느님과 동일시하지는 않았다. 즉 예수를 신의 독생자로 모든 창조물 중에 으뜸이요, 모든 선지자 중에 으뜸인 인간으로, 신과 인간의 중간적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그들은 하느님만 절대자로 인정하고 그리스도를 피조물인 인간 중 가장 뛰어난 존재로 보는 단일신론을 주장했는데 이것이 예수를 신으로 모시고 신앙으로 섬기고자 하는 3위일체설을 주장한 아타나시우스파에 의해 이단으로 몰리는 단서가 된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에게 배운 대로 열심히 노력하여 영적인 각성을 얻음으로써 비로소 구원을 얻어 모든 속박을 벗어나 초월케 된다고 믿었다. 그들에게 있어 "영지를 얻은 자"는 곧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었다.
그들은 구약의 신을 잔인하고 복수심에 불타는 신으로 보고 창세기를 부정하며 구약의 신을 악의 창조자로 보았다. 그래서 제자들이 구약의 신을 섬기는 것을 보고 예수님이 하느님은 그런 존재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례를 든다.
즉 구원은 구약의 미움과 복수의 신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빛과 진리를 다스리는 초월자에 의해 이루어지니 내부의 빛을 통해 깨어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형제자매여! 깨어나라. 너희들은 잠들어 있고 무지몽매하다. 지금은 너희들은 깨어날 때이다. 네 안의 주를 깨우고 빛을 깨워라.”
이렇게 정신적 가치를 강조하다보니 물질을 악의 근원으로 보고 세속의 권력인 교회와 주교들을 껍데기와 같다고 보았다. 이것 또한 기존 유대교의 위선적인 교단에 대한 예수의 인식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역시 교회의 타도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지옥에 대해서도 지금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별도의 공간이 아니라 이 지구상에 천국과 지옥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사실은 세상의 진실에 눈을 뜬 자만이 볼 수 있는 사실인 것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지옥의 고통에 대해 전해들은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인자하신 하느님이 있는데 왜 죄인들이 저렇게 지옥에 갖혀 참혹한 고통을 받느냐고 묻자, 예수님은 “죄인들 스스로 그렇게 만들었다”고 대답을 하는 구절이 나온다. 즉 예수는 생명의 원리인 지은대로 받는 인과법을 밝히고 계신 것이다.
마지막으로 또 한 가지 이들이 신봉했던 중요한 가르침 중의 하나가 윤회사상이었다. 영지주의자들은 각자의 내면에 있는 신성의 빛을 되찾아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까지 인간의 영혼은 몇 번이고 육체로 다시 태어나 세상의 경험을 통해 배우면서 궁극적인 깨달음에 이른다고 하였다. 이처럼 윤회환생에 대한 믿음은 이들의 신앙의 근본토대를 이루는 것이었으며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들은 결국 새로 나타난 속제자인 바울의 신앙주의에 의해 패배하고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왜냐하면 대중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은 이치대로 이루어지는 진리보다는 믿기만 하면 그동안 지은 모든 것과 관계없이 구원을 얻는다는 신앙적 교리로 바울에 의해 주도된 이러한 흐름은 당시 사회에 큰 세력을 얻어 결국 직계제자였던 12사도의 영향력을 누르고 기독교의 본맥이 되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신약의 4/1을 차지하는 바울서신들로 인해 진정한 최고의 사도가 바울인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육체적으로 본적이 없는 속제자로서 후대 사도들간의 세력 다툼에서 결국 바울파가 승리했기 때문이다.
바울은 바리새파인 유대인으로 유력가의 아들이었으며 로마와 밀접한 관계에 있어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바리새파 율법학자로 종사하다가 예수를 믿는 신자들을 처벌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다가 예수의 고난과 가르침을 전해듣고 고뇌하다가 성령을 받고 예수를 신앙적으로 접하게 된다. 그래서 예수의 진리에 대한 가르침이나 율법보다는 성령에 의한 구원을 강조하고 믿음을 통한 손쉬운 구원론과 대속론을 주장했던 것이다.
초기에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의 정통적인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께 직접 배우지도 않은 바울이 갑자기 나타나 율법과 가르침을 무시한 채 광신적으로 믿음만을 강조하며 구원을 내세우자 그것이 예수님의 참 가르침이 아니며 말법을 퍼뜨리는 배교행위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바울은 초기 교회 공동체로부터 여러 번 견책을 받고 제자로 인정받지 못했으며 죽음의 고비도 넘기게 된다. 그래서 바울은 위험한 예루살렘을 벗어나 이방인 선교로 방향을 잡아 거대제국인 로마선교에 주력했던 것이다. 갈라디아서 2장에 베드로는 히브리민족에게,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그 속 사정은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
이러한 교파들 간의 다툼은 『고린도 전서』에도 잘 나와 있다. "내 형제들아! 너희들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이는 다름 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헬라어로 베드로)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주장하는 것이니" [고린도 전서 1장 11~12절]
이처럼 바울은 당시 "아볼로"와 같은 사도들과 서로 파벌을 내세우며 교세다툼을 했는데 할례파 사람들과 함께한 베드로에게 위선자라고 비난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바울은 율법보다는 신앙을 중시했다. 이것 또한 기존 제자들의 입장에서보면 예수님의 가르침에 위반되는 일이었다. 예수님은 깨달은 성자로서 인간 정신을 지키는 율법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했다. 그리하여 신약에서 율법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하고 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자들의 말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은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누구든지 이 계명 가운데 가장 적은 것 하나라도 폐지하고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라고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이 계명을 지키며 가르치는 자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라고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운 행실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의로운 행실보다 낫지 않으면, 너희는 하늘나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태복음 5:17~20]
또한 예수는 "온 마음과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가장 으뜸가는 계명이고 모든 율법의 골자이다(마태 223:37~40)"라고 명백하게 가르쳤다.
즉 예수는 깨달은 자로서 율법의 중요성을 알고 이를 지켜야만 마음의 정화를 얻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했는데 바울은 진리보다는 교세의 확장과 대중적 세력을 얻기 위해 신앙을 강조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바울은 예수의 말씀과는 정면으로 어긋나게 〈갈라디아서 2장〉에서 다음과 같이 설교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하여 주심을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는 아무도 의롭게 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기 기독교 시대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도인 야고보는 바울의 이러한 진리가 사라진 형식적인 믿음에 대해 이렇게 비판적으로 질타했다.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야고보서 2:26]
물론 바울의 이러한 행위가 반드시 고의적인 것이 아니라 전도의 열정이 너무 앞선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이는 결과적으로 필요 이상으로 예수에 대한 숭배와 신격화를 조장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바울은 믿음을 통한 구원과 예수의 희생을 강조한 나머지 당시 미개했던 유대교 종교적 신앙과 이를 연결시켜, 예수가 인류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대속론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 이후 에세네 공동체를 주축으로 했던 초기 기독교 정통세력은 A.D. 68~70년에 일어났던 이스라엘 민족의 반란의 여파로 인한 로마군의 예루살렘의 파괴, 그리고 AD 74년에 최후 저항지였던 마사다 요새가 함락됨으로써 극히 일부를 제외한 거의 대다수가 괴멸되어 버렸다. 이러한 정치적 사건으로 인하여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베드로 등 직계 제자들이 세력을 펴던 정통 기독교는 힘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러나 바울의 신앙을 앞세운 기독교는 로마의 시민권자인 바울의 3차에 걸친 해외 전도여행으로 말미암아 소아시아를 넘어 로마와 유럽으로 확장되어 나갔다. 하지만 이렇게 뻗어나간 기독교의 대부분은 예수님의 가르침의 정수를 간직했던 베드로의 기독교가 아니라 바울의 기독교였던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가 공인되고 국교가 된 곳이 이스라엘이 아닌 당대의 세계정복국가였던 로마제국이었기에 세계사적으로 주류였던 서구 사회에서 결국 바울파가 정통성을 얻게 된 것이다.
하지만 비록 바울파가 승리했지만 예루살렘에 근거지를 둔 정통 베드로파도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베드로가 초대 교황으로 추인되고 천국의 수문장이 되는 전통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 로마 카톨릭의 교황 제도가 베드로를 계승해 왔다고 자처하고는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명목상의 이야기일 뿐이며, 엄밀히 말하자면 바울의 교리를 국교화해서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즉 거대한 세속적 교황체제는 사실상 예수의 근본적인 가르침이나 초대 교회의 베드로나 야고보와 같은 사도들하고는 큰 연관성이 없는 것이다.
바울의 이러한 행위는 양면성이 존재한다. 기독교의 세계화란 측면에서는 매우 긍정적이었지만 예수님이 진정으로 전하고자 한 진리라는 측면에서 보면 매우 큰 손실이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유대사회의 신에 의한 우상과 유대교당이 행사하는 억압적 통치를 거부하고 미신과 위선으로 사악해진 유대사회를 개혁하여 유대민족을 구하고자 진리의 가르침을 전했다.
그러나 너무 짧은 가르침의 시간으로 진리는 제대로 전해지지 못했고 예수에 대한 전설과 믿음만이 남아 다시 유대교와 같은 영적 신앙이 되어 예수님이 신이 되는 원시종교의 형태가 되고 만 것이다.
어쨌든 신약성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하여 기원 후 40년대 중반이후부터 기록되기 시작하였다. 모두 그리스어로 쓰여졌으며 신약성서의 제목처럼, 마태오, 마르코, 루가, 요한, 바울로, 야고보, 바울로 등이 기록하였다. 그 외에도 사도들의 이름을 사칭하여 수많은 기록물들이 난무하였는데 오늘날 신약성서라고 하는 27권도 그 당시에는 성서는 아니었다.
교회의 처음에는 사도들과 사도들의 후계자들이 미사(성찬예배)를 거행할 때 구약성서와 사도들의 편지를 낭독하였다. 그러다가 교회는 사도들의 수많은 편지나 복음서들 중에서, 진짜를 가려야 할 필요가 있었는데 200년 경부터는 이미 가톨릭교회의 중심인 로마교회와 알렉산드리아 교회 등에서 오늘날의 신약성서와 비슷한 성서들을 추려 사용하고 있었다.(물론 성서로서가 아니라 사도들의 복음 증언서 등으로 간주)
이러한 성경의 원형은 AD170년경 무라토리 정경목록으로 나타난다. 이 정경목록에는 현재의 신약 27서 중에서 베드로 전,후서, 야고보서, 요한3서, 히브리서가 빠져 있는데 이러한 경전들은 오랜 동안의 교리적 투쟁을 거쳐서 나중에 정경으로 채택되었다.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교리논쟁에서 승리한 아타나시우스는 AD367년 부활절 서신을 자기 교구의 여러 교회로 보내면서 지금의 신약성서와 같은 목록을 제시했는데 오거스틴도 이 정경목록을 지지했다. 이것이 제롬의 라틴어 번역(Vulgata)을 통하여 전 서방 교회에 유포됨으로써 현 성경의 원형이 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현재의 성경 속에 베드로를 제외한 12제자의 전도활동이 매우 미미하며 육체적 예수를 만난 적이 없는 바울이 예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주역을 맡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의 직계제자들이 세력다툼에서 바울에게 졌기 때문이다.
즉 기독교 측에서 정경으로 채택하기를 거부한 외경에는 많은 사도들의 행적과 최후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러한 외경에는 베드로 복음, 베드로계시록, 베드로행전, 요한행전, 도마행전, 안드레아행전, 에비온복음 등이 있다.
그리하여 오늘날과 같은 신약성서 27권과 구약성서46권(70인역 및 히브리어사본)이 공식적으로 확정되었으며, 이 성서 목록은 397년 "카르타고 교회회의"에서도 거듭 확인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성경속에 육체적으로 예수님을 만난 적이 없는 바울의 신앙적 교리가 정통이 되고 초기 예수의 진리적 가르침을 충실히 대변했던 아리우스파가 이단이 되며, 신앙 위주의 아타나시우스파의 삼위일체설이 로마황제의 신성 통치를 위한 핵심교리로 채택되는 사례 등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성경이 일점일획의 어김이 없는 성령의 말씀이 아니라 현실권력과의 타협 과정에서 나타난 역사적 산물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종교의 실체이니 어느 것이 진리인지 참된 성자의 가르침인지 알아보기 어려운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면 절대적인 신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과 영적 계시를 믿는 원시종교가 과연 인간에게 이러한 궁극적인 의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인간의 길을 밝혀줄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자.
기독교인들은 성경은 은유적으로 나타나 있어 하나님이 계시로 나타나 인간에게 길을 제시해준다고 하나 이러한 영적 현상은 불확실하며 믿을 바가 못된다.
더구나 신에 대한 맹신과 심령현상의 만연은 세상이 어둡고 망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과거 역사를 돌아볼 때 신이 성행하고 영적 현상이 번진 나라는 반드시 망했던 것이며
반대로 인간이 정신이 살아나 자기 역할을 다한 나라는 크게 번성했던 것을 볼 수 있다.
절대자가 세상에 나타나 진리를 밝힌 일은 한번도 없다.
모든 진리는 신이 밝히는 것이 아니라 완성에 이른 영혼을 지닌 성자라는 인간이 태어나 육성으로 세상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그 이외에는 진리를 밝히는 곳은 없으니 더 이상 신에 의한 게시나 예언을 믿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신이 나타난 게시를 전한 과거의 사례를 살펴보더라도 어느 한쪽 편을 드는 감정적인 결정을 내린 적은 있어도 진리에 관한 일을 전한 적은 없다. 하지만 그런 신은 대부분 떠도는 하급신에 불과하니 높고 높으신 창조주 하느님이 탁한 인간 세상에 나타나 자기를 도와달라고 기도하는 사리사욕에 눈먼 인간의 개인적인 청탁을 들어줄 리가 만무한 것이다.
원시종교와 진리의 종교는 둘 다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해주는 기능을 한다.
그러나 원시종교는 무조건 믿음으로써 요행수 속에 해결책을 찾지만
진리의 종교는 세상을 완전히 보는 깨달은 자의 지혜의 눈을 통해
문제를 정확히 밝히고 궁극적인 해결책을 찾는다는 것이다.
여기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즉 원시종교는 사람을 무지하게 만들지만 진리의 종교는 사람을 깨어나게 만들며
좋은 세상과 좋은 영혼을 준다.
원시종교나 진리종교는 똑같이 인간이 정의내린 종교의 개념에 속하긴 하지만
하나는 정법이요 하나는 말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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