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실을 찾아서
장애나 사고 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해 본문
세상의 모든 일은 자신의 업에 의하거나 새로운 인연이 닿아서 생깁니다.
모든 것은 원인과 인연이 만나 생기는 것이며
원인이 없이 나타나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장애아가 나타나는 원인도 이러한 이치에 의해
과거에 자신이 지은 업이나 환경이라는 인연을 받아 태어나는 것입니다.
기독교 계통에서는 장애의 경우,
그것이 하나님의 위대한 뜻을 실현하기 위해 마련한 하느님의 역사라고 주장하는데
이와 같이 하느님이 자신의 위대한 역사를 증빙하기 위해
한 인간을 고통의 시험에 들게하고 나중에 다시 은혜를 베풀어 신의 은혜를 증명한다는 것은
참으로 잔인하고 장난스런 일이며 하느님의 선의지와 자비를 생각해 볼 때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모든 살아있는 생명은 그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선택하는 창조적 주체입니다.
이러한 장엄한 생명의 역사는 조물주라고 해도 관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신이 스스로 자신을 결정하는 능동적 주체이듯이
신의 자식인 인간 또한 이를 이어받아 살아있는 생명의 주체로서
스스로의 판단과 행동아래 자신의 운명을 엮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세상 일은 완전한 이치 속에서 자기 책임하에 지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현생에서 장애의 인연을 만난 이들은
자신이 왜 그러한 불행한 운명을 지니고 태어나야 했느냐고 억울해하지만
그것은 이미 엄정한 인과에 의해 자신의 삶의 일부로 다가온 것인 만큼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지 부정해서는 안됩니다.
세상 일은 수많은 원인에 의해 수많은 경우가 나타나는 것이니
세상 속에는 좋은 운명을 얻는 이에서부터 극심한 불행을 안고 태어나는 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부류가 있게 됩니다.
좋은 운명을 타고난 이는 자신에게 좋은 근본과 좋은 원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이를 활용하여 더 좋은 공덕을 지으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며
나쁜 운명을 타고 난 이는
인과에 의해 나타나는 한치의 어김없는 세상의 법칙을 인정하고
다시는 그런 불행이 나타나지 않도록 성찰하고
이 생을 더 나은 자신을 만드는 복밭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흠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장애는 인간이 가진 수많은 시련 중 육체와 경제적인 면에 국한된 작은 시련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육체적 장애보다 더 큰 시련이 많고 많습니다.
인류 역사상 사회의 행복과 국가의 독립과 진리를 위해 자신의 가정과 몸을 바쳐야만 했던
수많은 선인들의 시련과 고통을 생각해 볼 때 육체적인 장애는 너무나 사소한 것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육체적 장애를 만났을 때 이에 대해 너무 비관하거나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생명의 이치상 인간으로 태어난 이유는 단지 육체적으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좋은 삶과 세상을 축복하는 과정을 통하여 자신을 완성시키고자 함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에게 불행의 인연이 닿았을 때는
자신보다 더 한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인류의 빛이 된 수많은 선현들을 생각하여
불행을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며
자신에게 주어진 불행을 잘 극복하여 더 좋은 자신을 만드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성자들이 최악의 인간적 상황에서 성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마음의 빛을 버리지 않고 그 어려움을 극복함으로
써 그 마음을 정화시키고 완성시킬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처는 반드시 오탁악세가 되어야만 나타날 수 있도록 되어있는 것입니다.
온실 속에 고이 자란 것들은 태어난 상태 그대로 머물게 되므로 더 이상 발전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큰 힘은 오직 시련을 이겨낼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장애 또한 그렇게 해석해야 합니다.
장애는 인간을 더욱 승화시키기 위한 밑거름이며 자신이 발전할 수 있는 계기인 것입니다.
이러한 장애와 시련 속에 있는 이치를 모르고
오늘날 소위 정상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크게 착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더 큰 문제 속에 빠져 있는 것을 모르고
장애자를 자신에 비추어 매우 불행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출세하고 쾌락을 즐기는 것에 인생의 목표를 두어
자신들과 같이 쾌락과 소유와 집착을 누리지 못하는 장애인들에 대해 매우 불행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세상을 축복하기 위해서 세상에 태어났으며
더 나은 자신의 영혼을 거두기 위해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정상인들은 한평생을 쾌락과 소유를 위해 집착하고 욕심내며 고통 속에서 살다가
곧 인연이 다하여 한과 집착 속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게 되는데
생명의 이치에서 보면 이러한 정상인들의 삶은 너무나 무의미한 것이며
자신의 영혼을 위하여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 낭비적인 삶을 살다가 떠나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오늘날과 같이 인간의 길이 사라지고 동물적 욕망과 집착이 번성한 곳에서는
정상인들이 추구하는 삶인 현실의 출세와 부귀영화는 누리면 누릴수록 그 영혼은 어두워지고 무거워지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두운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둠과 더 많이 타협해야 하고
더 많은 권모술수와 욕망과 집착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진리의 입장에서 보면 말세에서는 장애인보다 정상인이 더 불행하다는 아이러니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날과 같은 말세에서는 장애아로 태어나는 것은 다행인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장애아는 악연을 접할 기회가 적어 인간으로 태어난 자신의 영혼을 더 이상 망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정상이니 더 나은 것으로 생각해서 장애자를 함부로 평가하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됩니다.
완전한 인간완성의 경지인 해탈을 이루기까지 우리는 모두 과정 속에 있는 것입니다.
누가 좋고 누가 나쁘고 할 게재가 못되는 것입니다.
좋으면 더 좋아지려고 노력하고
나쁘면 격려해 함께 좋아지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은 인간의 모습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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